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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대의 교지 집에 전하는 고문서는 세종 30년(1448)부터 시작되어 조선 전 시기의 것이다. 육이오에 하남정사가 불타며 건진 일부만 남았지만, 그 양은 적지 않다. 문화재로 지정해야 하는데, 기승전자치단체라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기탁받은 기관에서도 지정하려고 하는데 기초단체가 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지정할 방법이 없다. 단체장이 바뀌면 되겠지. 모 기관에서는 문서 소재지를 경기도 고양으로 이전하시면 된다고 하였다. 첨부한 사진은 1448년(세종30) 7월 25일에 20대조 기건(奇虔, ?~1460)을 가선대부 전라도 도관찰출척사 겸 감창 안집 전수 권농 관학사 제조 형옥 병마공사 겸 전주부윤(嘉善大夫 全羅道都觀察黜陟使 兼監倉安集 轉輸 勸農 管學事 提調 刑獄 兵馬公事 兼全州府尹)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는 왕지..
[읽을만한책] 조성금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 '불의 도시' 투루판서 꽃핀 9∼13세기 불교회화 2020-01-24 08:00 미술사학자 조성금 박사, 학술서 출간 얼마전이다. 중앙아시아 미술사 전공인 민병훈 국립중앙박물관 전 아시아부장이 전갈이 와서 이르기를 조성금이가 책을 냈다면서 소개를 해줬으면 했다. 박사논문을 이태전에 받은 적 있고 그때도 괜히 보완한다 붙잡고 있어봐야 똥 되니 오타나 비문 정도 바로 잡는 수준에서 책을 내는 게 좋겠단 말을 나도 한 적이 있었는데 진짜로 책을 냈단다. 지인의 부탁이라고, 또 지인이라고 책 소개하지 않는다. 물론 인간관계 때문에 그런 일이 없다 장담하진 못하나 이 정도 비중으로 소개한 까닭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나는 무엇보다 그 노력을 봤다. 논문 쓴다고 중앙아시아 신장위구르를 제집 드나..
이른바 초두鐎斗 사용 일례一例 온양민속박물관 여송은 선생이 이 박물관 소장품 중 초두를 소개했거나 우선 이 명칭이 정확한가는 뒤에서 짚어보기로 하고 이 단계서는 초두라는 기물器物 명칭을 임시로 사용키로 한다. 이 유물을 접하고는 나는 위선 이런 초두가 온양에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다음으로 이 초두는 여러 모로 보아 조선시대 유물임이 확실하거니와 초두를 조선시대에도 썼다는 점에 더 놀랐다. 현재까지 고고학 조사 성과에 의하면 이런 초두는 주로 삼국시대 유물로 집중 등장하며 고려시대 유물도 본 듯은 한데 기억에 착란이 있다. 초두로 가장 저명한 것이 1925년 을축년대홍수가 지난 풍납토성에서 발견된 백제시대 청동초두 2점이 있거니와 다른 백제무덤에서도 가끔 모습을 보인 걸로 기억한다. 동시대 신라 적석목곽분에서도 몇군데 출토례를 기억한..
흑돼지 고장 지례초등학교 교정의 장학기념비 흑돼지로 유명한 경북 김천시 지례면 면 소재지에 있는 지례초등학교 정문이라 이 학교 저 문짝을 열자마자 운동장 오른편으로 석비 둘이 나란히 섰으니 전면 기준으로 바라보아 왼편이 황공 인택 장학 기념비 黃公 仁澤奬學紀念碑요 오른편이 김공 병용 장학 기념비 金公丙用奬學紀念碑라 그 위치의 특수성, 그리 비명碑名으로 그 성격을 가늠학니니와 이 학교 설립 혹은 운영과 밀접한 두 사람 송덕비임을 간취한다. 먼저 황인택 기념비를 보건데 앞면이 이러하고 뒷면 전체가 이러한데 그 세부를 볼짝시면 건립시기를 소화昭和 11년 8월이라 하거니와 글은 완산完山 이완종李完鍾 근기謹記라 했다. 비문에 의하면 황인택은 동산공립보통학교[현 지례초등학교]에 많은 학습 기자재를 기증하니 이에 동민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비를 세웠다고 한다...
귀성전쟁..그 성립의 전제조건 추석이니 설날이니 해서 고향을 찾는 이 귀성행렬이 언제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근대의 발명품 아닌가 한다. 첫째 이 귀성전쟁은 이농離農을 전제로 하거니와 이농 탈농脫農은 근대산업화 도시화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둘째 교통수단의 변화다. 말 타고 혹은 도보로 다니던 시대에 무슨 귀성전쟁이 있겠는가? 도로도 없다시피 했을 뿐더러 며칠 걸릴지 장담도 못하는데 무슨 귀성이란 말인가? 전근대는 귀성도 없고 귀성 전쟁도 없고 귀성 체증도 없다. 이 귀성전쟁은 내가 자세히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우리한테 익숙한 이 풍경은 박정희 시대 중후반부 와서야 가능하다. 박정희 시대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라 사회 각 부분에서 획기를 이루는 시대다. 단군 개벽 이래 변동이 가장 큰 시대는 일통삼한도 몽골침략도 임란도 병란도 한국전쟁..
신라가 개발한 일통삼한一統三韓 신라 고구려 백제는 700년을 딴 살림을 차렸다. 외국이었다. 적국이었다. 저들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죽는 원수의 나라였다. 그럼에도 이를 동족국가로 만든 것은 《삼국사기》였으며, 그 주범을 올리면 문무왕이었다. 아비 김춘추 바통을 이어받은 김법민은 고구려까지 멸하자, 그 통일논리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삼국은 본래 한 핏줄이라는 의식을 만들어냈다. 이에서 주목한 것이 바로 중국 기록이었다. 보니 《후한서》 《삼국지》가 마침 한반도를 韓이라는 같은 족속으로 그리고 있다는 대목을 발견하고는 그래 이거다 라고 하고는 삼한일통一統三韓, 삼한일통三韓一統 의식을 만들어냈다. 삼한은 본래 하나이므로,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논리는 없었다. 결과가 그리되다 보니, 그런 논리가 나중에 필요했을 따름이다. 그런 논리는 추..
줄줄이 유물 이야기-초두鐎斗, 너의 정체는? 여기가... 혹시... 전국의 도사들이 연합하여 고민거리를 해결해 준다는 대식도사댁인가요? 그래, 무쇠 다리가 세 개씩이나 있어 아무 걱정없을 것 같구먼 무슨 고민이 있어 여기까지 찾아왔는고? 아... 그게... 제 정체성을 모르겠어요. 오랫동안 온양민속박물관 수장고 C장 1층에 있다보니 제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었는지, 어디에 쓰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온 몸이 무쇠로 만들어졌고, 긴 손잡이도 있고.... 혹 제가 숭악한 무기로 쓰였던건 아닐지 무서워요... 엥??? 뭔소리고. 자네 이름이 뭔가?? 초두(鐎斗) 라고 합니다. 초두라~~보자하니 이름에 열이 많네. 자네 몸에 열이 많지? 네??? 음... 아뇨 저 수족냉증인데요... (돌팔이인가? 지금이라도 나가야하나?) 엥?? 그럴리가? 잘 생각해봐. 아..
우환이 된 우한, 결국 자금성까지 걸어잠근다 중국 자금성, 바이러스 확산우려로 곧 폐쇄송고시간 | 2020-01-23 22:50 내 아주 가까운 지인 중에서도 서른명이 넘은 대부대와 함께 다음달인가 중국 답사를 떠나기로 했다가 그제 취소했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우려에 따른 예방 조치라 한다. 이 신종 바이러스를 일명 우한 폐렴 이라 하거니와, 그 진원지, 혹은 확산 근거지로 후베이성 우한이 거론되는 까닭이며, 실제 요 며칠새만 해도 우한 지역만 해도 수백명이 이 바이러스가 발병했다고 한다. 우한은 실은 무한武漢이라, 그 중국어 발음 Wǔhàn에 대한 현행 한국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것이라, 지도에 보다시피 저 먼 티벳 고원에서 흘러내린 그 거대한 장강이 서-동 방향으로 관통해 중국 대륙 중반부를 관통해 흠결을 내는 그 중부 내륙에 턱 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