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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쓰던 사구인詞句印 만 권이나 되는 기이한 책 쟁여놓고서 欲藏萬卷異書 죽도록 파고들어 휘파람 불며 읊으련다 終身嘯詠其中 평생 정치의 소용돌이를 만든 석파 태공도 마음 깊숙이 저런 삶을 꿈꾸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런 소망을 이루기엔 조선의 근대가 너무도 슬펐으니. (2019. 12. 5) 2022. 12. 8.
거미줄 걸린 매미를 풀어주며 by 이규보 그동안 좀 격조했는데, 모처럼 짬이 난 김에 별밤 들으면서 한 장 그려보았다. --- 저 교활한 거미는 그 종류가 아주 많구나. 누가 너에게 교활한 재주 길러 주어 그물 만들 실로 둥근 배를 채웠는가. 어떤 매미가 거미줄에 걸려 처량한 소리를 지르길래 내가 차마 듣다 못하여 놓아 주어 날아가도록 했더니 옆에 서 있던 어떤 자가 나를 나무라면서, “오직 이 두 미물微物은 다 같이 하찮은 벌레들인데 거미가 자네에게 무슨 손해를 끼쳤으며 매미는 자네에게 무슨 이익을 줬기에 오직 매미만 살리고 거미는 그만 굶겨 죽이려 하느냐? 이 매미는 자네를 고맙게 여길지라도 저 거미는 반드시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다. 매미를 놓아 보낸 것에 대해서 누구든 자네를 지혜롭다 하겠는가?”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이마.. 2022. 12. 8.
황룡사 터, 그 완벽한 폐허 어쩌다 경주를 다녀오고선, 그러고 또 어쩌다 황룡사 터를 찾고선 흔연欣然해져 넋을 잃은 작가는 말한다. "겨울이고 저물녘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이고, 새벽이나 한낮이라도 나름의 정취는 고스란했을 테다. 예술품에 '완벽하다'는 말이 쓰일 수 있다면 석굴암에 그러할 거라 했는데, 폐허에 '완벽하다'는 말을 쓸 수 있다면 황룡사지에 그럴 것이다." 그러면서도 못내 독자 혹은 청중이 믿기지 못한 듯 "그냥 가보시라, 황룡사지, 그토록 위대한 폐허"를 부르짖는다. 무엇이 이토록 그를 매료했을까? 그는 말한다. "화려했던 과거를 되짚을수록 현재의 폐허는 허무로 깊어진다." 상술하기를 "거대한 초석들 위에 세워졌을 거대한 기둥은 온데간데없다. 사라진 영화, 사라진 신전 앞에 머리를 조아릴 필요는.. 2022. 12. 8.
시공을 달리하나 묘하게 닮은 남송南宋과 백제百濟 남송과 백제는 존속한 기간도 다르고 장소도 달리하는 왕조로 비교가 어려울 듯하지만, 남송 역사를 보면 백제사와 관련하여 매우 의미 심장한 부분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정강의 변-. 오대의 혼란을 종식하고 중국을 통일하여 160여년간 번영한 북송은 휘종-흠종 대에 이르러 금의 침공에 궤멸적 타격을 입고 수도 개봉부가 함락되는 비운을 맞았다. 이때 북송이 얼마나 큰 타격을 받았는가를 하면 당시 휘종의 비, 후궁, 왕자에 이르기까지 깡그리 납치당하여 금으로 끌려가는 통에 황실 적통의 씨가 마를 지경이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시 휘종의 처첩과 왕자 등 직계존속 등 금으로 납치된 사람이 수만 명에 달했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강남에서 휘종의 아홉번째 아들인 조구가 남송 초대황제로 즉위할 즈음에는 그 많던 .. 2022. 12. 8.
다리미 머리 이고 왕림하신 신라의 남성 권력자, 황남동 120호분 발굴성과 공개 금귀걸이·은허리띠 한 신라 무덤 주인은…"키 165cm 이상 남성" 김예나 / 2022-12-07 09:55:24 8일 경주 황남동 120호분 발굴 현장 설명회…"신라 문화 이해 위한 학술 가치 커"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42971613927 금귀걸이·은허리띠 한 신라 무덤 주인은…"키 165cm 이상 남성"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경주 대릉원 일원에 있는 ′황남동 120호분′은 5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으며 무덤 주인은 키가 165㎝ 이상인 남성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조사 결과가 나왔다. 문화재 k-odyssey.com 저 무덤 발굴소식은 두어 번 전했거니와, 발굴조사기관은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라는 데고, 아무래도 출토유물도 많고 .. 2022. 12. 7.
이태리 연수갔다 옥스퍼드대 고고학 박사로 나타난 김병모 선생도 이젠 팔순을 앞에 두고 있다. 서울중고 1953 입학동기가 400명인데 150명 죽고 250명 남았단 말을 한다. 십년전부터 친구들 부고가 정신없이 날아든단다. 한국문화재엔 유홍준이 있기전에 김병모가 있었다. 1978년 옥스퍼드대 박사학위를 들고 나타난 그를 창산 김정기가 다시 불렀다.관리국 상근전문위원으로 가니 7년만의 친정복귀였다. 한국일보 강대형 기자가 옥스퍼드대 고고학 박사가 나타났다고 기사를 썼다. 직후 김병모는 전화 한통을 받는다. 한양대 재단이었다. 김연준(1914~2008) 이사장을 면담한지 두 시간. 김연준은 교무처장을 부르곤 그 자리서 김병모를 사학과 교수로 발령냈다. 하지만 그의 한양대 취임은 이듬해 2월로 늦춰진다. 그 이유를 선생은 "상근위원 계약기간 때문이었다"고 한다. .. 2022.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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