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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379

손진기孫進己와 《동북민족원류東北民族源流》 이 책은 꽤 오래됐는데 중국에서는 동북삼성 민족사 연구의 지남자와 같은 역할을 아직도 그쪽에서 하고 있다고 본다. 임동석 선생 번역으로 한국어판도 동문선에서 나왔다. (아래 첨부사진 참조) 이 양반 주장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게 중국에서 통용되고 있기 때문에 필자의 글은 동북공정관련 유무를 떠나 이 책을 논의의 시발점으로 삼아 질정한다. 필자의 연구분야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류집단의 분화와 계통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이는 항상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었는데 (가장 가까운 예가 나치즘과 인류학의 관련이다) 지금도 인류학이 가까이는 동북아인의 정치적 욕구에 봉사하는 면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결국 필자도 사람인 이상 크건 작건 이런 정치적 동향에 영향을 받을수 밖에 없긴 하지만, 최대한 사실에 가깝.. 2022. 12. 27.
굳이 역사 관련 이야기를 블로그에 적는 이유 최근에 필자가 여러가지 역사 이야기를 블로그에 적는 이유는 심심풀이 삼아 적는 것은 물론 아니며 앞으로의 연구작업과 관련이 있다. 향후 작업에는 문헌 사학의 성과를 크게 반영하고자 하는데 외연을 확인하고자 하는데 주 목적이 있다. 간혹 이야기가 빗나가 너무 멀리 가기도 하는데 양해가 있기를. 다만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되겠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작업과 많이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며 뼈대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 될 것이다. 결국 학문의 최종 목표는 스토리텔링이며 (올해 노벨의학상이 왜 네안데르탈인에게 주어졌는지를 생각해 보라. 고대 DNA연구자는 이번 수상자 외에도 많았다) 스토리텔링에는 역사학 만한 것이 없다. 필자도 이제 나이 50대 중반을 넘어서 회갑을 바라보기 시작했는데, 연구전체를 꿰뚫는 스토리.. 2022. 12. 27.
이자춘-이성계는 여진을 움직였다 14세기 말. 원나라가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고려도 이에 대한 반격을 시작한 바. 공민왕은 쌍성총관부를 수복할 계획을 세우면서 현지 유력자인 이자춘과 비밀리에 접촉한다. 그 당시의 정황이 왕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 기 황후(奇皇后)의 종족(宗族)이 황후의 세력을 믿고 몹시 난폭했으며, 황후의 형 대사도(大司徒) 기철(奇轍)은 쌍성(雙城)의 관리 조소생(趙小生)·탁도경(卓都卿)과 몰래 통하여 서로 당(黨)을 지어 반역을 꾀하였다. 왕이 환조에게 이르기를, "경(卿)은 우선 돌아가서 우리 백성들을 진무(鎭撫)하라. 혹시 변고가 있으면 마땅히 내 명령대로 하라." 하였다. 이해 5월에 기씨(奇氏)를 평정하고 밀직 부사(密直副使) 유인우(柳仁雨)를 명하여 가서 쌍성(雙城)을 토벌하게 하였다... 2022. 12. 26.
발해의 용원龍原이라는 이름 (2) 앞서 쓴 글에서 발해의 동경용원부東京龍原部야 말로 대조영 일가의 세거지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제 "동경용원부" 영역을 보자. 한규철 선생 책에 올라있는 그림인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을 퍼왔다. 용원부 서남쪽에는 남경이 있다. 대략 남경남해부는 북청 함흥 일대로 고려의 북쪽 경계를 이루던 지역에 해당한다. 남경남해부와 동경용원부 경계는 어디쯤이었을까? 당연히 이전에도 이 두 지역의 지리적 경계였던 마운령 어디쯤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발해가 망한 후 고려는 남경남해부 일부를 점거하고 천리장성을 쌓은 상태였다고 할 수 있겠는데, 윤관의 북벌은 동경용원부와의 경계까지 진출하여 남경남해부 전체를 석권한 전역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그 진출 경계선이 진흥왕 순수비가 서 있는 지점이었다고 하겠다.. 2022. 12. 26.
발해의 용원龍原이라는 이름 (1) 앞서 발해의 행정 구역 이름을 보면 발해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발해 15부 하루종일 직장에서 바빴다. 이제 한숨 돌리고 장성 이야기를 계속 쓴다. 잠깐 이야기를 돌려 발해를 보자. 우리는 발해사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발해는 시종일관 중국과 신라와 대립했고 군사 historylibrary.net 발해의 오경 중 동경용원부라는 곳이 있다. 5경 중 한 곳이 위치한 데다. 보통은 발해 건국자인 대조영 집안을 상경용천부가 있는 지역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필자가 보기에는 대조영 집안 세거지는 상경용천부가 아니라, 이곳 동경용원부 지역이다. 어떻게 아느냐? 동경의 이름을 보면 짐작할수 있다. 龍原이라는 이름은 아무 데나 붙이는 게 아니다. 필자의 짐작이 맞다면, 대조영 집안은 두만강 하.. 2022. 12. 26.
함길도가 폭로하는 세종실록지리지의 음모 세종은 함경도를 병합하고 나면 명나라로부터 간섭이 있지 않을까 항상 두려워했던 것 같다. 윤관의 비가 두만강 건너 선춘령이라는 구절도 그렇지만, 이 땅이 역사적으로 한반도 국가의 땅이라는 점을 어떻게든 증명하려 했다. 이런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 세종실록 지리지의 함경도에 대한 설명이다. [A] 함길도는 본래 고구려의 고지(故地)이다. 고려 성종(成宗) 14년 을미에 경내(境內)를 나누어 10도(道)로 하고, 동계(東界)로써 삭방도(朔方道)를 삼았는데, 함주(咸州) 이북이 동여진(東女眞)에게 함몰되어 예종(睿宗) 2년 정해 【송나라 휘종(徽宗) 대관(大觀) 원년(元年).】 에 중서 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윤관(尹瓘)을 원수(元帥)로 삼고,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오연총(吳延寵)을 부원수(副.. 2022.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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