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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 상아랑 여우 송곳니로 덕지덕지 장식한 구석기 남자 3만500년 전(순기르Sungir/러시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고학적 발견으로 특별한 매장지가 드러났다. ​ 발견된 유해는 성인 남성의 것이며, 매장은 풍부한 유물로 장식되었다. 여기에는 매머드 상아mammoth ivory로 만든 3,000개 구슬beads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세련된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 또한 매머드 상아로 만든 25개 팔 밴드arm bands와 함께 뚫린 12개 여우 송곳니 fox canines가 발견되었다. 이 매장지는 많은 고대 사회에서 문화적 중요성을 지닌 광물인 붉은 황토색 색소 층 red ochre pigment으로 덮여 있었다. 붉은 황토red ochre 사용은 매장과 관련된 의식적 또는 상징적 관행을 제안한다. ​이 발견은 초기 인류 사회의 문화적, 사회적 복잡성에 .. 2024. 8. 5.
리베로가 추앙받던 기자시대 2000년대가 시작하며 인쇄매체 활자시대가 저물기 시작하면서 모든 언론사는 영상에 사활을 걸었고 그에 따라 모든 기자는 리베로 되기를 강요받았으니 한국언론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어서 이른바 롸이터 writer로 통칭하던 펜대 기자도 사진기 둘러매고 영상촬영까지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저 사진은 나름 그 시대 기자사회 한 풍광이라 명색이 펜대기자인 나는 사진기 들고 또 한 손엔 폰 카메라로 동영상까지 촬영하는 모습이다. 저리 찍은 사진은 내가 골라 편집하고 사진 설명까지 붙여 발행했으니 사진이야 꼭 강요가 아니라도 나는 사진을 워낙 혹닉해 실상 내가 맡은 분야에서는 준 사진기자로 통용하기도 했으니 심지어 사진으로 상도 서너번 타먹었다. 동영상은 촬영한 원본들을 넘겨주면 그쪽 부서에서 대강 편집해서 해당 .. 2024. 8. 5.
[서예가 이완용] (8) 사진이 부른 법첩의 혁명 이번에 쓰는 글은, 이완용뿐만이 아니라 근대에 글씨 좀 썼다 하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될 지점을 건드려보고자 한다. 이른바 '근대'의 역설이랄까. '근대'란 '전근대'를 마냥 부정하며 일어섰으며, 특히 동아시아의 경우 더 그랬다고 볼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물론 일본 메이지 시대의 폐불훼석廢佛毁釋이라든지, 중국 민국시대 잡지가 주도한 신문화운동이라든지 보면 그런 면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전통 예술이나 사상, 문화가 '서양 기술의 등에 업혀서' 더 빠르게 사회 저변에 보급되고 파고들 수 있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근대가 전근대를 부정했다고만 볼 수 있을까? 외려 근대가 전통을 더 조장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법첩法帖이다. 역대 .. 2024. 8. 4.
충주댐 청풍호에 수몰한 회한 청풍호에 잠긴 사람들의 삶 Sinked people's life in Cheongpung-lake 제천 지역을 흐르던 청풍강은 충주댐 건설(1978~1985)로 청풍호가 되었다 강가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어 옛 사람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시기가 되면서 농사가 본격화된다. 식량이 풍부해지면서 남은 식량을 많이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 간에 계급이 생겼다. 그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 고인돌로, 황석리에서는 46기의 고인돌이 무리를 이루어 발견되었다. 이후 여러 가지 문화와 철을 다루는 법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이 돌을 쌍아 돌무지무덤을 만들고 각종 철도구들도 만들었다. *** 저 충주댐 수몰지구라고 하면 술 한 잔만 들어기도 저 발굴을 이야기하는 형.. 2024. 8. 4.
밤송이 가득한 가을 제아무리 찐다한들 오는 가을 여름이 막을 수는 없다. 꿩 잡는 이 매 여름 잡는 이 가을이라 살피니 밤송이엔 이미 가을이 한가득이라 성하면 기울기 마련이다. 시간이 이럴진대 하물며 사람임에랴 2024. 8. 3.
권상하 초상 권상하 초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Portrait of Gweon Sang-ha 권상하(1641-1721)는 송시열의 수제자로 79세 때 모습을 화원화가 김진여가 그린 것이다. 옷의 질감과 입체감을 표현한 흰색 물결 모양의 무늬는 다른 초상화와 다른 독특한 점이다. 황강서원(현 황강영당)에 안치되었던 초상화다. 비단에 채색ㅣ안동권씨 문순공파 종중 기증 Kim Jinyeo (17-18c) | Joseon Dynasty 1719 Ink and Light Color on Silk Donated by Andong Kwon's Family Chungcheongbuk-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333 제천 의림지박물관 소장 2024. 8. 3.
Made in Japan을 쓰시던 동래부사 부산은 일본과 가깝다. 그러므로, 당연히 예부터 어떤 식으로든 일본과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시작이 부산진 전투였던 것만 봐도 알 만하지 않은가.임진왜란으로부터 200여 년 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아버지 친구인 참판 윤필병(1730-1810)에게 시를 한 수 지어 바친다. 윤필병은 동래부사를 지낸 인물이었던지라 동래부사로서의 모습을 형상화하는데...붉은 줄 그어진 미농지에다 시를 베끼고  詩寫米農紅搨紙에도의 녹자 술잔에다 술을 따라주누나  酒傳江戶綠瓷杯- 권3, 시, 시를 적는 '미농지'가 뭔가 하면 (아마 써보신 분이 있지 싶은데) 먹지를 대고 뭔가를 베끼거나 문을 바르는 데 쓰는 꽤 두꺼운 종이다. 그런데 이것은 일본 기후현岐阜縣 미노美濃 지방 특산물이라 '미농지'.. 2024. 8. 3.
문자가 죽으니 글이 소비되는 역설 신문 방송이 버려졌다지만 뉴스 시장은 인류 역사 이래 이런 활황이 없다. 글 또한 마찬가지라 글을 안 읽는다지만 엄밀히는 읽지 않는 건 책이지 글이 아니다. 글? 단군 조선이래 문자가 이리도 폭발적으로 소비된 적 없다. 신문을 보지 않고 방송을 듣지 않는데서 착을 읽지 않고 잡지를 보지 않는데서 사람들이 뉴스를 소비하지 않고 글을 읽지 않는다는 인과관계는 성립할 수 없다. 둘은 전연 별개고 실은 반비례한다. 더 간단히 말해 채과 신문이 누린 활자매체시대가 저물었을 뿐이다. 언뜻 이 역설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와 더불어 이 시대를 어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나는 문자에 대한 질식이 작금의 흐름은 그에 대한 레지스탕스라 본다. 문자는 태생 자체가 인간 생각 감정이라는 추상을 어떡해든 구상으로 해.. 2024. 8. 3.
라피스 라줄리 풍댕이 꽂은 파라오의 황금팔찌 셰숀크Sheshonq 또는 쇼센크Shoshenq 2세라는 고대 이집트 제22왕조 파라오다. 그는 이 왕조 유일한 통치자로, 그의 무덤은 도굴되지 않았다. (이 분 정확히 외래어 표기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일단 저리 적어둔다.) 그의 마지막 안식처는 1939년 피에르 몽테Pierre Montet가 타니스Tanis에 있는 프수센네스 Psusennes 1세 무덤 뒷방antechamber에서 발견했다. 그의 관 뚜껑은 그해 3월 20일 이집트 파루크Farouk 왕이 보는 앞에서 열렸다. 아름다운 매 머리 은관과 황금제 장례용 마스크와 함께, 많은 보석으로 장식한 팔찌와 장식품이 껴묻거리로 발견됐다. 가면은 왕 얼굴에 씌워진 상태였다. 사진은 그의 팔찌 bracelet 다. 금으로 제작했고 라피스 라줄리 lap.. 2024. 8. 3.
2천년 전 로마에 피노키오 인형? 이는 한때 크레페리아 트리파에나Crepereia Tryphaena라는 젊은 로마시대 여성이 소유한 까닭에 크레페리아 인형 Crepereia doll이라 일컫는 유물이다. 그는 약 20세로 추정되는 젊은 로마 여성으로, 1889년 정의궁Palace of Justice 기초와 로마 티베르 강을 가로지르는 움베르토Umberto 1세 다리 건설을 위해 시작한 발굴에서 그의 석관이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높이 약 23cm인 이 고대 바비 인형은 물을 먹어 어두운 색깔을 띠지만 상아로 만들었다. 팔다리는 움직이는 관절로 디자인한 반면, 머리와 몸통은 한 조각으로 조각했다. 그 수준이 놀랍기만 하다. 이 인형은 코와 달리 손, 발, 머리가 아주 세부적으로 조각되어 있기 때문에 원래 옷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그 인형 머.. 2024. 8. 3.
피렌체 탑을 오르는 남자 딱 봐도 100년은 넘은 직한 이런 사진이 무슨 저작권이 있으리오? 저 사진을 소개한 어떤 분이 이렇게 설명을 한다. A man climbs up a staircase of the Tower of Palazzo Vecchio, in the background looms Brunelleschi’s Dome from Santa Maria del Fiore, Florence, around 1900. by Fratelli Alinari, 1889 한 남자가 1900년경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에서 브루넬레스키 돔을 배경으로 베키오 궁전 계단을 올라간다. 프래텔리 알리나리, 1889 설명에 뭔가 착종이 일어난 듯, 촬영시점이 1900년 무렵인지 1889년인지 헷갈린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100년.. 2024. 8. 3.
양성兩姓의 역설, 두 개의 가부장 한국사회 일각, 특히 이른바 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일군에서 언젠가부터 아버지 엄마 두 가지 성을 병기하는 흐름이 있으니, 이것이 탑재한 아이러내는 그것이 실은 그런 양성兩姓 병기가 추구하는 양성 평등과는 달리 두 개의 가부장 시스템이 강화한 결과라는 데 있다 하겠다. 예컨대 내 아버지가 김씨요, 내 어머니가 이씨라면 그에서 태어난 자식이 김이 머시기 해서 이름을 짓는다. 나는 그것이 표방하는 그 정신은 존중한다. 그에는 그 어떤 이론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뜯어보면 우리가 엄마 성이라 알고 있는 것은 실은 내 기준으로 외할아버지, 곧 엄마의 아버지 성에 지나지 않는다. 저 정신이 표방하는 정신을 제대로 살리겠다면 내 가문 외가쪽은 시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그 시조 어머니 성을 찾는 것.. 2024. 8. 3.
[건축론](4) 전투가 단 한 번도 없던 조선왕궁 역사를 통괄할 때 조선사가 기이한 점이 한둘이리오만 개중 하나가 왕궁을 무대로 전투다운 전투, 전쟁다운 전쟁은 단 한 번도 벌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물경 존속기간이 500년에 달한다는 조선왕조가, 외적 침입이 끊이지 않았고 반란 역시 끊이지 않은 저 역사에서 어찌 이것이 기이하지 않겠는가? 왜 그럴까? 외적 침입은 고사하고 내란 소식 하나에도 겁이 나서 일단 튀고 봤다. 들고 튄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방어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버틸 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방어력 부재를 증명하는 가장 큰 증좌가 바로 해자의 부재다. 해자가 있고 없고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를 위해 해자가 무슨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는 많은 지적이 있듯이 첫째는 장식 기능, 둘째는 방어기능.. 2024. 8. 3.
걱정할 거 없다고 큰소리 뻥뻥 쳤던 추사 선생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제주에 유배 생활하던 1840~1849년은 동북아시아에 서쪽에서 부는 바람이 크게 불어닥치던 시절이었다.아편전쟁이 딱 1840년에 일어나고, 그 결과 청나라는 불평등조약을 맺고 항구를 여럿 열어 서양의 진출을 용인하게 된다. 조선도 그런 움직임을 어렴풋하게나마 전해듣고는 있었다. 그때 조선 최고의 중국통이라 할 추사의 반응은 이랬다. 제주에 오는 일본 표류민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는 제주목사 장인식(1802~?)에게 보낸 간찰 중 하나다....표류한 왜인에 대한 번뇌는 족히 신경쓸 게 못되오. 다른 나라 배의 경찰詗察에 이르러서는 격탁擊柝의 경계로 보아 확실히 깨우쳐 단속할 바이지만, 천 리 밖의 일이라 어찌 족히 이 땅의 소요야 되오리까. 중국의 오문(澳門, 마카오) 천.. 2024. 8. 3.
[서예가 이완용] (7) 신문 신년 휘호 지금이야 윤전기에서 갓 나와 따끈따끈한 신문지 뭉치를 포장용으로 수출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조선 땅에서 신문이란 참 대단하고 권위가 있는 매체였다. 그때 그 시절 신문사에서는 새해나 기념할 만한 날에 명사의 붓글씨나 그림을 받아 신문지상에 싣곤 하였는데, 이완용의 글씨도 제법 보인다. 첨부 사진들에 신문에 실린 이완용 '휘호'가 보인다.당연하게도(?) 이완용의 글씨는 총독부 기관지 나 일본어 신문 같은 데만 실렸고, 나 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차례대로 1916년 10월 3일자 , 1926년 1월 1일자(왼쪽 아래. 가운데 턱 하니 실린 것은 총독 사이토 마코토(1858~1936)의 휘호) ,   1918년 9월 30일자에 실린 이완용 글씨다. 완完의 마지막 획과 용用의 .. 2024. 8. 3.
사카라Saqqara 세라페움Serapeum, 암벽 터널 파서 만든 무덤 공장 멤피스Memphis 인근 고대 이집트 네크로폴리스인 사카라Saqqara의 세라페움Serapeum은 인상적인 지하 무덤이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 제19왕조 시대(기원전 1300년경)에 건설된 이 건축물은 바위를 깎아 만든 일련의 커다란 터널과 방들을 특징으로 한다. "갤러리"로 알려진 주요 터널은 길이가 약 100m이고 폭은 약 8m다. 그 안에 있는 무덤들은 각각 단단한 화강암으로 조각되어 있고 100톤에 달하는 거대한 화강암 석관이 있다.저 유적은 앞으로 자세히 소개할 기회가 있을 테니 일단은 맛뵈기로만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2024. 8. 2.
[조 수수 기장 재배 관찰기] 병충해와의 싸움 조는 익어가고, 기장과 수수는 이삭이 나오기 시작했다. 풀새끼들이 온힘을 다해 자라고 있는데, 수수나 조 기장이 이길 것 같아 풀 뽑기나 베어주기는 그만한다. 조가 늦게 시집가 너무 작다고 걱정했는데 쓰러질 일은 없겠다. 김포가 점질토라 양분 흡수가 좋아 그런지 조 기장이 엄청 잘 쓰러진다고 한다. 쓰러짐에 대비해 이렇게 늙어 시집보내는 것도, 열매가 잘 여물기만 하면 괜찮을 거 같다. 조 이삭에 색색의 노린재가 앉아, 알곡 즙을 짜먹고 있다. 저렇게 당한 애들은 쭉정이가 된다. 몇 개는 조명나방 애벌레 피해도 보인다. 참새에 노린재에 조명나방에.. 애들 잘 자라기 참 힘들다. 지난달 말 그냥 한번 늦게 심은 조랑 기장은 새싹이 삐죽 나왔는데, 과연 먹을 수 있을까? *** 김포 농업 종사하시는 신소희 .. 2024. 8. 2.
시원의 우물 Initiation Well by 루이지 마니니 Luigi Manini 순간 볼 때는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우물이 아닌가 싶었다. 하긴 뭐 본 게 그거밖에 없으니 말이다. 깊이 88피트, 바닥까지 27m 나선형 계단을 갖춘 이 우물은 포르투갈 신트라 마을 근처 퀸타 다 레갈레이라 라는 데 있다 한다.하지만 우물로 사용된 적은 없는 기념물이다.다음 바닥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현대 조각이다.  작가는 저 우물은 엄마 자궁으로 대체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시원 우물 Initiation Wells 이라 하지 않았겠는가.한데 왜 wells라 해서 복수형?우물이 더 있단 말이다.포르투갈 세계유산인 신트라의 퀸타다 레갈레이라 공원 Quinta da Regaleira Park, Sintra 이라는 데 설치된 우물 조각 둘 중 하나라고. 다른 하나를 보다.저들은 1900년대 초.. 2024. 8. 2.
로마 판테온, 공구리의 힘 두 말이 필요없는 건축유산 로마 판테온Pantheon. 건설된 지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 모습을 크게 흐트리지 아니하고 유지하는 콘크리트 돔concrete dome이다. 시멘트 공구리가 어떤 힘을 지니는지 저처럼 여실히 보여주는 증좌 있겠는가? 로마 고대 기념물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곳 중 하나로 후대 다른 건축에 끊임없는 영감을 주었다. 본래 저 자리에도 또 다른 만신전萬神殿이 있었다. 악티움 해전 Battle of Actium(기원전 31년) 이후, 이 전투를 결정적 승리로 이끈 장군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Marcus Vipsanius Agrippa가 기원전 27년 판테온을 건립했다. 하지만 서기 80년 로마를 덮친 대화재에 불타 내리자 서기 125년 무렵 황제 하드리아누스 시대에 .. 2024. 8. 2.
땅을 파고 들어가 만든 가난한 스웨덴 사람들의 숲집 무슨 지하 창고처럼 보이는데, 창고가 아니라 숲에 지은 집이란다. 덴마크랑 인접한 스웨덴 남부 스몰란드Småland[발음은 내가 들어봐도 정확한 표기를 못하겠다, 스모아란드 비슷하게 들리는 듯도 하다.] 어느 숲에 있는 작은 흙 오두막이란다.이런 오두막은 보다시피 지표면에는 지붕 정도만 살짝 노출된다.이런 종류 집을 스웨덴에서는 문자 그대로는 "언덕 코티지hill cottage"를 의미하는 "박스투가backstuga "라고 알려져 있다 한다.물론 오늘날은 흔하지는 않지만 17-18세기에만 해도 가장 가난한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 저런 데 살았단다.저 모습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대목은 옥저니 읍루니 해서 한반도 북쪽에 거주한 그때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집을 지어 살았을까 할 때 일정한 시사를 주리라고 본.. 2024. 8. 2.
그 많은 태胎는 어디로 갔을까?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부터 확인하고 들어간다. 인류 역사는 태어난 사람 숫자랑 죽은 사람 숫자는 정확히 일치한다. 단 하나의 예외도 있을 수 없다. 한반도라 해서 몇 명은 죽지 않고 승선할 수는 없다. 이제 범위를 좁혀 한반도 역사를 통괄하건대, 김유신이 태어난 서기 595년 무렵에는 장태藏胎 안태安跆 문화가 있었음은 확실하다. 물론 신분에 따라, 지위에 따라 모든 이가 장태 안태를 하지 않았을 것임은 분명하지만, 일정한 신분 이상, 지위 이상 되는 사람은 누구나 다 했음이 분명하다. 이는 무덤 역시 마찬가지라, 무덤이 대단한 듯하지만, 우리가 발굴조사를 통해 보는 무덤은 실상 있는 놈들이나 차리는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 사람? 일반 백성? 그들이 무슨 무덤을 쓴단 말인가? 거적대기로 싸서 지 엄마.. 202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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