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7689 [귀주대첩] (8) 거란군 꽁무니를 좇는 이상한 전쟁 소손녕이 이끈 1차엔 80만, 성종이 친정한 2차엔 40만을 동원했다는 거란이 1018년 현종 9년 12월에 단행한 3차엔 고작 10만을 끌고 왔으니 규모로 보아 거란으로서는 전면전은 아니었지만 이건 다른 측면에서 봐얄 성 싶다. 거란으로서는 이 무렵 내부 사정으로 저 이상 되는 군대를 징발하기 힘들었다고 보거나 다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뒤에서 보겠지만 십만은 당시로서는 전면전이라 봐도 무방하다. 우리는 흔히 이 삼차전을 귀주대첩이라 하나 실상 이 전쟁은 최전방 흥화진에서부터 개경 근방까지 전선이 형성되었고 그에서 크고작은 전투가 잇따랐으며 실상 귀주대첩은 그 마지막 승리를 말할 뿐이다. 이듬해 2월 1일 귀주대첩까지 3개월에서 약간 모자란 이 기간에 벌어진 모든 전투에서 고려는 완승했다. 특히 .. 2024. 2. 23. [귀주대첩] (7) 전쟁 직전 강감찬의 동태 948년 생인 강감찬은 70세에 도달한 1017년 정월에는 정년 퇴직하거나, 정년퇴직하고 싶다는 사표를 던졌어야 한다. 나는 틀림없이 강감찬이 저 시기에 저랬다고 본다. 그것을 현종은 반려했다. 다만, 사서에서는 누락됐을 뿐이다. 그건 현종으로서도 강감찬을 따로 써 먹을 데가 있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이를 간접 증언하는 흔적이 고려사 현종본기와 고려사절요에 모두 보인다. 한창 전운이 감도는 현종 9년 1018년 5월, 현종은 강감찬을 서경유수 내사시랑평장사西京留守內史侍郞平章事로 삼는다. 서경유수 겸 내사시랑평장사다. 서경유수는 외직이고 내사시랑평장사는 내직으로 재상이다. 한데 서경유수를 임명하면서 그 임명장 뒤에다가 현종은 이상한 말을 쓴다. “경술년(1010) 중 외적의 침입[虜塵]이 있게 되자 창과 .. 2024. 2. 22. [귀주대첩] (6) 3차 고려거란전쟁의 미스터리들 거란과 여진인 내투來投가 이어지는 어수선한 상황은 이미 예고한 3차 고려거란전쟁이 어느 쪽으로 승리가 기울지를 암시했다. 고려 현종 9년(1018) 연말부터 이듬해 초에 걸친 이 전쟁은 그 요란한 선전과는 달리 실상 거란이 동원한 군사가 그네들 기준으로 10만밖에 되지 않았다. 이것도 그네들 일방 선전이라 실상 참전 규모는 더 적었다고 봐야 한다. 전쟁의 제1 홍보 조건은 뻥, 개뻥치기였다. 전쟁 홍보의 핵심은 성과는 과장하고, 피해는 숨기거나 최소화한다는 데 있다. 한 명 죽여놓고 백명 몰살했다 하고 백명 죽었는데 두 명 죽었다고 하는 짓거리는 러시아랑 우크라이나아 한 판 붙은 저 전쟁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아무튼 자칭 10만이라는 거란군을 막고자 고려가 동원한 군대가 놀랍게도 갑절이나 많은 20만.. 2024. 2. 22. [비형랑과 화랑세기] (3) 양자로 즉위한 김춘추 : 생부는 갈문왕, 양부는 대왕大王 갈문왕이 종말하고 추봉 대왕이 등장하는 획기를 나는 김춘추 즉위에서 찾는다. 김춘추의 등장은 중국식 예제가 한반도에 착근하는 계기였다. 이런 중국식 대왕 추봉 바람에 갈문왕이 대표하는 소위 고유 신라 추봉 시스템은 도전에 직면했다. 김춘추한테는 생부와 양부가 따로 있었다. 그는 양자로 즉위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은 금륜왕金輪王, 곧 진지왕과 사도思道 사이에서 난 둘째아들로 동부동모同父同母 형이 용수龍樹다. 춘추는 용수가 천명天明 공주에게서 낳은 아들로,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와 함께 작은아버지 용춘에게 가서 자랐다. 용춘은 천명을 아내로 받아들이는 한편 적자嫡子가 없어, 형의 아들인 조카 춘추를 아들로 삼았다. 춘추는 양자養子로 작은아버지에게 입적되었다. 화랑세기에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지만, 춘추는.. 2024. 2. 22. [귀주대첩] (5) 거란에 무슨 일이? 쏟아져 들어오는 거란인 거란이 군사를 동원하는 데는 패턴이 있어, 예외는 없지는 않으나 저들 또한 겨울을 이용했으니, 이때가 말할 것도 없이 농한기인 까닭이며, 유목 전통이 강한 저들은 이때를 빌려 거개 사냥을 하곤 했으니 이때가 군사를 동원하기 위한 적기였다. 요새 군인이라면 사시사철 각종 훈련을 해대지만 이는 적어도 직업 군인 혹은 그에 징발되어 일정기간 복무하는 근현대 군대 시스템을 말하며, 전근대는 이와 같은 전업적 군대 육성 시스템은 운영할 수도 없었으니 간단히 돈 때문이었다. 돈이 엄청나게 들었고, 그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댈 재간이 없었다. 특히나 당시는 몸으로, 숫자로 떼우는 시절이라, 군대 동원은 곧 다른 공공부문 인력 상실을 의미했고, 그네들이 전부 농사를 짓거나 유목을 해야 하는 까닭에 한가롭게 군대 가서.. 2024. 2. 22. [백수일기] 귀찮아지는 눈 한땐 그런 날이 있었다. 폭설이 내리기만 기다리는 그런 날이.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새벽을 설치며 어디론가 사진기를 울러매고 나갔다. 한데 이 짓도 백수가 되니 만사가 다 귀찮아 따신 웃목이 그리워 더 보일러 올리고선 배때지를 바닥에 깔고 눕는다. 그러고선 다시 영화 한 편 그럴 듯한 거 틀어놓고는 즐긴다. 좋다. 불알이 늘어진다. 백수는 눈도 멀게 한다. 2024. 2. 22. [202401 독일풍경] (9) 베를린 ③ 베를린필하모니-쇤베르크 탄생 150주년 from 장남원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음악을 듣게 된 것은 처음이다. https://www.berliner-philharmoniker.de/ Startseite | Berliner PhilharmonikerDie Berliner Philharmoniker online: Konzertkalender, Ticketverkauf, Musiker, Geschichte, Education, Aufnahmen, Digital Concert Hallwww.berliner-philharmoniker.de 음악당은 시내 중심가 포츠담 광장 근처, 베를린 공예박물관이 있는 쿨투어 포룸 옆에 있다. 음악당은 본래 1882년에 개관했으나, 1944년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음악당 파괴 6주 만에 악단은 다시 팀을 꾸려 베를린 곳.. 2024. 2. 22. 대동여지도 해안선은 어떻게 그렸을까? 대동여지도를 유심히 보면 흥미로운 것이 좁은 지역일수록 상호위치가 정확하고 큰 지역-예를 들어 한반도 전체의 모습일수록 부정확해야 할 것이다. 만약 직접 돌아다니면서 그린 거라면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대동여지도는 각 지역별 여정이나 산줄기, 강줄기, 상호간의 위치는 그냥 그렇다. 그 정도면 동네 사또들이 모아 오는 정보만 합쳐도 나올 것 같다. 그런데-. 해안선. 저건 정말 어떻게 그렸는지 모르겠다. 대동여지도에서 가장 의문스러운 부분은 해안선이다. 이걸 어떻게 정확히 비례를 지켜가며 전체 해안선의 모습을 정확히 그렸는가. 대동여지도는 필자가 보기엔 각 고을의 여정과 산줄기에 대한 연구와 해안선을 어떻게 그렸는가 하는 연구는 둘을 분리해서 따로 연구해야 한다. 전자는 지금 통설대로 있는 정보를 모아서.. 2024. 2. 22. 신동훈: 조선시대 미라 관련 총 서지 목록 https://shindonghoon.tistory.com/38 신동훈: 조선시대 미라 관련 총 서지 목록 영문 논문 E2023-1. Kim JE, Lee HJ, Hong JH, Kenig A, Zaitsera E, Slepchenko S, Kim S, Shin DH. Cross-Analysis of Carbon and Nitrogen Stable Isotope Data from the Remains of Joseon Dynasty Mummies and Other Agrarian People of 16th to 18th Century Eurasi shindonghoon.tistory.com 필자의 조선시대 미라 관련 논문 총 서지 목록을 올린다. 미라 관련 연구는 2022년 이래 을지대 오창석 교수에게 .. 2024. 2. 21. [귀주대첩] (4) 전운이 감도는 전야 이제 또 다른 전쟁은 불가피했다. 아예 거란과의 문을 닫아버리고 모든 관계를 단절한 고려로서도 전쟁을 불사했다. 아니 쳐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왜 이랬을까? 이 정도면 됐다 생각했는데도 계속 거란이 무리한 요구를 일삼고 툭 하면 군사도발을 감행하니 열이 받을 대로 받은 상태임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고려로서는 참을 수 없는 요구가 이른바 강동육주 반환과 현종의 친조였다. 이건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었다. 한데 거란은 자꾸만 저를 요구했다. 둘째 막상 붙어보니 거란 군사력이 별거 아니었다. 뭐 겉으로는 대단한 듯하고 그 때문에 첨에 겁부터 먹고 달아나기 바빴지만 실상 전력은 과대포장됐고 오합지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잖은가? 말타고 하면 쌈 잘해? 뭘 잘해? 또 내성이 생기.. 2024. 2. 21. 고적도보는 식민 모국 일본을 엿먹이는 총독부 회심작이다 이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는 그 계획의 담대함과 그 실제 사업 내용, 그리고 그 결과물은 인류역사에 전례를 보기 힘든 성취였다. 전대에 이와 견줄 만한 데는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에 의한 백과사전 편찬과 그 맞은 편 중국이 시도한 사고전서와 고금도서집성 편찬이 있다. 믿기는가? 저 담대한 사업을 식민 모국 일본도 아닌 그 찌꺼기 조선총독부가 해냈다는 사실이? 저걸 왜 했을까? 돈 들어갈 데가 한두 군데도 아닌 판국에 저들은 왜 굳이 저런 사업에다 예산 퍼부었을까? 저 사업 결과물은 보고서가 나올 때마다 해외로도 배포됐다. 그 지향점이 조선 국내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도대체 총독부는 무슨 생각으로 전례 없는 호화양장으로 저걸 찍어냈을까? 식민통치의 정당성 홍보를 위해? 그래? 저런거 찍어냄 홍보가 되니? 말 .. 2024. 2. 21. [비형랑과 화랑세기] (2) 형을 도운 낭정郞政 "비형랑은 형을 도와 낭도郞徒를 다스렸다" 이 ‘도화녀 비형랑’ 이야기에 사륜계를 선전·홍보하는 목적이 담긴 이유로 많은 신라사학도가 보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 실질 주인공이라 할 비형랑鼻荊郞을 용춘龍春으로 보기 때문이다. 용춘이 누구인가? 태종무열왕 김춘추 아버지 아닌가? 이런 견해에 의한다면 비형랑은 바로 김춘추의 아버지다. 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은 이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비형랑과 그가 거느린 귀신 무리의 행태가 화랑이라고 본다. 어째서 그러한가? 다음 신종원의 언급은 그 이유를 집약한다. “비형이 무리를 이끌고 다니며, 나라의 큰 공사를 지휘하였다는데 이것은 전쟁시 무장武將으로 나아간 것과 같다. 비형은 ‘郞’이라 불리었으며, 휘하의 유능한 인물을 천거하는 등의 면모에서 비형 자신과 그 무리를.. 2024. 2. 21. New Guide to Recover Damaged Heritage by ICOMOS & ICCROM New publication! We're delighted to announce the launch of a groundbreaking publication by ICOMOS and ICCROM on “Post-Disaster and Post-Conflict Recovery and Reconstruction for Heritage Places of Cultural Significance and World Heritage Cultural Properties.” The guidance is designed to support decision-making processes for recovery and reconstruction, offering a comprehensive approach that foste.. 2024. 2. 21. 콜레주드프랑스에서 찾았다는 대동운부군옥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은 임진왜란 직전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1534~1591)가 완성한 류서類書라, 20권 20책이라는 거질인 까닭에 그의 당대에는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 상태로 집안에 전해질 뿐이었다. 그의 종가가 지금도 경북 예천에 있으니, 그에는 초간정草澗亭이라 일컫는 정자가 있고, 본래는 이 종가에 군옥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가 지금은 예천박물관에 기탁(기증인지도 모르겠다)된 상태다. 분량이 많아 그것을 책으로 찍어내기 위한 목판 역시 거질인데, 예천박물관 한 켠을 이 목판이 가득 채우고 있다. 결락이 없는 완질인지는 내가 확인하지 못했거니와, 혹 빠진 이빨이 없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의 당대에 책으로 간행되지 못한 군옥이 목판으로 간행되기는 200년이 지난 정조시대에 와서야 가능했다. .. 2024. 2. 21. 거란 진국공주묘 도면, AI를 고고학에 응용한 일례 이것이 중국사회과학원 홈피에서 제공하는 거란 遼나라 시대 진국공주陳國公主와 그의 남편을 합장한 무덤 단면도와 평면도라, 물론 발굴보고서를 보면 더 좋은 도판을 얻겠지만, 웹에서 제공하는 꼴을 저래서 도면 상태도, 해상도도 형편없다. 바쁜 시간에 언제 보고서 일일이 찾아 캡처하거나 스캔하겠는가? 저걸 AI 증폭기로 돌려봤다. 이렇게 나온다. 웬간한 거지 같은 도면만 있어도 AI 이용하면 저리 깨끗한 도면을 얻는다. 다음 같은 진국공주 부부묘 저 중에 이실耳室이라 해서 저쪽 툭 튀어나온 열쇄 구멍 모양 하나를 본다. 사회과학원 제공 도판이 이 꼬라지다. 이 놈들도 문제다. 저걸 어찌 사용하란 말인가? 저걸 AI로 증폭해 봤다. 이렇다. 같은 진국공주묘 투시도다. 일본 쪽 어느 홈페이지에 보이는 것인데, 이것.. 2024. 2. 21. 황철黃鐵(1864~1930)의 글씨 예전에 한번 야조冶祖 황철(黃鐵, 1864~1930)이란 이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아래 첨부 링크 참조) 그때 쓰기로, 개화기의 '풍운아'를 꼽으라면 포함될 만한 인물이라고 했더랬다. 그 삶의 궤적을 보나 남기고 간 작품을 보나, 그 평가는 지금도 유효하다. 거기 굳이 뭘 더 보태고 싶진 않지만, 기왕 쓴 김에 한 가지만 덧붙여본다. 황철은 만년엔 일본 친구 스나가 하지메(須永元, 1868~1942)에게 얹혀 살며 이따금 휘호揮毫를 하러 다닐 뿐이었다고 한다. 그의 글씨와 그림은 지금도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데, 특히 글씨는 살짝 끌린 기가 엿보일 정도로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행초行草가 대부분이다. 거칠고 호방하게 보이는 그의 글씨는 "구양순, 안진경을 배웠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전혀 다른데, 그.. 2024. 2. 21. 2천500년전 춘추시대 계란 꾸러미 강소성 무덤서 확인 이 소식을 전하는 증국 쪽 자료를 봐야겠지만 지금 그럴 만한 여유가 없어 영문 자료를 토대로 정리한다. 2500년전 계란을 한 꾸러미 가득 담은 항아리가 Jiangsu, China서 드러난 춘추시대(770 to 475 BC) 무덤에서 발견됐다고. Shangxing Town, Liyang City, Jiangsu Province여서 드러난 이 무덤은 원형 봉토분 공동묘지 무덤 중 하나로 봉분 기줏 지름 약 40미터에 높이 4미터가량이라 하니 저 시대 저짝에서는 흔한 이른바 토돈묘일 듯하다. 이 일대 발굴에서는 백점 이상 헤아리는 도기류가 수습됐다. 문제의 계란은 Tomb No. 11이라 명명한 무덤에서 출토한 것으로 덮개로 덮힌 상태였다. 놀랍게도 이들 계란은 크기가 요새 그것과 비슷했다. 당연히 내용물이.. 2024. 2. 20. AI로 되살린 기생들(2) 방식은 앞과 같다. 다만 이들 사진 혹은 엽서에 대한 진위 판별은 내 작업 범위를 벗어난다. 웹에 떠돌아다니는 것들을 골랐다. *** previous article *** AI로 증폭해 본 근대 기생님들 AI로 증폭해 본 근대 기생님들 인터넷에 기생 사진이라 해서 떠돌아다니는 님들을 긁어서 AI로 증폭해 봤다. 유료로 돌리면 더 좋은 화질을 얻겠지만 이것으로 그런대로 만족한다. 물론 저들 사진 출처는 식민지시대에 발행된 historylibrary.net 2024. 2. 20. [문화재 기자 17년] (3) 범어사 천왕문 방화 하도 이곳저곳 싸질러 대서 언제 어디에서 한 말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한 가지는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며, 그것도 자주였다는 사실이다. 남들 보기에 내가 가 본 데가 많은 듯하지만 내가 가지 않은 곳이 훨씬 많다. 부산 범어사도 가보지 못한 곳 중 하나였다. 나는 1993년 1월 1일자로 기자 생활에 발을 디디기 시작한 이후 6개월의 이른바 수습 기간이 채 끝나기 전인 그해 6월 1일자로 부산지사로 발령 나서 내 기억에는 이듬해 7월1일자로 다시 서울 본사로 발령 나서 체육부에 근무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경상도 출신이라 하지만 부산은 나에겐 생명부지나 다름없는 곳이었으되, 이곳에서의 생활 13개월을 나는 유배 생활에 견줄 정도로 고통 그 자체였다. 그런 까닭에 당시엔 내가 문화재.. 2024. 2. 20. 송파책박물관 한국인쇄사 조명 특별전 서울 송파구립 송파책박물관이 이 박물관에서 한국 인쇄사를 다룬 특별 기획전 를 개막하고는 오는 8월 말까지 계속한다. 이번 특별전은 고려·조선·근대·한국전쟁기·현대의 총 5부로 나누어 시대별 책 인쇄물, 인쇄도구 등의 자료 140여 점을 내세워 한국인쇄사를 한 눈에 조망하고자 한다. 인쇄과정을 담은 영상과 함께 인쇄 역사 전체를 3D 일러스트로 조명한 특별영상 또한 함께 선보인다. ‘세상을 뒤흔든 인쇄’라는 슬로건을 내건 고려시대 편에서는 목판과 금속활자를 집중 소개한다. ‘직지심체요절’은 복원본을 청주 고인쇄박물관에서 대여했다. 이 직지야 알려진 대로 1377년 제작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이며, 원본은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소장 중이며 얼마 전 실물을 그쪽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인쇄, .. 2024. 2. 20. 한국의 구석기 유적 목록화 DB사업 by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 전곡선사박물관은 학술 연구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의 구석기 유적 목록화 DB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 구석기 연구에 공헌하고자 지속해서 수집된 유적의 현황을 전곡선사박물관 누리집에 공개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구석기 유적을 전수조사한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 국내 구석기 유물 현황 파악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전곡선사박물관은 문화재청 인트라넷을 기준으로 누락된 유적에 대해 박물관의 기존 아카이브 등 다양한 자료를 보완하여 1차 성과를 공개합니다. 완성된 1차 목록은 전곡선사박물관 누리집에서 확인 할 수 있어, 누구나 손쉽게 한국의 구석기 유적의 현황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성과 공개를 시작으로 보고서 열람 서비스를 운영하여 박물관의 학술 기능과 학술 자원의 사.. 2024. 2. 20. 이전 1 ··· 151 152 153 154 155 156 157 ··· 84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