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探古의 일필휘지494 석봉 글씨에 우암이 부친 글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제자 나양좌(1638-1710)가 어느 날 석봉 한호(1543-1605)의 글씨를 스승에게 가지고 왔다. 대대로 내려온 것이라면서 몇 자 발문을 적어주십사 하고 내밀었는데, 우암은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준다. 석봉石峯의 글씨는 집집마다 소장되어 있었으나, 이제 와서 시대가 조금 멀어지고 또 여러 차례 병화兵火를 겪고 보니, 점차 처음처럼 흔하지 않다. 이번에 나현도羅顯道가 그의 증왕고曾王考 보덕공輔德公이 간직하였던 것을 내보이면서 말하기를, “이는 나의 선고先考 목사공牧使公이 난리를 만나 피란다니면서도, 보덕공이 보배로 여기었다 하여 늘 등에 짊어지고 다닌 때문에 지금까지 보존되었습니다.” 하였다. 아, 그 보수保守가 여기에 이른 것은 이 어찌 조상을 애경愛敬하는 일단一.. 2021. 5. 15. 100여년 전 판사 백당白堂 윤경규尹庚圭의 글씨 공부하다 보면 가끔 뜻밖의 수확을 거둘 때가 있다. 이 사진 속 글씨 또한 그런 수확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글씨를 쓴 사람은 백당白堂 윤경규尹庚圭(?-?)라는 이다. 낯선 이름인데, 대한제국시대 한성재판소 판사를 지냈다니 상당한 지식인이었다 할 인물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어지간한 기록에서도 싹 사라졌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글씨로는 명필이라고까진 못 하겠으나 꽤나 달필이고 낙관의 각도 깔끔하다. 어쨌거나 그가 오노小野라는 일본인 의사에게 글씨를 한 폭 써 주게 된다. 전지 크기가 족히 될 듯한 종이를 펼쳐놓고, 붓을 가다듬는다. 의사 양반에게는 어떤 글을 써 주어야 할 것인가...쿡 먹을 찍은 붓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무슨 글을 썼는가? 대강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좋은 것은 세상을 고치는 것, 그.. 2021. 5. 14. 참을 수 없는 치통 평소 존경하는 강명관 선생님의 포스팅에 따르면, 옛 어른들은 어지간히 치통을 달고 사셨다. 고려 말 이색(1328-1396)부터 치통을 시의 소재로 다루기 시작했고(물론 그 전부터 있었을 테지만), 조선시대 기록을 봐도 아무개가 치통을 앓았다는 이야기는 적지 않다. 영조는 20대부터 치통을 앓다가 70대쯤 되니 윗니가 하나만 남았다던가. 어쩌면 영조의 성격에 치통이 한몫 단단히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내용 중 재밌는 게 하나 있었다. 치통이 하도 심해 결근한 유건기兪健基라는 양반이 대장장이를 시켜서 이를 뽑으려다가, 그나마도 실패했단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 판서까지 지낸 윤유 이런 분들도 대장장이의 집게로 이를 뽑았는데, 썩 솜씨가 좋지 못했던지 뺨에 구멍이 나질 않나.. 2021. 5. 2. 주몽의 이유있는 부실공사 술꾼 이규보 아저씨도 아직 배가 덜 나온 열혈청년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그가 지은 작품이 그 유명한 이다. 여기에는 고려 초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의 동명왕본기가 더러 인용되어있다. 그 중 한 대목을 보자. -송양이 도읍을 세운 선후(先後)를 따져 부용국(附庸國)을 삼고자 하니, 왕이 궁실을 지을 때 썩은 나무로 기둥을 세워 천 년 묵은 것같이 했다. 송양이 와서 보고 마침내 감히 도읍을 세운 선후를 따지지 못하였다. 모세에게 쫓겨날 가나안인같은 우리의 불쌍한 군주 송양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건 그렇다치고, 주몽이 천 년 묵은 건물처럼 보이려고 썩은 나무로 집을 지었다는 표현을 보자. 썩은 나무로 집을 짓는다는 게 과연 가능한가? 기원전 37년은 중국 한대이니 기와는 있던 시절이지만, 고구려.. 2021. 5. 1. 서애가 얻은 송나라 동전 서애 류성룡(1542-1607)의 문집 을 보면, 벼슬을 다 관두고 하회로 내려와 을 짓던 1604년 어느 비 오는 날에 그가 겪은 일이 하나 기록되어 있다. 어떤 내용인지 한 번 살펴보자. 갑진년甲辰年 6월 12일, 비가 와서 강물이 불어나 양쪽 언덕과 엇비슷할 정도였다. 7월 6일에도 천둥이 치면서 비가 왔는데, 큰아이가 강 언덕 위에서 옛날 돈[古錢] 하나를 주워왔다. 글자가 반은 마멸되었는데, 자세히 보니 숭녕통보崇寧通寶란 넉 자가 있었다. 그것은 곧 송宋 나라 휘종徽宗 때의 물건이니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의 것으로, 당시에 있었던 일만 가지 일들은 구름처럼 사라지고 연기처럼 없어져 버렸는데 뜻밖에 이 물건이 아직 남아있을 줄이야. 사람을 시켜서 닦고 손질하게 한 뒤에 보니, 마치 주나라 석.. 2021. 4. 20. 동숙독서기東塾讀書記를 만나다 1. 고증학考證學이 발달한 청나라 때는 '차기箚記'라고 해서,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적고 정리하는 저술이 유행했다. 조익趙翼(1727-1814)의 같은 게 대표적인데, 요즘도 공부하는 분들이 시도해봄직 하지 않나 한다. 어쩌면 그때그때 포스팅을 올리는 페북이나 블로그, 인스타그램이 그런 역할을 이미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 청나라 말엽을 살았던 진례陳澧(1810-1882)란 인물이 저술한 란 차기를 우연히 만났다. 진례란 인물이 누구이고 이 책이 어떤 책인지는 아래 링크로 갈음하고자 하는데, 청대의 숱한 차기 중에서도 상당한 위상을 가지는 모양이다. https://m.blog.naver.com/jeta99/30180513165 근래 구입한 책들: 독서기, 학술필기, 역사필기 관련 네.. 2021. 4. 20. 이전 1 ··· 67 68 69 70 71 72 73 ··· 8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