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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1911

반구대 암각화 건너편의 (통일)신라시대 건물터는? 근자 울주 반구대 암각화 주변을 발굴조사한 결과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한 여지를 보이는 정자 흔적이 드러났다. 나는 이번 성과를 보면서 나올 만한 흔적, 아니, 언젠가는 드러나야 할 흔적이 나온 것으로 본다. 현장을 본 사람이면 직감하겠지만, 반구대 일원은 대곡천이 산곡간을 흘러내리며 형성한 경관이 절경이어니와, 무엇보다 반구대 암각화가 위치한 곳, 더욱 구체적으로는 그 건너편 어딘가에는 정자가 분명히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흔적이 기어이 이번에 발굴조사를 통해 편린을 보인 것이다. 예서 관건은 정자가 존속한 기간이다. 이와 관련해 조사단인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출토 유물을 근거로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정자 존재가능성을 제시했다.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을 수립하고, 그 일환으로.. 2018. 12. 24.
애물단지 토기를 어찌 전시할 것인가? 그 돌파를 위한 몸부림 주구장창 밝혔듯이 나는 토기土器라는 말 자체를 경멸한다. 한국 고고학이나 한국미술사, 특히 도자사학계에 통용하는 토기는 그 명칭부터가 불합리하기 짝이 없거니와, 첫째, 이 용어가 그네들이 말하는 그릇만을 지칭할 수는 없고, 둘째, 그것이 거의 필연적으로 도기陶器에 대한 대칭으로 쓰는 불합리성 때문이다. 토기란 흙으로 빚어만든 기물 일반이다. 이에서 그 기물을 그릇에만 한정한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器가 그에 국한하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깍지라, 저네들이 토기와 구별하고자 하는 유약 바름 기물 중 그릇류인 도자기 역시 토기 일종임이 분명하거니와, 이런 불합리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기와는? 벽돌을 토기 아니란 말인가? 용어 문제는 일단 이리 정리하고, 관건은 이 토기가 고고학도 미술사학도들한테는.. 2018. 12. 23.
벽면 찬장형 빌트인builtin 토기 전시기법 도입한 국립진주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이 상설전시실 개편 일환으로 근자 새로운 전시기법을 동원해 토기를 전시하기 시작했다. 붙일 말이 마뜩찮아 벽면 찬장형이라 해 둔다. 이런 전시기법을 어디에서 착안한 것인지, 아니면 진주박물관 창안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무수한 토기들을 저리 진열해 놓으니 한결 볼품 있어 좋다. 저 앞쪽 커다란 벽면에 토기들을 밀어놓았다. 앞쪽 작은 스크린이 토기 안내판이다. 안내퍈을 보면 이런 식으로 토기를 설명했다. 섹션을 나누어 시대별 변천을 한눈에 보게 했다. 다른 안내판을 보면 토기 상세 설명이 보인다. 여러 각도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전면을 보면 혹 사진이 아니냐 하겠지만, 실물이다. 나로선 아주 산뜻하다. 토기 전시를 박물관 무척이나 좋아하나 그것을 볼품있게 만드는 일은 어렵기만 한데, 그 편견을 진.. 2018. 12. 23.
익산 쌍릉 대왕릉의 새로운 면모, 묘도(墓道) 백제 무왕 부부능으로 지목되는 익산 쌍릉(雙陵) 중에서도 봉분이 상대적으로 커서 대왕릉(大王陵) 혹은 대왕묘라 일컫는 무덤을 조사 중인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저번에 내부 석실을 개봉한 데 이어 20일에는 진전된 소식을 타전했으니, 요약컨대 길이 21m에 이르는 묘도(墓道)를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연구소가 배포한 소식은 간단하다. 이 묘도는 석실 입구에서 남쪽 방향으로 길이 21m 안팎 규모가 확인됐으며, 너비는 밖으로 나갈수록 점차 넓어지는 형태라고 한다. 묘도는 석실 입구 쪽 너비가 4m 정도지만, 묘도가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너비가 약 6m 안팎이다. 그 바닥 높이는 석실 입구 쪽이 바깥쪽보다 80cm 정도 높았다. 최대 깊이는 3m 정도. 동시대 중국 무덤을 보면, 이런 무덤길이 거의 예외없이 .. 2018. 12. 21.
금성산 무덤떼 작약밭에서 무덤은 언제나 그 자리나 꽃은 왔다가고 갔가오고 하니시간에 맞춤하기 어렵노라내가 너를 기다렸으나너는 다녀간 다음이고 내가 떠났으나 너는 그때 왔더라 Taeshik KimDecember 20, 2017 2018. 12. 20.
하산길 잘못 들어 발견한 아라가야 왕궁터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6월 7일, 아라가야 실체를 드러낼 왕궁 추정지를 찾아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아라가야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나아가 일본서기 등지에 아나가야(阿那加耶), 아야가야(阿耶伽耶), 안라(安羅)와 같은 여러 표기로 등장하는 가야 제국(諸國) 중 하나로 그 중심지가 지금의 경남 함안이고, 삼국 중에서도 특히 신라와 백제가 쟁패한 6세기 무렵 중요한 정치체라는 편린 정도만 남겼을 뿐이다. 한데 연구소에 의하면, 이러한 아라가야가 궁전으로 삼았을 법한 고고학적 증거를 마침내 찾아냈다는 것이었다. 이날 발표에 의하면, 그간 문헌이나 구전을 통해 아라가야 왕궁터로 지목된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89번지 일원에서 진행한 발굴조사 결과 5∼6세기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토성과 목책(木柵).. 2018.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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