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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3304

[거란의 치맛바람] (12) 딸을 죽였다고 사위 소손녕을 죽여 순장한 장모 예지황후睿智皇后 소작蕭綽 요사遼史 권80 열전列傳 제18에는 소항덕蕭恆德, 곧 蕭손녕遜寧이 열전이 그의 친형 소배압蕭排押 열전 바로 뒤에 붙었거니와, 이에 의하면 소항덕은 통화 원년(983) 제5대 황제 경종景宗 야율현耶律賢과 예지황후睿智皇后 소작蕭綽 사이에서 난 월국공주越國公主한테 장가들어 부마도위駙馬都尉가 되어 주로 군사 분야에서 출세가도를 달린다. 물론 굴곡도 없지는 않아서 군사 발동을 잘못했다 해서 공신 칭호를 삭탈당하기도 한다. 통화統和 14년(996)에는 행군도부서行軍都部署가 되어 포로모타부蒲盧毛朵部를 치고 개선했다. 문제는 이때 생겼다. 그의 열전에는 이렇게 적었다. (소항덕이 전장에서) 돌아오자 (부인 월국) 공주가 병이 들었다. 태후가 궁인宮人 현석賢釋을 보내 병 간호를 하게 하였는데 소항덕이 그와 사통하니 공주.. 2024. 2. 15.
이조판서 인사발령 이틀만에 급서했다 해서 칭송받은 오재순 정조실록에 의하면 그 16년, 1792년 12월 28일 임진일에 이조판서 정민시鄭民始를 체직하고는 오재순吳載純을 그 자리에 앉힌다. 당시 오재순은 66살 상노인이었지만, 적어도 몇 년은 더 써 먹을 체력은 된다 정조가 생각한 인사조치였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 오재순은 허망하게 간다. 실록이 적기한 그의 졸기卒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원임 이조판서 오재순이 죽었다. 재순은 자字가 문경文卿이라 고 대제학 오원吳瑗의 아들이다. 풍채가 청수하고 차분하고 말수가 적었으며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좋이 여기지 않았다. 영종英宗 임진년에 급제하고 상이 등극하자 내각에 들어와 이조·병조판서를 지내고 대제학을 역임했는데, 상이 그의 겸손하고 과묵함을 가상히 여겨 우불급재愚不及齋라는 호號를 내리기도 하였다. 어려서부터 경전.. 2024. 2. 15.
[거란의 치맛바람] (11) 네 번 결혼한 거란의 리즈 테일러 소배압 말고 야율륭서耶律隆緒 만큼 일반에 친숙한 거란 사람 있을까? 드라마가 불러온 현상이다. 이제는 초동급부까지 야율륭서를 알게 됐으니 말이다. 거란 황금기를 이룩한 위대한 군주라는 야율륭서는 죽어서 성종聖宗이라는 묘효廟號를 얻으니 흔히 이렇게 일컬어지만, 생전에 그 자신은 이런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 왜? 귀신이 되어 받은 이름인 까닭이다. 성종은 생식력 또한 왕성했으니, 딸만 해도 열넷을 두었다. 귀비貴妃한테서 야율연가耶律燕哥라는 첫딸을 두니, 이 여식은 수국공주隨國公主에 봉해졌다가 나중에 진국공주秦國公主로 바뀌었으며, 흥종興宗 시대에는 송국장공주宋國長公主라 했다. 장공주는 보통 현재의 황제 고모한테 붙인다. 소필리蕭匹里한테 시집갔다. 이 자리서 논하고자 하는 성종 따님은 앞에서도 집중으로 다룬.. 2024. 2. 15.
[거란의 치맛바람] (10) 꼭지 돌아 남편도 바꿔버린 공주 거란 5대 황제 경종景宗은 정비 예지황후한테서 딸 셋을 두고 개중 둘이 소배압-소항덕(소손녕) 형제한테 하가했다는 말을 했지만, 걸물이 첩실 발해비潑海妃한테서 둔 야율숙가耶律淑哥라는 공주다. 그 어미는 발해비라 했으니, 발해를 평정하고서 그에서 혹은 그 후손에서 맞이했을 것이니 발해 왕성으로 대조영 후손인 대씨大氏일 것이다. 이 숙가 공주는 아무래도 첩실 자식이라 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요사 공주표公主表에서는 봉호封號가 따로 없다고 했다. 그래도 위세는 대단해서 남편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바꿔버린 케이스다. 이 공주표에 의하면 그는 아버지 야율현耶律賢, 곧 경종이 재위 12년째를 맞은 건형乾亨 2년, 서기 980년, 북한北漢에서 귀부한 노준盧俊이라는 사람한테 시집갔다. .. 2024. 2. 14.
[거란의 치맛바람] (9) 공주들이 설치는 왕조 앞선 시기에 나온 정사류를 찾아봐야겠지만 공주표公主表라 해서, 표 형식으로 각 황제별 공주 행적을 정리한 첫 정사가 아마 요사遼史 아닌가 싶거니와 그 권65 표表 제3이 공주표公主表거니와, 이에는 태조 야율아보기 이래 소회태자昭懷太子에 이르기까지 각 황제(일부 태자 포함)가 어떤 공주를 두었고, 그 어머니는 누구이며, 이름은 무엇이고 어떤 봉작을 받았으며, 누구한테 하가下嫁해서 그와 관련한 사적은 무엇이고 혹 죄를 지었다면 어떤 내용이며, 사망 관련 정보와 그가 둔 자식은 누구인지를 일목요연 표로써 정리했다. 이 표를 만드는 이유를 요사 편찬자들은 그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거니와, 이는 거란 사회를 엿보는 하나의 독특한 시선을 제공한다 하겠다. 춘추의 법[春秋之法]에는 왕의 딸[왕희王姬]의 하가下嫁.. 2024. 2. 14.
소배압-손녕 형제한테 나란히 시집간 경종의 딸들 크게 3차에 걸친 고려거란전쟁에서 거란군 수뇌를 형성하는 소씨蕭氏 형제, 곧 소배압蕭排押과 소손녕蕭遜寧(=소항덕蕭恆德)은 국구國舅 소부방少父房 후손들이라, 대대로 집안이 황비를 공급하며 위광을 누렸다. 물론 부침도 없지는 않아서 걸핏하면 한대 얻어맞고 죽임을 당하는가 하면 삭탈관직되어 서민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저 두 소씨 형제를 흔히 부마도위駙馬都尉, 약칭하여 부마駙馬라 하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황제의 사위인 까닭이다. 본래 부마駙馬란 말 자체가 딸린 말이라는 뜻으로, 황제가 행차할 적에 지금 모는 말이 피곤에 지치거나 혹은 부상당했을 적과 같은 비상사태에 투입할 대타를 의미했으니 이것이 훗날 임금의 사위라는 뜻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요사遼史 소배압 열전에 이르기를 그가 위국공주衛國公主한테 .. 2024.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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