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1052 준왕(準王) 기자조선 말왕. 기자의 41세손으로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마한을 세웠다. 제왕운기 권下 후조선기(後朝鮮紀) : (기자의) 41대 손자 되는 준왕님은/ 남에게 나라 잃고 백성마져 빼앗겼도다/ 928년이라는 오랜 세월 다스리니/ 기자의 남긴 유풍 찬연히 전했도다/ 나라 잃은 준왕 금마군(金馬郡)에 옮겨 앉아/도읍 이뤄 또 다시 임금이 되었도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1 마한(馬韓) : 위지(魏志)에 이렇게 말했다. “위만(魏滿)이 조선(朝鮮)을 공격하자 조선왕(朝鮮王) 준(準)은 궁인(宮人)과 좌우 사람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서쪽 한(漢)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마한(馬韓)이라고 했다.” 또 견훤(甄萱)이 고려(高麗) 태조(太祖)에게 올린 글에 “옛적에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뒤를 이어 혁거세(赫居.. 2018. 9. 28. 위만(衛滿) 위만조선 시조. 연나라 도망민으로 조선에 들어와 준왕을 내쫓고 왕이 되었다. 사기 열전 한서 열전 제왕운기 권下 후조선기(後朝鮮紀) : 한나라 장수 위만은 연나라에서 태어나서/고제(高帝) 12년 병오년에/준을 내쫒고 그 나라 앗았도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1 위만조선(衛滿朝鮮) : 연왕(燕王) 노관(盧관)이 한(漢)을 배반하고 흉노(匈奴)에게 들어가니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은 망명(亡命)해서 무리 1,000여 명을 모아 요동(遼東)의 요새지를 넘어 도망하여 패수(浿水)를 건넜다. 여기에서 진(秦)나라의 옛 빈 터전인 상하(上下)의 변방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차츰 진번(眞蕃)·조선(朝鮮)의 오랑캐들과 또 옛날에 연(燕)과 제(齊)에서 망명(亡命)해 온 자들을 자기에게 소속시켜 왕이 되어 왕검(王.. 2018. 9. 28. 견훤(甄萱) 후백제 건국시조(?~936). 재위 900~935년. 삼국사기 권 제11(신라본기 제11) 진성왕본기 : 6년(892) 완산(完山)의 도적 견훤(甄萱)이 그 주에 근거하여 스스로 후백제(後百濟)라 칭하였는데, 무주(武州) 동남쪽의 군과 현이 항복하여 소속되었다. 삼국사기 권 제12(신라본기 제12) 효공왕본기 : 5년(901) ...가을 8월에 후백제 왕 견훤(甄萱)이 대야성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 군사를 금성(錦城)의 남쪽으로 옮겨 연변(沿邊)의 마을을 약탈하고 돌아갔다. 11년(907) 봄과 여름에 비가 오지 않았다. 일선군(一善郡) 이남의 10여 성이 모두 견훤에게 빼앗겼다. 14년(910) 견훤이 몸소 보병과 기병 3천 명을 이끌고 나주성(羅州城)을 에워싸고 열흘이 지나도록 풀지 않았다. 궁.. 2018. 9. 28. 아자개(阿慈介) 후백제 건국자인 견훤의 아버지로 신라인. 가은현 출신으로 농사를 짓다가 뒤에 장군이 되었다. 삼국사기 권제12(신라본기 제12) 경명왕 : 2년(918) ...가을 7월에 상주(尙州)의 도적 우두머리 아자개(阿玆盖)가 사자를 보내 태조에게 항복하였다. 삼국사기 권제50 (열전 제10) 견훤(甄萱) 열전 : 견훤은 상주(尙州) 가은현(加恩縣) 사람이다. 본래의 성은 이(李)씨였으나 후에 견(甄)으로 씨(氏)를 삼았다. 아버지 아자개(阿慈介)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다가 후에 가문을 일으키어 장군이 되었다. 이보다 앞서 견훤이 태어나 어린 아기였을 때 아버지가 들에서 일하면 어머니가 식사를 날라다 주었는데, 아이를 나무 수풀 밑에 놓아두면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 시골에서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기이하게 .. 2018. 9. 28. 량길(良吉)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양길(良吉) ☞ 량길(良吉) 2018. 9. 28. 수미강(須彌强)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왕신(王信)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진호(眞虎)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김효렴(金孝廉) 삼국사기 열전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 제2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 : 천성(天成) 2년 정해(丁亥. 927) 9월에 견훤은 근품성(近品成. 지금의 산양현)을 쳐 빼앗아 불을 질렀다. 이에 신라 왕이 태조에게 구원을 청하자 태조는 장차 군사를 내려는데 견훤은 고울부(高鬱府. 지금의 울주)를 쳐서 취하고 족시림(族始林. 혹은 계림鷄林 서쪽 들이라고 했다)으로 진군해 졸지에 신라 서울로 들어갔다. 이때 신라왕은 부인과 함께 포석정(鮑石亭)에 나가 놀고 있었으므로 더욱 쉽게 패했다. 견훤은 왕의 부인을 억지로 끌어다가 욕보이고 왕의 족제(族弟) 김부(金傅)로 왕위를 잇게 한 뒤에 왕의 아우 효렴(孝廉)과 재상 영경(英景)을 사로잡고, 나라의 귀한 보물과 무기와 자제(子弟)들, 그리고 여러 가지 공인(工.. 2018. 9. 28. 최견(崔堅)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윤빈(尹=)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추조(鄒造)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수오(隨=)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형적(邢積)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유문(有文)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관흔(官昕)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왕충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양지(楊志)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명식(明式)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홍술(洪術) 신라말 진보장군으로 있다가 경명왕 6년(922) 고려 왕건한테 귀부해, 심복으로 활동하다가 천성 2년(927), 후백제와의 전투에서 의성부 태수로 있으면서 전사했다. 삼국사기 권제12(신라본기 제12) 경명왕 : 6년(922) 봄 정월에 하지성(下枝城) 장군 원봉(元逢)과 명주(溟州) 장군 순식(順式)이 태조에게 항복하였다. 태조가 그들의 귀순을 생각하여 원봉의 본래 성(城)을 순주(順州)로 삼고, 순식(順式)에게는 성(姓)을 내려 왕씨(王氏)라 하였다. 이 달에 진보(眞寶) 장군 홍술(洪述)이 태조에게 항복하였다.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 제2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 : 천성(天成) 2년 정해(丁亥; 927) 9월에 견훤은 근품성(近品成․지금의 산양현山陽縣)을 쳐 빼앗아 불을 질렀다. 이에 신라.. 2018. 9. 28. 이전 1 ··· 911 912 913 914 915 916 917 ··· 100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