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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433

양반들 문집의 말을 믿지 말라 양반들 문집에 묘사된 조선시대, 특히 조선후기의 정경과 실제 모습은 엄청난 괴리가 있다. 따라서 양반들이 쓴 글, 폼나는 글, 이걸 믿으면 역사학이고 나발이고 없다. 조선시대 기록에서 항상 의심해야 하는 것은 양반들 글이다. 양반들 글을 보면, 조선은 잘못한 게 없다. 그런데 그런 글들이 묘사한 조선의 모습과는 상반되게17세기부터 나라가 망하는 20세기 초엽까지 조선의 향촌은 들끓고 있었다. 한 세대가 넘어가면 노비에서 신분이 유학으로 바뀌고 이들이 19세기가 되면 궐기하여 관가를 때려부쉈다. 일본이 아니라도 서구 제국주의가 아니라도 당장 오늘 내일 하는 상태였다는 뜻이다. 양반들 문집의 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승정원일기도 믿지 말라. 이런 기록들 보다는 차라리 그 당시 남아 있는 호적 한 장이 더 .. 2025. 7. 7.
19세기의 창씨개명 재미있는 것은 19세기 초반부터 우리나라 호적을 보면 노비가 눈에 띄게 줄어 들어 한 눈에도 노비 사역이 생산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는 것과 함께가구의 크기가 줄어들고 집집마다 죄다 성을 가지게 되고 이들이 "유학"을 칭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소위 19세기 들어 양반 숫자가 급증한다는 설의 근거가 이것이다. "유학"을 칭한다고 죄다 양반이냐 하는 반론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그 전 시대에 "유학"은 아무나 칭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의미있는 변화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말이다. 19세기에는 이렇게 독립가구의 숫자가 늘면서 "창씨개명"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확연히 느낀다. 유학을 칭하자니 그럴 듯한 성이 있어야 하고 양반 성인데 개똥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2025. 7. 7.
19세기에 왜 민란이 폭증하나 향촌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18세기 전반기와 후반기의 호적만 해도 엄청난 변화가 있다. 아직까지도 노비 사역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집집마다 4-5명의 노비를 데리고 있던 것이 18세기 전반. 많게는 20명씩 노비를 거느린 집도 드물기만 하지만 보이는 시대다.18세기 후반이 되면 노비는 한 집에 1-2명 정도로 축소되고아버지와 어머니, 아들 딸과 노비 한두 명으로 이루어진 집이 보편화 하기 시작한다. 이 시점이 필자가 볼 때 지주 전호제가 보편화하는 시기다. 소작농이 보편화하는 시기다. 18세기 전반만 해도 노비 사역이 주류라 소작농이 보편화 할 수 없다. 우리 역사에서 소작농이 향촌에서 보편화하는 시기는 영정조 연간이다. 그 이전에는 노비사역이다. 서양사로 본다면 노예제와 .. 2025. 7. 7.
조선시대의 선물과 절인 생선 조선시대 양반끼리 주고 받던 "선물"은 요즘 선물과 의미가 다르다. 대부분의 생필품은 스스로 구입하여 조달하는 탓에요즘 "선물"이라 하면 흔히 보기 힘든 물건을 증정하는 경우가 많겠지만조선시대에는 양반들끼리 "선물"은 그런 것이 아니고 일종의 생필품 패키지다. 그래서 "선물" 목록을 보면 거의 대동소이하다. 이 선물 목록은 일기를 보면 꼬박꼬박 자세히 적어 놓았는데 이 선물에 해당하는 또다른 선물을 이번에는 이쪽에서 증정해야 할 것이겠다. 이 시기 "선물"을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절인 생선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물론 네발 짐승의 육포가 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아주 드물고 돼지고기는 거의 선물에 나타나지 않고 소고기는 가끔 나타나는데 소금 간을 해 놓지 않아 빨리 먹어 소비해야 하는 상태였던 것 같다... 2025. 7. 6.
조선왕조실록의 공노비 해방 교서 순조실록2권, 순조 1년 1월 28일 을사 3번째기사 1801년 청 가경(嘉慶) 6년내노비와 시노비의 혁파에 관한 윤음을 내리다 윤음(綸音)을 내렸는데, 이르기를, "내가 바야흐로 《중용(中庸)》을 읽고 있는데, 무릇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데에는 구경(九經)이 있으니, 그 여섯 번째에 이르기를, ‘서민을 자식처럼 돌보아야 한다.’ 하였다. 주 부자(朱夫子)는 이를 해석하기를, ‘백성을 내 아들과 같이 사랑하여 보살핀다는 것이니, 내가 일찍이 책을 덮고 감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들이 그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서 슬프고 괴로운 일이라도 반드시 나아가야 하고, 어버이가 그 아들은 양육함에 있어서 질병에 걸리면 반드시 구원해야 하니, 임금과 백성 사이에 있어서도 간곡히 돌보아 주고 기향(蘄向)하는 것이 또.. 2025. 7. 6.
우리나라 지주전호제 아래는 GPT에 물어본 조선시대 지주전호제에 대한 설명이다. 지주 전호제(地主佃戶制)는 조선 후기에 일반화된 농업 형태를 말하며, 토지를 소유한 지주와 그 토지를 빌려 농사짓는 전호(소작농)로 구성됩니다. 지주는 토지를 소유하고 전호는 지대(소작료)를 지불하며 농사를 짓는 구조입니다. 지주 전호제의 주요 특징: 토지 소유 관계: 지주가 토지를 소유하고, 전호는 소작료를 지불하며 토지를 경작합니다. 지대: 전호는 토지 사용 대가로 지주에게 지대를 지불하는데, 이는 생산물의 일정 비율(예: 반분)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회적 의미: 지주 전호제는 조선 후기 사회의 계층 구조와 경제적 불평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지주층은 주로 양반 관료나 지주, 토호 등 지배층이었고, 전호는 피지배층인 농민들.. 2025.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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