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일제강점기의 심층이해43 쌀 말고는 내다 팔 것이 없는 조선의 20년대 식민지시대 신문만 봐도 그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충분하다. 조선의 20년대-. 쌀 말고는 내다 팔 것이 없다.반면에 들여오는 물건은 일본의 공산품, 그리고 미국 유럽 등의 공산품이다. 일본과 미국 유럽 공산품 간에는 서열이 있다. 미국 유럽 공산품이 일본 공산품보다 상위에 있으며 일본 공산품은 그보다 못하지만 조선과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 정부의 보호 무역 기조 등등으로 조선에서 판로를 찾았다. 아마 이 당시 돈의 흐름은 조선에서 쌀을 팔고 그 돈으로 일본의 공산품을 사서쓰는 방향으로 돌고 있었을 것이고, 이에 따라 당시의 신문 기사가 채워지고 있었다고 본다. 면직물로 세계를 지배하고 설탕으로 무역을 지배하는 제국주의에서 그 식민지로 부터 면화와 사탕수수 원료를 공급받는 .. 2025. 9. 16. 출신이 다양한 구한말 관리들, 개천에서 난 용들 구한말 관리 중에는 물론 전통의 명가 출신, 혹은 정말 몰락양반이라는 잔반 출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서자 출신, 중인출신, 그리고 모칭 유학 출신 등18세기까지도 제대로 된 관직 진출이 불가능했던 사람이 상당수 들어가 있으며이들 중 일부는 당시 정계의 최정점에까지 올랐다고 본다. 그리고 이 구한말 관리의 상당수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그대로 총독부관리로 넘어갔거나 혹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선인 동향을 주도하는 재야의 계층으로 남았다. 일제시대 이미 최고학부까지 공부한 사람은 필자가 보기엔 거의가 바로 이런 인적 풀에서 나왔다. 이들은 정치적 동향에 따라 일제강점기에는 혹은 독립운동도 한 사람도 있겠고, 혹은 열심히 돈을 번 사람도 있겠으며, 혹은 아예 친일의 길을 걸었던 사람도 있어 다양한 모습으로 분.. 2025. 9. 16. 금계랍-키니네 광고 20년대 신문 광고를 보면국내산 광고가 거의 없다. 대부분 해외 수입품으로 미국 쪽에서 실어온 박래품이거나 일본산 공산품이 많은 것을 보면당시 조선의 척박한 산업기반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점까지도 조선에서 내다 팔 것은 쌀밖에 없었던 셈이다. 위 광고는 약수입상의 광고인데, 금계랍과 각종 피부병 치료제를 팔고 있다. 금계랍은 키니네, 말라리아 약이다. 오늘날에는 열대지역 말라리아 감염이 우려되는 지역으로 여행하는 분들에게 사전 복용시킨다. 이 광고를 보면 키니네, 금계랍은 만병통치약이다. 학질 말고도 열병에는 다 복용하며 매일 조금씩 복용하면 보약으로도 쓸 수 있단다. 그러니 좀 비싼 듯 해도 집집마다 한 병씩 사두란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도 학질이 정말 많은 나라라 열이 날만 하면 금계랍을 먹으.. 2025. 9. 15. 20년대, 여러 명이 말하던 민족개조론 춘원은 30년대 말의 행보로이전까지 소급해서 욕을 먹고 있는 측면이 강한 듯 한데,사실 춘원이 민족개조론을 발표한 당시 (1922년)이 주장을 한 사람은 춘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있었음은 당시 신문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도 아예 특집기사를 만들어 여러 명이 연재하거나 아니면 외국인에게 한국인의 결점, 고칠점을 이야기해 달라 하여그것을 정초의 신년 기사로 싣거나 하기도 했다. 이런 경향이 1922년에서 1925년 사이에 꽤 보인다. 아마 춘원처럼 30년대에 변절의 혐의가 생겼다면이 사람들도 덩달아 모두 소급하여 욕을 먹었을 것이로되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이 양반들은 대개 춘원처럼 인생 마무리를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신문 사회면은 하루가 멀다하고 독립운동하는 이들이.. 2025. 9. 15. 문인으로 생활하는 춘원 1925년의 신문을 보면 춘원은 명백히 문인으로 생활이 가능한 수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날짜 신문 하나만 보아도 영대靈臺라는 동인지에 그의 글이 실려 있고, 동아일보에 소설도 하나 연재하고 있었다. 동아일보에 연재 중인 "재생"작자가 "장백산인"으로 되어 있지만 이건 춘원이다. 장백산인이란 백두산인이라는 뜻이다. 이 소설 삽화를 그린 안석주는 KAPF 소속 예술가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 작사가다. 당초 이 양반이 작사를 할 때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들이 노래를 작곡. 이 시기는 춘원이 이미 "민족개조론" (1922년)을 발표한 뒤라 이전과는 정치적 행보를 달리 할 때였다. 2025. 9. 15. 백병원의 전신: 우에무라 외과 1925년에는 경성에 있는 우에무라植村 외과 광고가 있다. 우에무라는 경성의전병원의 외과 과장으로 백인제 선생 스승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당시에는 자기 병원을 따로 갖고 대학교수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우에무라 교수는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자신이 따로 운영하던 우에무라 병원植村病院을 인수할 사람을 물색했는데당시 경성의전 외과의국에서 가장 특출한 재능을 보인던 선생에게 자신의 병원을 넘겨주었다. 이 백인제 병원이나중에 조선 굴지의 백병원으로 성장하게 된다. *** [편집자주] *** 저 병원 설립자 식촌준이植村俊二에 대해서는 국사편찬위원회 인명 사전 제공 서비스가 있다. 이에 의하면 1935년 현재 59세이며, 1876년 9월 15일생이이다. 愛知縣 海部郡 八關村이 원적.. 2025. 9. 15. 이전 1 2 3 4 5 ··· 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