반응형 종묘16 [삐딱선을 탄 종묘] (2) 사직단도 삐딱선을 탔다! 말은 그리 했지만 짚이는 게 있었다. 직감이라 하는 요물인데, 이런 내 직감이 틀린 적은 거의 없다. "그래? 종묘가 그렇다면 사직도 그럴 텐데? 왜 똑같은 귀신집이잖아?"난 내가 생각해도 이럴 땐 천재다. 이런 천재가 어찌하여 소학교 문전이라고는 가 보지 못한 엄마 아부지 사이에서 태어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살모시 이번에는 종묘를 떠나 사직단 지도로 옮겨가서 봤다. 거 봐 내가 뭐랬어? 종묘가 그렇다면 사직단도 그래야 한다 했는데 봐봐 사직단도 똑같잖아? 딱 봐도 종묘랑 거의 똑같은 구도로 중심축이 심대하게 흔들렸잖아? 오른쪽에 경복궁 중심축이랑 빨간색 동글뱅이 친 사직단 중심축 비교해봐 안 맞잖아? 사직단 사단社壇과 직단稷壇만 적출한 표식이다. 이상하지 않아? 종묘 정전이랑 영녕.. 2025. 11. 20. [삐딱선을 탄 종묘] (1) 무너진 중심축 대략 오년 전쯤 일이다. 같은 문화재 분야 종사자인 A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A가 느닷없이 종묘 건물 중심축 이야기를 꺼냈다.요지인즉슨 이랬다."종묘 정전이 남북 중심축이 확 틀어져 있다. 이게 왜 이런지 모르겠다. 이를 탐구한 속시원한 글을 못 봤다."그 순간까지 나는 저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고 몰랐다."그래?" 하면서 바로 그 순간 지도를 검색해서 보니 종묘는 그 중심건물인 정전은 물론이고 부속사당인 영녕전, 그리고 기타건물도 모조리 일정한 방향으로 심하게 틀어져 있었다.동서남북 개념은 전근대와 근대가 약간 다르다.서구과학에 기초한 요즘 방향타에 견주어 남북 중심축은 동아시아 전근대가 대략 동쪽으로 시대별로 통괄하면 5~8도 정도가 기울어져 있지만 그 차이가 크달 순 없다.한데 종묘는 같은 시대.. 2025. 11. 19. 세계유산 뭉개버리고 다시 태어난 리버풀, 그리고 종묘와 세운상가 https://www.youtube.com/watch?v=xyZbwWEDr94 이전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가 그 목록에서 삭제된 리버풀 옛 항구에 리버풀을 연고지로 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에버튼 FC 홈구장이 들어서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이 항구는 불과 몇 년 전에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됐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논란이 된 문제가 바로 저 구장 신축 건설 때문이었다. 저기엔 저런 건물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런 데다가 문화재 관점에서 보면 저런 괴물 같은 최신식 건물이 들어서니 이런 일을 용납할 수 없다 해서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목록에서 아예 삭제해 버렸다. 바로 앞 사진은 스타디움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일 때 두 컷이다. 물론 세계유산에 삭제되고 나서다. 이 사진은 삭제되기 전 리.. 2025. 11. 13. 백제 사적들을 위압하는 거대 롯데월드타워, 그리고 형평성 문제 "롯데월드타워(영어: Lotte World Tower 또는 줄여서 롯데타워(영어: Lotte Tower)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300에 위치한 마천루이다. 지상 123층, 높이가 무려 555m까지 된다. 2010년에아 착공을 시작하여 2016년 12월 22일 134층까지 상량 완료했으며, 2016년 3월경 첨탑공사가 완료됨으로써 외장 공사가 완료되었고, 2016년 12월 22일에 완공된 후 2017년 4월 3일에 개장하였다."(위키피디아 전재)이 건물이 들어설 때 주로 논란이 된 부분은 비행기 항로였다고 기억한다. 특히 성남 비행장과의 관련 때문이었다. 이 거대한 마천루가 들어설 적에 내 기억 착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 단 한 번도 인근 문화재와의 관련성이 논의된 적이 없다. (설혹 있었다.. 2025. 11. 13. 왕 또한 마누라는 한 명뿐, 부묘祔廟의 중요성 전반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견주어 고려시대가 적서 차별 양상이 극심하지는 않은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는 상대성 이론이라, 견주어 볼 때 그리 보인다뿐이지, 고려시대라고 적서차별은 예외가 아니었다. 이 적서 문제는 결국 혼인 양태에서 비롯하는데, 더 구체로는 남자 한 명에 부인이 한 명인 1부1처제 때문이다. 한국사에서는 적어도 기록으로 남은 흔적으로 볼 때는 철저한 1부1처제 사회였고, 남자한테 부인은 같은 시기에 한 명이 있을 뿐, 복수로 존재할 수는 없었다. 고려시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어서 이쪽도 철저한 일부일처제였다. 어느 인터넷 사전을 보니 "고려시대에는 두 명의 정실 부인 외에 첩을 두고 서자를 두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서자를 적자와 다른 존재로 차별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태종 때였다.. 2024. 1. 25. 어보御寶와 어책御冊, 그 아슬아슬한 관계 "어책御冊은 어보御寶에 대한 주석(annotation)이다" 얼마전 감수라는 되먹지 않은 이름으로 어보 관련 평가서에다가 내가 함부로 썼다가, 이건 아무래도 생각을 다시 해봐야겠다 해서 빼버렸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다. 한데 이 말 맞는 거 같아. 명언 같아. (2016. 1. 3) *** 내 말 틀린 거 봤어? 맞어. 어보와 어책 이 둘 관계를 제대로 의심해본 사람이 없다. 어보가 추상이라면 어책은 그 추상을 해체한 구상이다. 그것을 풀어쓴 것이 바로 어책이다. 어보건 어책이건 신주神柱와 더불어 신위神位를 구성하는 삼두마차다. 실제 종묘 각 신실神室은 이 셋을 모름지기 세트로 안치 봉안해서 모신다. 2024. 1. 3. 이전 1 2 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