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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그들은 왜 땅이 필요했는가 여말선초 조선 건국세력의 프로파간다에 익숙한 우리는, 고려말에는 송곳하나 꽂을 곳이 없이 권문세가의 농장이 백성을 침탈하여 고통받고 있어 사전을 혁파하여 권문세가의 땅을 몰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과전법체제를 출범시켰다고 하고, 이것을 일종의 혁명이자 역사적 순리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가. 송곳 하나 꽂을 수 없는 겸병된 농장을 일본에서는 동시기에 장원이라 불렀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말하는 성리학자의 혁명없이도 장원은 잘만 성장하고 발전하여 무가정권을 출범시키고 그것이 에도막부까지 발전하여 조닌문화, 거대한 화폐경제를 출현시키고 메이지유신까지 이어졌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여말선초의 "농장"과 "겸병"은 정말 사회악이었을까? 군역을 도피한다고 공격당하여 절집과 인근의 토지를 몰수당하고 사대부들의 종 아.. 2024. 9. 20.
캐갈까 무쪄워 호남화단의 시조랄 수 있는 소치 허련(1809-1893). 뒷사람들은 흔히 '운림산방 5대'라는 자손의 화맥畵脈만을 이야기하지만, 당대부터 그는 제자를 여럿 길러냈다. 그들은 호남 각지에 뿌리내려 작품활동을 하였는데, 당연하게도 소치풍風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들이 소치 그림을 갖지 못한 이들의 수요를 채워주고, 누군가는 그들의 작품에서 낙관을 교묘히 도려내 스승 소치의 위작으로 둔갑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소치의 제자, 또는 소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여겨지는 화가 중 난원 김환주(1877-?)라는 이가 있다. 해남 출신으로 서화에 이름이 있어 흥선대원군이 호를 지어주었다는 미방 김익로(1845-1915)의 아들인데, 김환주 역시 그림을 잘했다 하나 전해지는 작품은 드물다 한다. 이 사진이 그 .. 2024. 9. 20.
성리학 벽이단론闢異端論의 기원: 맹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리학의 벽이단론 기원은 맹자다. 맹자는 이단을 통렬히 비판하였는데 막상 이단에 대한 처분에 대해서는 생각만큼 가혹하지 않았다. 맹자는 이단을 물리치는데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다. 孟子曰: “逃墨必歸於楊, 逃楊必歸於儒. 歸, 斯受之而已矣. 墨氏務外而不情, 楊氏太簡而近實, 故其反正之漸, 大略如此. 歸斯受之者, 憫其陷溺之久, 而取其悔悟之新也. 今之與楊墨辯者, 如追放豚, 旣入其苙, 又從而招之.” 放豚, 放逸之豕豚也. 苙, 闌也. 招, 罥也, 羈其足也. 言彼旣來歸, 而又追咎其旣往之失也. ○ 此章見聖賢之於異端, 距之甚嚴, 而於其來歸, 待之甚恕. 距之嚴, 故人知彼說之爲邪; 待之恕, 故人知此道之可反, 仁之至, 義之盡也.군자가 이단을 처분하는 방법은 엄하게 대하되 돌아오면 다 받아주고 도망.. 2024. 9. 20.
과격한 척불론은 성리학의 본령이 아니다 물론 척불론은 성리학자들이 계속 이야기한 부분이긴 하다. 당대의 거목 유학자로 성리학의 남상을 이룬다고 평가받는 한유도 그 유명한 (논)불골표에서 척불의 뜻을 남겼고 이 글은 그 후 천여년간 유학자들이 줄곧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의 모든 척불론도 이러한 흐름의 파생이다. 그런데-. 척불론은 성리학의 주장에 분명히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조선처럼 불교의 씨를 말리라고 한 사람은 없다. 벽이단론闢異端論은 이미 맹자에서 나오는 오래된 유교의 주장이지만 이 벽이단론은 불교를 씨를 말려버리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 때문에 척불론을 포함한 성리학이 국가체제교학이 된 송대 이후의 중국, 에도시대 이후의 일본에서도 불교는 여전히 살아 남은 것이다. 이 두 나라에서는 중앙정치와 사대부의 정신세계.. 2024. 9. 20.
아는 것보다 더 나간 여말선초의 사대부들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이 사서집주에서 주희가 적어 놓은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은 16세기이지 싶다. 사서집주가 워낙 유명하고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이를 우습게 보는 경우도 있던데 사실 성리대전이니 하는 성리서를 본다고 해서 사서집주의 수준을 많이 뛰어 넘는 것이 아니다. 조선성리학 16세기의 발전은 성리대전과 각종 성리서를 수입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사서집주에 대한 오랜 침잠의 결과로 그 내용을 마침내 이해하게 된 데서 온다. 사서집주의 성리철학 주가 이해하기 상당히 난해해서 그것을 이해하고자 주자어류니 성리대전이니 하는 것을 보는 것이지 사서집주의 주자 주 자체가 수준이 낮은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말이다. 사서집주의 주자 주를 다 이해하면 다른 성리철학 관련 서적은 볼 필요도 없다. 그 안에.. 2024. 9. 20.
절 재산이 탐나 벌인 척불정책 물론 성리학에는 척불적 기조가 있다. 그런데-. 그 척불적 기조의 정도가 문제겠는데, 당장 성리학자의 원류 중 하나로 척불론의 원조격이 될 한유만 해도 논불골표論佛骨表 등을 보면,부처의 말을 다 믿지 말고 이를 중앙 정치판에 끌고 오지 말라는 이야기지절 집을 뺏고 재산 몰수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조선에 들어오기 이전의 송-원대 성리학자들 주장 어디에도 절집 재산 빼앗고 박해하라는 소리는 없다.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네 번의 폐불운동이 있어 불교를 탄압했는데정작 성리학이 흥한 후 북송대 이후에는 제대로 된 폐불운동이 일어난 바 없다. 앞에서도 한 번 쓴 것 같은데 여말선초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이해하는 성리학 수준은 그다지 깊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주자의 사서집주 주석도 완전히 이해 못한 수준이었을 것이라 .. 2024. 9. 20.
의식용 칼들이 말하는 스키타이 황금문화 아래 논문이 인용하는 스키타이 장식용 검 도판들이다. Golden Swords of the Early Nomads of Eurasia: A New Classification and Chronology by Denis TopalORCID History, Archaeology, and Museology Department, National Museum of History of Moldova, MD-2012 Chișinău, Moldova Arts 2024, 13(2), 48; https://doi.org/10.3390/arts13020048Submission received: 11 August 2023 / Revised: 30 January 2024 / Accepted: 2 February 2024 / Pu.. 2024. 9. 20.
조선은 하나라더니 어느날 다른 나라라는 북한 필자 젊은 시절에 북한에서 노상 하는 소리가 조선은 하나다 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UN 동시가입도 영구분단 책동이고올림픽도 분단 영구화의 책동이라 반대하고 그 짓을 하다가 하다가 이제는 자기들이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남한이 발전하니원래 서로 다른 나라란다. 같은 민족이 아니라 국경을 접한 적대국이라네? 그런데-. 나도 북한하고 지금 당장 통일하는 건 싫다. 내 노후가 아깝다고. 미안하지만 나는 애국자가 아니어서 그런지내 노후를 불쌍한 북쪽 동포하고 나눌 만한 마음의 준비가 없다. 그런데 말이다. 통일을 하고 안하고는 니네가 결정하는 게 아냐. 대한민국이 결정하는 거지. 이쪽 사람들이 하겠다고 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미안하지만 니네는 결정권이 없다. 나라를 그 모양을 만들어 놨으면 미안해서.. 2024. 9. 19.
일 시키고 보수를 줘서 신기했던 청계천 준천 영조가 말년에 당신이 했던 일중에 가장 잘 한 일이라 자평했다는 청계천 준천. 이 사업은 신기하게도 사역한 사람들에게 보수를 줬다. 필자가 알기론 이것도 국고에서 나온 게 아니라 내탕금에서 지급된 것으로 아는데, 아무튼 어쨌건 준천 한 사람들에게 보수를 줬다. 보수를 안주고 일을 시키면 어떻게 될까? 가끔 그런 생각 한 적이 없는가? 조선시대에 만들어 놓은 성벽저걸 성벽이라고 쌓았나 싶은 그런 성벽들 말이다. 죄다 공짜로 부려 먹고 시키려다 보니 만들어진 성벽이 그 모양이다. 얼마전 본 유튜브에서 북한에서 나무 심기 할 때 나무를 어떻게 심는가 설명하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탈북민 이야기로는 빨리 갈 생각에 뿌리를 다 쳐내고 꽂아 놓고 집에 간다는 것이다.당연히 그 나무는 다음 번에 오면 말라죽고 없다. 요.. 2024. 9. 19.
선의는 디테일에서 열매를 맺는다 누군가 악마는 디테일에서 있다고 했던가 같은 이야기를 뒤집으면 선의는 디테일에서 열매를 본다고도 할 수 있겠다. 말로는 무슨 소리든 다 가능하다. 조선시대에 선비마다 한 번씩은 아마 읊어 봤을 민농시 여름 땡볕에 일하는 농부가 불쌍해 죽겠다고 하면서 권력자들은 저런 농부들의 고생을 외면한다고 질타한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그 농부가 여름 뙤약볕에 들에 나가 일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 때문일 수도 있다. 왜냐 그 동네 지주는 자신이기 때문이지. 물론 그 시를 쓴 사람은 선의에서 썼을 수도 있다. 그럼 뭐 조선시대 나온 그 많은 민농시가 전부 다 위선이겠는가? 그런데-. 국민을 위한다거나 아니면 농부를 위한다거나 디테일이 없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 실컷 농부가 불쌍하다고 해 놓고는 그 해법이 정전제, 균전.. 2024. 9. 19.
파피루스 습지에서 새를 사냥하는 고양이 브리티시 뮤지엄 소장 고대 이집트 벽화 중 한 장면으로, 구체로는 테베, 그리니깐 현재의 나일강 중류 도시 룩소르에서 발견된 기원전 1350년 무렵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네바문Nebamun이라는 사람 묘소 겸 사당에서 출현한 석회판 위 원색화로, 저 그림 조각 전체는 83 x 98 cm다. 사진 출처는 ©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저 장면은 Nebamun이 습지에서 주로 새들을 사냥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저처럼 생생한 회화 자료들이 남았으니 저 시대 문화생활사 미술사를 그렇지 아니한 한반도의 그것에 견주어 얼마나 유리한가? 또 배가 아프고, 또 조상들이 원망스럽지 않겠는가? 저 장면 구체하는 박물관 안내는 다음과 같다. 네바문 무덤 예배당tomb-chapel에 있는 이 벽.. 2024. 9. 19.
호두까기 신공은 이렇게 한 푼 벌어보겠다고 34개월 된 놈이 손톱 까맣게 물들 때까지 호두를 깠다. 이 앙증맞은 꼴을 나는 병원에 후송되는 바람에 보질 못했다. 지켜본 가족 구성원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그리 호두까기를 잘하더랜다. 심지어 발로 밟아 까는 신공도 발휘하더랜다. 저들한테야 호두까기가 신공이 아닌 놀이인 까닭 아닌가 싶다. 밭뙤기 한 평 떠줘야 하나? 그건 그렇고 제아무리 무더운 추석이라 해도 가을은 천상 가을이다. 추석 당일 김천 수은주는 37점 몇 도를 찍었다나? 전체를 통털어 기상관측 이래 김천 최고 기온 아닐까 싶다. 2024. 9. 19.
떼거리 파이앙스Faience가 빚어내는 이집트 환상 양이 많으면 떼거리 전시가 가능하며, 이를 통해 집단주의가 뿜어내는 체조주의 효과를 낸다는 데 있다. 그래서 설혹 개별로는 별품 없어 보여도 일단 양이 많고 봐야 한다.왜?이 장면처럼 명징하게 떼거리주주의 그 위대함을 증명하는 보기 있을까?실상 이런 떼거리주의 전시가 국내 박물관계에도 이젠 드물지 않다. 예컨대 그 지겹디지겨운 토기 전시를 때거리주의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나름 찾았기 때문이다. 미국 메트로박물관 소장 저 고대 이집트 파이앙스 재료 관련 유물들은 뭐 이런저런 고민없이 저런 식으로 훝뿌려놔도 된다. 저 파이앙스 유물이 고대 이집트에는 발길로 챈다. 우리는 단 한 점도 없다. 한반도엔 꼬빼기도 없는 준보석이다.그럴 거면 남들 긁어모을 때 같이 긁어모을 조상님이라도 있었어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2024. 9. 19.
암울했던 기억 속의 <종로서적>과 <교보문고> by 신정일 1978년 2월 중순, 드디어 제대를 했다. 군 생활 중에 일어났던 일들이 활동사진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1975년 5월 6일 전주 35사단에 입대를 했고, 강원도 철원에 자대배치된 1975년 10월쯤이던가, 행정병이 휴가 갔다 돌아오면서 사가지고 온 레코드판이 송창식의 음반이었다. 이 들어 있던 그 음반을 들으며 ‘가을이 가네, 청춘도 가네.’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러다가 꽃 피우지 못한 청춘이 다 지나갈듯 싶어서 애달파했던 추억, 1976년 8.18 도끼 만행 사건 때에는 전쟁이 나도 좋겠다는 허황 된 생각을 했던 일, 겨울에 큰 눈이 내리면, 그 시간이 새벽이라도 일어나서 부대 앞 철원의 44번 국도의 눈을 치우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먼 곳에 있을 것.. 2024. 9. 19.
미노아인들의 패셔너블 와인 머그 잔 킬릭스Kylix라 해서 4500~4000년 전 고대 미노아 문명 와인 컵이다. 저 다채로운 도기들을 보면 이미 그리스문명도 고도를 구가했으니 더구나 저 시대 중국을 보면 청동기다운 청동기도 없을 때지만 저 지역은 이미 청동기 문명 절정이었다. 저들은 청동기시대라 우기지만 저 무렵 중국은 엄밀히는 신석기말기인데 놀라운 점은 청동기 발명 전개는 비실비실 늦었지만 도기 문화 발전은 놀랍고 더 특이한 점은 유럽이나 근동 지역에 견주어 그리 늦은 청동기가 일단 불이 붙자 세계 어느 지역 청동기도 따라잡을 수 없는 고도를 이룩했다는 사실이다. 은상, 혹은 주대, 혹은 삼성퇴 단계 청동기 봐라 기가 찬다. 이를 어찌 봐야 하는가? 2024. 9. 19.
조선정부의 회심의 일격: 일 시키고 돈 안주기 앞에서 직역과 석고를 묶어놔 스스로를 사무라이라고 주장하는 자라면 석고제에 따라 쌀을 받으면 반드시 뭔가 내놔야 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일본과 달리 대대로 지주로 살면서도 국가에 대해 어떠한 의무도 지고 있지 않던 조선의 사대부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렇다면 조선왕조는 어떻게 지탱할 수 있었을까? 토지와 직역을 묶어놔서 유사시 수십 만 병사를 일거에 모을 수 있는 일본과 달리 선비들이 땅은 땅이요 의무는 의무로서 지방의 토지소유자인 선비들이 국가에 어떤 의무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 조선 후기의 시스템이었다면, 조선정부는 도대체 어떻게 정부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이 바로 "백성 일시키고 돈 안주기"다. 조선시대 내내 각종 부역과 노역은 공짜로 사람들을 징발.. 2024. 9. 18.
치킨계의 람보르기니, 연산오골계의 분발을 기대하며 이 인도네시아 블랙치킨은 세계에서 가장 이상하고, 가장 비싸고, 가장 희귀한 품종의 치킨으로, 하도 귀한신 분이라 "람보르기니 치킨Lamborghini chicken"이라고 불리며, 계란 가격이 2천 5천 [달러?]이 넘고 육질이 매우 맛있다 한다. 이 닭의 모든 것은 예외 없이 검은 색이다. 깃털, 부리, 혀, 손톱, 심지어 고기, 달걀, 뼈까지도. 심지어 피도 검붉은 색이라고. 같은 흑계 계통인데 한국산 연산 오골계 그 분발을 기대한다. 장닭끼리 쌈박질 함 시켜 보면 어떨까? 우리는 밑질 것도 없으니. 2024. 9. 18.
내놔야 할 의무가 없어 의병이 된 사대부들 앞에서 조선후기 재지 사대부들은 국가에서 녹을 먹지 않고도 충분히 대대로 먹고 살 수 있다고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그 경제적 기반은 결국 향촌사회의 지주라는 신분에서 나오는 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대대로 먹고 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그 어떤 의무 없이도 주어지고 있었다는 점이 문제겠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에도시대 막부이건 번이건 간에 이에 소속된 사무라이들은 대대로 녹을 받아 먹는 대신에 유사시 소정의 군사력을 제공하도록 정의되어 있었다. 유사시 내놔야 하는 군사력의 반대급부로 석고제 하의 녹이 주어지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 조선후기 사대부들은 이와 비슷한 토지를 소유하고 이로부터 나오는 재부로 대대로 먹고 살지만 그 반대급부로 내놔야 할 부분이 정의된 바 전혀 없었다. 조정에 출사하여 관직에.. 2024. 9. 18.
붕당론과 당쟁 조선시대의 당쟁을 붕당론이라는 이름으로 견제와 균형을 이야기하며 옹호하는 입장이 있는데 애초에 도학자들의 세계관에서 견제와 균형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본다. 조선시대에 당쟁, 붕당정치가 끝도 없이 전개된 이유는 정쟁에서 패배해도 진 쪽도 진 것 같지 않게 세력이 끝없이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나라 당쟁의 원인으로 사람은 많은데 관직은 적어서 싸움이 났다는 주장도 봤는데 이것도 어폐가 있는 것이 어차피 과거 급제해봐야 얻을 수 있는 관직도 제한되어 있었고, 우리나라 사대부라는 사람들은 애초에 나라에서 녹봉받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과거란 자신들이 뼈대 있는 사대부 집안이란 것을 딱 증명하기 위한 정도면 되는 것이었고, 과거 급제한다고 해서 그로부터 먹고 살 기반이 나오는 것이 아.. 2024. 9. 18.
조선시대 사마시 조선시대의 사대부들과 일본 에도시대의 사무라이는 둘 다 士이다. 일본에서 士라고 하면 바로 사무라이를 가리킨다. 공경을 士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 조선후기 한국의 선비들과 일본 에도시대 사무라이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전자는 벼슬 없이도 재지 지주로서 대대로 선비의 자격을 물려줄 수 있는데 반해 후자는 막부건 번이건 소속되어 직역을 받지 않는다면 사무라이로 존재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급제자에서 유심히 봐야 할 부분은 사실 사마시다. 사마시만 통과하면 향촌애서 재지지주이자 유력 사대부 집안으로 계속 존재할수 있었기 때문에.... 향촌에서 사마시만 통과하고 지주로 계속 살아간 이런 계층은 에도시대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계층이다. 2024. 9. 17.
배고프면 학문도 없다 조선후기 그리고 에도시대. 임란 이후 불과 백년만에 홀라당 한일간의 학문수준이 역전되어 버린 것은 딴 것 없다. 조선이 못 살았기 때문이다. 임란 이후 에도시대 저쪽 지식인들을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질과 양적으로 독서의 범위가 매우 넓다는 것이다. 왜이겠는가? 돈이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왜 몇 종 되지 않는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었겠는가? 돈이 없어 책 사보기에 넉넉치 않았기 때문이다. 돈이 없고 배고프면 학문도 없다. 이것은 60 이후 공부를 생각하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경제적 곤란은 없고 책 사 볼 돈은 있어야 연구고 나발이고 되는 것이지, 먹고 사는 데 바빠서야 60 이후 연구고 나발이고 될 리가 없는 것이다. 미국 연구가 왜 세계 최강이겠는가? 결국 경제적 부인 것이다. 주.. 2024.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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