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2094 일제시대: 대학진학에서 고등학교가 왜 중요했는가? 일제시대라고 해서 대학진학자가 백프로 중학교-고등학교 경로를 거친 것은 아니다. 확률은 많이 낮지만 조선인 중에도 소위 "천재"라는 이들은 이 높은 문턱을 뚫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고보 출신 중에도 경성제대 예과에 합격하여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조선천지의 천재들이다. 그렇다면 왜 일제시대, 대학진학에 있어서 고등학교에 우선 입학하는 것이 중요했는가? 그 이유는 이렇다. 일제시대의 고등학교나 대학예과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지금 의예과를 연상하면 된다. 다들 알다시피 의대 본과 진입 전에는 예과 2년을 거치게 되는데 이 의대 예과 2년이 바로 일제시대의 고등학교, 혹은 대학예과에 해당한다. 이 시대에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입학이 되어 있어야 유리.. 2025. 9. 14. 본토에는 없던 고등보통학교의 변칙성 위 그림에서 왼쪽은 이른바 2차 대전 이전 일본 학제인 구제 교육제도이다. 오른쪽이 종전 이후 새로 도입된 6.3.3.4 제로 우리와 같은 방식이다. 왼쪽 구제 교육제도를 보면, 소학교 다음에 여러 학교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학교를 나와야 대학이고 전문학교고 진학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고등보통학교 (고보)라는 건 일본의 교육제도에는 없는 것이다. 이런 변칙적 학교를 1937년까지 조선에서 유지했다. 이렇게 일본의 교육제도에서 포괄하기 어려운 학교를 만들어 놓으니 조선에서 고보를 졸업한 이들은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물론 진학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아주 어려워지는 것이다. 일례로 조선의 전문학교는 위 일본 교육제도에서 보면 중학교 졸업후 진학하는 고등상업, 고등농업, 고등공업학교.. 2025. 9. 14. 고보가 고등학교로 둔갑한 이유 일제시대에 살던 조선인들이나 일본인들 모두, 고보는 고등학교가 아니라는 것, 고보는 중학교와 같은 급이라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있겠는가? 고보를 나오면 상급학교라면 결국 고등학교 아니면 전문학교, 대학예과 등인데 고등학교와 대학예과는 언감생심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아주 예외적으로 여석이 있거나 정말 뛰어난 조선인은 그 벽을 뚫고 들어가는 천재들이 있기는 했지만, 고보 졸업생이 상급학교라고 하면 높은 확률로전문학교,낮은 확률로 고등학교, 대학예과 등이었기 때문에 고보가 고등학교가 아니라는 것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제말 (1937년), 제3차 조선교육령 때고보는 일괄해서 모두 중학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면 고보는 왜 고등학교로 인식되게 되었을까? 고보가 고등.. 2025. 9. 14. 조선에는 없던 구제고등학교 해방 전 조선에는 구제고등학교가 없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조선에서 고등보통학교 (고보)가 고등학교라고 오인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고등학교가 조선에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일제시대에는 대학진학을 위해서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제대로 된 코스였다. 물론 고등학교 들어가지 않고도 대학은 들어갈 수 있었지만 아주 어려웠다. 소학교-중학교-고등학교 코스를 밟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학을 쉽게 들어갈 수 없었고, 이 때문에 조선에서 고보를 나온 조선인들은 대학 진학이 쉽지 않았다. 이 구제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유일한 조선의 학교가 경성제대 예과다. 대학예과와 구제고등학교는 급이 같고, 중학교와 고보가 급이 같은 중등학교다. 일제시대에 위와 같은 모자가 구제고등학교 모자였다. 이수.. 2025. 9. 14. 바이킹 선 오세베르그, 100년 만에 움직였다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바이킹선이 험난한 마지막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전문가들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000년 된 세 척 바이킹선, "오세베르그Oseberg", "곡스타드Gokstad", "튠Tune"을 약 115야드(약 90미터) 떨어진 오슬로의 새 안식처로 옮기기 위한 심혈을 기울여 왔다. 먼저, 바이킹선 뱃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뱀 머리가 정교하게 조각된 소용돌이 모양으로 휘어져 있었다.배는 노란색 안전 조끼를 입은 작업자들에게 분당 10인치(약 30cm) 속도로 움직였다. 오슬로 문화사 박물관 관장 아우트 퇴네센Aud Tønnessen은 노르웨이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 순간, 이 배가 얼마나 아름답고, 위엄 있고, 자랑스러운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마치 아주 천천히 당신을 향해 .. 2025. 9. 14. 3,300년 이집트 호루라기, 왕릉 '경찰관'이 사용한 듯 이집트 고고학자들이 소 발가락을 깎아 만든 3,300년 된 뼈 호루라기를 발굴했는데, 이는 고대 "경찰관"이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다. 3,300년 된 소 발가락 뼈로 만든 호루라기가 투탕카멘 아버지가 세운 고대 이집트 수도 아케타텐Akhetaten (현재의 아마르나Amarna)에서 발견되었다.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이 호루라기는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된 최초의 뼈 호루라기이며, 수천 년 전 왕릉 인부들을 감시하던 "경찰관"이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호주 그리피스 대학 고고학 부교수이자 공동 연구자인 미셸 랭글리Michelle Langley는 "매우 독특하다"고 말했다.아마르나 프로젝트 고고학자들은 2008년 아케타텐 유적 발굴 과정에서 이 휘슬을 발견했지만, 최근까지 분석하지 않았다.이 도시는 태.. 2025. 9. 14. 고보는 고등학교가 아니다 이 부분은 언젠가 필자가 한 번 썼지만 심지어는 일제시대를 공부한다는 분들 중에도일본 구제 교육제도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것 아닌가 싶은 글들이 보여이 기회를 빌어 다시 여기 조금 써 본다. 필자가 알고 있는 지식도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지금 국내에서 통용되는 일제시대 구제교육에 대한 정보보다는 자세하고 정확할 것이다. 일제시대 교육제도에 대한 우리의 오해 중 가장 큰 것은 고보를 고등학교로 보는 것이다. 이건 완전한 착각인데, 일제시대 고보는 5년제로 소학교 6년을 마치고 진학하는 학교였다. 어차피 우리도 고등학교 중학교 합해서 6년이니일제시대 5년제 고보라고 해도 마찬가지 아니냐 할지 모르지만, 고보는 고등학교가 아니고 일제시대에는 중등과정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학교를 졸업하면 상급학교.. 2025. 9. 14. 공룡은 어떻게 노래했을까? 악기 연주로 되살리는 사람들 by 미리엄 파우지아Miriam Fauzia https://youtu.be/CoeDVeKGyYA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티라노사우루스T. rex의 포효는 선사 시대의 사운드트랙이 되었다. 실제로 고생물학자들조차 공룡의 울음소리가 어떤 것이었는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수많은 추측이 있다.이 미스터리는 수십 년간의 연구에 영감을 불어넣었고,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부교수 코트니 브라운Courtney Brown은 예상치 못한 매체인 음악medium: music을 통해 답을 찾고자 했다. 브라운은 10년 넘게 약 7천만 년 전 지구를 누빈 오리주둥이 공룡duck-billed dinosaurs인 하드로사우루스h.. 2025. 9. 14. 스톤헨지 이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물 오스트리아서 출현 오스트리아 남동부에서 고고학 연구팀이 유럽의 기념비적 건축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수천 년이나 앞당기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넓은 원형 경기장에 서서, 태고의 하늘 아래 흙벽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이제 스톤헨지 첫 번째 돌들이 영국 시골을 가로질러 옮겨질 때, 이 기념물은 이미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고, 이집트 파라오들이 피라미드를 처음 꿈꾼 때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상상해 보자.오스트리아 남동부 구릉 지대에서 고고학자들은 바로 그러한 장소를 발견했다.6,500여 년 전 신비로운 모임을 열린 세 개 거대한 원형 울타리로 이루어진 이곳은 인류 최초의 기념비적 건축 실험 중 하나다.부르겐란트Burgenland 주 헝가리 국경 근처 레히니츠Rechnitz에서 발굴 조사 결과 6,500년 이상 된.. 2025. 9. 14. 독수리 머리 신과 청동기 시대 연회 유물 발굴 터키 콘야의 카라회위크Karahöyük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을 통해 중부 아나톨리아 지역 청동기 시대 삶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정의하는 세 가지 주목할 만한 발견이 이루어졌다.3,500년 된 식탁 세트dining set, 수수께끼 같은 독수리 머리 인간 인장eagle-headed human seal, 그리고 2,000년 된 뼈로 만든 펜은 이 고대 정착지의 풍부한 역사에서 각기 다른 시기를 보여준다.이스탄불 대학교 곤자 다르데니즈 아리칸Gonca Dardeniz Arıkan 부교수가 발굴한 이 유물들은 현재 터키 콘야 주에 위치한 이 지역에서 번영한 고대 문명의 일상생활, 종교 관습, 그리고 행정 시스템에 대한 전례 없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콘야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7km 떨어진 메람Meram 지구에 .. 2025. 9. 14. 이스라엘 공습에 앞서 가자지구 고고학 유물 대피 가자Gaza 지구 5개 주요 고고학 유적 출토 고고학 유물들이 예루살렘 프랑스 성서 고고학 학교French Biblical and Archaeological School of Jerusalem에서 반출되었다. 학교장은 이를 "관련자 모두에게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진행된 고위험 작전, 그야말로 막판 구출 작전"이라고 표현했다. 가디언지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수요일 군사 공격 위협에 앞서 가자시티 주택가 건물 1층에 있는 학교 창고에서 대피 명령을 내렸다. 이 창고에는 가자지구 5개 주요 고고학 유적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개중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서기 4세기 수도원도 포함되어 있다. 이 수도원 모자이크는 손상 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예루살렘 프랑스 성서 고고학 학교(EBAF.. 2025. 9. 14. 카노푸스 칙령 사본 완전본 나일 삼각주서 발굴 이집트 고고학팀이 획기적인 발견을 통해 기원전 2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카노푸스 칙령 Canopus Decree의 온전한 사본을 발굴했다.이 비석은 나일 삼각주Nile Delta 동부 샤르키아 주Sharqia Governorate 엘 후세이니야El-Husseiniya 시에 있는 텔 엘 파라인Tell El-Fara’in 유적에서 발견되었다.이곳은 오랫동안 풍부한 유산으로 유명했다.이번 발견은 150여 년 만에 이 칙령집의 완전한 사본이 발견된 첫 사례다. 카노푸스 칙령은 원래 프톨레마이오스 3세 에우에르게테스 왕Ptolemy III Euergetes이 현대 알렉산드리아 동쪽에 위치한 고대 도시 카노푸스Canopus에서 열린 대제사장 회의gathering of high pries.. 2025. 9. 14. 1938년까지도 신분이 불안정했던 고보 재학생 1923년에 제2차 조선교육령이 발표된 후 신교육령에 따라 조선의 고등보통학교 졸업생은상급학교 진학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혼란이 야기되었다. 사실 조선의 고등보통학교란일본의 고등소학교에 해당하는 학교 였는데이는 대학진학을 할 수 있는 학교가 아니었다. 이 시기 일본의 교육제도를 보면 아래 표와 같다. 위 표를 보면 고등소학교가 바로 우리의 고등보통학교에 해당하는 것인데, 수업 연한으로 보면 우리는 5년으로 되어 있어 일본의 고등여학교와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고등소학교가 됐건, 아니면 고등여학교가 되었건 일본의 경우 이쪽 길을 타게 되면 대학으로는 가지 못한다. 대학을 가려면 무조건 중학교를 나와야 하는데, 이 시기 조선인들은 중학교 진학자가 거의 없었고 대개 일본인들이 중학교, 조선인들은 고등보통학.. 2025. 9. 13. 1920년대의 치약 조선의 신문 광고에서 자주 등장하는 치약 광고는 "쿠라부 치마"다. 치마란 치약을 당시 일본에서 부르던 이름인데,일본에서 치약은 메이지 이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이 시기가 되면 치약가루(치마분), 액상치약, 크림형 치약 (연치마) 등으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대체로 지금의 치약과 비슷한 것은 크림형 치약인 연치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국내에 통용되던 치약은 모두 수입품으로 국산은 없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도 쿠라부 치약은 당시 꽤 유명했는지인터넷에는 1920년대의 이 치약에 대한 리뷰가 꽤 보인다. *** [편집자주] *** 이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칫솔과 치약, 나아가 치과학 도입에 앞선 시기 저 양치질 문제와 치과 치료 문제는 생존과 직결하는 문제 아니었겠는가?오죽 저 치통이 문제였으면.. 2025. 9. 13. 삼각형 구도를 구사했다는 후쿠사이, 여차하면 인상파 역삼각형?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9월 16일부터 2주간 소개되는 작품 중 하나인이 '갑주 석반택甲州石班澤'야마나시 현을 흐르는 후지강은 일본 3대 급류 중 하나이며, 이 작품은 후지강에 접한 가지카자와鰍沢 부근을 그린 것이다.강을 향해 뻣은 바위, 투망을 건져 올리는 어부, 그리고 투망 줄이 삼각형 구도를 만들어 멀리 솟아 있는 후지산과 같은 형상을 보여준다. 자세히 보면 후쿠사이는 이 형상를 만들기 위해 어부 뒷쪽에 아이를 일부러 그려 넣었고, 아이가 당기는 그물 역시 후지산과 같은 모습을 만들기 위해 정확히 구도를 맞추고 있다. 어부 자세도 두 다리를 모아 엉덩이를 쭉빼고 숙여 그물을 힘껏 당기기 직전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후지산 정상 구도에 맞추었음을 알 수 있다.빠른 물살을 표현한.. 2025. 9. 13. 희귀한 아바르 시대 사브르 헝가리서 발굴 스티븐 킹 박물관Stephen King Museum 고고학자들이 헝가리 국립박물관 우주 묘지 프로그램(Cemitteries from Space program)을 통해 확인한 묘지 발굴 과정에서 아바르Avar 시대 사브르sabre 칼 한 자루를 발굴했다.이 프로그램은 위성 사진과 항공 사진을 활용하여 헝가리 전역 미지의 매장지를 찾아내는 고고학 연구 사업이다. 이 연구는 위성 사진에서 토양이 더 많은 수분을 유지하는 무덤 때문에 교란되어 작물이나 풀이 더 밝고 빽빽하게 자라는 작물 흔적을 식별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무덤은 일반 토양에 손을 댄 상태이므로, 그렇지 않은 주변 땅에 견주어 당연히 식생대가 다르다.] 고고학자 프리제스 슈츠시Frigyes Szücsi는 이러한 사진 중 하나에서 최대 500구 매장.. 2025. 9. 13. 1920년대의 영화관 1920년대에는 영화관 광고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위 광고는 1923년 10월자 신문에 실린 조선극장과 단성사의 광고로활동사진을 상영한다는 광고다. 활동사진 내역을 보면, 이때는 아직 조선인의 손으로 영화가 제작되기 전이라 (나운규의 아리랑은 1926년)대부분이 미국 영화였다. 예를 들어 위에 단성사에서 상영한다는 "독선풍"은 무슨 무협지 같지만 사실 서부극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관이라 해도 쑈를 겸한 극장이 있어 위 광고 오른편 조선극장에는활동사진 상영과 함께 권번 기생들이 나와 노래도 부른 모양이다. 연예인의 쑈와 영화를 함께 상영했으니 꽤 재미있었을 것 같다. 참고로 이 당시 영화표 값은 얼마나 했을까? 조선의 당시 표값은 알 수가 없지만 미국은 1922-1923년 당시 영화표 값이 7센트 정.. 2025. 9. 13. 1920년대의 이병도 이병도 선생은 일전에 한 번 살펴 본 바 있으나 그 내용을 전제하고 좀 더 보강하여 자세히 적어본다. 선생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어려서 한학을 수학하고 서울로 올라와 중동학교(中東學校)를 졸업했다. 1912년 보성전문학교 법률학과에 입학해 3년 과정을 마쳤으며, 이어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진학, 고등예과(高等豫科)를 거쳐 1919년 문학부 사학급사회학과(史學及社會學科)를 졸업했다.요약하면: 한성보광보통학교-중동학교-보전 법률학과 (1915)-와세다대 고등예과-동 문학부 사학 및 사회학과 졸 (1919)이다. 중동학교는 고보 (중학) 졸업이니 보전 입학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이어 와세다대 고등예과를 들어갔다고 한다. 선생은 보전 입학으로 고등학교 졸업과 같은 학력을 얻었기 때문에, 예과를 들어갈 .. 2025. 9. 13. 가뭄에 바닥 드러난 이라크 저수지서 2,000년 된 무덤 수십 곳 발견 CBS 뉴스에 따르면, 이라크 북부 모술 댐Mosul Dam 저수지에서 가뭄으로 이라크 최대 저수지 수위가 낮아지면서 40기 고대 무덤이 발굴되었다. 고고학자들은 2023년에 수위가 낮아진 시기에 이 지역을 조사했지만, 일부 무덤만 확인했다. 이번에 확인된 40개 무덤은 2,300년 이상 된 헬레니즘 또는 헬레니즘-셀레우코스 시대Hellenistic-Seleucid period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지역에서 발견된 수천 년 전 유적도 5년 연속 가뭄으로 최근 몇 년 동안 모습을 드러냈다.두호크Duhok 고고학부장이자 유적 고고학 작업 책임자인 베카스 브레프카니Bekas Brefkany는 "가뭄은 농업과 전기 등 여러 분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 고고학자들에게는… 발굴 작업을 할 수 있는 .. 2025. 9. 13. 일제시대 나오는 조선인 업적은 모두 총독부 공인가 일제시대에 대한 우리의 역사학적 클리셰가 수탈이다 보니 일제시대 조선인이 만들어낸 업적에 대해서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시대에 조선인들은 모두 수탈에 신음하고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일까. 그런데 그럴 필요 없다. 일제시대에는 당연히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 그것도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주 조직적으로 있었다. 단순히 감정상의 차별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인들도 그냥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차별에 대한 저항을 생각하자면 대개는 독립운동이나 동맹휴학등만을 생각하는데, 차별을 뚫고 놀라운 업적을 만든 사람도 많다. 우리는 흔히 이런 사례로 손기정만 생각하는데 각 분야에서 다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일제시대에도 세계에 대한 소식은 충분치 않지만 조선인들에게 계.. 2025. 9. 13. 두계 이병도의 등장: 1923년 1923년에는 동아일보에 두계 이병도 선생의 "조선사개강"이 연재된다. 이것이 아마도 두계가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사론을 발표한 첫 번째가 아닌가 하는데 (아닐 수도 있다)1923년 동아일보에서는 무려 1면 다단기사로 두계의 사론을 싣기 시작,총 60여 회를 연재했다. 두계가 1896년 생이니 이때 나이 서른도 안 되었던 셈이다. 1920년대 문단과 학계의 전면에서 활약한 이들은 대부분 그 정도 나이였다고 본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이광수도 1892년 생으로 두계보다 4살이 많다. 따지고 보면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사람들인데, 그 앞에 이런 분야에서 신풍조를 받아 일할 이가 워낙 없다 보니 대략 1890년 생들이 1920년대에는 벌써 전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025. 9. 13. 이전 1 ··· 51 52 53 54 55 56 57 ··· 105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