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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공구리로 쌓은 계란 모양 극장 하도 질리고 물리게 본 데기는 하지만 막상 아는 게 별로 없어 틈날 때마다 나 자신을 단련 훈련케 하고자 정리한다. 플라비아 원형 극장 the Flavian Amphitheatre 이라고도 하는 콜로세움 The Colosseum 은 이탈리아 로마의 중심부에 타원형 원형 극장 oval amphitheatre 이다. 트래버틴 석회암 travertine limestone, 응회암 tuff, 벽돌 콘크리트 brick-faced concrete 로 지은 이곳은 5만∼8만 명의 관객을 수용하며 당대 최대 원형극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로마 포럼 Roman Forum 바로 동쪽에 위치한 이 극장 건설은 A. D. 72년 베스파시아누스 Vespasian 황제 치하에서 시작되어 그의 후계자인 티투스 Titus 치.. 2024. 5. 29.
손만 남았음에도 거대한 카르낙신전 조각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 거대 손 조각. 고대 이집트 가장 유명한 파라오 중 한 명인 아멘호테프 3세 Amenhotep III의 카르투슈 cartouche [피휘의 일종으로 신성성을 강조하고자 신이나 파라오 이름에 두른 테두리]가 있다.카르나크 신전 단지 Karnak Temple Complex에서 출토한 이 조각은 당연히 이곳을 장식한 조각의 일부다. 2024. 5. 29.
페트라 극장 Petra Theater, 암반을 깎아 만든 극장 이 극장은 특이하게도 암반을 깎아 만들었다.대략 2천살, 서기 1세기 나바테아 Nabataean 왕조 시대 유산으로 요르단에 있는 페트라 극장 Petra Theater 이다.수용 인원은 8천500명. 나바테아 시대 도읍 페트라 중심부에서 약 6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관중석은 암반을 깎아 만들었으나 무대와 외벽은 로마 시대에 따로 만들었다.   저 나바테아 왕국은 분포 범위가 대략 아래와 같다는데   기원전 3세기 중반 이래 AD 106년 로마제국에 합병되어 아라비아 페트라이아로 이름이 바뀔 때까지 지금의 시나이 반도와 아라비아 반도 서북부에서 독립 정치체로 군림하며 특히 무역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알려졌다.아라비아 사막을 돌아다니며 무리를 이끌고 목초지와 물을 찾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이동한 유.. 2024. 5. 29.
녹색 복면가왕, 2천 년 전 멕시코 피라미드의 진단구?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Teotihuacan 태양 피라미드 Pyramid of the Sun 기단에서 발견한 2천 년 전 녹색 뱀 돌 가면 green serpentine stone mask이 분이 언제 구체로 발굴되어 공개되었는지 구글링하니 아래 2020년 1월 30일자 기사가 걸린다.  https://mymodernmet.com/serpentine-mask-pyramid-sun-teotihuacan/ 2,000-Year-Old Realistic Green Mask Found Nestled Inside an Ancient PyramidA green mask found at Teotihuacan's Pyramid of the Sun may help unlock the mysteries of who constr.. 2024. 5. 28.
7천년 전 신석기시대 높이 10미터 화강암 선돌 프랑스 브르타뉴 Brittany 북부에 있는 샹 돌랑 선돌 Champ Dolent menhir 은 신석기 시대가 시작될 때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게는 약 120톤으로 4km 떨어진 화강암 채석장에서 파냈다. 높이 9.30m이며 최대 둘레는 8.70m(c. 26피트)다. 브르타뉴에서 가장 큰 입석 선돌이라고. 정확한 연대는 아니지만 최근의 학자들은 브르타뉴의 선돌들이 기원전 5000-4000년경에 세워졌다고 제안한다. 순간 광개토왕비인 줄 알았다. 2024. 5. 28.
터키 소금호수 (2014. 11. 24) 터키를 대표하는 명물 중 하나인 소금호수라 이 호수는 아래 글을 참조하라. Lake Tuz or Tuz Gölü or Salt Lake in Central Turkey, 터키 소금호수 Lake Tuz or Tuz Gölü or Salt Lake in Central Turkey, 터키 소금호수Lake Tuz or Tuz Gölü or Salt Lake, Central Anatolia Region, Turkey Called ἡ Τάττα  in ancient Greek, Tatta Lacus in Latin, Tuz Gölü is the second largest lake in Turkey with its 1,665..historylibrary.net 2024. 5. 28.
도로 세우는 피사의 탑, 그 역설 12세기에 들어설 때만 해도 멀쩡한 피사의 탑은 이내 연약 지반 때문에(실은 부실공사에 가깝다) 이내 기울기 시작했다.완공은 14세기에 들어와서야 보았지만, 기울어짐을 해결하지는 못했다.1990년 기준 기울기는 5.5도를 기록했다.할 수 없이 붕괴 위험이 있다 해서 손을 대기 시작했으니 1993~2001년 구조 안정화 작업 결과 기울기는 3.97도로 감소했다.이 문제를 어찌할 것인가?저 탑이 유명한 까닭은 삐딱이인 까닭이다. 그 삐딱이를 바로잡아야 할까? 아니면 어느 정도로 유지해야 할까?생각보다 이 문제는 심각하다. 문화재 보존철학이 개입해야 한다. 이런 논의를 하고 그 철학을 마련하는 일이 문화재학이다. 문화재학은 고고학도 아니며, 고건축하도 아니며, 그런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학문이다. 2024. 5. 28.
소금인간 Salt man, 소금광산의 불운 아래 김단장께서 소개하신 것과 같은 소금광산은 여러 군데서 발견되었는데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유명하다. 소금광산들은 유래가 오래되어 상고시대부터 이미 노동력이 투입되어 암염을 채취하였는데, 불행히도 파고들어간 갱도가 무너져 압사한 분들이 그대로 부패하지 않고 미라화해서후세의 고고학적 발굴로 수습되는 경우가 있었다. 총 몇 구가 발견되었는지 정확한 숫자는 필자도 기억하기 어려운데 흔히 이러한 분들을 Salt man이라 부른다. 소금이라는 것이 보존제로서의 효과도 있어 썩지 않고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라 하겠다. 사진으로 소개하는 분은 서기 200년 경 소금광산의 갱도가 무너져 그대로 썩지 않고 미라가 된 분으로 불행한 일이라 하겠다. *** related article ***   ①소금광산서 찾은 1700년.. 2024. 5. 28.
폼페이 유적의 해시계 A Roman Sun dial - Temple of Apollo in Pompeii 곧 폼페이 유적 아폴론 신전 기둥에 설치한 해시계 라는데 나는 놓친 광경이다. 다시 가? 저거 보러? 2024. 5. 28.
[문화재를 배회하는 유령] (3) 말벌 사건과 무덤 붕괴 몇 년 전이다. 그날 나는 마침 현장에는 없었지만, 서악마을에 유숙한 내 지인 몇 명이서 하룻밤을 유숙한 다음 새벽 동이 틀 무렵 몰래 서악고분군 담장을 넘고는 들어가 선도산 기슭을 따라 흘러내린 능선을 따라 나란히 자리잡은 저 거대한 서악고분군 무덤들 중에서도 맨 뒤쪽, 그러니깐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하는 그 무덤을 몰래 오르다가 기어이 사고가 났으니 아마 높이 20미터 가까울 저 거대한 봉분을 몰래 오르던 그 지인 중 한 분이 그만 말집을 건드려 병원에 후송하는 사태에 이르고 말았으니, 진짜로 골로 갈뻔 했다. 각 부위에 고르게 총 7방을 당한 그 지인 진짜로 죽다 살아났다.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는 나는 아 조만간 저 무덤이 무너지겠구나 했다. 그 얼마 뒤 실제로 저들 무덤 중.. 2024. 5. 28.
[문화재를 배회하는 유령] (2) 헛다리 짚은 서악고분 붕괴 현장 복구 지금까지 저와 같은 태풍 혹은 집중호우에 따른 문화유산 파괴현장은 중앙부처 기준으로 그 몫은 발굴제도과였으니, 물론이 경우 그 몫이라 함은 발굴을 염두에 둔 수습을 말한다. 구체로 들어가면 해당 문화재 성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버킹검이라 언제나 발굴이 따랐다. 그러면서 이르기를 그 복구를 위해서는 발굴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다.그런가? 왜 저런 현장에 발굴이 모름지기 필요한가? 우리는 이를 단 한 번도 물은 적 없다.실제 그 과정에 어떠했건 그것이 끝난 다음 목표는 오직 하나라 원상태 복구였으며, 실제 모든 현장이 그런 식으로 마무리 되어 오늘에 이른다.간단히 무덤 혹은 산성을 보자. 무슨 이유로 무덤 일부가 붕괴하거나 성벽 일부가 무너졌다. 그에 따른 궁극하는 작업 완료는 본래 상태로의.. 2024. 5. 28.
올멕 Olmec, 큰바위얼굴을 좋아한 메조아메리카 문명 올멕 문명 Olmec civilization 이 오늘날 멕시코에 남긴 거대한 얼굴 기념물 중 하나로 무게만 40톤에 육박한다. 올멕 Olmecs 이란 가장 초기에 알려진 주요 메소아메리카 문명 Mesoamerican civilization 으로 그 번성 시기는 기원전 1200년 이래 약 기원전 400년까지 대략 800년간이며, 주된 지점은 지금의 멕시코 경내 베라크루즈 Veracruz 와 타바스코 Tabasco 주 일대 열대 저지대다. 이 올멕 이전 기원전 2500년 무렵 문명이 있기는 했지만 기원전 1200년 무렵 베라크루즈 남동부 해안 근처 산 로렌초 테노치티틀란 San Lorenzo Tenochtitlán 유적을 중심으로 초기 올멕 문화가 등장한 것으로 간주한다. 흔히 최초의 메소아메리카 문명으로 .. 2024. 5. 28.
현재 집필 중인 단행본 이전에도 소개했지만 현재 집필 중인 영문 단행본-교과서다. 이 책은 자랑하고 싶은 데가 있다. 영문으로 집필해서 미국 시장에서 팔아 볼 계획이지만, 그것보다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책에 거론된 내용은 모두 한국에서 벌어진 연구와 사건들을 예로 들었다는 점에서, 동급 법의인류학 교과서 중에서는 그 안에 거론된 사례들이 비 구미권의 사례만으로 집필된 사실상 최초의 책이라는 점이다. 내년 1월에는 아마존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랑삼아 광고해 본다. 2024. 5. 28.
함안 말이산고분과 비슷하게 만든 진주 원당고분 대따시 뚜껑돌 출현한 진주 원당고분군 연전 이와 같은 소식을 전한 적 있거니와, 오늘은 그 후속이다.   경남 진주시가 매장문화재전문조사기관인 (재)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이곳 일반성면 운천리 일원 ‘진주 원당고분군(M2호분) 시굴 및 발굴조사’를 한 모양이라, 그 중간 조사치가 27일 공개되었다.위선 이 발굴 성과를 살피기에 앞서 저 무덤이 위치하는 데가 일반성면? 면 단위 행정구역 치고는 상당히 이상해 찾아보니 一班城面이라 그 유래를 디지털진주문화대전 기술을 바탕으로 살피니고려 현종 9년(1018)에 진주목 반성현班城縣이라 했다가 고종 1년(1864)에 반성면이 되고, 이어 반성면이 일반성면과 이반성면으로 쪼개지면서 지금의 명칭이 등장했다 한다. 1반, 2반 분반과는 상관없고 종래 이 지역 명칭.. 2024. 5. 28.
가장 오래된 나무계단?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계단(3천400년)으로 알려졌다는데 그런가?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소금 광산 Hallstatt Salt Mine 에서 발견됐다. 2024. 5. 28.
아버지 오야붕 잘 만나야, 바빌로니아의 토지 증여 문서 쿠두루 비석 kudurru stele 바빌로니아 쿠두루 비석 kudurru stele 아버지 니라 나시르 Nirah-nasir 가 결혼하는 딸 두르 샤루키나이아이투 Dur-Sharrukinaia'itu 에게 준 땅을 기록한다. 아마도 어떤 사원에 보관되었을 것이고, 이를 근거로 딸은 그 땅에 대한 독점적 소유권을 확보했을 것이다. 기원전 1100-1083 사문석 Serpentine stone 쿠두루 kudurru 란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라, 기원전 16세기에서 7세기 카시테 Kassite 왕조와 그 후속 왕조 시대에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생산한 토지 증여 관련 문건을 기록한 비석을 말한다. 주로 가신에게 토지를 하사한 기록으로 사용했다. 쿠두루는 보통 신전에 보관하고 토지를 하사받은 사람은 법적 소유권을 확인하는 데 사용할 점토 사본을 .. 2024. 5. 28.
카이사르 시절 로마제국 판도 율리우스 카이사르 Julius Caesar 줄리어스 시저 시절 로마제국 판도가 대체로 이렇다. 그가 오늘날 프랑스 땅 갈리아를 정복했으니 그 업적이 보통내기는 아니었고 이를 발판으로 루비콘 강에서 탱자탱자 주사위 놀이 하며 절대 권력자로 올라섰으니 말이다. 2024. 5. 28.
[문화재를 배회하는 유령] (1) 보존정비와 발굴이라는 먹이사슬 구조 반창고 대일밴드로 충분했을 서악고분, 기어이 파제낀 고고학 앞서 나는 이 일을 거론하며, 이 사안이 문화재현장에서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지를 계속 지적했거니와, 그러면서 벌써 저 사건, 곧, 저 거대한 서악고분군이 집중호우에 내려앉았을 때 잽싸게 고고학이 날라들어 이참에 잘됐다 해서 파제낄 것이라고 예상했거니와, 실제 그리 되고 말았다. 왜? 언제나 우리네 문화재정책 돌아가는 꼴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 도식을 정리하면 이렇다. 집중호우 or 태풍 → 문화재 붕괴 → 피해조사 → 피해복구를 위한 발굴 혹은 해체 → 복구 이 과정이 현행 국가유산청 조직 구조로 보면 문화재붕괴와 피해 조사 시점까지는 대체로 안전방제과 업무라, 이후 과정은 그 현장이 고고현장이면 발굴제도과로 넘어가고, 기타 고건축이거나 자연유산.. 2024. 5. 28.
한국 청동기 시대 패션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 디오라마에 자주 나오는 하반신만 간신히 가린 이 패션은 그야말로 족보도 없는 패션이다. 한국사람들이 이렇게 옷을 입었다는 이야기는 사료도 없고 당시 옷이 필자가 아는 한 실물로 나온 것도 없고 전적으로 상상의 산물인.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선사시대의 토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에 반해 일본의 농사도 짓기 전인 조몽시대의 자기 조상들도 뭔가를 입힌다. 근거? 무슨 근거가 있나. 저쪽도 근거가 뭐가 있겠나.  하지만 우리처럼 조몽시대 사람에게 하반신에 팬티 하나만 걸쳐 놓은 꼴은적어도 필자는 그쪽 박물관 디오라마에서는 한 번도 못 본 것 같다. 연구를 해 보니 우리 조상들은 청동기시대에 팬티만 입고 다녔고, 일본은 농사도 짓기 전인 조몽시대에 이미 번듯하게 옷을 입고 다녔다는.. 2024. 5. 28.
조몽시대 일본 패션 사진은 일본의 역사민속박물관에 전시된 조몽시대 디오라마다. 걸칠 거 다 걸쳤다. 이것이 무려 농사라고는 제대로 짓지도 못하고 도토리 주워 먹던 시대의 일본 풍경이라고 한다. 반면 한국-. 청동기시대에 논과 밭농사가 이미 시작되고 일부에서는 금속기도 썼다는 시절 한국 사람들 꼴이 이렇다. 이것은 우리의 잘못인가 일본의 잘못인가. 우리의 자학적 사관인가 아니면 일본의 국뽕 사관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 previous article ***한국 청동기시대와 야요이 정착촌 디오라마 2024. 5. 28.
한국 청동기시대와 야요이 정착촌 디오라마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논농사 유적들은 일본 후쿠오카 북부 일대 야요이 정착촌의 선구문화로 간주할 만 하다고 듣고 있는데, 이 두 문화에 대한 양국의 묘사는 하늘과 땅 차이다. 아래는 우리나라 한 박물관에 묘사된 청동기 시대 디오라마. 몇 년 전에 찍은 것이라 지금도 그대로인지는 모르겠다. 논에는 벌거숭이들이고 딱 봐도 못사는 티가 줄줄 난다. 이건 논이고 비슷한 시기 밭을 보면.. 뭐 거지떼다. 반면에 일본의 야요이 초기 정착촌 그림을 보면, 심지어 일본은 농사를 제대로 짓지도 않던 조몽시대 디오라마도 이렇게 폼나게 만든다. 딱 봐도 있어 보이지 않는가? 문제는 한국 청동기문화가 야요이문화로 이어져 들어갔으며, 과연 비슷한 시기 한반도는 거지떼, 야요이인은 풍요로운 저런 이미지가 과연 맞겠는가 하는 것이다.. 2024.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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