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9995 환상 같은 그림, 하지만 극한 생존의 땅 그래 참 볼 때는 폼 난다. 와! 한다. 하지만 잠깐 고개 돌려 생각해 본다. 저걸 나한테 준다면 내가 살 수 있을까?단 하루도 살지 못한다. 통신 사정이 어찌될지 모르겠다만 와이파이도 없을 테니, 넷플릭스 쿠팡플레이는 닫고 살아야 한다. 뭐 위성? 그런 통신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요금 폭탄? 요새 위성 통신비도 싼지 모르겠다만 암튼 난 못 산다. 폼?개한테나 줘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생각해야 할 지점은 물이다. 도대체 물은 어디서 구했을까?땅을 파고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우물을 파야 한다. 언제까지? 물 나올 때까지 파야 한다. 저러다 지구를 뚫을지도 모른다. 그래 물이 나왔어. 그걸로 끝인가? 그 물이 마셔도 괜찮은지를 확인해야 한다. 아니면? 말짱 꽝이다. 사진은 AI 조작이나 합성이 아니요 .. 2025. 3. 23. 표범한테 줘뜯긴 호미닌 Watch out for leopards?표범 조심?우린 표범이 없기에 망정이지, 또 그 상위하는 포식자 호랑이가 사라져서 다행이지 그들과 인간 혹은 그 이종사촌이 공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자연과의 조화? 웃기는 소리다.이 어린 호미닌hominin은 백만 년 전에 표범에게 죽임을 당하고 먹혔을 징후를 보인다. 표범 송곳니 끝 간격과 일치하는 두개골 두 구멍에 보자.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 Paranthropus robustus는 약 200만 년 전 우리 초기 호모 조상과 공존했다.이 종은 튼튼한 두개골과 거대한 씹는 이빨로 잘 알려졌다. Leakey가 자금을 지원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성인 Paranthropus 개체조차 키는 3.4피트에 불과하고 무게가 60파운드에 불과했다. 이 새로운 연구에 따르.. 2025. 3. 23. [마왕퇴와 그 이웃-71] 관속의 액체는 어디서 왔는가 그렇다면 관 속에 들어 있던 액체는 어디서 왔을까? 처음에는 관속 액체는 방부효과를 위해 방부액을 관속에 부어 넣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방부액은 아마도 수은을 함유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주장은 처음 관을 열었을 때부터 중국의 고고학자들이 머리에 떠올렸던 생각이며실제로 우리나라에도 일부 조선시대 미라의 경우 관을 열면 그 안에 물이 많이 고여 있는 경우가 있어뭔가 방부처리가 그 액체 안에 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마왕퇴 부검을 사실상 주도했던 팽융상 등호남의과대학의 학자들은 이런 점에서도 매우 탁월한 의견을 제시했는데, 이들의 의견에 의하면 관속에 들어 있던 액체는 외부에서 주입한 것이 아니라 첫째는 시신 자체에서 흘러 나온 수분,둘째는 관이 매장된 후 내부 .. 2025. 3. 22. [마왕퇴와 그 이웃-70] 그렇다면 어떻게 보존되었다는 것인가? 마왕퇴 미라의 부검과 의학적 조사가 진행된 후, 이제 이 미라가 도대체 어떻게 이천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썩지 않고 보존되었는지여기에 대해 답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미라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부터 관을 채우고 있던 액체에는 많은 관심이 쏠렸다. 정상적으로 존재하기 힘들 정도로 잘 보존된 미라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 힘들며어떤 방식이건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생각이 처음에는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마왕퇴에 대한 조사가 끝날 때까지도 남아 있어서 관을 채우고 있던 액체안에 포함된 수은이 미라와 유기 유물의 보존에 영향을 주었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수은은 지금도 보존제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 의견 자체가 문제 될 것은 없다. 다만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이 미라가 인공적인 .. 2025. 3. 22. [마왕퇴와 그 이웃-69] 리창이 모시던 오예, 미라가 되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나중에 돌아보면 생각지도 않은 사건으로 만나는 경우가 있다. 마왕퇴 1호분의 귀부인은 장사국 승상이자 대후였던 리창의 아내였는데 리창은 아주 작은 고을 열후임과 동시에 장사국의 승상이기도 했다. 리창은 장사국 승상이었을 때 장사국왕인 오예를 섬겼던 모양인데개국공신들도 모가지가 댕겅 날아가던 파란만장한 시대에 오랑캐 출신이라던 오예는 변방이기는 해도 천수를 누리다 죽었고 오예의 장사국은 그 후로도 5대나 이어지다가 기원전 157년 국제가 되었다. 그런데-. 중국 기록을 보면 오예도 리창의 부인처럼 미라로 발견된 정황이 있다. 이 기록은 중국의 여러 문헌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郭颁의 《魏晋世语》 혹은 삼국지 제갈탄전의 주 등에 보면그의 무덤은 그 후 한 차례 파헤.. 2025. 3. 22. 태아 자세로 돌아간 라 다마 델 카벨로 코르토 La Dama del Cabello Corto 수백 젼 전에 살았던 여성 유해를 발굴해 본다 상상해 보자. 그녀가 전하는 이야기는 그 뼈에 아롱져 있다."라 다마 델 카벨로 코르토(La Dama del Cabello Corto)"로 알려진 그녀는 60~65세 때 장례식 꾸러미에 조심스럽게 싸여 있었고, 그 몸은 태아 자세로 누워 있었으며, 팔은 가슴 위로 교차되어 있었다.그 짧고 약간 물결 모양 머리카락은 회색이 섞인 채 여전히 두개골에 달라붙어 있었고, 피부와 눈썹 잔해는 그녀가 한때 살았음을 암시한다.입천장과 왼손에서 금속판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고대 의식이나 지위와 관련이 있는 신비한 유물일 수 있다.그 삶은 인내의 삶이었다.뼈는 골관절염, 치유된 골절, 수년간의 힘든 노동으로 닳아버린 척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골반은 출산 흔적을 지녔으며.. 2025. 3. 22. [마왕퇴와 그 이웃-68] 주혈흡충증 (4) 한국만 쌩깐 기생충 따라서 마왕퇴 한묘의 귀부인은 동아시아 주혈흡충증의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 계셨던 증인인 셈이다. 이 귀부인은 도대체 어떻게 이 기생충에 감염된 것일까? 너무 덥고 습한 기후 때문에 강에서 멱이라도 감다가 감염되었던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중국에서는 이 주혈흡충에 감염된 이유를마왕퇴 한묘의 귀부인이 젊었을 때 신분이 높지 않아 직접 강이나 논에서 맨발로 일해야 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라 보고 있다. 마왕퇴 한묘의 귀부인은 결국 대후 리창의 부인이니, 대후 리창은 유방을 따라 한의 공신이 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누대 귀족의 후예가 아닌 다음에는 결국 젊었을 때는 당시의 다른 사람들처럼 험한 일을 하고 살다가 벼락 출세를 했다고 본다면, 리창의 부인인 1호묘의 귀부인 역시 젊었을때 맨발.. 2025. 3. 22. [마왕퇴와 그 이웃-67] 주혈흡충증 (3) 욱일승천 일본, 기생충도 독보하다 일본에서도 주혈흡충증은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도작과 함께 들어왔다고 생각하지만이 주혈흡충 학명이 "일본" 주혈흡충이 된 것은 이 기생충을 최초로 발견하여 보고한 사람이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20세기 극초반이 일본이 욱일승천하던 시기라는 것은 남극탐험과 서역탐사에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 학술 부문에서도 그러했다. 이 시기에 일본의 미생물학자와 기생충학자들은 세계 최초로 병원체를 분리하여 보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20세기 극초반에 이미 일본 의학은 세계 수준으로 올라섰다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설사를 유발하는 이질균을 시겔라 (Shigella)라고 부르는데이 학명은 이질균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일본인으로 그 이름이 시가 기요시 (志賀 潔) 인 데서 왔다. 시가 기요시는 이질균을 무려 1897년에 발견 보고.. 2025. 3. 22. [마왕퇴와 그 이웃-66] 주혈흡충증 (2) 농부의 직업병 그런데 마왕퇴 한묘의 귀부인이 감염된 주혈흡충증은 학명이일본주혈흡충 (Schistosoma japonicum)이다. 일본에서는 이 기생충이 도작과 함께 대륙에서 건너왔다고 생각한다. 오염된 물에서 수영을 하는 것 보다도 도작할 때 수전에 맨발로 뛰어들어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수전을 맨발로 들어가 작업하는 농부는그 논물에 오염된 주혈흡충의 어린 개체에게 감염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의 주혈흡충이란 벼농사와 결부된 일종의 직업병이었던 셈이다. 마왕퇴 귀부인의 경우 이 주혈흡충증이 확인되었다는 것은 양자강 유역에서 지금도 볼 수 있는 주혈흡충증이 무려 이천 몇 백 년 전에도 이 지역에서 유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힌 쾌거였다. 2025. 3. 22. [마왕퇴와 그 이웃-65] 주혈흡충증 (1) 다슬기를 경계하라! 마왕퇴 귀부인에 대한 의학적 검사결과 확인된 것으로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귀부인의 내장에서 얻어진 시료에서는요충과 편충의 알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고고학적으로 자주 확인되는 기생충란 들이라 크게 이색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이 연구에서 주목해야 할 기생충 감염으로 주혈흡충증 住血吸虫症 schistosomiasis이 있다. 주혈흡충증이란 기생충 일종인 주혈흡충에 감염되어 일어나는 질병이라는 뜻이다. 이 질병이 어떤 것인가 하는데 대해서는 아래에 관련 글을 하나 링크해둔다. 필자의 은사이신 서울대 명예교수 기생충학자 채종일 교수님 글이다. 물놀이 중 10초 안에 혈관에 침투하는 '살인' 기생충은? - 최보식의언론[최보식의언론=채종일 메디피스 이사장(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주혈흡충증\'은 익숙하지 .. 2025. 3. 22. [마왕퇴와 그 이웃-64] 할머니 사망 원인은? 부검의 결과는 다른 방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사망원인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것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미라에서도 마찬가지로서사망원인이 추정된 경우는 거의 부검을 한 케이스였다. CT 등 비파괴적인 검사가 요즘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역시 부검을 따라갈 수 있는 검사법은 없다 할 것이다. 다만 부검은 역시 어쩔 수 없이 손상을 남기기 때문에 부검에 의한 학술상의 이점이냐, 보존이냐에 대한 부분은 미라 연구가 시작된 이래 항상 계속되어 온 갈등이었고국제적으로도 이에 대한 논의는 완전히 끝났다고 볼 수 없다. 아무튼 각설하고-.마왕퇴 노부인에 대해서는 그 사망원인이 부검 전부터 설왕설래 했었는데 부검 후 그 원인에 대해 보다 객관적 증거가 여럿 잡혔다. 부검 후 연구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연구자의 숫.. 2025. 3. 22. [마왕퇴와 그 이웃-63] 부검 전말 (2) 장기까지 살아남은 시신 마왕퇴 연구 기록을 보면사진 촬영이나 엑스레이 촬영 등 당시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기계가 워낙 낡은 탓에 충분한 퀄리티의 결과를 뽑지 못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사진촬영은 사진기가 빛이 들어가 필름을 망쳤다던가 엑스레이 기계가 너무 고물이라 창피할 정도라는 이야기 등 따라서 부검 당시 상황은 안에 아무것도 없겠지 하고 짐작하고 부검했다가 내부에서 잘 보존된 장기가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는 장면이 계속 반복되었다. 뇌에서는 뇌와 함께 뇌막이 확인되었다. 현장에서 찍은 엑스레이가 너무 엉망이라내장은 다 썩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정작 열어보니 완벽한 형태의 내장이 남아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부검후 열린 회의의 회의록에 잘 남아 있다. 회의에서는 "우리가 예상한 .. 2025. 3. 22. [마왕퇴와 그 이웃-62] 부검 전말 (1) 총리 재가 사흘만의 개복 주은래가 미라 부검을 사실상 재가를 한 시점이 12월 10일이었는데, 부검을 위한 준비는 1972년 12월 11일 개시되었다. 이 당시 부검이 얼마나 신속하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부검 전에 먼저 X ray를 찍고 사진과 영화를 촬영했다. 12월 14일에는 해부를 진행할 인원이 확정되었고 마지막 리허설을 했다고 한 다음 당일 바로 부검에 들어갔다.주은래가 재가 한 후 3일만의 일이었다. 부검 때 관찰 기록은 현재도 자세하게 남아 있다. 그 내용을 여기 다 쓸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이 당시 마왕퇴 부검 기록을 보면조선시대 미라에 대해 비슷한 연구를 수행한 필자의 경험상 매우 비슷한 결과를 그들이 얻었다고 판단한다.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미라의 보존상태와 마왕퇴 미라의 보존상태.. 2025. 3. 22. [마왕퇴와 그 이웃-61] 팽륭상의 계획 팽융상은 마왕퇴를 조사할 당시 조교수였다. 정확히는 "조교수"에 해당한다는 것이 맞다.왜냐하면 문화혁명 와중에 중국에서는 교수 직급을 몽땅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팽융상은 이 당시 언론에 "조교수"라고 소개되었는데 이는 해외언론에 소개하기 위해 "조교수"라는 직급을 조사 당시 부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류의 직급폐지는 중국이 공산화한 후 대학 말고도 시도된 적이 많다. 예를 들어 인민해방군은 병사들의 평등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계급을 모두 없애고 운영한 적이 있다. 한국 전쟁 당시에도 인민해방군은 "계급장을 떼고" 참전한 것으로 안다. 물론 당시 중국의 참전은 어디까지나 인민해방군의 참전이 아니라 의용군의 참전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계급장을 붙일 필요가 없었던 까닭도 있겠다. 젊은 팽융상은 마왕퇴 부.. 2025. 3. 22. [마왕퇴와 그 이웃-60] 호남의대의 부검 요청과 승인 1972년 11월 작성된 호남의과대학 혁명위원회 명의의 보고서를 보면 마왕퇴의 조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히고 있다. 당초의 조사에는 의학분야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연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연구 보고서로 작성하여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부검은 하지 말라는 요구가 있었다. 따라서 내부 조사는 현재 수행하지 못한 상태다.우리는 시신의 내장 기관에 대해, 두개골을 절개하고 흉복부를 해부해 뇌와 내장기관을 적출한 다음 몸 속에 소독 약품을 채워 넣고 방부처리한 후 다시 봉합해 시신의 외형을 완벽히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처리는 장기적으로 시신의 외향을 보존하는데 더욱 유리하다. 이 보고서는 10월에 이미 올렸지만 아직 허가를 받지 못했다.시신은 이미 점차 마르고 있다. 이에.. 2025. 3. 22. 비조지적飛鳥池遺跡 동전 주조 관련 물품과 서륭사적西隆寺跡 목간 나라현奈良県 비조지적飛鳥池遺跡[아스카이케 유적] 출토품과 서륭사적西隆寺跡[니시사류지 유적] 출토 목간이 일본국 중요문화재로 최근 지정됐다고 하거니와 영화令和 7년(2025) 3월 21일 문화심의회文化審議会는 문부과학대신文部科学大臣에 대한 답신答申을 실시하여 나라문화재연구소奈良文化財研究所가 보관하는 나라현 아스카이케 유적 출토품(고고자료), 니시류지 출토 목간(고문서)이 새롭게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했다. 나라현 아스카이케 유적 출토품 평성平成 3년(1991) 나라국립문화재연구소奈良国立文化財研究所(당시)와 명일향촌교육위원회明日香村教育委員会의 발굴조사로 확인되고. 나문연의 1997년~11년 발굴조사로 전모가 밝혀진 7세기 후반의 공방 복합단지[工房群]인 아스카이케 유적 출토된 고고자료다.특기할 만한 것은.. 2025. 3. 22. 한반도에 순동의 시대가 있었는가? 어제 새로 꾸민 중박 고고실을 둘러 봤다.진주 대평리에서 나온 곡옥 형태 청동장식이 눈에 들어왔는데, 2020년 청동기 전시 때 재질을 분석하니 춘천 우두동 화살촉, 정선 아우라지 꾸미개와 함께 이 유물이 구리 95%이상으로 확인되었다. 일부에서 결과값에 대한 오류를 제기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그것을 분석한 당사자로서 그때나 지금이나 오류 확률의 거의 없다고 확신한다. 분석치 외의 근거로 다음을 제시한다. 만약 주석 함량이 20% 이상이었다면 그들은 시간 관계상 저리 쌩쌩하면 안 된다. 물속이 아닌 땅에서는 이미 가루가 되어야 마땅하다. 이는 얇은 금동관이나 금동신발 등이 파편으로 나오는 이유와도 통하는 명제다. 대입해 보면 단양 하리 동관, 나주 신촌리 금동관은 자글자글하지 않다. 추정컨데 그들은 .. 2025. 3. 22. 예테보리가 반환한 안데스 미라 직물 앞서 번들 미라를 앞세운 파라카스 문화 Paracas culture 특징을 논하면서 그것을 감싸는데 쓴 직물이 정교하기 짝이 없음을 거론했거니와 그러면서 그 대표 유물 중 하나가 스웨덴에서 그 본향 페루로 귀환한 일을 거론했거니와 이 일을 조금 살펴본다. 문제의 직물은 ‘예테보리의 수의 The Shroud of Gothenburg’라 일컫는 것으로, 정교하기 짝이 없는 이 직물은 2014년 6월에 반환됐다. 당시 스웨덴 예테보리 시는 1930년대 이래 국립세계문화박물관 National Museums of World Culture 이 소장 관리 중인 페루 문화재 89점을 회차를 나누어 페루로 반환하기로 하고, 저때 1차로 저를 포함한 고대 안데스 직물 ancient Andean textiles 넉 점을 .. 2025. 3. 22. 번들 미라를 앞세운 파라카스 문화 Paracas culture 페루 남부 해안에 위치한 파라카스 문화 Paracas culture(기원전 800-1년)는 대규모 묘지와 장례 관행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여기에는 개인과 여러 개인을 여러 겹 직물로 싸서 "미라 꾸러미mummy bundles"를 만드는 일이 포함된다.파라카스 반도Paracas Peninsulas의 아열대 사막 환경은 미라 제작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미라 꾸러미에 포함되었던 멋진 직물이 보존될 수 있었다.파라카스 반도에는 두 가지 뚜렷한 유형의 묘지가 발견되었다.파라카스 카베르나스Paracas Cavernas라고 불리는 가장 초기의 예는 지하 동굴subterranean caverns에 밀집된 매장compact internments이 특징이며, 매장은 일반적으로 원뿔 모양conical i.. 2025. 3. 22. 두개골이 불어난 파라카스 미라 Paracas mummy 2000년 이상 된 파라카스 미라 Paracas mummy 한 구를 발견했다고 상상해보자.이 미라는 한때 페루 남부 해안을 따라 번성한 문명에 속한다.1920년대에 고고학자 줄리오 C. 텔로Julio C. Tello는 종종 금과 은 보석을 찾아 고대 미라를 무자비하게 찢어버리던 도굴꾼에게서 미라를 얻었다.하반신은 결코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는 파괴되었거나 암시장에서 판매되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평소보다 눈에 띄게 큰 길쭉한 두개골elongated skull이다.이는 다양한 콜럼버스 이전 문화들pre-Columbian cultures에서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데 사용한 관행인 두개골 변형의 결과였을까?아니면 자연스럽게 이런 식으로 형성되었을까?여전히 미스터리는 남아 있으며.. 2025. 3. 22. 욱일승천의 기세와 일본의 해외 진출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서역 유물이 본관 3층에 전시 중이다. 이 유물의 기원은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의 승려 출신 탐험가,오타니 고즈이(일본어: 大谷光瑞)가 실크로드를 탐사할 때 손에 넣은 유물로 알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던 것이 해방 이후 우리 중박의 관리로 들어오게 된 것으로 안다. 오타니 서역탐험에 대해선 아마도 김단장께서 따로 언젠가 다루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간략히 요약해 보자면 그의 서역 탐험은 1902년, 1908년, 1910년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이 당시 투루판, 둔황, 누란 등 서역 각지를 탐사한 것이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어 필자가 글을 쓰고자 한 것은 이 내용은 아니며,오타니 서역 탐사가 1910년을 전후한 시기 욱일승천하.. 2025. 3. 22. 이전 1 ··· 57 58 59 60 61 62 63 ··· 95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