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호적과 족보 이야기422 사림파 영감님이 앉아 설명하는 조선왕조 오백년사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조선시대 역사의 기술은 사림파 영감님 한 분이 앉아 자기 생각나는 대로 조선시대 사를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예를 들어 보자. 조선전기에는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수준이 낮고, 조선혁명에 추동한 이들이 유교의 의리에 대한 배신이라, 왕조 교체기에 절개를 지켜 낙향한 길재의 도통을 이어.. 어쩌고 저쩌고, 이런 시각으로 조선전기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종 이후 사림파 대두를 역사의 필연으로 설명한다. 이건 전적으로 사림의 시각이라 정말 그렇게 된 것인지는 한 번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사림에서 추앙하여 문묘종사를 한 이들을 포함한 길재로부터 이어지는 도통에 대한 설명도, 사실 사림의 시각으로 자기들 선생을 추앙하여 문묘에 꽂아 넣자고 추앙한 것이지, 이 양반들이 .. 2026. 5. 4. 사림과 훈구파는 출신에 차이가 없다? 사림과 훈구파가 출신이 다른 사람들의 대립이 아니라 실제로는 혈연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내혼 집단에서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분화했다는 주장이 요즘 더 우세한 모양이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유씨 가정보를 분석한 결과 그렇게 나왔다는 것인데, 과연 영남지역 사족들, 후대에 가면 영남 사림들로 부상하는 종족들도 과연 문화유씨 가정보에서 이들과 내혼 집단으로 확인 가능할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문묘 종사된 이언적은 부계 모계 모두 문화유씨 가정보에 안 나온다. 조식도 그렇다. 남명도 부계 모계 모두 안 나온다. 후대의 영남사림으로 분류되는 류성룡, 이황 등의 가계는 이미 가정보에 나온다,이것을 두고 예외로 삼는 경우를 보는데, 그렇게 섣불리 결론 짓지 말고 후대의 영남사림 전체.. 2026. 5. 3. 근거도 없는 조선시대 국반國班 이야기 족보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다 보니 근거 없이 돌아다니는 이야기도 많다. 앞에서 썼지만, 조선 후기 이후 족보를 들고 집안 어쩌구 하는 이야기는 믿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 하고 자기 위안을 삼고자 함이지역사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다 보니 온갖 풍문, 어디서 들고 나온 이야긴지도 모를 이야기도 많은 바,예를 들면 조선시대 명문가의 예로 자주 나오는 국반이라는 것이 있다. 이런 국반이라는 개념은 호사가들 입에서 술자리에서나 돌고 말면 모를까, 조선시대에 이른 국반이라는 개념이 나올 리도 없고, 국반이라고 거론되는 집안들 보면 과연 이 집안들이 조선을 좌지우지, 들었다 놨다 했는가 의문스럽기 짝이 없으니, 조선시대 국반이라고 하면, 필자가 보기엔 딱 하나다. 전주 이씨. 그 외에는 다 의미.. 2026. 5. 3. 전주이씨 분포도가 말하는 것 이 전주 이씨 분포도는 이전에 한 번 이야기한 바 있다. 왜 전주이씨 분포가 영남지방에는 적은가 하는데 대해서도 필자의 생각을 적었던 바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전주이씨와 일단 혼맥이 생겨야 분포도가 올라갈 것인데, 영남 지역에는 전주이씨와 혼맥이 생길 일이 많지 않았다는 뜻이 되겠다. 흥미로운 것은 초기 족보인 안동권씨 성화보나 문화유씨 가정보를 보면, 이 족보에는 주로 서울 경기를 중심한 경화사족들이 혼맥을 형성하여 지배집단을 형성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영남 지역 사인이 많이 끼어 들어와 있지 않다. 소위 말하는 영남 사림들의 숫자가 이 초기 족보에 적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초기 족보에 들어와 있는 사족들은 전주이씨 종실과의 혼맥도 형성하여전체가 왕실 종친과 서울 경기 지.. 2026. 5. 2. 청금록과 향안, 족보와 호적에 대한 불만이 표출한 새로운 명문 보증서 조선 중후기가 되면, 소위 전통의 양반 집안에서는 족보나 호적이 불만 스럽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족보에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정말 양반이라 할 만한 집안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얼, 중인, 향리에 심지어는 평민들까지 모두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시간이 흐르며 서자라고 박아 놨던 족보 기록까지서얼들의 반대로 전부 삭제되기 시작하니 족보만 들여다 봐서는 도대체 구별이 안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호적도 마찬가지로, 양반이라고 하면 결국 벼슬하지 않으면 직역이 유학, 업유, 업무 등인데그 중 하층 양반들에게 주어진 업유 업무야 그렇다고 쳐도 유학까지도 서얼이나 중인들이 차지하기 시작하여그 숫자가 급증하기 시작하니 호적을 들여다 봐서는 내가 얼마나 잘 난 놈이고 우리 집이 얼마나 대단한지 .. 2026. 5. 2. 사회적 신분을 보여주는 것은 오직 조선초기 족보 조선초기 족보와 중기 이후 족보는 다르다. 초기 족보 대표가 안동권씨 성화보와 문화유씨 가정보인데이 족보와 조선 중후기 이후 족보 차이를 설명하면서전자는 처가 그리고 사위집안까지 다 써 놓은 반면후자는 가부장적 부계족보라는 식의 설명만 하는 것을 보는데사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족보가 수록한 사람의 신분을 정확히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조선초기 족보로, 예를 들어 안동권씨 성화보와 문화유씨 가정보는 같은 수준의 사람들끼리 서로 통혼하여 그 혼맥을 끝까지 추적하며 관련된 사람들을 다 수록한 것으로 정작 그 족보를 보면 안동권씨, 문화유씨보다 다른 성씨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두 족보에 수록된 사람들은 당시 통혼이 가능한 수준에 있던 사람들로이 족보에 수록된 사람들은 전부 그 당시 지배계층,.. 2026. 5. 2.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7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