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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84

발굴현장은 일찍 가라, 2005년 비봉리의 경우 나는 주최 측이 공개를 예고한 시간보다 발굴현장에는 일찍 가는 버릇이 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먼저 간다. 그래야 느긋하게 이것저것 제대로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현장을 빙 둘러 보고, 출토 유물도 대강 훑어본다. 그러고서 느긋하게 조사원들이나 조사 책임자들한테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곤 한다. 또 이렇게 일찍 가야 이런저런 다른 정보까지 얻을 일이 많다. 발굴현장도 엄연히 인적 교유의 장이라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으려 했다. 현장에서는 취재 수첩을 꺼내지 않는다. 인터뷰 대상자가 아무리 관록이 있다 해도, 취재 수첩 꺼내들고 메모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긴장하거나 소위 ‘접대용 멘트’를 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내 말이 잘못 전달되지 않을까, 이 말을 하면 여파는 없을까 하는 각종 경.. 2021. 1. 20.
2015년 충주 호암동 통나무 목관묘 현장에서 충주 발굴현장…통나무 목관 쓴 초기철기시대 지역수장 2015-01-19 14:43 사방 조망하는 곳에 묘자리·청동기 다량 부장 (충주=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전날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은 발굴현장은 온통 진흙이었다. 겨울바람이 거센 가운데 취재진과 취재차량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충주시가 전국체전 개최를 위해 종합스포츠타운 건설을 추진 중인 호암동 628-5 일원 발굴현장은 인근에 달천이라는 강이 흐르면서 형성한 충적지대가 드넓게 펼쳐졌다. 이런 곳에서 한국고고학계에서는 오랜만에 낭보를 들려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중원문화재연구원(원장 강경숙)이 지난해부터 이곳을 발굴조사한 결과 기원전 3세기 이래 기원전후에 이르는 이른바 초기철기시대 무덤 3곳 중 1호 고분이라고 .. 2021. 1. 19.
2003년 공주 수촌리고분 발굴현장 2003년 11월 28일 공주 수촌리 고분 발굴현장이다. 그해 고고학계는 수촌리가 독패獨覇한 한 해였다. 그 며칠 뒤 수촌리 발굴소식은 마침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 보도로 나는 그해 연말 우리 공장에서 가장 큰 상도 받기도 했으니, 이래저래 겁대가리 없이 오기가 공활한 가을하늘 죽창으로 찌르듯한 시절이다. 당시만 해도 디지털카메라 초창기라, 촬영한 것들을 살피니 모조리 장당 크기가 450K다. 이걸 아무리 이리저리 늘캐도 1메가 남짓하니, 2000년대 어간에 촬영한 사진들이 다른 이도 거의 이런 사태가 빚어지지 않을까 한다.(2018. 1. 9) *** 그새 사정이 또 변해서 AI를 이용한 사진 증폭술이 나오는 바람에 코딱지 만한 사진도 코끼리만큼 키우는 시대가 도래했다.디지털카메라 초창기 시절 촬.. 2021. 1. 13.
유광교일有光敎一..아리미쓰 교이치...이 놈은 도둑놈이다 이를 보면, 아리미쓰가 60여 년이 지나 이 글을 쓰면서 동원한 야쓰이 자료가 그 자신이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본 야쓰이 원자료를 ‘투사(透寫)한’ 것이라고 한다. 투사란 무엇인가? 습자지 같은 것을 놓고 원본을 베끼는 일이다. 간단히 말하면, 모사했다는 뜻이다. 과연 그가 동원한 자료는 원자료를 모사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소장 중인 원자료라고 본다. 더욱 간단히 말한다. 아리미쓰는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있던 야쓰이 자료 원본을 들고 갔다. 저 글에서 ‘투사’했다고 쓴 까닭은 그런 원본 자료를 빼돌린 데 대한 불법 행위를 감추려는 저의에서 동원한 교묘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방증자료가 또 있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라 아리미쓰는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 저와 같은 미공.. 2021. 1. 13.
무령왕릉 발굴 30주년 특별전에 즈음해 모은 사진들 무령왕릉은 발견 발굴이 1971년이니 그 30주년은 2001년이었다. 당시 국립공주박물관이 발굴단인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관련 특별전과 학술대회를 준비했다. 학술대회는 공주문예회관에서 열렸다. 이 행사를 미친 듯이 준비한 이가 당시 공주박물관 학예사 정상기였다. 이 특별전은 나로서도 잊지못할 인연이 있다. 정상기만큼이나 열성적으로 이때를 준비한 것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그 턱별전을 준비하는 정상기의 고민 중 가장 큰 것이 발굴당시를 증언하는 생생한 사진이었다. 당시 발굴은 무덤내부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발굴단에서 촬영한 사진은 단 한장도 건지지 못했다. 당시 내부 촬영을 맡은 이가 문화재연구실 학예사보 지건길. 한데 이 양반이 아사히펜탁스 사진기 조작을 잘못하는 바람에 신나게 찍은 사진은 단 한장도 건지.. 2021. 1. 10.
광화문 현판 관련 문화재위 심의(2012) 광화문 현판 글씨, 문화재위원회 합동분과 심의 선정 문화재위원회 합동분과(위원장 노중국/사적, 건축, 동산, 근대문화재분과)는 27일 오후 2시부터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서울 종로 효자로)에서 광화문 현판 글씨 선정을 위한 회의를 열어 광화문 현판을 경복궁 고종 중건 당시의 임태영(任泰瑛) 한자 현판인 ‘光化門’으로 하기로 심의하였다. (2012. 12. 28) *** 이게 당시 문화재청 발표 전문이다. 문화재 바깥에서 볼 적에야 여러 생각이 있을 순 있지만 문화재 복원원칙에서 한글 간판은 지원자격이 없다. 따라서 이 건은 문화재위 심의 안건에 부칠 필요조차 없는 사안이었다. 실제 회의 결과서도 얼이 빠진 위원 딱 한 명만 한글로 바꿔야 한다는 데 표를 던졌을 뿐이다. 덧붙이건대 광화문 현판을 한자를 달자.. 2020.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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