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6880 60세 이후 공부를 계속하는 법 아래 기준에 맞는 것만 남기고 다 쳐내야 한다. 1. 60 이전까지 해온 공부와 연결이 끊어지면 안된다. 60이후 잘해봐야 15년 정도 제정신으로 공부하는 것인데, 그 와중에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면 도달하는 점은 뻔하다. 딱 뭔가 나올만 하면 죽거나 공부 더 할 만한 상태가 안 될 것임. 2. 본인에게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본인에게 재미있는 공부만 남기고 그동안 의무감에서 해온 공부, 이런 것은 다 날려야 한다. 재미도 없는 건 읽는 이들도 곤혹이지만, 본인도 더이상 못하기 때문이다. 3. 연구지원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주제를 택해야 60이후에는 어떤 연구지원도 없을 것이라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도 혼자서, 보고도 혼자서 한다고 각오해야 한다. 혼자 일하는 데 익숙해지는 것, 60세 이후 공부.. 2024. 9. 6. 신석기농경이 농경 같이 보이는 순간 한국은 신석기시대에는 농경이 없고 청동기시대에야 본격적으로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오랫동안 정설의 위치를 차지한 것으로 안다. 물론 이런 주장도 최근에는 많이 바뀌어 신석기시대에도 초보적 농경이 시행되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들었다. 왜 신석기시대 한국의 농경은 그렇게 미흡하게만 보이는 것일까? 필자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시비 곧 거름이 없던 시대에 지력이 떨어지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다시 지력이 떨어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며 농사를 지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앞에서 이야기한 이런 "화전식 순환농경"은 소위 말하는 문명 중심지에서는 빨리 극복되거나 아예 경험하지 않고 넘어가기도 했던 것 같다. 왜? 그것이 바로 토지 비옥도의 차이다. 주기적으로 범람하여 비료도.. 2024. 9. 6. 맨발 세계기록 세운 1960 로마올림픽 마라톤과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콘스탄티누스 1세 즉위 10년을 기념해 원로원이 콜로세움 옆에 세운 대리석 문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다. 서기 312년 10월 28일 그가 로마에 진군하면서 테베레강 밀비우스 다리 전투[Battle of the Milvian Bridge]에서 당시 사두정치제제 한 축인 막센티우스Maxentius 군대를 격파하는 장면을 문에다가 부조浮彫로 묘사했으니 이 승리를 위한 기념물이 저 개선문이다. 문에는 세 개 통로가 있다. 건축 부재 일부 혹은 상당수는 동시대 다른 기념물을 뜯어다가 재조립한 것이다. 이 개선문 역사에서 특기할 만한 순간이 1960년 로마 하계올림픽에서 남자 마라톤 결승선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남자 마라톤은 1960년 9월 10일 토요일에 열렸다. 35개국 69명이 참가했다. 1930년 올림픽.. 2024. 9. 6. 기존 기념물을 뜯어다 재활용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몇 장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Arch of Constantine은 서기 315년에 콜로세움 근처 개선로Triumphal Way를 따라 난 혼잡한 교차로에 봉헌되었다. 로마 외곽 밀비우스 다리Milvian Bridge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재위 306~337)가 경쟁자인 막센티우스Maxentius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일을 기념하는 건축물이다. 조각한 장식 대부분은 AD 2세기 및 아마도 3세기 초기 황제들 기념물에서 가져온 것이다. 아치 꼭대기에 있는 이 비문(바로 앞 사진)은 막센티우스에 대한 황제의 승리를 기린다. 이것은 트라야누스Trajan 황제(r. A.D. 98~117)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다키아Dacia 군인들 조각상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치에서 보이는 이 장면은 콘스탄티누스(가운데)가 신하들.. 2024. 9. 6. 4천년 전 아나톨리아가 소비한 금은기 세트 미국 메트Met 소장품이라 그 명세는 다음과 같다. Group of four vases Period: Latter part of the Early Bronze Age Date: ca. 2300–2000 BCE Culture: Northwest Anatolian Medium: Electrum, gilded silver, silver 저 제작 연대를 보면 놀라움만 자아내고 부럽기 짝이 없다. 저 기원전 2천년 전에 이미 저런 고급 금제품 은제품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저 시대가 저를 출토한 아나톨리아는 이미 청동기시대로 돌입했으니 말이다. 저들은 출토지가 확실치 않은 가운데 함께 발견되었다고 알려졌으니 그렇다면 세트인 셈이다. 트로이 전쟁이 있기 약 천년 전 제작한 유물들이다. Credit: The Met 2024. 9. 6. 차르스키 쿠르간, 크림반도 보스포로스 왕국의 위대한 건축유산 먼저 위치는 아래 지도 참조 Tsarskiy Kurgan · Skifs'ka St, Kerch★★★★☆ · 역사적 명소www.google.com 왕실 쿠르간 Royal Kurgan 또는 차르스키 쿠르간 Tsarskyi Kurgan 이라 일컫는 기념물은 기원전 4세기에 건설된 흑해 북안 크림 반도 동부 소재 가장 인상적인 무덤(쿠르간) 중 하나다. 이 무덤은 밀레투스Miletus가 세운 고대 그리스 도시 판티카파이온Panticapaion(Παντικάπαιον)에서 발전한 현재의 케르치Kerch(우크라이나)에 위치한다. 이 케르치와 그 인근에는 약 200개 동시대 무덤이 존재한다. Royal Kurgan은 시내 중심에서 북동쪽으로 약 5km 떨어져 있으며 Adzhimushkay 채석장과 가깝다. 마운드 높.. 2024. 9. 5. 호화찬란한 고대 이집트 공주 목걸이 켄메트 공주의 목걸이 Necklace of Princess Khenmet 이 목걸이는 그의 미라에서 발견되었다. 보석으로서의 장식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하 세계의 사악한 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부적으로도 착용했다. 중앙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일련하는 부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줄 금 구슬 사이에 대칭적인 방식으로 배열되었다. 목걸이 중앙에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 앙크Ankh 표식을 장식하니, 이는 "평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 양쪽에는 10개 부적이 배열되었다. 힘을 나타내는 우세르User 사인, 독수리 여신 네크베트Nekhbet와 코브라 여신 와제트Wadjet, 상하 이집트 수호신이 그들이다. 중왕국, 12왕조, 아메넴하트 2세 통치, 기원전 1932~1898년 무렵. 다슈르에 있는 아메넴하트.. 2024. 9. 5. 멕시코 大피라미드의 터널 멕시코 푸에블라Puebla에 위치한 촐룰라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of Cholula는 고대 공학의 놀라운 업적으로 부피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다. 거대한 어도비 벽돌 외관 아래에는 20세기 초 발굴 중에 발견된 매혹적인 터널 네트워크가 있다. 수 킬로미터에 걸쳐 뻗은 이 터널은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단계를 거쳐 진화한 피라미드의 다층 구조를 엿볼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지하 통로를 탐험하면서 피라미드의 성장과 변형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발견했다. 터널은 피라미드가 연속적인 층으로 어떻게 건설되었는지를 보여주며, 각 층은 서로 다른 건설 시대를 나타낸다. 이 복잡한 네트워크는 피라미드의 건축적 복잡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피라미드 건축자의 종교 및.. 2024. 9. 5. 엄비 칠궁 현판을 쓴 이완용 한때 독립문 한글 한자 편액을 누가 썼는지에 관해 시끌시끌했던 적이 있다. 천하의 매국노 일당 이완용(1858~1926)이 다른 문도 아니고 '독립문'의 편액을 썼다니 라며 놀라고 또 부정하며 화내는 분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독립문을 세우던 1890년대 당시(그로부터 십여 년 뒤가 아니라) 그의 정체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조선은 미국같이 되기를 바라오"라고 연설했던 독립협회 창립발기인, 이완용 말이다. 어쨌거나, 이완용은 편액서, 곧 현판글씨에도 제법 능했던 건 맞는 것 같다. 높이 거는 현판의 특성상, 작은 글자를 확대해서 새겼다간 획이 지나치게 가늘고 힘없어 보인다. 그래서 현판에 새길 글씨는 다른 붓글씨보다 굵고 강하게 써야 한다. 이완용이 덕수궁 숙목문肅穆門, 김천.. 2024. 9. 5. 로마 벨로드롬 데코레이션으로서의 이집트 오벨리스크님들 Circus Maximus, Rome 549 A.D and today 곧 로마 구심 팔라티노 언덕과 콜로세움 인근 지금은 빈터(아래 사진)로 길쭉하게 남은 저 흔적이 로마시대 키르쿠스 막시무스 Circus Maximus 라는 벨로드롬이라 저것이 서기 549년 무렵에만 해도 첨부 사진 위와 같았을 것이라고 상상도를 그려 제시한 것이다. 저것이 당시 사정을 꼭 100프로 반영하지는 못한다 해도 저와 엇비슷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저 상상도는 이해의 시각화라는 측면에도 의미가 있다. 저 로마시대로 거슬로 올라가서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그 벨로드롬 복판을 길쭉하게 장식하는 기념물들이다. 자세히 살피면 이집트에서 뽑아다 놓은 오벨리스크들이 보인다. 저 중에서 아마도 2개인가가 로마 다른 지역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른다.. 2024. 9. 5. 대금계판갑帶金系板甲과 충각부투구[衝角附冑]가 나왔다는 경남 고성 송학동고분 14호분 문화재청과 경남도가 자금을 대는 국가지정문화유산 보수정비사업 일환으로 경남 고성 송학동고분군 중 제14호분이라고 이름한 가야 시대 무덤을 판 발굴성과가 5일 공개됐다. 하도 많이 파제꼈더니, 고성 일대를 터잡은 소가야시대 왕릉급 무덤을 팠음에도, 경천동지할 발굴성과라 대서특필할 만한 내용은 없다. 그래서 그 성과를 내세우는 경남도 보도자료도 제목과 부제목이 아래와 같아서 가야권역 내 최대, 고성 송학동고분군 14호분 실체 드러나! - 송학동 14호분 규모와 출토 유물, 소가야 지배층 고분 중 가장 탁월 - 소가야지역 최초 대금계판갑(帶金系板甲)과 충각부투구(衝角附冑) 확인 밋밋하기 짝이 없다. 아무튼 고성읍 기월리 581-5번지 일원 5~6세기 무렵 소가야 지배층 왕릉으로 알려진 고성 송학동 고분군(사적.. 2024. 9. 5. [독설고고학] 발굴의 시대는 끝났다 이거 낌새를 본격으로 풍긴지는 꽤 됐다.하긴 그간 오죽이나 파제꼈는가,지난 30년을 쉴새없이 전국토를 파제꼈으니 이제 웬간한 발굴로는 뉴스 취급도 되지 않으며 뉴스로 취급된다 해서 중국집 짜장면과 같아 아무도 새로움을 모른다. 더 파봐야 기성의 재확인에 지나지 아니해서 그것을 타파하며 발굴 그 자체로 와! 하는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하도 많이 파제꼈더니 이젠 더는 놀라운 소식도 없다.그래서 틈만 나면 저 경주 신라고분을 파제끼려 하는지 모르겠다.오직 남은 건 저 신라고분들뿐이다.하지만 그 대부분이 이미 사적으로 지정되고 그것을 팔 뚜렷한 명분이 없는 까닭에 틈만 나면 집중호우 닥쳐 신라무덤 무너져라 오매불망 기도하는 것 아니겠는가?물론 그렇다고 기존 발굴에 대해 기대하는 그런 소식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2024. 9. 5. 매머드 60마리 해골을 쑤셔박은 빙하기 대형 원형 건물 2020년에 공개된 발굴 소식이다. 러시아에서 털매머드woolly mammoth 60마리 개체분 뼈로 만든 2만5천년 전 원형 움집 하나를 발견했다. 이 매머드 움집 mammoth hut에서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불을 피웠다는 증거까지 발견됐다. 우크라이나와 인근 러시아 지역에서 더러 발견되는 이런 매머드 움집은 매머드 사냥꾼들이 사용했거나 규모가 너무 큰 까닭에 추장이나 지역 지도자가 살던 곳이 아닐까 하는 지적이 있지만 정확한 용도는 아직 모른다. 이 매머드 움집은 마지막 빙하기에 등장한 것으로 본다. 기후 변화, 대륙 이동, 지리 변화로 지구가 더 추워진 이 시기에 인간은 마지막 빙하기는 약 1만년 전에 끝났다. 조사 결과 지름 12미터에 이르는 이 원형 움집은 전체 구조물을 매머드 뼈, 구체로는 .. 2024. 9. 5. 이탈리아 지형, 산상을 선호한 문명 이탈리아 지형 흐름을 한 눈에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걸 보면 이탈리아 역시 한반도랑 비슷하게 산지 분포가 상당히 많은 듯하다. 하지만 막상 다녀보면 넓은 들판이 상당히 발달해 있다. 평지라 해서 사람이 살 만한 땅인가는 전연 다른 문제다. 저들 역시 평지로 내려와서 정착지로 활용하기는 그 연원이 깊지 않다. 지금도 보면 거의 예외없이 산상 도시라, 이는 결국 외적 방어와 홍수 피해 우려 때문이라 봐야 한다. 모조리 산꼭대기에는 마을이 발달한 점이 산 기슭에 모조리 동네가 발달하는 한반도와는 사정이 전연 다르다.이는 결국 산정 지형도 영향이 크다 볼 수 있는데, 한반도 산지는 산꼭대기가 편평한 데가 적어 산상도시가 발달할 주변 환경이 되지 않는다. 2024. 9. 5. 주객이 전도된 초기농경 인식 우리나라 초기 농경은 조 기장 등의 잡곡 농사를 수렵채집의 와중에 파트타임으로 지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이렇게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농사는 이 세상에 없다. 오히려 수렵채집이 파트타임으로 가능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초기농경이 제대로 성립된 영구적 촌락이 아니라 영 허술해 보이는 주거지 유적 등지에서 곡물이 떡 나오는 것은이들이 화전을 바탕하여 주기적으로 주거지와 경작지를 옮기며 농사 짓는전업 농경민이었기 때문이다. 수렵채집민이 아니다. 이들은 2-3개의 개활지를 몇 년 농사 짓다가 다시 다른 개활지로 옮겨 몇년 묵힌 (아마도 5-6년) 땅을 불을 질러 지력을 확보하고 거기서 다시 몇 년을 버티다 다음 개활지로 이동하고 몇년후에는 원래의 위치로 돌.. 2024. 9. 5. 화전과 나무뿌리 신석기시대에 정기적으로 옮겨다니며 불지르고 다시 새로운 곳에서 밭농사를 했을 것이라 하였는데, 필자는 신석기시대의 초기 농경에서는 생판 새로운 숲을 불질러 새로운 농경지를 확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노동력이 어느 정도 투입된, 몇 년 정도 묵혀 둔 지역에 돌아와 불을 질러 새로 농사를 지었을 거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물론 전적으로 추측에 불과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당시 농경민은 새로운 토지의 획득이 목적이 아니라 농사가 가능한 땅을 얻는 것이 목적이므로 이미 한번 개활지로 만들어 놓았던 땅에 몇년 후 다시 돌아와 불을 질러 농사를 시작하는 편이 아예 새로운 땅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다. 불과 몇 년 정도라면 이전의 지력을 회복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세 군데 정도만 확보해도, 3년 간격으로.. 2024. 9. 5. 1600년 전 로마 비키니, 그것을 복원한 지금의 비키니 우리한테 익숙한 비키니 수영복은 우리한테 주어진 자료에 의하면 이미 로마시대에 그 완연한 형태가 나타난다. 위 사진들이 로마제국 시칠리아 해변에서 해수욕 하는 장면들을 그린 4세기 무렵 모자이크 몇 장면이다. 구체로는 Villa Romana del Casale in Piazza Armerina, Sicily, Italy라는 데다. 저걸 보고선 패션 디자이너들이 내가 저걸로 비키니 만들어봐야겠다 한번쯤 생각하지 않겠는가?실제 이런 시도가 있었다. 1956년 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 에밀리오 푸치 Emilio Pucci 라는 사람이 아예 저 모자이크 현장에서 그런 시도를 했다. 사진은 그 장면 중 두 장이다. 저것이 백퍼 똑같이 살렸다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저 정도면 저랬겠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데는 .. 2024. 9. 5. Biggest Islands in the world? Biggest Islands in the world, 곧 면적별로 제1위부터 20위에 이르는 순서를 상대적 크기를 반영해 그린 것이라 한다. 그린란드가 압도적으로 가장 구찌가 크긴 해서 저긴 캐나다 북부 북극이지만, 그 주인은 덴마크다. 저 그린란드가 재미 있는 점이 좀 많은데, 1262년에 Norway 수중에 들어가고 1721년에 Danish-Norwegian recolonization 라 하니, 두 왕조에서 농가묵기를 했나 보다. 그러다가 1814년 1월14일에 Cession to Denmark라 했으니 이때 완전히 덴마크로 넘어갔다. Home rule 1 May 1979이라 하니 자치권 비스무리하게 부여받은 듯하고, Further autonomy and self rule 21 June 2009이라 .. 2024. 9. 5. 저 드넓은 평야는 언제 등장했나? 2016년 9월 4일 저 사진은 탑재하며 나는 아래와 같이 썼다. 만경평야. 조선시대에 이런 풍광 혹은 이 비스무리한 풍광 가능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저 대부분은 황무지였다. *** 이 문제 나는 심각히 이제는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역사학 고고학 모두 말이다. 이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 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저와 같은 평야는 언제 등장했을까? 아득히 저 먼 옛날? 혹은 조선시대? 혹은 수리조합 시대? 나는 수리조합 이후를 상정한다. 저런 평야가 애초에 불가능한 이유는 잦은 범람과 그에 따른 침수 피해, 높아진 하상 때문이다. 저 논쟁이 제대로 한판 붙은 적은 있다. 다만 그 논쟁은 극심한 정치 분쟁이 되는 바람에 본질을 여전히 회피한다고 본다. 신석기시대야 그렇다 치고, 청동기시대는 어떠한가?.. 2024. 9. 4. 화전과 둔전은 일란성쌍둥이다 나는 앞서 유물을 다룰 때 무게 역시 중대성이 있다는 말을 했다. 이를 통해 그렇지 아니할 때 채 고려하지 못하는 다른 면이 나타나는 까닭이다. 저 유물 중에서도 난 자꾸만 저 쇠스랑과 보습이 걸린다. 저게 재현품인지 실물인지는 아리까리한데 암튼 저게 농기구다. 한데 더 이상한 점은 저들이 아차산 일대 고구려 보루에서 출토됐다는 사실이다. 저 중에서 무게가 특히 중요한 것은 보습이다. 저 무게 얼마나 될 듯 한가? 촌놈들은 안다. 저게 사람이 맨손으로 들 수는 없다는 사실은. 저거 아부지가 쟁기에 쟁이고서는 논이나 밭을 갈던 때 쓰던 것이다. 소나 되어야 끌지 사람이 끌 수는 없다. 아 물론 강호동 같은 일부 건장한 남자는 가능할 수도 있다. 저게 도대체 왜 산꼭대기에서 나왔을까? 아 물론 일부 고구려 .. 2024. 9. 4. 뒤에서 본 투탕카멘 황금마스크, 수염만 2.5킬로그램 뭔가 하겠지만 그 유명한 고대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 데스 마스크 Death Mask 뒷모습이다. 같은 유물이라 해도 보는 시점에 따라 이리 달라보일 수밖에 없다. 이 투탕카멘 황금 마스크는 제18왕조 고대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재위 기원전 1334~1325년)을 위한 장례용 가면 gold funerary mask 이다. 1925년 하워드 카터 Howard Carter가 왕들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에 있는 KV62 무덤에서 수습했다. 카이로 이집트박물관 전시.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이집트 신 오시리스Osiris 형상을 한 이 가면은 키가 54cm에 무게 10kg에 달한다. 준보석으로 장식했다. 이 마스크 수염 자체만도 무게가 2.5kg에 달한다. 가면 어깨 부분에는 사자의 서 Bo.. 2024. 9. 4. 이전 1 2 3 4 5 6 ··· 80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