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42 Back to 2009 동대문 스타디움 자료를 찾아봐야겠으나 아마 2009년이 아닌가 한다. 당시 동대문운동장을 뜯고서 지금의 DDP를 만들기 위한 기초공사를 앞두고 있었거니와, 그 일환으로 중원문화재연구소인가가 동대문운동장을 발굴을 했더랬다. 그 자리서 이간수문二間水門이 나왔다. (2018. 8. 26) *** 이제는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은 그 자체 근대 문화재이기도 했지만 변신을 꾀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 과정에서 발굴이 있었다. 그에 얽힌 무수한 일화가 있으니 개중 하나가 저 이간수문 발굴이다. 동대문운동장은 한양도성 구간을 파괴하고 건설됐으니 이간수문이 그 운동장 아래 저리도 잘 남았을 줄 몰랐다. 2020. 8. 26. 적폐 혹은 구악의 귀환, 돌아온 해직기자 근자 어떤 기관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다 해서 두어군데 전화를 돌려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종합하니 팩트 자체는 틀림이 없는 대신, 그 원인에 대한 설명은 양측이 전연 달랐다. 두어 시간 지나자 천지사방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너 그거 기사 쓸 거냐? 쓰마 안댄데이. 조금만 참아주레이. 좀 바주레이.. 난 궁금해서 알아봤을 뿐인데 비상이 걸린 모양이다. 암튼 내가 복귀했다는 사실이 이 사건으로 그 업계는 온통 알려진 모양이다. 난 지금 근무 부서가 전국부다. 기사를 직접 쓰는 일은 거의 없고 관련 취재 지원과 취재 지시, 그리고 일부 데스킹 기능이 있다. 예서 관건은 두 가지. 첫째 전국부..안 걸치는 데 없다. 문화재 관련 일도 맘만 먹으면 한다. 둘째 취재 지시..내가 기사 직접 안 써도 쓰게 할 .. 2020. 8. 25. 한국문화를 비하했다는 기자 페이스북 내 계정에서 과거의 오늘을 들추니 꼭 5년 전 오늘, 그러니깐 2015년 8월 22일자에 이 포스팅이 뜬다. 이 포스팅이 사연이 좀 있다. 공식으로는 저해 11월 나는 연합뉴스에서 해고되었는데 사측이 내세운 해고사유는 크게 다섯 가지 범주로 구획되었으니 개중 하나가 품위유지 위반이었다. 그 품위유지 위반 사례를 수집하고자 사측은 감사팀을 동원해 내 페북 계정을 쏵 뒤졌는데 이걸 주도한 놈은 아직 연합뉴스에 근무 중이다. 징계워가 열리고 그 자리에 내가 나갔는데 지껄이는 말을 들으니 품위유지 위반 사례로 저 포스팅을 들면서 하는 말이 "한국문화를 사무라이에 비유하며 비하했다" 는 것이었다. 어쭈? 요놈들 봐라? 같잖았다. 뭐 해고하려 작정한 마당에 뭔 구실인들 못대겠는가? 웃어주고 말았다. 2020. 8. 22. "너 문화재 많이 챙겼겠다" 오랜 기간 문화재 기자 생활한 나를 두고 주변에서 더러 하는 말 중 하나가 "너 문화재 많겠다"거나 "너 문화재 많이 챙겼겠다"라는 게 있다. 하긴 내가 이 업계에 몸담은지 17년이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생각한다. 이는 기자 업계를 향한 고질적 시선도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라고 특정하진 않겠지만 문화 여러 분야 중에 물건 혹은 작품을 받기도 하는 곳도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나는 직접 겪은 일은 아니므로 생략한다. 아래 첨부하는 토기 쪼가리 두 점이 내가 문화재 기자 생활하며 챙긴 거의 유일한 진짜 문화재다. 대략 십년전쯤 경주 월성을 거닐다가 국립경주박물관과 인접한 남천 쪽 가까운 지점 성 내부에서 내가 수습해 가져왔다. 이거 말고 또 하나 챙긴 게 있.. 2020. 8. 18. 사역원에 미쳐날 뛴 시절 나는 잡학이라, 한 곳에 진득이 안주하는 일이 없다. 다만 이런 잡학은 양계초가 그랬듯이 참말로 게슬스러워 정신없이 한쪽에 팔려 그걸 뜯어먹다가 금방 질려버리고서는 다른 데로 금방 옮겨가니, 흡사 메뚜기떼랑 진배없다. 천상 그래서 참말로 내가 섭렵하지 아니한 데가 없다시피 하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문턱에서만 어슬렁거리다가 이내 다른 문지방으로 옮기고 말았으니 그래서 이 짓을 해 먹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한때는 사역원司譯院에 정신 팔린 적 있는데, 이 인연으로 내가 장가갈 적에 주례로 모신 분이 이쪽 분야에서 혁혁한 전과를 낸 정광 선생이시다. 서울대 나와서 덕성여대서 교편을 잡다가 이내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로 옮겨서는 오래 봉직하다 정년퇴직하셨는데 팔순이 넘은 지금도 정신없이 논문을 써대신.. 2020. 7. 28. 2015 세계유산위에서 자판기 드들기는 택배 아저씨 백제역사유적지구와 일본 산업유산을 등재한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 대회장 독일 본 월드컨퍼런스센터에서 내 모습을 뒷줄에 앉은 성균관대 이상해 명예교수님이 찍어 전해주셨다. 회의장에서도 페북이냐 할지 모르나, 저 페북 비밀 그룹에는 이번 대회랑 관련한 각종 자료를 모아놓은 곳이기에 수시로 열어서 참조했다. (2015. 7 16》 *** 지금 보니 천상 택배 아저씨라, 그러고 보니 외쿡 자나리스트들은 네꾸타이 매고 폼이 나더라만 대한민국 언론인은 나 혼차였으므로 일당 백 심정으로 존재감 각인하고자 저리 했노라 5년 지난 지금 변명해둔다. *** related article *** 내셔널리즘과 일본 메이지산업유산 나는 늘 주장하기를 민족은 무엇의 도덕판단 기준이 되는 절대선이 아니라고 했다. 민족 혹은 민.. 2020. 7. 16. 이전 1 ··· 44 45 46 47 48 49 50 ··· 5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