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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529

궁기시정宮崎市定 《과거科擧》 이보다 더 '과거', 그것도 청대淸代의 과거시험이란 주제를 잘 드러내는 디자인이 있을지 모르겠다. - 미야자키 이치사다, (1946)의 표지 ***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아래를 참조하라 宮崎市定 - Wikipedia ja.wikipedia.org 2021. 11. 11.
세계 최대 사막 사하라 세계의 최대 사막은 아프리카에 사하라 사막이니 2021. 11. 11.
1909년의 변호사 개업광고 관재 이도영이 만평을 그린 걸로 유명한 의 1909년 6월 무렵 광고란이다. 이때 서울 장안에 '변호사'가 얼마나 있었을지 모르겠는데, 민형사소송의 일체사무를 신속처리한다는 둥, 민사대리와 형사변호와 기타법률사무를 간절하고도 돈독하게 신속히 맡아 처리한다는 둥 문구를 보면 수요에 비해 그리 넉넉한 벌이는 아니었던 듯도 하고... 맨 왼쪽의 '변호사 허헌許憲'은 우리가 아는 그 허헌(1885-1951)이 맞겠다. 이때 그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근데 7월쯤 그린 관재의 만평에서 '법률사무소'를 그린 걸 보면 벌이는 제법 쏠쏠했겠지 싶다. 2021. 11. 11.
박물관은 무엇이야, 다 날아갔는데 "박물관은 무엇이야, 다 날아갔는데" 1909년 에 실린 관재 이도영(1884-1933)의 만평 한 자락이다. 이 땅에 '박물관'이 생길 때 대한제국 백성들의 여론을 이보다 더 잘 그릴 수 있을까. 박물관이 우리 옛 물건을 모은다면서? 그로부터 100여 년 뒤, 가볍게 날아갔던 저것들을 돌아오게 하려고 후손들은 애를 쓰고 있다. *** 台植補 *** 이 기사가 난 시점이 1909년이니 제실박물관 출범 즈음이리라. 서유견문 보니 박물관 소개 항목이 있더라. 2021. 11. 7.
이토가 죽으니 통감 집에 불이 나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20일 후, 서울 남산자락 통감관저 녹천정綠泉亭 남쪽 마루 아래에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정원사가 보고 급히 소리치며 사람을 불러모아 끄기는 했지만, 건물은 어지간히 타버렸던 모양이다. 당시 통감 소네 아라스케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구경꾼(신문에는 "위문하고자"라 했지만..)이 관저 앞으로 몰려들었다. 당연히 왜 불이 났는지 온갖 소문이 돌았으리라. 시국이 시국이니만치 독립을 꿈꾸는 이의 통감 암살 시도였다는 이야기도 있었을 법하지만 신문에선 찾을 수 없다. 다음날 발표된 실화 원인은 벽난로 굴뚝. 거기에서 일어난 불똥인지 뭔지가 옮겨붙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랬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데 하필이면 타버린 건물이 "이토 공의 좋은 기념으로 영구히 보존할 건조물"이.. 2021. 10. 31.
술을 마셨으면 돈을 내야지 1900년대 이나 를 읽다 보면 요즘 신문보다도 더 재미있는 얘기가 적지 않다. 물론 서글픈 내용, 무거운 이야기도 많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면 있을 법한 사건들이 신문지 안 곳곳에 있었다. 때로는 이런 것도 기사가 다 되나 싶은 것도 있고... 나라가 망하기 아홉 달 전, 과자 파는 일본인이 대낮부터 한성부 남부 죽동(지금의 을지로 언저리)에 있는 어느 술집에서 거하게 한 잔 하였던 모양이다. 오후 4시쯤 아주 곤드레만드레한 상태로 돌아가려는데 "손님? 술값을 내셔야죠!" "뭐? 술값?" 한국인 술집 주인에게 돌아온 건 주먹이었다. 구리개 경찰서에서 그 취객을 잡아다 가두었다고 하는데, 뒷일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훈방조치되지 않았을까 싶다. 술집 주인은 술값과 치료비를 받아내긴 했을까. 어찌되.. 2021.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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