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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398

의학 용어 개정 작업을 (옆에서) 지켜 본 회고 필자는 의학용어 개정작업을 직접 진행한 것은 아니고, 옆에서 선학들의 작업을 지켜 본 소감을 써 본다. 의학용어 개정작업이 결실을 거둔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측면이 있다. 첫째로, 의학용어는 "영어 잘하는 개인이 생각나는 대로 떠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의학회나 해부학회 등 학회가 주관이 되어 구성된 위원회에서 용어에 대한 강력한 드라이브를 가지고 추진했다는 점. 예를 들어 그렇게 개정된 용어는 의사 진단서의 진단명에도 강제 도입한다던가, 국가고시나 전문의 시험 등에도 그 용어에 따라 출제한다던가, 학회지 등에 공식적 용어 외에 구 용어로 작성되어 제출한 논문은 수정을 요구한다던가 하는 것이 그렇다. 쉽게 말해 개인 작업으로 이 사업이 진행되어서는 안 되며 학회 주관으로 합의되면 강제적으로 강력.. 2025. 4. 25.
용어가 의식을 지배한다 필자가 의대 본과를 진입한 것이 87년이라 의학교육을 받은지 이제 40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세계, 그리고 우리나라 의학용어도 많은 변천이 있었는데 가장 두드러진것은 의학계에서 라틴어, 독일어 계통의 퇴조와 영어용어의 약진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학생 때만 해도 라틴어 용어가 상당히 남아 있었고 독일 출신 학자들의 경우 독일어 식으로 읽어주었는데, 그 후 미국 의학의 수준이 워낙 높고 세계 의과학의 종주국 역할을 하다 보니 라틴어 용어가 상당 수 영어로 바뀌었고, 독일 출신 학자의 경우 아예 미국식으로 이름을 읽어버리는 상황까지 도래했다. 한글 용어의 경우에도 80년대 당시까지도 일본식 의학용어, 아마도 식민지 시대부터 내려온 한자용어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그 후 선학들의 노력으로 용어의 상당 부분이.. 2025. 4. 25.
불임의 한국학계: 그 반성은 조선시대부터 시작해야 한국학계는 왜 생산성이 떨어지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원인은 연구의 풍토와 수준이 떨어져서 그렇다. 왜 떨어지는가? 연구를 해 본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우리는 1000원권 지폐부터 5천원권, 일만원권, 오만원권까지 모두 유학자이거나 유학자의 어머니, 철인군주의 얼굴을 담고 있지만, 연구의 전통이 매우 박약하다. 한국 학계의 불임, 낮은 생산성은 17세기 이후, 조선의 학문 수준이 중국과 일본에 비해 크게 낙후한데 그 기원이 있다. 일본의 경우 1900년대 초반에 이미 노벨상 후보가 나올 정도로 메이지 유신 이후 불과 40년 만에 서구 과학 수준을 따라 잡았고, 중국의 경우 개방개혁 이후 불과 40년 만에 미국 수준을 넘보는 분야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한국은 수십년 째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 2025. 4. 24.
[연구소식] 라키가리 보고서 2권 집필 시작 일전에 출판한 라키가리 보고서 2권 집필을 시작했다. 되도록 제1권과 같은 출판사 (영국 Archaeopress)에서 출판하고자 하며, 이번 권에는 라키가리 발굴 보고서 (지난번에는 무덤에 대한 인류학적 검토를 주로 실었다)와 몇 편 라키가리 관련 챕터들,그리고 지난번에 미처 다 싣지 못한 사진들을 항공사진을 위주로 실을 작정이다. 김용준 박사 이야기로는 인더스 문명 관련하라파와 모헨조다로도 발굴 보고서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번에 낸 우리 라키가리 보고서 1권은 시장 반응도 괜찮고전 세계 대학도서관에 안들어 간 곳이 없음을 확인했다. 이는 인더스 문명 발굴 관련 보고서가 희귀한 덕을 보기도 했고, 라키가리 유적이 지닌 학술적 중요성, 출판사가 보유한 힘 (Archaeopress사), 등등이.. 2025. 4. 22.
연구자가 사망한 시점 연구자가 연구자로서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 붓을 꺾어야 하는 시점이 언제인가 하면, 최신 업데이트에 둔감해지고 하던 소리를 계속 반복하게 될 때다.반대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최신연구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그 연구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최신 연구 성과에 대한 반응. 그리고 제정신으로 쓰는 글. 이 두 가지가 노년 황혼의 연구자를 연구자로 지탱하게 해주는 두 개의 기둥인데 이 중 어느 하나가 부러지면 연구자로서 중단을 선언하고 붓을 꺾어야 한다. 2025. 4. 20.
동아시아 연구로 회귀하며 필자가 제대로 연구를 시작한지 30년 동안 화두로 잡고 있었던 것은 어떻게 하면 국제학계에서 어깨를 나란히 해 볼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마왕퇴 연구를 주도한 팽융상 선생을 보면동병상련을 느낀다. 필자 나이 60을 넘어서며 이제 생각해 보면연구에서 일종의 회귀를 택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이도 먹은 이상 국제무대에서의 평가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고 동아시아 연구로 침잠할 때라는 생각을 한다. 지난 30년 동아시아의 팩트를 영어로 바꿔가며 논문을 쓸 때마다내가 이거 뭐하는 짓인가 생각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조선왕조라는 나라, 한국사라는 것이 뭐 좀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다면 훨씬 쉬웠을 텐데 이런 부분에 대한 상식도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바닥부터 설명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 2025.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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