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探古의 일필휘지491 도자기를 그려본 김에 모란항아리 다음으로, 어쩌면 어슷비슷하게 좋아하는 도자기는 15~16세기 백자사발이다. 워낙 그 모습이 특징적이라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입구가 헤 바라져있고 아래로 갈수록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모아지는 형태다. 그 모양을 두고 옛날 고미술 상인들은 '데스까보데'라 했다 한다. 일본어로 '철모', 곧 하이바를 닮았단 뜻인데 아닌게 아니라 뒤집어보면 정말 머리에 써도 됨직한 모양이다. 이런 형태의 사발은 그 시절 꽤 유행했던지 크기도 다양하고 인화분청자나 귀얄분청자로도 많이 만들어졌지만, 특히 굽 안에 '천지현황'이 새겨진 설백색 순백자 사발 세트가 유명하다. 이건희 기증전에 그 천지현황 사발 세트 하나가 나온 적이 있는데, 그 맑은 색과 당당한 생김새와 똑 떨어지는 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2023. 10. 29. 청화백자 모란무늬 항아리 도자사 전공자 방병선 선생님께서 도자기 스케치를 책으로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셨는데, 사실 도자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걸 그리는 건 다른 문제라서. 일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 시험삼아 그려보고, 횡설수설이나마 글도 하나 적어본다. 내가 분원자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뜻밖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고려 전공이니 고려자기겠지 또는 요즘 유행인 달항아리겠거니 하다가 의외의 답을 들으니 그런가 싶은데, 그럴 때면 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준다. "19세기에 분원에서 나온 청화백자 모란무늬 항아리, 그 청백색 때깔의 둥근 항아리를 좋아합니다." 꽤 흔한 형태에 문양이다. 가격으로 봐도 그리 비싸지 않다. 입술 아래 살짝 턱이 있는 걸 보면 뚜껑이 있었던듯 한데 남아있는 걸 보진 못했다. 그 시절에 .. 2023. 10. 27.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다 보면 이런 표현이 적지 않다. "임금께서 밝고 어지셨으나, 간악한 신료들과 요망한 계집들이 성총聖聰을 흐리사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다."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한 말이고 실제로 그런 측면도 없지 않았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임금의 역할은 뭐란 말인가. 임금이 지녀야 할 권리와 의무, 그리고 나라를 망친 책임은 저 표현만으로 사라져버리게 된다. . 2016년을 기록하는 역사가가 저런 표현을 쓰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2016. 10. 27) #간신 #군신 #임금과신하 2023. 10. 27. 소치 따라 그려본 추사 김완당 소치가 그린 의 모습을 참조해 그려보았다. 추사가 실제로 대정 바다에 나가 본 적이 있는지는 약간 고민스럽다. 추사 제자 고환당 강위가 증언하기를 "선생은 10년간 울타리 밖을 나가지 못하셨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역으로 추사 문집엔 제주의 풍경을 보고 읊은 시들이 적지 않고, 또 추사가 존경한 동파가 나막신 신고 하이난 섬의 바닷가를 걸어다녔다 하지 않던가. 추사도 정당벌립에 나막신 차림으로 바다를 보았다 해서 안 될 것은 없겠지 싶다. 담계 옹방강 어른은 "옛 경전을 즐긴다" 하였고 운대 완원 어른은 "남이 말한 것을 또 말하기를 즐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두 어른 말씀을 내 평생 다했거늘 어찌하여! 바다와 하늘 사이에 정당벌립 하나 쓰고 문득 원우 연간의 죄인같이 되었는고. - 김정희, 2023. 10. 27. 114년 전 오늘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쏘다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음이로다 ... 쥐도적 이토여 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꼬 *** Editor's Note ***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역에 내리는 이등박문을 쏘았다. 114년전 오늘이다. 이를 우리 세대는 하얼빈 의거라 배웠는데 지금도 그리 부르는지는 모르겠다. 2023. 10. 26. 유배로 점절한 삶, 원교 이광사 흔히 유배지에서 예술을 꽃피운 사람 하면 추사를 들먹이곤 한다. 하지만 그보다 예전에 그보다 더 오래 유배를 살았고 또 유배지에서 자신의 예술을 완성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원교 이광사(1705-1777)다. 붕당정치에 휘말려 함경도 부령으로, 다시 전라도 신지도로 옮겨가며 끝내 거기서 죽어야했던 원교지만, 강화학파의 중진으로 학문이 뛰어난 건 물론이고 특히 꼬장꼬장하면서도 유연함이 있는(모순되지만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다) 글씨로 일세를 풍미했다. 그가 죽자 부령 선비들이 신지도까지 내려와 장사를 도왔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학덕이 높았고 또 호남의 절이란 절에는 거의 다 편액글씨를 써줄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그의 모습은 지금도 초상화로 남아 전해진다. 2023. 10. 25.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8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