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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285

사당 예절 요즘 사당 모시는 집은 거의 보기 어렵지만, 유적으로 남은 집이 더러 있다. 사당에는 동서로 계단이 있어 동쪽 계단은 조계(阼階)라고 한다. 여기는 주인(主人: 제사를 모시는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 사당을 방문하거든 이런 예절은 알고 계단을 오르시길 바란다. 말은 못하고 속 앓이 하는 분들도 계신다. 2020. 11. 6.
재평가해야 하는 16세기 호남 시단 16세기 호남에서 활약한 문인들 가운데 소쇄원이나 식영정을 중심으로 활약한 이들이 끼친 영향을 대단히 높게 평가해왔다. 그러나 그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다른 일군이 있었으니 눌재 박상, 고봉 기대승으로 이어지는 시단이 있었다. 그 맥은 기대승의 손서인 현주 조찬한에게 이어졌는데, 그는 장성 옛 진원현 토천에 백설헌을 짓고 살며 그의 형 조위한 그리고 친구인 석주 권필과 토천에서 그 유명한 〈토천연구〉를 남기기도 하였다. 석주 권필 역시 토천과 가까운 장성 수류촌에 10여 년을 살며 현주와 더불어 시사를 열었다. 그 문인 가운데 한 사람이 요월정의 주인 추담 김우급이었다. 그는 토천 시사에서 석주 권필이 시어를 짜내느라 골몰하던 모습을 회상하는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조찬한의 아들이며 택당 이식의 사위인 삼.. 2020. 11. 6.
작자 미상 구운몽 그림 6점 미국 버클리대학 동아시아도서관이 소장한 필사본 《구운몽(九雲夢)》 상중하 3책은 광산김씨 소장본이었던 듯하며 구운몽 가운데 가장 정확한 판본으로 평가됩니다. 이 책의 표지 안쪽에는 그림이 모두 6점이 그려져 있습니다. 솜씨가 나쁘지 않으니 회화에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 하십시오. 2020. 11. 5.
폐허가 된 경복궁의 돌거북 이재 황윤석의《이재난고(頥齋亂藁)》 18卷 영조 47년(1771, 신묘) 4월 11일 辛巳 기사에는 중건 이전 경복궁을 알려주는 기록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 가운데 광화문 안쪽 금천교, 지금은 영제교 옆 물가에 있던 돌거북 2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날 남은 하나가 그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남별궁 담장 안으로 옮겼다는 것은 오늘날 조선호텔 인근에 있는지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복궁 광화문 안에 금천석교가 있는데 다리 옆 물가에 큰 돌거북 2좌가 있었다. 조각이 대단히 정교하여 지금은 그렇게 잘 만들 사람이 드물다. 임진왜란에 그중 하나를 남별궁 뒤 담장 안에 옮겼는데 민간에서 왕왕 복을 빌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완연한 모습으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하늘에서 큰비가 내리.. 2020. 11. 4.
점칠 때 쓴 일본 동전 관영통보寬永通寶 전에 고고학자들께서 일본 관영통보寬永通寶가 더러 발굴되는데 그 용도가 무엇인지 물으시곤 하였다. 그 용도를 알 기록이 있어 소개하니 알아서들 전파하여 쓰시기를.....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1729~ 1791)의 《이재난고頤齋亂藁》 29卷 정조 3년(1779, 기해) 6월 5일 기사에 이날 윤군(윤광세尹光世)이 점치는 동전으로 쓸 3매의 일본 관영통보라는 것을 주었다.[是日 尹君以占錢三枚 日本之寬永通寶者見贈]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관영통보에 다른 용도가 없지는 않았겠으나, 일단 점치는 데 사용했다는 사실 하나는 알 수 있습니다. 2020. 11. 4.
산업産業, 그 본래의 의미 [산업(産業)] 같은 어휘라도 고전(古典)과 오늘날의 뜻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산업(産業)이다. 이를 《표준대국어사전》에서는 『산업 일반』 인간의 생활을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사업. 농업ㆍ목축업ㆍ임업ㆍ광업ㆍ공업을 비롯한 유형물(有形物)의 생산 이외에 상업ㆍ금융업ㆍ운수업ㆍ서비스업 따위와 같이 생산에 직접 결부되지 않으나 국민 경제에 불가결한 사업도 포함하며, 좁은 뜻으로는 공업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라고 설명한다. 단국대동양학연구원 《한국한자어사전》에서는 ①생산(生産)을 하는 사업(事業). 곧 자연물(自然物)에 사람의 힘을 가(加)하여 그 이용(利用) 가치(價値)를 창조(創造)하고 또 이것을 증대(增大)하기 위(爲)하여 그 형태(形態)를 변경(變更)하거.. 2020.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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