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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창에 빛이 밝으니 [小窓多明] 작은 창에 빛이 밝으니 小窓多明 나로 하여금 오래 앉게끔 使我久坐 추사가 남긴 그 숱한 필적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씨다. 칠십이구초당이라 했으니 북청으로 귀양가기 직전 만년 글씨인데, 그 뜻도 뜻이거니와 글자 구성이 참 아름답지 않은가. 그야말로 현판으로 만들어 창 위에 걸고 싶은 글귀다. *** related article *** 제주추사관-小窓多明 제주추사관-小窓多明2021.06.17.(목) / 제주추사관 소창다명사아구좌 小窓多明使我久坐 작은 창문에 많은 광명의 빛이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앉아 있게 한다. 제주추사관은 생각을 좀 더 정리한 다음 포스팅하도록 하historylibrary.net 2024. 2. 27.
거란의 수도 방위군 앞서 거란군 수도 방위 시스템을 논급했으니 이는 그 시스템을 간단히 도해화한 것이다. 오행五行에서 비롯하는 오방五方에 기초해 중앙을 기준으로 동서남북 사방에다 호위군을 배치했다. 이 호위군을 피실皮室이라 했으니 황제를 보호하는 피부막과 같은 조직 군대라는 뜻이다. 左피실은 곧 東피실이며 右피실은 곧 西피실이다. 가운데 黃피실이 내 추정에 의하면 아마도 천운군天雲軍이라 별칭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저와는 별도로 움직이는 기무사령부였을 것이다. 그런 증언이 없지만 틀림없이 저들은 각기 오방색을 따라 깃발이나 군복 색깔을 달리했을 것이다. 곧 계절로는 봄 기운 싹트는 해 뜨는 동쪽 좌피실은 청색, 남방 자오선 태양이 지나는 여름의 남쪽 남피실은 이글거리는 태양색깔인 주색, 해가 지는 서쪽 우피실은 가을에.. 2024. 2. 26.
복원전의 불국사 복원 전 불국사 사진을 보면 아무리 봐도 원래 신라 때 원래 모습은 일본의 뵤도인平等院[평등원]의 원형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 Editor's Note *** 불국사 담장 앞마당에는 본래 연지라 해서 연못이 있었다. 이는 창건 당시에 이미 그러했고 70년대 발굴조사에서도 흔적은 확인했다. 다만 전면조사를 하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물론 현재도 연지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근대에 새로 만든 것이다. 2024. 2. 26.
아동 열명을 통역사 전문 양성요원으로 거란에 보낸 고려 인지언어학에서는 brain localization 이라는 말이 있다. 언어습득을 관장하는 뇌 어느 부분은 13세 정도가 되면 언어습득이 끝난다. 그래서 언어를 배우려면 열세살 이전에 시작해야 한다. 뭐 그 비스무리한 걸로 기억하는데 꼭 저와 같은 거창한 개념 빌리지 않아도 이건 생득으로 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 외국어 전문통역관을 통하게 해주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해서 통사通事라 하고 저런 이름을 붙인 중국어 학습교재 박통사朴通事가 있다. 이 전문교육 기관을 사역원司譯院이라 하는데 번역 통역을 맡은 기관이란 뜻이다. 조선후기인가 그 자리는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데다. 이곳에서도 대개 아동들을 조기교육하고 심지어는 조기유학을 보내기도 했으니 고려 성종 때인가? 감찬이 형이랑 배압이 형이 사생결단 한 판 .. 2024. 2. 26.
용인의 여흥민씨(驪興閔氏) 여흥민씨의 묘역이 조성되면서 만들어진 지명, ‘민재궁(閔梓宮)’ 용인에 많은 세거성씨가 있지만,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성씨 중에 여흥민씨(驪興閔氏)를 손에 꼽을 수 있다. 용인의 민씨 세거지로는 처인구 유림동, 마평동, 포곡읍 신원리, 기흥구 공세동 등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데는 기흥구 상하동으로 추정된다. 상하동에 ‘민재궁(閔梓宮)[민자궁, 민제궁]’이란 지명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이는 여흥민씨와 관련이 있다. ‘재궁(梓宮)’이란 시신을 안치할 때 쓰는 관을 의미한다. 즉, 민재궁이란 지명은 이 일대에 여흥민씨 가문 사람들의 묘가 조성되면서 붙여진 지명이다. 그런데 민재궁 지명 유래와 관련해서 여흥민씨가 아니라 풍창부부인 조씨(豊昌府夫人 趙氏, 1659~1741)의 묘소가 언급되곤 하는데,.. 2024. 2. 26.
방이동 몽촌토성 인근서 출현한 백제우물 몽촌토성 인근서 백제 우물 발견…"한성 백제 연구에 중요 자료" 송고시간 2024-02-26 10:04 송파구 방이동 공사장서 확인…서울서 찾은 3번째 '백제 우물' "우물 제작·목재 가공법 연구에 도움"…박물관 이관해 보존 예정 주거지·도로 흔적 등도 나와…'왕성 밖 백제인 삶' 자료 주목 https://www.yna.co.kr/view/AKR20240223154800005?section=culture/scholarship 몽촌토성 인근서 백제 우물 발견…"한성 백제 연구에 중요 자료"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 공사 현장에서 백제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 우물이 발견됐다.www.yna.co.kr 요샌 이런 좋은 성과 나와도 문화재청에서는 다 엎어버리고.. 2024. 2. 26.
[귀주대첩] (16) 주력 상비 최정예군이 궤멸된 거란 귀주대첩이라는 고려의 대승으로 끝난 이른바 제3차 고려거란전쟁은 자칭이기는 하지만 거란군이 동원한 군사 규모가 이전과 비교해 적은 10만이라서 언뜻 보기엔 당시 거란 국력을 고려해 이 정도는 전면전이 아니지 않았나 생각하기 쉽다. 그도 그럴 것이 서희의 담판으로 끝난 1차 전쟁에 언필칭 80만, 성종 야율륭서가 친정한 2차 전쟁에 40만을 동원한 것과 비교하면 현격하게 적은 숫자인 까닭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 숫자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그 질이 문제인 까닭이다. 80만, 40만이라 하지만 이는 실상 그 보급부대를 합친 것이라, 실제 전투를 치르는 군사 숫자는 이보다 훨씬 적다. 10만이라 해도 실상 아무리 거란 국력을 고려해도 만만찮은 숫자다. 이 3차 전쟁을 어떤 자세로 준비했는지는 요.. 2024. 2. 26.
1930년대 당인리발전소가 격발하는 상념들 지인 임태우 선생이 1930년대 당인리발전소 라 해서 소개한 사진인데 ai로 증폭했다. 출처는 모르겠다. 그에 의하면 1929년 경성전기주식회사에서 착공을 하면서 이듬해 마포 당인리에 당인리화력발전소로 개업했다 한다. 그의 말마따나 한강을 유유히 지나가는 돛을단 배도 보이고 발전소 주변에 초가도 보인다. 당인동15-3번지에는 뱃사람들이 제를 올린 부군당이 있다는데 현재도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유의할 점은 한강이다. 백사장이 발달했으니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산림파괴에서 비롯한다. 조선은 17세기 중반을 지나며 전국토가 천둥벌거숭이가 되어 비만 왔다하면 상류에서 토사가 쏟아져내려 강바닥은 저와 같이 온통 백사장이었다. 자연 하상이 높아졌고 그에 따라 한강은 툭하면 범람해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강폭은 지.. 2024. 2. 26.
처참한 불국사, 무엇이 바꾸었을까? 아래는 말할 것도 없이 불국사라 대략 백년 전 모습이다. 웹을 떠도는 사진들을 AI 힘을 빌려 해상도를 높여봤다. 한결 그 생생한 모습이 다가온다. 믿기는가? 저것이 불과 백년전 불국사라는 사실이? 불국사는 그때 문화재로 발견되면서 저런 거지 소굴 같은 모습이 서서히 일변해 현재 우리가 아는 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민족의 유산? 개소리다.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그에 따라 황폐화 일로만 걸었다. 그런 불국사에 누가 무슨 가치를 주입했기에 그 처지는 일변했는가? 근대가 지닌 힘이 바로 불국사에 있다. 2024. 2. 26.
물경 3회에 걸쳐 다룬 김훈 최질 막부정권 kbs2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드라마라는 특성상 사초에 적힌 기록대로 따라갈 수는 없고 이른바 작가적 상상력을 덧보태기 마련이라, 예서 그 드라마 승패는 결정난다. 이 드라마를 지탱하는 3대 실록 축은 조선전기에 정리된 고려 쪽 기록으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가 있고, 거란 쪽 기록으로는 원나라 지정至正 연간에 완성된 요사遼史가 있다. 이를 축으로 그 얼개를 엮어간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또 하나의 실록이다. 드라마는 이 과정에서 문제 또한 적지 않게 노출한다. 그를 논하기 전에 이 드라마가 불러낸 공로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중부에 의한 무신정권 수립 100년 전에 이미 두 차례나 더 고려에는 막부정권이 있었음을 확실히 각인한 그것은 인정해야 한다. 물론 이 강조의 정변과 김훈 최질 막부정권.. 2024. 2. 26.
나는 어디 사람인가? 매양 김천사람임을 표방하는 나는 사는 곳을 기준으로 그 기간을 보면, 그 어중간에 딱 1년 살이 부산이 포함되기는 하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어 논외로 치고, 고향 김천과 서울로 대별하니, 서울에서 산 기간이 37년으로 20년 김천보다 훨씬 길다. 함에도 아무도 나를 서울사람이라 한 적 없고,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서울사람임을 자처한 적이 없다. 서울에서 범위를 더 좁히면 지금 사는 용산에서만 20년을 내리 사는데, 그렇다고 내가 용산사람이라는 소속감 혹은 정체감도 없다. 그래 어디 사냐 물으면 서울이요 용산이요 하고, 괜히 같은 지역을 산다는 사람을 타지에서 만나면 반갑기는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반면 내 아들놈이야 지 애비 따라 본적이 김천이기는 하지만, 아무도 김천사람이라 하지 않고 다 .. 2024. 2. 26.
이규보 글씨가 아닐까 하는 글씨 그렇게 많이 백운거사 이야기를 했으면서도, 정작 이규보가 붓을 휘둘러 썼을 글씨가 어땠는지 본 적이 없었다. 한데 몇 달 전 (완전히는 아니어도) 그 궁금증을 풀 만한 자료를 보았다. 일제강점기 출판인이자 서점 경영인 심재 백두용(1872~1935)이 편찬한 권1에 실린 우리 이규보 선생님의 (작품이라고 전하는) 글씨다. 심재 당년인 1920년대만 하더라도 이 글씨가 (임모본으로라도) 세상에 전해졌던 모양인데, 실제 글씨는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에 몸서리치다가도, 이렇게 목판본으로나마 남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이것뿐만 아니라 고려~조선 초기 인물의 진적眞跡을 찾는 사람들은 이 를 뒤적여 찾는 경우가 많다 한다. 그런데 그 근거가 무엇일지 아리송한 것이 적지 않아 혼란스러울 때도 드물지 않다고. 심.. 2024. 2. 26.
신동훈: 시베리아 극지 미라 관련 논문 서지 목록 https://shindonghoon.tistory.com/40 신동훈: 시베리아 극지 미라 관련 논문 서지 목록필자는 2010년대 후반, 러시아 시베리아 극지 지역에서 현지 연구자들과 함께 일련의 인류학적 연구를 수행하였다. 시베리아 지역의 중세 원주민 미라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미라shindonghoon.tistory.com 필자는 2010년대 후반, 러시아 시베리아 극지 지역에서 현지 연구자들과 함께 일련의 인류학적 연구를 수행하였다. 시베리아 지역의 중세 원주민 미라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미라만 연구 대상은 아니었으며 인골에 대한 연구도 함께 수행한 것이다. 러시아에서의 연구는 우리에게도 큰 학술적 의미가 있어 계속 진행하고 싶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더 .. 2024. 2. 25.
열렬한 중앙집권에의 찬양가로 흐른 고려거란전쟁 거란 혹은 고려거란전쟁이라는 종래에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소재를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일단 후한 점수를 줘야 한다고 본다. 기타 장점이 많거니와, 이런 기회를 빌려 나 또한 어줍잖은 글나부랭이라도 긁어댈 수 있으니 더 고맙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없지 아니해서, 단언하고 전제하지만, 나는 작가적 상상력만큼은 최대한 존중하되,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문제적 시각도 적지는 아니해서 개중에서도 한두 가지만큼은 지적하고 싶다. 이 드라마는 시종일관해서 유쾌통쾌상쾌를 지향하는 사극이라, 그 유쾌 통쾌 상쾌는 거란이라는 당대의 거인하고 맞붙어서도 고려라는 작은 나라가 굴하지 아니하고 궁극으로는 승리를 쟁취한 이야기를 강감찬과 현종을 중심으로 시종일관해서 이야기한다는 .. 2024. 2. 25.
웹 세계를 떠도는 석굴암의 여러 면모 그 구조를 이야기할 때 제공되는 평면도 단면도 입체도를 AI로 증폭해 봤다. 개별 도면 출처가 대부분 없어 아쉽지만 그 이해엔 요긴한 것들이라 정리한다. 2024. 2. 25.
AI가 살린 식민지시대 석굴암 이 중엔 물론 유리건판 깨끗한 자료가 있다. 인터넷을 배회하는 해상도 거지 같은 석굴암을 살려봤다. 일찍 죽지 마라. 억울하다. 2024. 2. 25.
AI가 살려낸 첨성대 등반 수학여행 장면들 일부는 출처가 밝혀져 있기도 하지만 맞는지는 나는 모른다. 식민지시대 이래 그 장면이라며 인터넷을 방황하는 해상도 거지 같은 몇 장을 증폭했다. 일부는 무리한 증폭에 문제가 있지만 초점만 나가지 않음 그런 대로 아주 요긴하게 복원한다. 2024. 2. 25.
서울 사람은 누구일까 박물관에서 일하면서야 알게 되었다. ‘서울 토박이회’라는 것이 있다고.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아. 서울에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들의 모임인가보다' 했는데, 생각보다 까다로운 기준이 있었다. ‘서울 사대문 안, 그리고 사대문 밖 10리 이내’에서 3대 이상 거주했던 사람만이 그 기준에 부합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무렵, ‘서울사람, 김주호’라는 작은 전시를 박물관 로비에서 하게 되었다. 평범한 서울사람인 김주호씨에 대한 일상사로 서울의 이야기를 본다는 취지의 전시였다. 전시는 김주호씨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서울의 이야기와 사람들의 생활사를 담고 있었다. 나도 상당히 흥미롭게 보았고, 전시를 보러 오신 분들의 반응도 좋았다. 그런데 역시나 고질병이 또 도졌다.. 2024. 2. 25.
[귀주대첩] (15) 왕 노릇 11년 만에 왕이 된 고려 현종 왕순 국교 정상화라는 개념이 전근대랑 현재는 조금 다르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는 상대국에 상시로 주재하는 전문 외교관이 있느냐 없느냐다. 한국사의 경우 상시 외교관 주재 제도 자체는 구한말에 가서야 가능했다. 그 이전에는 종주국이라 삼는 중국 역대 왕조에 이런 제도 자체가 있을 수도 없었으니, 때마다 사신을 왕래하는 일이 공식 외교관계의 형식이었다. 이를 흔히 조공 책봉 관계라는 말로 치환하고는 하지만, 일본 동양사학에서 유래한 이 개념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층위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3차 고려거란전쟁을 계기로 고려와 거란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말을 앞서 했거니와, 전쟁 중에도 두 왕조는 꾸준히 사신을 왕래했다. 다만 하도 치고받는 .. 2024. 2. 25.
AI가 살려낸 화랑세기 필사자 남당 박창화 화랑세기를 필사한 남당南堂 박창화朴昌和(1889~1962) 선생이라. 한성사범학교 출신으로 식민지시대에는 일본 황실 도서관인 서릉부書陵部에서 촉탁으로 오랜 기간 일했음이 그 자신의 증언은 물론이고, 그 직원 명부에서도 확인된다. 그 이야기는 다른 기회로 돌리고, 기간 알려진 사진이라 해서 흔히 돌아다니지만, 이는 실은 내가 언론을 통해 공개한 것이라 그의 손자 고 박인규 선생이 할아버지 논집을 낼 적에 그 책에다가 공개한 것이다. 다만 하도 원본 상태가 좋지 아니하고 저래서 오늘 생각난 김에 AI 도움을 받아 증폭했으니 이것이라, 그런 대로 볼 만하다. 얼굴만 따로 누끼를 땄으니 물론 AI 기술 적용은 원본 훼손 혹은 왜곡 우려가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인물 사진은 설혹 그런 면이 있다 해도 훨씬 나은 .. 2024. 2. 25.
60 전후: Decency의 딜레마 decency는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조금 애매한데, 체면? 그것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고 품위? 비슷한기는 한데 이것도 완전히 같지는 않다. 나이가 들어 계속 일할 때 생각해야 할 부분의 하나는 decency다. 대개 나이 60 넘어 은퇴한 후에도 일을 하는 경우에, 60이 넘었다면 사회적지위도 어느 정도 이룬 상태에서 은퇴하게 되는데, 이때 은퇴후에도 계속 일하고자 한다면 선택지는 둘이다. 첫째는 완전히 내려놓고 어떤 일을 어떤 조건에서라도 할 생각을 하거나, 그게 싫다면 어느 정도 decency를 유지하면서 일하되 미리 치밀하게 준비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여기서 은퇴한 후에도 뭔가 일을 하겠다고 할 때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억지로 decency도 유지하고자 한다면 거기서 갑질이다.. 202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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