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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696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2) 궁주宮主 vs. 왕비 이를 위해 위선은 삼국유사가 저록한 사금갑 이야기를 보고, 나아가 이와 삼국사절요 및 동국통감이 저록한 사금갑 사이에 어떤 차이는 없는지, 그 차이는 무엇이며,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한지를 분석해야 한다. 이 기초작업이 놀랍게도 김태식 이전엔 없었다.믿기는가?암튼 삼국유사 기이 편이 사금갑射琴匣이라는 제목으로 저록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제21대 비처왕毗處王[소지왕炤智王이라고도 한다] 즉위 10년 무진戊辰에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거둥하였다.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우는데, 쥐가 사람말로 이르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 보시오.”했다[혹자가 말하기를 신덕왕神德王이 흥륜사興輪寺에 행향行香하고자 하여 [가는데] 길에 꼬리를 [서로] 물고 가는 한 무리의 쥐들을 보고 그것을 괴이하게 여겨 돌아와 .. 2025. 1. 25.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1) 아무도 쳐다보지 않은 삼국사절요 동국통감 소지왕 시대 왕실을 뒤흔든 초대형 로맨스 스캔들, 이른바 사금갑射琴匣 사건을 내가 일전에 다시금 살핀 적 있거니와 이 사건을 논하는 전배前輩한테서 나타난 기이한 현상 중 하나로, 오로지 삼국유사 기이紀異 편이 저록한 그 증언만 착목한다는 대목이었으니오매불망 이것만 쳐다보고서는 이 사건을 다룬 다른 문헌은 전연 쳐다보지 아니했다는 현상이 나로서는 기이할 수밖에 없었다. 저 사건은 삼국유사 말고도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 그리고 기타 다른 문헌에서도 자주 언급했거니와, 명색이 고대사를 연구한다는 자들이 그네들 문헌에서 보이는 상이점들을 전연 논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더욱 기이했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아무도 안 봤기 때문이다. 명색이 고대사를 연구한다는 자들이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은 .. 2025. 1. 25.
글씨가 커진 이유, 안경이라는 혁명 조선 중기를 살다간 심수경沈守慶이라는 사람이 있다. 1516년, 중종中宗 11년에 나서, 과거 급제하고는 출세가도를 달려 훗날 좌의정까지 역임하고는 장장 84세 장수를 누리다가 1599년, 선조 32년 눈을 감았다. 말년에 임진왜란에 휘말렸으니, 그리 호락호락한 삶은 아니었다 하겠거니와, 그럼에도 천수를 누렸다. 그의 저술 중에 일상생활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 묶음집으로 견한잡록遣閑雜錄이라 제題한 것이 있으니, 글자 그대로 여가를 보내며 이것저것 긁어모은 이야기들이라는 뜻이다. 개중에 아래와 같은 논급이 보인다. 육방옹陸放翁은 이름이 유游이며, 자字는 무관務觀이라 송宋 나라 이름난 시인이다. 그의 시는 호방하고 평이하여 난삽難澁하고 기괴奇怪한 병통이 없으므로, 내가 전부터 좋아했다. 우연히 유간곡劉澗谷.. 2025. 1. 25.
사우디 산맥을 뚫은 벌집들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사라와트 산맥 Sarawat Mountain range 기슭 타이프Taif 남쪽에 위치한 버려진 마을 알카르피Al-Kharfi에서 천년 전 고대 벌집beehives이 1천200통이나 떼거리로 있다고.애초 이 소식을 나는 발견이라 해서 봤지만 익히 알려진 듯하다. 진흙으로 만든 이 벌통들은 까다로운 사막 환경에서 중요한 영양과 약용 특성을 제공하는 초기 정착민에게 매우 중요했다.벌집에서 수확한 꿀은 일상 생활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며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공동체가 번성할 수 있도록 했다.이 지역 양봉은 이미 고대 작가들한테서 드러난다. 예컨대 그리스 유명 지리학자 겸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스트라보Strabo(기원전 64년~기원전 24년)는 꿀을 '아라비아 펠릭스Arabia Felix’s.. 2025. 1. 22.
연암이 보는 불교, 가만 놔둬도 저절로 망할 지경 연암이 되치기 당한 이야기하기에 앞서 내친 김에 연암이 바라보는 당시 불교계 진단을 짚어봐야겠다. 이를 위해 먼저 불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소환할 필요도 있거니와, 번다해서 구체 사례를 열기하지는 않겠지만, 당시 사대부 불교에 대한 전반하는 생각이 연암이라고는 예외가 될 수는 없어, 이단이라는 관점은 유효한 것으로 보이지만그렇다고 그가 천주교에 대해 그랬던 것과 같은 극단하는 불교 배척주의자였다고는 하기 힘들다. 그건 왜인가를 곰곰 따져보면 그의 시대에 이미 불교는 더 이상 체제 위협을 가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저 정도는 봐줘도 상관없다 하는 그런 인식이 깔렸으니, 이것이 그를 상대적인 불교 온전주의자로 보이게도 할 것이다. 당시 압도하는 위협은 천주교였다. 조선왕조는 갖은 악랄한 수단 동.. 2025. 1. 22.
불교 우습게 봤다 되치기 당한 연암 박지원[1] 연암 자신은 스스로 과거를 단념했다 하고, 또 그리 볼 만한 여지가 없지는 않으나, 포기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듯하다. 반남박씨 벌열 가문 자제로 과거 포기는 곧 시련이기도 했으니, 말이 좋아 벌열이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벌열은 실은 잔반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그도 결국 관직을 선택할 수 없었으니, 문제는 그가 우암 같은 거물 산림이 아닌 이상, 아무리 공무원 특채라 해도 기껏 얻는 관직이란 현감이나 군수에 지나지 않았고, 이조차 과거급제자냐 아니냐는 엄청난 차별이 있어 아랫것들이 말을 안들어 쳐먹기 일쑤였다.빙빙 돌던 그가 음보蔭補, 곧 말이 특채지 실은 빽을 써서 공직에 처음 진출한 때가 1786년, 50세 때였으니, 마침 젊은 시절 호형호제하며 지낸 유언호兪彦鎬(1730~1796)가 과거에.. 2025.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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