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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844

군주론, 시공이 만든 혁명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써서 제 주군한테 바친 시기가 1513년이라 하는데 글자 그대로 군주란 모름지기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훈육담으로 일관한다. 한데 이 상소문집은 이내 금서로 지정되어 버린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군주 혹은 군주의 통치론 비밀을 폭로했다 해서였다. 신하된 주제에, 혹은 퇴임한 신하가 감히 군주의 비밀을 폭로하다니 괘씸죄에 걸린 것이다. 그 내용이라 해 봐야 암 것도 아니다. 국가를 통치하고 신민을 이렇게 다루어야 하며 군대는 이렇게 양성해야 한다는 통치론 일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이런 담론은 공개되어서는 안되는 금기였고 그런 까닭에 이런 논의는 언젠가는 공론화할 주제였다. 한데 그 내용이란 걸 동시대 동아시아로 옮기면 저와 같은 논의는 전연 새로울 것도 .. 2021. 2. 12.
또 하나의 회고록 《내일을 위한 증언-허정 회고록》 헌책방에 들렀다가 슬쩍 쌔비왔다. 백두진 회고록이랑 같은 칸을 차지해 고민하다 우선 허정부터 자빠뜨리기로 했다. 난 회고록 아카이브 구축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지금 여기 우리는 어떻게 와 있는가? 그 편린의 하나가 잡힐 줄 혹 알겠는가? (2018. 2. 11) *** 한국근현대 회고록으로 내가 계속 독자들한테 추천을 일삼거니와 이 허정 회고록도 강권한다. 허정許政(1896~1988)이 걸은 90성상은 그 자체가 한국근현대사 온축이다. 제헌국회의원에다 이승만 정부에서 교통부 장관을 역임하고 이후 격동기에 과도정부 수반을 지낸 굵직한 경력 말고도 젊은시절 유학과 그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비교적 담담하면서, 때로는 격정으로 토로한다. 1979년 10월 30일 도서출판 샘터에서 초판을 발행했다. 지.. 2021. 2. 11.
쿠테다를 저항하는 미얀마가 상념하는 아웅산 묘역 미얀마, 反쿠데타 시위에 초강경 대응…"실탄 쏴 2명 중태"(종합4보) 송고시간2021-02-10 00:03 민영규 기자 계엄령·집회금지에도 나흘째 대규모 시위 벌이자 '강경 진압' 물대포·최루탄·고무탄 발사 이어 "실탄도 발포" 주장 제기돼 www.yna.co.kr/view/AKR20210209086554076?section=news 미얀마, 反쿠데타 시위에 초강경 대응…"실탄 쏴 2명 중태"(종합4보) | 연합뉴스 미얀마, 反쿠데타 시위에 초강경 대응…"실탄 쏴 2명 중태"(종합4보), 민영규기자, 국제뉴스 (송고시간 2021-02-10 00:03) www.yna.co.kr 잠깐 가서 잠깐 둘러본 것으로 내가 무에 미얀마를 심층으로 논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래도 다녀는 왔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2021. 2. 10.
공부하기 싫은 늙은 왕 이성계와 공부하라 닦아세운 신하들 가뜩이나 늙어 대권을 쥔 이성계.생평을 전장에서 보내며 튼실함을 자랑한 이성계도 생평 안하던 공부, 다 늙어서 하다가 아들놈한테 쫓겨났다.   태조 1년 임신(1392,홍무 25) 11월12일 (기축)간관諫官이 날마다 경연經筵을 개최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말하였다.“수염과 살쩍이 이미 허옇게 되었으니, 여러 유생들을 모아서 강론을 들을 필요가 없겠구나.”도승지 안경공安景恭이 대답하였다.“간관의 뜻은 다만 전하에게 글을 읽게 하려고 함이 아니옵고, 대개 정직한 사람을 가까이 하여 바른말을 듣게 하려고 함입니다.”임금이 말하였다.“내가 비록 경연經筵에는 나가지 않더라도 매양 편전便殿에서 유경劉敬으로 하여금 《대학연의大學衍義》를 강론하게 하고 있다.”(2016. 2. 9)***   나는 매양 이성계가 문맹이거.. 2021. 2. 9.
<조선왕실의 마지막> (4) 일본 국적이 강제로 박탈된 이구 김태식[문화부] 2005.07.22 15:35:08 (끝) 그렇다면 최근 타계한 영친왕의 외아들 이구(李玖) 씨는 어떠한 삶의 궤적을 남겼을까? 1931년 12월 29일, 영친왕과 이방자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출생과 동시에 왕세자(王世子)로 '자동' 책봉됐다. 형이 있기는 했으나 생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죽고 없었으므로 그는 이미 태어나는 순간, 그리고 사내임이 확인되는 그 순간에 바로 이왕(李王)의 후계자인 왕세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가능케 한 법적 근거는 앞에서 누차 거론한 왕공가궤범(王公家軌範)이라는 법령 때문이었다. 이 전범 제40조는 왕공족(王公族)을 여러 단계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것을 순서대로 보면 ▲ 왕 ▲ 왕비 ▲ 태왕(太王. 은퇴한 왕의 아버지) ▲ 태왕비(太王妃).. 2021. 2. 9.
<조선왕실의 마지막> (3) 천황의 형제 아들로 대우받은 영친왕 김태식[문화부] 2005.07.22 15:34:32 (3) 그렇다면 이왕(李王)인 이은(李垠)은 도대체 어떤 경로로 친왕(親王)이 되었을까? 그 비밀은 앞서 여러 차례 인용한 왕공가궤범(王公家軌範), 그 중에서도 서훈(敍勳), 즉, 조선의 왕공족에 대한 훈장 제도에 있다. 이 법령 제51조에 의하면 조선의 왕은 만 15세에 달하면 대훈위(大勳位)가 되고 국화대수장(菊花大綬章)이라는 훈장을 받는다. 이런 특권은 일본에서는 천황의 친족인 황족(皇族) 중에서도 오직 친왕(親王)들에게만 적용된다. 그 남편이 이런 훈장을 받아 친왕이 되면 그 부인은 말할 것도 없이 자동적으로 친왕비(親王妃)가 되는 것이다. 고종에 의해 영왕(英王)에 책봉된 이은이 이왕(李王)이 되고,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영친왕(英親王)이.. 2021.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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