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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100

할복을 버리고 자존심만 취해라 요즘 한국문화가 약진하는 모습을 보면이것이 사실 80년대 일본이 한참 잘나갈 때 일본에서 원하던 일본문화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쪽에서도 이리 만들기 위해 그렇게 돈을 붓고 국가적으로도 지원했는데결국 그게 잘 안 되고 끝나버렸다. 필자는 일본의 대중문화 전략의 실패에서 가장 큰 원인은일본문화의 고유성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일본의 문화에서 다도, 할복, 우키요에 등 일본문화의 고유한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를 원하고 실제로 그런 쪽에 돈을 때려 부었다. 일본문화가 그자체 통채로 서구에서 존경받기를 원하고 이것은 국력만 받쳐준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물론 90년대 이후 일본의 기나긴 침체기가 없었다면이러한 일본문화의 세계적 표준화가 가능했을지 어쨌는지 모.. 2024. 10. 28.
나선정벌을 다시 생각한다 나선정벌이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때는 국사교과서에 상당한 비중으로 실려 있었다. 열심히 북벌을 추구한 효종이 준비한 무력을 한 번 시험해 볼 겸 파병했다던가 한국 역사상 최초의 해외 파병이었다던가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이걸 1차 정벌 2차 정벌까지 자세히 서술하고 있어 굉장히 중요하게 간주하는건 알겠는데 솔직히 요즘 김정은이 러시아-우크라이나전에 폭풍군단 파병한 거랑 이게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선정벌이 교과서에 그렇게 지면을 할애해 쓸 만한 사건이었을까? 가정하자면 폭풍군단이 우크라이나 군을 격퇴하여 용맹을 떨친다면 이번 김정은 파병도 나선 정벌 만큼 중요하게 수백년 후에 실릴까? 애초에 나선정벌 자체가 교과서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어질 만한 사건이 전혀 아니었다고 본다. 나선정.. 2024. 10. 27.
미국 관광객을 구별하는 법 이건 사실 조금만 외국을 다녀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라 요즘 같이 몰려 나가는 시대에 쓸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주말이라 여흥 삼아 간단히 적어 본다.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 유적지를 가 보면 미국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한데 패권국인데다가 지금 비교할 수도 없이 잘 사니 당연한 일이겠다. 미국관광객의 특징이 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1. 뚱뚱하다 2. 상의는 티셔츠를 걸친다 3. 야구 모자를 쓴 경우가 있다 4. 반바지 5. 가족이 함께 몰려다닌다 6. 많이 먹는다 7. 신발은 구두는 절대로 안 신는다. 조리 질질 끌고 다니면 백프로 미국인. 우리나라도 한때 등산복 패션, 해서 어디나 똑같은 등산복으로 몰려다녀서 이야기가 된 적이 있는데 사실 미국도 못지 않다. 티셔츠 반바지 야구모자에 뚱뚱한 사람.. 2024. 10. 27.
젊었을 때 세상을 누빈 것만큼 성공한다 다윈은 나이 21세 때 비글호를 타고 연구 여행을 했다. 그리고 5년 동안 세계일주를 하며 다양한 생물 종을 접했다. 이 여행이 있었기에 다윈이 있고 종의 기원이 있는 것이다. 서구 학자들의 연구가 스케일이 다른 것은 바로 이렇게 세계를 시야에 넣고 연구를 하며 그만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세계를 이해하는 것 만큼 학자로서 성공한다. 우리 세대 열심히 살았던 분들은 아마 우리가 20대 때 지금처럼만 나라 밖을 이해할 수 있었어도 지금보다 훨씬 폭넓은 시야로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젊었을 때는 무조건 나가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거나 우리것이 좋은 것이라거나, 한국 문화를 아는 만큼 더 보인다 등등의 이야기는 세상을.. 2024. 10. 25.
조선시대 셜록 홈즈의 현실 조선시대 살인사건 조사가 무원록이라는 책에 기반하여 매우 합리적 해결을 독려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에 영향을 받은 극이나 영화들이 꽤 인기를 끌었다. 이런 영화에서는 대개 매우 합리적 추리를 하는 조선의 선비가 셜록 홈즈같은 솜씨로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소설이나 영화는 과연 어느 정도로 사실에 접근한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조선시대 사망사건 조사는 검험관 임의로 판결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한 것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증언과 검시 결과, 무원록의 기술 세 가지가 모두 하나의 결론을 가리켜야 사건이 종결되었기 때문에 상당히 치밀한 논리 전개로 살인사건이 규명된 경우도 드물긴 하지만 있다. 살인을 엄폐하려 한 시도를 검험관이 뒤집어 진범을 잡는 경우도 있다... 2024. 10. 24.
틀림없는 범인도 범인이라 하지 못하는 앞에서 필자는 조선시대 의문사 사건을 종결하는 데는 취조 결과 (혹은 증언) 검시 결과, 그리고 무원록에 기록된 관련 사항 이 셋이 일치해야 비로소 끝난다고 했다. 대개 두 번을 다른 관리가 검시해서 의견이 동일하면 그대로 사건이 종결되었는데 이때 두 번의 검시가 서로 의견이 같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고, 검시 때 관련자 증언하고 검시 결과가 안맞거나 무원록에 기록된 관련 사항하고 안 맞으면 상부에서 초검과 재검을 물려 버리고 삼검을 다시 지시했다. 이때 삼검이 초검과 재검하고 결론이 다르면 한 번 더 검시를 지시하니 총 네 번의 검시를 서로 다른 관리 (대개 군수) 주재 하에 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최근에 읽은 사건은 아주 재미있는데 어떤 양반이 왠 불한당 둘을 만나 맞아 죽었다는 고발이.. 2024.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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