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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자와쇼텐, 조선학총서를 내다(2) 그 유명한 세키노 타다시의 , 아유카이 후사노신의 시리즈가 1930년대 경성 장곡천정(하세가와쵸, 지금의 서울 소공동) 74번지에 있던 근택서점, 곧 치카자와쇼텐에서 나왔다. 그 광고지를 보면 이 책들은 그냥 나온 것도 아니고 7원, 1원 80전~6원 50전(우송료 별도)이란 거액을 붙인 호화판으로 나왔다. 일제 때는 금본위제도라 해서 화폐가치가 금을 기준으로 매겨졌다. 거칠게 말하면 이 시절 돈은 은행에서 금과 바꿀 수 있는 증서였다고나 할까. 그 법정가치는 금 1돈에 5원이었다. 지금 금값으로 치면 1원이 대강 10만원 정도인 셈. 세키노의 는 70만원+a짜리였다.하지만 그때, 1920~30년대 기준에서 7원의 실질가치는 도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1924년 발표된 현진건의 을 보면 김첨지가 '운수 .. 2025. 7. 9.
치카자와쇼텐, 조선학총서를 내다(1) 해방의 기쁨이 불안과 초조함으로 바뀌던 1946년 5월,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터졌다. 이른바 '조선정판사 위폐제조사건'. 조선공산당에서 당 예산을 조달하고 38선 이남의 경제를 교란할 목적으로 1,200만원어치 위조지폐를 만들었다는 미군정 측의 공식 발표가 있었지만, 공산당 측은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 말고는 어떤 증거도 없는 날조극이라고 맞섰다.훗날의 연구에 따르면 진실은 후자에 가까웠지만, 어쨌건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군정은 공산당 계열 인사를 철저히 탄압하기 시작했다. 조선 땅에 불어닥친 냉전의 시작이었다.그런데 그 사건의 발단이 된 '조선정판사'가 어떤 곳인지 찾아보면 꽤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만나게 된다. 지금의 서울 중구 소공동 74번지(사라진 지번인데, 지금의 웨스틴조선호텔 남.. 2025. 7. 8.
폴란드 그단스크 중심부에서 희귀 중세 기사 묘비 Archeoscan 고고학자 팀이 폴란드 그단스크Gdańsk 역사 지구 발굴 과정에서 기사가 새겨진 독특한 중세 묘비tombstone를 발굴했다.이 묘비는 초포바Czopowa, 수키엔니차Sukiennicza, 그로츠카Grodzka 거리 사이에 위치한 그단스크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 유적인 슈루드미에시치에Śródmieście I 지구에서 발굴되었다. 이 유적은 1140년 무렵에 지은 목조 교회와 십자군 전쟁 당시 설립된 독일 종교 및 군사 기사단인 튜턴 기사단이 1335년에서 1341년 사이에 건설한 벽돌 성으로 오랫동안 관심을 받았다.이 성은 1454년 그단스크 주민들이 파괴했다. 2023년에 시작된 고고학 발굴은 지금까지 250구 이상의 매장지, 6개 묘비, 그리고 12세기 목조 교회 기초가 발견되었다.. 2025. 7. 8.
요니, 똥통으로 둔갑한 힌두교 성물聖物 인도 카르나타카Karnataka 숲 깊숙한 곳에 숨은 고대 요니 스톤yoni stone이다.호이살라Hoysala 시대(11세기에서 13세기 무렵) 유산으로, 시바교Shaivism 신성한 유물이다.한때 거대한 사원 단지 일부였던 이 스톤은 이제 이끼로 뒤덮인 폐허와 짙게 드리운 푸른 나무들 사이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정교한 대칭으로 조각된 이 스톤은 샤크티 여신을 상징하는 요니 형상을 그대로 간직하며, 한때 시바의 링감을 담았던 중앙 공간을 감싸고 있다.한때 제의가 흘러내렸던 자리에는 빗물이 고여 신성과 쇠퇴, 기능과 경외심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대뜸 똥통이라 의심하지만, 간단히 여성 성기를 상징화한 힌두교 유산이다. 저런 석조물이 화장실로 둔갑한 대표 케이스가 불국사 그것들이다. .. 2025. 7. 8.
루도비시 갈리아인 Ludovisi Gaul, 켈틱계의 계백이 "루도비시 갈리아인Ludovisi Gaul"으로도 알려진 이 조각은 대략 서기 2세기 제작품이라 본다. 기원전 230~220년 무렵 제작한 그리스 청동 조작 원본을 토대로 삼아 로마시대에 대리석으로 복제한 것이라 한다. 흔히 말하기를 이 조각 원작 청동 제품은 아나톨리아 반도 동쪽 끝 에게해랑 접한 곳에 터잡은 헬레니즘 왕국 페르가몬 Pergamon 왕국의 승전 기념비 일부라 하거니와이르기를 이 왕국 아탈루스Attalus 1세 [재위 241 BC to 197 BC]가 기원전 240년 켈트족 갈라티아인Galatians과의 전투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궁정 조각가 에피고노스Epigonus한테 의뢰해 제작한 것이라 하거니와그 근거가 무엇인지 나는 늘 궁금하다. 훗날 짬이 나면 이런 것들을 찾아 보려 한.. 2025. 7. 8.
오세베르그 수레, 상여로 쓴 바이킹 리무진 오세베르그 마차 Oseberg Wagon - 완벽하게 보존된 바이킹 시대 유일 유산시대 : 서기 9세기 위치 : 노르웨이 오슬로 피오르드Oslo Fjord 인근 오세베르그 무덤 Oseberg burial mound문화: 바이킹 시대1904년 노르웨이 베스트폴드Vestfold에 있는 화려하게 장식된 오세베르그 배무덤에서 발굴된 이 오세베리 마차는 현존하는 바이킹 시대 마차 중 유일하게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 배무덤은 여러 번 소개했다. 제작 시점이 9세기 초로 추정되는 이 마차는 두 명 고위층 여성과 함께 묻혔으며, 바이킹 시대 고고학적 유물 중 가장 장엄한 유물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무를 정교하게 조각하고 네 개 견고한 바퀴 위에 올린 오세베르그 마차는 기능성을 갖춘 차량일 뿐만 아니라 .. 2025. 7. 8.
라피스 라줄리, 권력을 매료한 푸른 황금 6,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프가니스탄 산들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 중 하나인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 곧 청금석이라 번역하기도 하는 광석이 숨어 있었다.바다흐샨Badakhshan 험준한 사르에상 광산들 Sar-e Sang mines에서 이 매혹적인 푸른 돌blue stone이 탄생했다.단순한 보석을 넘어 권력, 영성, 그리고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었다.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라피스 라줄리는 왕족, 사제, 그리고 신성함을 상징하는 보석으로 여겨졌다.투탕카멘 장례 가면을 장식했고, 그 오랜 뒤 그것을 분말화한 안료는 르네상스 걸작의 찬란한 군청색을 만들어냈다.여러 항로를 거쳐 거래된 라피스 라줄리는 '푸른 황금blue gold'으로 알려졌으며,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제.. 2025. 7. 8.
모아이 석상의 고장 라파누이 섬은 고립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고고학자들은 라파누이Rapa Nui(이스터 섬Easter Island)를 폴리네시아 문명의 최전선, 즉 서기 1200년경 최초 정착 이후 완전히 고립된 외딴 전초기지로 묘사했다.이러한 주장은 태평양 고고학계를 지배하며, 이 섬의 유명한 모아이 석상 moai statues과 의례 단지를 더 넓은 폴리네시아 세계와 단절된 사회의 산물로 묘사했다. 그러나 웁살라 대학교에서 Antiquity에 발표한 획기적인 새로운 연구는 이러한 오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라파누이는 단순히 폴리네시아 문화를 수용한 곳이 아니라, 의례 사상을 태평양 전역으로 전파하여 동폴리네시아 전역의 성지 발전에 영향을 미친 적극적인 혁신가였음을 밝혀냈다.서쪽으로의 물결: 이스터 섬의 신성한 건축물 수출곧 권위 있는 학술지인 앤티.. 2025. 7. 8.
인도 라키가리 유적 조사의 한 단면 홍종하 선생이 올린 과거 사진이라, 보니 2015년 포스팅이다. 저 무렵 홍 선생이 포함된 신동훈 교수팀이 인도 라키가리 유적 조사에 투입되어 현지조사를 했다. 이 조사 관련해서는 신동훈 선생이 여러 차례 걸쳐 소개했다. 그 조사보고서 제1권이 영어판으로 출간됐고 지금은 그 후속 보고서 작업 중인 것으로 안다. 이 조사가 한국고고학에서는 자연과학, 고인류학의 첫 해외 진출로 알거니와 그런 점에서 대서특필해야 할 사건이다. 2025. 7. 8.
중세 성채에서 똥싸는 방법과 장소 당시 프리비privy 또는 가르데로브garderobe라 일컫던 중세 화장실은 원시적인 형태였지만, 성 안에서는 다른 곳보다 조금 더 편안하고 훨씬 더 많은 디자인적 노력을 기울였다.실용성, 프라이버시, 그리고 효율적인 폐기물 처리가 모두 고려되었으며, 오늘날에도 폐허가 된 중세 성에서 가장 눈에 띄고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외벽에서 튀어나온 변소다.가르데로브garderobe라는 용어는 나중에 프랑스어로 옷장을 의미하게 되었는데, 원래 의미는 성 화장실에서 필요 이상으로 크지 않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변소는 일반적으로 성벽에 내장되어 코벨(corbel, 성벽 일부) 위로 돌출되어 있었고, 오물은 성 해자로 흘러내렸다.때로는 오물이 강으로 바로 흘러가기도 했고, 어떤 성에서는 안뜰이나 외벽으.. 2025. 7. 8.
구석기 소뼈를 발굴하는 사람 ⁠소 화석을 본 적 있는가?이 사진은 리키 재단 Leakey Foundation 수혜자인 데바라 아닐Devara Anil이 인도 안드라프라데시 주 모트라불라파두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 보스(Bos) 속의 특정되지 않은 종 화석 골격을 발굴하는 모습이다.보스 속에는 현대의 가축과 야생 소뿐만 아니라 오록스aurochs처럼 현재는 멸종된 종도 포함한다. 데바라Devara는 인도 간디나가르 인도 공과대학교 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Gandhinagar(IIT) 연구 조교수다.그의 연구는 인류가 어떻게 전 세계로 퍼져 나갔는지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이와 같은 소과 화석bovid fossils은 고대 생태계와 우리 조상이 환경과 어떻게 상호 작용했는지에 대한 더욱 완전한 그림.. 2025. 7. 8.
여전히 오리무중한 미노스 원반 이 고대 문자는 한 세기 넘게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현재 파이스토스 원반Phaistos disk으로 알려진 이 원반은 현대에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1908년 7월 3일, 이탈리아 고고학자 페데리코 할베르Federico Halbherr와 그의 제자 루이지 페르니에Luigi Pernier, 그리고 그의 연구팀이 크레타 섬 남부 파이스토스Phaistos에 있는 미노스 궁전Minoan palace 유적을 발굴하던 중, 유적 가운데 지하 퇴적층을 발견했다.페르니에르는 퇴적층 안에서 새까맣게 탄 뼈와 재, 그리고 그 가운데 반쯤 묻힌 금빛 갈색 점토 원반을 발견했다.페르니에가 원반을 꺼내 손바닥에 쥐어보니, 원반의 양면에는 나선형으로 눌려 있는 일련의 작은 그림들이 덮여 있었다.100년이 넘은 오늘날.. 2025. 7. 8.
위대한 18-19 세기 필자가 생각건데 17세기까지 강고하게 이어온 노비 사역의 문제는 우리 역사에서 특정시대에 갑자기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우리 역사에서 일부 지배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농민은이러한 노비에 방불한 신분 억압의 상태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18-19세기의 노비해방과 신분 상승운동이 위대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이다. 이 시기에 비로소 수천 년을 이어온 신분제 질서가 동요하게 되고 그 틈을 타고 불과 백년 전만 해도 노비가 절대다수였던 향촌에 너도나도 양반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불과 백년만에! 놀랍지 않은가? 실제로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20세기 우리가 목격한 한국사회의 변화보다더 격렬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2025. 7. 8.
기후변화가 녹인 노르웨이 빙하, 그것이 노출한 고고학적 삶 스미스소니언 매거진 Smithsonian Magazine November 27, 2020 보도라, 노르웨이 빙하가 녹으면서 석기시대 이래 중세시대 각종 유물을 수거하는 사태가 생겼다는 소식이니, 기후변화에 따른 이른바 빙하고고학 시대 개막을 알리는 징후 중 하나라 하겠다.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에 따르면, 노르웨이 빙하가 녹으면서 수십 점에 이르는 화살과 기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개중 일부는 석기 시대 유물이라고 크리스 바라니크Chris Baraniuk가 보도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오슬로 대학교, 베르겐 대학교 연구진은 화살촉이 부착된 화살대 68점을 발견했다.화살촉은 뼈, 슬레이트slate, 철, 홍합 껍질mussel shell과 같은 다양한 재료로 만들었다.어떤 경우에는 화살.. 2025. 7. 7.
삼정의 문란? 혁명의 시작! 우리는 19세기 민란의 시대 개막을 이야기할 때 삼정의 문란이라는 이야기를 그 원인으로 드는데 생각해 보자. 삼정이 문란해지지 않으면 구체제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이야긴데 그건 뭐 그대로 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삼정의 문란이 반드시 나쁜 쪽으로 작용한 것만은 아니다. 군역의 기초가 되는 호적이 개판이 되니 동네마다 남정네는 죄다 유학을 칭하고 양반 행세를 했지 만약 이전처럼 빡세게 호적 관리를 했어보자. 신분제 동요는 꿈도 못꾸고우리나라는 1910년 나라가 망할 때그때까지도 노비사역이 동네마다 있었을 수도 있다. 삼정의 문란 결과물 중 가장 큰 것이바로 동네마다 양반이 넘치게 되었다는 것인데 삼정의 문란이 한국사에 있어 반드시 나쁜 쪽으로만 작용했겠는가. 그것이 아닌 다음에야 삼정의 문란이란 애초에 .. 2025. 7. 7.
여전히 오리무중인 고대 이집트 꼬깔콘 머리 장식 이 머리 장식 용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긴 하나 "관능미, 성욕, 그리고 그와 관련된 개념"과 연관한다 보는 견해가 많은 듯하다. 사진은 약 3,300년 전 유산으로 알려져 있다. 저런 꼬깔콘 머리 장식head cones은 대략 기원전 1550년에서 기원전 30년 사이, 고대 이집트 많은 그림과 조각에 등장한다. 머리 위에 작은 원뿔 모양 장식을 쓴 남녀가 묘사되는 일이 많다.사람들이 이 모자를 쓰고 행한 활동은 매우 다양했는데 그림에서는 장례 연회, 사냥, 음악 연주, 심지어 출산 장면까지 등장한다. 최근까지 저런 회화 조각에서만 등장할 뿐 실물이 발견된 적은 없었다.그러다가 2019년, 한때 이집트 수도였던 아마르나 고고학 유적에 있는 묘지에서 두 구 무덤에서 머리 부분에 원뿔 모양 장식이 있는 유골이.. 2025. 7. 7.
뼈단지 맞는가? 토지주택박물관 '이달의 소장품2025년 7월인화문 골호印花文骨壺(시대 : 통일신라, 크기: 높이 380 동체너비 360mm)"홈 속에 잠든 항아리 하나, 그 안엔 한 생의 끝자락그리고 또 다른 시작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이달의 소장품은 화장 후 유골을 담아 매장한 뼈단지 '골호'입니다.삼국시대에는 매장이 주류였지만 통일신라시대 불교가 확산되며 화장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덧없고 정신은 윤회하며 죽음은 끝이 아닌 다시 태어남의 시작이라는 불교적 사상이 장례 방식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인화문 골호의 세부 문양 ]현존하는 통일신라시대 골호 중에서도 매우 화려하고 큰 기형에 속하며새, 꽃, 구름을 중심으로 연속 문양들을 인화기법 (일정한 문양도장으로 눌러찍어 문양을 새기는 방법)으로 조화.. 2025. 7. 7.
양반들 문집의 말을 믿지 말라 양반들 문집에 묘사된 조선시대, 특히 조선후기의 정경과 실제 모습은 엄청난 괴리가 있다. 따라서 양반들이 쓴 글, 폼나는 글, 이걸 믿으면 역사학이고 나발이고 없다. 조선시대 기록에서 항상 의심해야 하는 것은 양반들 글이다. 양반들 글을 보면, 조선은 잘못한 게 없다. 그런데 그런 글들이 묘사한 조선의 모습과는 상반되게17세기부터 나라가 망하는 20세기 초엽까지 조선의 향촌은 들끓고 있었다. 한 세대가 넘어가면 노비에서 신분이 유학으로 바뀌고 이들이 19세기가 되면 궐기하여 관가를 때려부쉈다. 일본이 아니라도 서구 제국주의가 아니라도 당장 오늘 내일 하는 상태였다는 뜻이다. 양반들 문집의 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승정원일기도 믿지 말라. 이런 기록들 보다는 차라리 그 당시 남아 있는 호적 한 장이 더 .. 2025. 7. 7.
수확하고 먹고 싸고, 아스카박물관서 고대 일본 음식문화 기획전 오사카부大阪府 하남정河南町 동산東山 아스카 박물관飛鳥博物館에서 여름 기획전 '식과 고고학'[古代人、食べる―食と考古学] 기획전이 열리는 중이다.오사카, 나라, 효고 지역 유적 혹은 무덤에서 출토한 고고 자료 등 약 250점을 통해 야요이-나라 시대 사람들 음식 문화를 추적한다. 27일까지. 전시는, 식료를 획득하는 ▷とる ▷다양한 조리에 의한 「먹다」 ▷배설하는 「だす」」 ▷제사나 의례에서의 「ささげる」의 4장으로 구성한다. 나라현 다와라모토초田原本町 가라코·키 유적唐古・鍵遺跡 출토 사슴이나 멧돼지, 토끼 등의 동물뼈, 탄화한 쌀, 우리ウリ류 종자 등은 야요이시대 식생활을 생각하는데 귀중한 자료다. 효고현 가코가와시加古川市 행자총 고분行者塚古墳과 가와이초河合町 나가레산 고분ナガレ山古墳에서는 으름덩굴アケビ.. 2025. 7. 7.
19세기의 창씨개명 재미있는 것은 19세기 초반부터 우리나라 호적을 보면 노비가 눈에 띄게 줄어 들어 한 눈에도 노비 사역이 생산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는 것과 함께가구의 크기가 줄어들고 집집마다 죄다 성을 가지게 되고 이들이 "유학"을 칭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소위 19세기 들어 양반 숫자가 급증한다는 설의 근거가 이것이다. "유학"을 칭한다고 죄다 양반이냐 하는 반론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그 전 시대에 "유학"은 아무나 칭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의미있는 변화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말이다. 19세기에는 이렇게 독립가구의 숫자가 늘면서 "창씨개명"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확연히 느낀다. 유학을 칭하자니 그럴 듯한 성이 있어야 하고 양반 성인데 개똥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2025. 7. 7.
파라오의 저주 곰팡이균, 암 예방 약으로 재탄생?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 암 세포와 싸우는 무기로 변신 1922년 11월,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는 봉인된 투탕카멘 무덤 작은 구멍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았다.그에게 뭔가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네, 놀라운 것들이 보입니다."라고 답했다.그러나 몇 달 후, 카터의 재정 후원자였던 카나번 경Lord Carnarvon이 의문의 병으로 사망했다.그 후 몇 년 동안 발굴팀 다른 몇몇 구성원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고, 이는 "파라오의 저주pharaoh’s curse"에 대한 전설을 낳았으며, 이 전설은 한 세기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수십 년 동안 이러한 의문의 죽음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것으로 여겨졌다.그러나 현대 과학은 더 유력한 원인을 밝혀냈다. 바.. 2025.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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