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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439

청자 왕국 원에서 왜 고려청자를? 1289년(충렬왕 15) 8월, 탐라에 있던 원나라 관리가 잠깐 대도大都(지금의 베이징)에 갔다(출장이었을지 휴가였을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겸사겸사, 원나라 중서성中書省 부탁을 고려 조정에 전해주는데. 무오 탐라안무사耽羅安撫使 홀도탑아忽都塔兒가 원에서 돌아왔는데, 중서성이 첩牒을 보내어 청사靑砂 항아리[甕]와 동이[盆]·병甁을 요구하였다. - 권30, 세가 30, 충렬왕 15년 8월 아마 당시에는 청자를 청사기靑砂器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그때도 용천요龍泉窯 같은 데서 고급 청자를 버글버글하게 구워냈는데(신안해저유물의 그 많은 그릇을 생각하시라!) 왜 고려청자를 따로 또 요구했을까. 고려청자를 원나라 사람들도 높이 평가해서-라고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글쎄 그렇게만 넘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2023. 7. 11.
궁예도성에서 맞닥뜨린 "자네 지금 뭐하는 겐가?" 근대의 이름난 인류학자였던 석남石南 송석하宋錫夏(1904~1948)가 어느 날 철원에 갔다. 지금은 군사분계선 안에 폭 갇혀버린 궁예弓裔의 옛 도읍 풍천원楓川原에 들렀는데 마침 그 토성 동쪽에 '웅장하고도 우아한' 오층석탑 하나가 오롯이 서 있었던 모양이다. 감탄하면서 보다가 하나 흠을 발견한다. 워낙 오래되었으니 잇대었던 돌과 돌 사이 틈이 버쩍 벌어져있던 모양. 석남은 무심코 굴러다니던 기왓장을 들고 그 틈을 찔러본다. 그런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이 누군가가 나타난다(대화는 필자가 현대어로 되도록 풀었으나 일부 원문을 남겼다). "노형老兄은 어디 사시오?" "예, 서울 삽니다." "누구시오?" "송석하올시다." "무엇 하러 댕기시오?" "이 친구가 '刑事 밋친광인가(원문을 그대로 옮김)' .. 2023. 7. 9.
잊혀진 미술 애호가, 오당悟堂 김영세金榮世(4)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조선총독부 경무국 관료 1999년부터 2009년까지,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일제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 4,389명의 친일 행위와 광복 전후의 행적을 수록한" 을 편찬한다. 그 1권, 경찰 항목에 '김영세'가 등장한다. 한자이름, 1908년이란 생년에 출신 학교까지 딱 떨어지니 우리의 그 오당 선생이 아무래도 맞다고 여겨진다. 그러면 그 김영세는 어떤 친일행각을 벌였던가? 여기에 따르면 그는 1933년부터 1943년까지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근무한다. 경찰 촉탁囑託, 속屬이라는 하급직이었던 그의 일은 도서 검열. 어떤 책이든지간에 일제의 시책에 어긋나는 대목에 빨간펜과 가위를 댔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인, 화가 같은 예술인들과 두터운 친교를 맺었던 그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당시 상당수 친일파는 예술을 사랑하고 교양.. 2023. 7. 7.
잊혀진 미술 애호가, 오당悟堂 김영세金榮世(3) 榮을 바꿔치기한 英 평소 존경하고,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근대미술사가 황정수 선생님과 오당 김영세라는 인물을 두고 몇 번 문답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황 선생님 덕택에 오당이 받아 갖고 있던 작품들을 몇 점 더 볼 수 있었는데, 그가 제당霽堂 배렴裵濂(1911~1968) 같은 화가뿐만 아니라 추사 연구로 이름높았던 후지츠카 지카시藤塚鄰(1879~1948)와도 교분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보통 교분이 아니었던 것 같은 게, 후지츠카가 '승설헌주인勝雪軒主人'에게 써준 시가 다름아닌 청나라 화가 나빙羅聘(1733~1799)이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1805)에게 적어준 전별시였다. 국경을 뛰어넘은 우정을 노래한 시를 굳이 적어주었다면, 후지츠카가 김영세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만 하지 않은가. 더불어 김영세의 .. 2023. 7. 7.
잊혀진 미술 애호가, 오당悟堂 김영세金榮世(2) 구보 박태원 피로연 방명록 한 번 궁금해지니 이리저리 수소문하게 되었다. 오당은 누구인가? 그러다 우연히 그 댁에서 나온 고미술품들을 많이 갖고 있다는 수장가를 만나게 되어,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오당은 가회동의 큰 한옥에서 살았던 이로, 금융계에 종사했다고 한다. 근대의 예술가들과 두루 친교가 깊었던 듯 하고 그 스스로도 많은 미술품을 모았는데, 그의 사후 유품들이 이리저리 흩어지게 되었단다. 그 수장가가 무신년(1968) 오당의 회갑을 기념해서 그려준다는 쌍관이 있는 작품 사진을 보여주어, 그의 생년이 1908년임을 알게 된 것이 마지막 수확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에 관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없었다. 단지 그가 소장했던 작품들이 아직도 시장에 가끔 나오며, 상당한 평판을 받는다는 정도를 재확인했을.. 2023. 7. 7.
잊혀진 미술 애호가, 오당悟堂 김영세金榮世(1) 추사박물관이 선사한 승설헌勝雪軒 작년쯤이었나, 다산茶山의 아들 유산酉山 정학연丁學淵(1786-1857)이 어떤 스님에게 보낸 간찰을 모 경매에서 본 적이 있다. 정학연이 그 스님에게 백자 반상기와 술병 따위를 보낸다는 별지가 붙어 있어 퍽 흥미로웠는데, 조그만 소장인所藏印이 찍혀있었다. 읽어보니 "승설헌진장인勝雪軒珍藏印"이다. 승설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좋은 작품을 가지고 있었네ㅡ하고 넘겼는데, 뒤에 생각해 보니 그것이 내가 주인공 김영세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내던 어느 날, 과천 추사박물관에서 하는 전시에 발길이 닿았다. 아는 분이 크게 관여한 전시기도 했고, 과연 어떤 작품들이 나왔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명불허전이었다. 추사는 물론이거니와, 그 제자들, 그리고 그 영향 아래 있던 근현대의 대가들까지 망라되어 .. 2023.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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