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7690 한국의 구석기 유적 목록화 DB사업 by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 전곡선사박물관은 학술 연구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의 구석기 유적 목록화 DB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 구석기 연구에 공헌하고자 지속해서 수집된 유적의 현황을 전곡선사박물관 누리집에 공개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구석기 유적을 전수조사한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 국내 구석기 유물 현황 파악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전곡선사박물관은 문화재청 인트라넷을 기준으로 누락된 유적에 대해 박물관의 기존 아카이브 등 다양한 자료를 보완하여 1차 성과를 공개합니다. 완성된 1차 목록은 전곡선사박물관 누리집에서 확인 할 수 있어, 누구나 손쉽게 한국의 구석기 유적의 현황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성과 공개를 시작으로 보고서 열람 서비스를 운영하여 박물관의 학술 기능과 학술 자원의 사.. 2024. 2. 20. [비형랑과 화랑세기] (1) 도화녀 비형랑 이야기가 사륜계 홍보용? 화랑세기를 기존 역사학계가 왜 조작된 위서로 몰아야 하는지를 도화녀 비형랑 이야기로써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물에서는 인류학 혹은 그런 관점이라 부를 만한 분석도 아울러 시도할 것이다. 자연히 드러나겠지만, 현존 《화랑세기》에서 드러나는 인류학적 개념들은 20세기를 살다간 남당 박창화는 결코 꿈도 꾸지 못할 것들이다. 언감생심 어디에서 흉내를 낸다는 말인가? 허무맹랑한 소리 좀 그만 좀 하고 허심하게 화랑세기를 분석 대상으로 보았으면 한다. 지금 내 책상머리엔 신라사학회 기관지인 《신라사학보》 중 2008년 12월로 발간 일자가 찍힌 제14호가 있다. 그 첫머리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재직 중인 한국고대사상사 전공 신종원이 투고한 ‘《삼국유사》 〈도화녀비형랑〉에 보이는 ‘鬼神귀신’ 세력’이라는 .. 2024. 2. 20. AI로 증폭해 본 근대 기생님들 인터넷에 기생 사진이라 해서 떠돌아다니는 님들을 긁어서 AI로 증폭해 봤다. 유료로 돌리면 더 좋은 화질을 얻겠지만 이것으로 그런대로 만족한다. 물론 저들 사진 출처는 식민지시대에 발행된 엽서가 압도적이다. 다만 그 엽서들조차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빛이 바랬다. AI 기술이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다. 일부는 증폭한 다음 포토샵 기능을 활용해 보정했다. 그런대로 인쇄용 사용 정도는 가능하도록 해 봤으니, 이용하고픈 분들은 맘껏 활용하기 바란다. 정윤희를 빼다박은 기생도 있다. 2024. 2. 20. 자기 모순에 처한 모아이 석상 반환운동 구미권 박물관은 거개 제국주의 시대 잔재라, 그런 까닭에 유수하는 그쪽 박물관은 거개 자국 문화 홍보보다는 국적에 관계없이 이른바 세계적 명성 있는 다른 지역 문화를 선전함으로써 존재감을 각인하는 특징을 지닌다는 점이 내셔널리즘 색채, 곧 국뽕주의 전통이 무척이나 강한 한국과 일본 중국과는 분명히 갈 길을 달리한다. 문제는 이 제국주의 시대 전통을 잇는 구미권 박물관은 후자, 곧 국뽕주의 박물관들과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니, 후자의 내셔널리즘 색채가 강화할수록 전자를 향한 침략주의 전통을 공격하고, 이를 발판으로 그 유출이 불법 탈법이었음을 무기로 반환 움직임을 강화해간다는 사실이다. 이 요란한 부닥침은 갈수록 치열해져 간다. 엘긴 마블? 파르테논 대리석? 그 유명세 때문에 침소봉대되어 그렇지 그건.. 2024. 2. 20. 2024년 지자체 학예연구사 채용 공고 2024년 지자체 학예연구사 채용 공고가 전북를 제외하고 모두 공개되었습니다. 대구, 인천, 울산을 제외하고 모든 지자체에서 학예연구사를 채용할 계획입니다. 채용인원은 총 38명으로 서울(8명) 경기도(6명), 경상북도(5명), 충청남도(4명) 순으로 채용인원이 많습니다. 경기, 전남, 경북, 경남을 제외한 나머지 지자체는 모두 11월 2일에 필기시험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라며, 정리한 내용은 참고만 하시고 정확한 내용은 공고를 반드시 확인 하시기 바랍니다.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yTY4iS5-oY3l8lOoTC2NpguCXVLiH1FO/htmlview 2024년 지자체 학예연구사 채용.xlsx - Google Dr.. 2024. 2. 20. 한번 보고 두번 보고 못잊어 다시 찾은 기생 용재慵齋 성현成俔(1439~1504)의 불후한 야담필기류인 《용재총화慵齋叢話》 제5권에 보이는 대중례待重來라는 기생 이야기다. 김 사문金斯文(사문斯文은 유학자를 지칭하는 말-인용자)이 영남에 사신使臣으로 내려가 경주에 도착하니, 고을 사람들이 기생 하나를 바치기에, 김이 데리고 불국사로 갔었는데, 기생은 나이가 어려서 남자와의 관계함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극력極力 김의 요청을 거절하다가 밤중에 도망쳐 나왔는데, 그녀가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여러 하인이 그녀가 짐승에게 잡혀 간 것이 아닌가 하여 이튿날 찾아보니 그녀는 맨발로 고을에 돌아가 있었다. 김은 뜻을 이루지 못함에 실망하고는 밀양에 도착하자 평사評事 김계온金季昷을 보고 그 사정을 말하니, 평사는, “내 기생의 동생으로 대중래待重來라는 애가 예쁜.. 2024. 2. 20. [귀주대첩] (3) 거란을 엿 먹이는 고려, 북송 연호를 채택하다 거란과 모든 관계를 닫아버린 고려는 현종 7년, 1016년 연호마저 개태開泰라는 거란 것을 헌신짝처럼 버리고선 북송北宋 연호인 대중상부大中祥符를 채택해 쓰기 시작한다. 한데 이 일이 이상한 점은 앞서 보았듯이 거란을 버리고 이제 다시 宋을 섬기겠다는 고려의 요청을 宋이 거부했다는 데 있다. 이미 그 자신도 거란에 신속해 버린 송은 거란 눈치를 봐서 고려를 외방外邦 제후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완곡히, 그러면서도 분명히 했다. 다만 그렇다 해서 송으로서도 그러지 말라 말릴 처지도 아니었다. 지들이 좋아서 지들 맘대로 한다는데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음 그만이었다. 나는 고려가 실제로 宋으로부터 무슨 실질적인 지원, 예컨대 군사지원을 얻어낼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고려가 등신이 아닌 이상 당시 거란.. 2024. 2. 19. 한달간 병석에 누웠다가 간 “중흥의 군주” 고려 현종 전통시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군주의 죽음을 기록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보통 왕이 언제 불예不豫하다 하고는 보통은 그 이튿날 아니면 사흘째에 붕崩 혹은 훙薨이라 뜬다. 군주한테 쓰는 불예不豫를 보통 몸이 편치 않다는 정도로 옮기지만, 그 자체 중병에 대한 완곡어법이기는 하지만, 실상 이 말이 쓰이는 맥락을 보면 회복 불능한 중태라는 뜻이다. 고려 제8대 임금 왕순王詢은 그 점에서 특이하다. 중태에 빠진지 한달만에 숨을 거두기 때문이다. 뇌출혈이나 뇌일혈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고려사와 절요에 의하면 재위 22년째인 1031년 4월 28일 을사에 병져 누운 그는 대략 한 달 뒤인 다음달 5월 25일 신미에 중광전重光殿에서 훙서한다. 왕이 병이 위독해지자 태자 왕흠王欽을 불러 뒷일을 부탁하고는.. 2024. 2. 19. 되치기 당한 무신, 장교로 임명되는 문관들 한국사를 보면 문반과 무반 그 양극화는 아무래도 신라에 의한 일통삼한을 분기점으로 삼아야 할 성 싶다. 신라를 보건대 그 이전에는 말 그대로 출입장상出入將相이라, 문무반 구분이 엄격치 아니해서 장군이 곧 재상이었고 재상이 곧 장군이었다. 이런 시대가 일통삼한이 되면서 급속도로 문관 일변도로 변해간다. 왜?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가 너무 오래 지속된 까닭이다. 그러다가 신라말이 되면서 이제 300년을 움츠린 막부시대가 개막한다. 진성여왕 시대는 그 고비였으니,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났다는 삼국사기 말은 곧 막부시대가 개막했고, 다시 군인들의 시대가 왔다는 위대한 선언이었다. 왕건 자신도 막부정권 지도자였고, 실제로 그 수하 장수들한테 엎혀서 느닷없이 쿠데타로 집권하고는 새로운 왕조를 개창했다. 하지만 마상.. 2024. 2. 19. 탁영 김일손이 만난 운석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제자이자, 그의 을 편찬을 위한 사초에 굳이 실어 무오사화(1498)를 촉발하고 만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1464~1498). 그가 앞일을 알았더라면 을 사초에 싣지 않았을까? 하여간 그런 그가 충청도 도사로 있던 1495년(연산군 1) 5월, 그는 연산군에게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 시국을 두고 그 처리에 관한 이익과 병폐를 무려 26조목으로 정리한 것인데, 그중 자연재해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12월 27일(임오)에 서산瑞山 등지에 지진이 있었는데, 곧 전하께서 상주가 되신 뒤의 일입니다. 올해 정월 18일(계묘)에 한산韓山 등지에 지진이 있었고, 2월 초하루에 3분의 1이나 먹은 일식이 있었고, 그 달 7일에는 대낮에 별이 떨어졌으니, 괴이함이 또.. 2024. 2. 19. [귀주대첩] (2) 거란 버리고 宋에 접근했다 쌩까인 고려 그나마 전쟁 속에서도 이어지던 거란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해 버린 고려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宋과 붙어야 했다. 하지만 宋도 문제였다. 거란 대신 파트너로 선택하려 했고, 실제 993년 제1차 고려거란전쟁 직전까지는 고려의 종주국이었지만,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어서 무엇보다 송 역시 거란에 대항할 힘을 상실하고 만신창이 난 상태였던 까닭이다. 거란의 사신 입국과 고려에 의한 송으로의 외교 사절 파견은 동시였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그것이다. 이런 양태가 훗날 동파 소식한테서 고려는 쥐새끼 같은 놈들이며 믿을 수 없다는 사자후를 토하게 하는 바탕이 된다. 간에 붙었다 쓸개 붙었다 하는 고려가 송으로서는 얼마나 얄밉겠는가? 하지만 송 또한 고민이 적지 않았으니, 그렇게 필요하다고 찾아온 고려를 내칠 수.. 2024. 2. 19. 지질이 복도 없고 재수없는 시대를 살고 간 고려 현종 왕순 고려 제8대 임금은 죽은 뒤에 받은 정식 시호가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이다. 현종은 묘호廟號라 해서, 죽은 뒤에 사당에 신주가 안치되면서 얻는 이름이니 그는 생전에 그가 이런 이름을 얻을지 알 수 없었다. 그 생전 업적에 따라 신하들이 논의해서 후임 왕한테 올리면 크게 이변이 없는 한 그렇게 확정한다. 그는 태조 왕건 손자라 당연히 성씨는 王이다. 이름은 순詢이라 풀네임은 왕순王詢이다. 보통 18세 무렵 어른이 되면서 새로운 이름을 얻는데 이를 자字라 해서, 이때부터는 보통 이 이름으로 행세한다. 사람들이 그런 이름으로 불러도 시례가 아니다. 다만, 왕순은 성인이 될 무렵에 안세安世, 곧 세상을 평안하게 했다는 자를 얻기는 했지만, 자로도 일컬을 수 없었다. 왜? 왕이니깐. 그는 왕건 손자라 하지만 왕위.. 2024. 2. 19. [백수일기] 사대보험과 경조사비 이건 내가 일찍이 경험했고 또 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라 깊이깊이 새겼다. 백수가 힘든 까닭이 바로 저 두 가지라 때가 때이니만큼 요샌 툭하면 날아드는 경조사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다. 사대보험이야 그런대로 해결은 했지마는 저 경조사비는 실은 현직에 있을 때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으니 백수가 된 지금은 그 부담이 열배로 늘어난다. 아참 백수라 하지만 난 정식 피고용인이다. 사대보험은 그짝에서 해결하고 쥐꼬리 만한 봉급도 받으니 엄밀히 백수는 아니다. 그럼에도 쓰던 가락이 있어 줄인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뚜렷해서 꼭 챙겨야 하는 자리를 마다할 수 없고 그 꼭 챙겨야 하는 자리가 항하사 모래알 숫자보다 많다는 데 심각성이 있지 않겠는가? 그래 가랭이 찢어진다. 맞다. 그래서 알고도 넘어가는 경조.. 2024. 2. 19. [귀주대첩] (1) 파탄난 고려-거란 외교 고려와 거란 두 왕조가 직접 대규모로 충돌한 이 전쟁을 흔히 3차라 해서 세 시기로 분기하지만, 이는 근현대 사가들이 규정한 것일뿐 그 사이에 직접 군사충돌만 해도 무수했으니, 특히 그 충돌은 이른바 제2차와 제3차 전쟁 사이에 빈발했다. 이들 전쟁을 개괄하면 서기 993년, 성종 재위 12년 이른바 1차 전쟁이 물경 80만(물론 개뻥이다. 수십 만에 지나지 않았다)을 주장한 그 군사력 동원 규모를 볼 때 비교적 순조롭게 끝난 까닭은 양국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외교협상이 빛을 발한 까닭이다. 당시 거란이 원한 것은 동아시아 세계의 맹주 패권국가 공인이었고 그 완결은 고려의 신속臣屬이었다. 당시 고려는 여전히 宋과 내왕하며, 송을 종주국으로 섬기면서 그쪽에서 책봉을 받아오고 조공했으며, 연호 또한 송나라 .. 2024. 2. 19. 창의創意가 없는 글은 쓰지 마라 나손 김동욱(1922-1990) 선생 글이다. 당연한 듯 싶으면서도 참 어려운 목표다. *** 편집자 코멘트 *** 글쓰는 이들은 새기가 새겨야 할 말이다. 창의가 없는 글은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나는 쓰레기를 양산하지 않는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2024. 2. 19.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본 조선 임진왜란 주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말년에 조선침공을 하는 바람에 그 자신의 인생과 도요토미 가문의 미래가 꼬였다고 해도 좋다. 아마 조선침공을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도요토미는 도대체 조선을 어떻게 보고 침공했을까? 점쳐볼 수 있는 근거가 몇 개 있다. 우선 히데요시가 조선 정벌 후 조선을 나눠 다스리려 했다는 계획이 위 저 그림인데 저기서 "쿠니"를 유심히 봐야 한다. "쿠니"란 일본의 영제국令制國 하의 "쿠니" 바로 그것이다. 그 쿠니를 보면.. 이때는 홋카이도가 없을 때인데 일본 혼슈와 시코쿠, 큐슈에 영제국 68국이 들어간다. 이때 조선땅은 혼슈 크기와 거의 비슷하므로 조선땅에 쿠니를 넣으면 대략 68 - 9 (큐슈) - 4 (시코쿠) 해서, 대략 55개 정도 쿠니가 .. 2024. 2. 19. 구글어스를 변형한 개성 만월대 앞서 구글어스로 탐험한 평양 안학궁 지도를 포토샵 기능을 장착해 그 양상을 살폈거니와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고려 궁성인 개성 만월대를 접근하기로 한다. 일부러 포토샵으로 색감을 강하게 주었으니, 이것이 주변과 건물터를 비롯한 왕궁 배치 양상을 한층 더 또렷하게 보여주는 효과가 있는 까닭이다. 그 다양한 면모를 다채롭게 감상하기로 한다. *** previous articles *** 구글어스로 탐험하는 개성 만월대 구글어스로 탐험하는 개성 만월대 이 만월대는 고려 왕궁 혹은 왕성이라, 요새야 구글로 앉아서 그 양태를 점검하는 시대라. 앞서 평양 안학궁을 구글어스로 탐험했듯이 오늘은 같은 운전대를 잡고서 이 만월대를 점검하고자 한 historylibrary.net 구글어스를 변형한 평양 안학궁 구글어스를 변형.. 2024. 2. 19. 우파연합 집권 이탈리아는 박물관장 수난시대 이탈리아 박물관 속속한 사정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네 같으면 거개 공립박물관이어야 할 곳도 내가 찾은 곳은 모조리 국립박물관이었다. 국가주의 전통이 그만큼 강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가는 곳은 다 국립박물관이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 박물관장들이 정치 바람을 거세게 탄다는 의미이기도 할 터. 이 국립박물관장들 처지가 요새 이태리에서 묘한 모양이다. 남부 도시 오스투니 Ostuni 라는 곳 오스투니박물관장 루카 델라티 Luca Dell'Atti 라는 사람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현 총리 사진을 무솔리니가 처형당할 때 그 모습을 연상케 하는 그 모습으로 SNS에 거꾸로 쳐박은 형태로 게시했다 해서 논란을 빚다가 결국 지난 14일 사퇴했다 하며 북부 저명 공업도시 토리노 지역 이집트박물관 M.. 2024. 2. 19. 근심 잊기 - 망우忘憂 1. 용마산 깔딱고개에 올라 용마산 정상과 아차산 방향으로 갈라지는 능선에 들어서면 '망우리(忘憂里)'의 유래를 소개하는 팻말을 만난다. 간단하게 소개한 것을 더 간단히 정리하면, 태조 이성계가 자기 윗대의 능묘를 쓰려고 (현재 구리) 동구릉 일대를 답사했는데, 무학대사는 태조 및 후대 왕의 능묘로 쓰는 것이 더 낫겠다고 권했다. 태조가 궁으로 돌아가면서 "이제서야 내 모든 근심을 잊게 되었다"고 말한 것에서, 이 일대 명칭을 '망우(忘憂: 근심을 잊다)'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인도 이 일대에 마구 묘를 쓰게 되어, 대규모 (공동)묘지가 조성된 듯하다. 2. 망우역사문화공원 입구에 '근심 먹는 우체통'을 설치하고, 망우본동 주민자치회에서 제작 배부하는 엽서에 근심 내용을 써서 부치면 근.. 2024. 2. 19. 반일종족주의 vs. 일제종족주의, 그 논쟁 왼쪽 책이 먼저 나오고 오른쪽 책이 반론이라고 나온 것 같다. 둘 다 샀다. 대충 봤다. 양자간 논쟁이 되지를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유는? 뭐 어느 한 쪽이 낫다 그런 이야기는 아니고. 독자들께서 짐작하시기를. 아 참. 둘 중 하나는 욕이 반이었다. 다음부터는 욕을 좀 빼고 써 주기를 바란다. 걸러내고 읽느라 힘들었다. *** Editor's Note *** 저와 관련해 아래와 같은 소식도 있으니 참고바란다. '반일 종족주의' 산실 낙성대연구소장, 독립기념관 이사 임명 송고시간 2024-02-20 06:01 https://www.yna.co.kr/view/AKR20240219122100504?section=politics/all&site=major_news01 '반일 종족주의' 산실 낙성대연구소장.. 2024. 2. 18. '저 나라'에서 쓰는 모자가 뭐 어쨌다는 거냐 영조가 왕위에 오른 지 43년째 되던 1767년 4월 7일, 청나라에 다녀온 동지사 일행이 귀국해 영조에게 인사를 올리러 왔다. 권108에 실린 한 기사는 그날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그린다. 동지사 정사로 다녀왔던 종친 함계군(선조의 손자 평운군平雲君의 손자)이 영조에게 영 엉뚱한 말만을 늘어놓는다. 송나라 때 소동파蘇東坡가 썼다는 동파관, 그리고 당나라 때 맹호연孟浩然이 썼다는 호연건이 '저 나라'에도 있더이다 이런 얘기만 늘어놓은 것이다. 청나라를 굳이 '저 나라'라고 한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도대체 사신으로 갔다 왔으면 뭔가 영양가 있는 이야기를 보고 들은 게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에 영조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황하가 맑아지지 않는다더니, 다만 가소로운 일만 듣는.. 2024. 2. 18. 이전 1 ··· 152 153 154 155 156 157 158 ··· 84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