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호적과 족보 이야기422

영남 사족의 기원[4] 문묘종사를 공략하라 영남사족이 조선전기의 고립을 벗어나 중앙정계로 진출하게 된 데는문묘종사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후기가 되면 문묘종사는 그야말로 정권의 승패를 결정하는 사족들의 트로피가 되어엄청나게 중요한 존재로 부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조선전기만 해도 문묘종사는 대단한 것은 맞기는 하지만, 그 정치적 함의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조선이 건국했을 때 고려왕조 당시 문묘에 종사된 사류는 딱 세명 있었으니, 설총, 최치원 그리고 안향 (안유)이었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한 후 권근을 종사하자, 도은을 종사하자하는 논의도 있었지만, 전부 나가리 되고 중종 때까지도 추가로 문묘에 종사되는 이 없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별 생각 없이 바라보는 것 같은데, 만약 조선전.. 2026. 5. 10.
영남 사족의 기원[3] 길재와 정몽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남 사족들의 경우, 다른 지역과 달리 이 지역에 고대국가가 성립한 이후 큰 변화 없이 향촌 질서가 그대로 유지되어 조선 전기까지 내려왔을 것이라 하였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보면 이 지역에 성립한 고대국가가 삼국통일을 하고, 후삼국 쟁패기에 최후 승자인 기내 지역의 고려왕조에 요즘으로 친다면 우호적 합병 (friendly M&A)을 한,간단하다면 간단한 두 번의 정치적 계기에서 보여준 이 지역의 선택은 소백산맥을 경계로 다른 지역과 확연히 구분되는 지적 고립과 함께 정치적으로도 장기간에 걸쳐 향촌 지배체제가 크게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내려오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조선 전기를 보자. 조선 전기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기전지역의 사족이 우위를 점하여 성립한 정권인데, 고.. 2026. 5. 10.
영남사족의 기원[2] 그 많은 분급 하사 토지는 어디에서 왔을까? 영남사족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자면빼 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지역은 외부에 의해 해체된 역사적 계기가 이천년래 한 번도 눈에 띄지 않는 점이라 하였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생각해 보면 이렇다. 당장 삼국 통일 이후 통일신라는 어쨌건 제쳐 두고라도, 고려 전기 전시과제도, 조선전기의 과전법 체제두 체제 모두 국가가 사실상의 소유권과 수조권을 모두 쥐고 있는 땅이 반드시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 같다. 한 나라가 건국한 후 이런 식의 공전에 기반한 토지분급제도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예를 들어 고려의 전시과 제도-. 도대체 무슨 땅을 가지고 전시지를 나눠주겠는가 말이다. 특히 우리는 고려 전기만 해도 호족의 연합체제로 국가의 권력이 향.. 2026. 5. 10.
영남 사족의 기원[1] 이렇다 할 격변이 없던 지역 우리나라 역사에서 영남 사족의 기원과 변천을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이를 해석하는 데 몇 가지 생각해 볼 부분이 있어 간단히 적어둔다. 첫째는 영남 사족의 경우, 조선후기 당쟁이 격화해서 중앙정계에서 퇴조하고 이인좌의 난 이후 이 지역 사족의 처지에 대해 과장해서 해석하는 부분이 있다. 결론으로 말하자면 이 지역 사족들은 서인 독주 이후 퇴조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전 지역 사족을 제외한 향촌 사족 중에서는여전히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영조 이후 영남차별론 등은 사실과 다르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영남차별론이 아니라, 기전 지역 사족을 중심으로 번영하는 그 이전 과거로 돌아간 데 불과하고, 앞에서도 썼지만 우리나라 기전 지역 사족들은 한국사.. 2026. 5. 10.
기내 사족과 향촌 사족 앞에 쓴 이야기를 조금 더 써 본다. 앞에서 기내사족과 향촌 사족 이야기를 적은 바, 필자가 기내 사족이라고 한다면 서울에 거주지를 두고, 경제적 근거지도 경기도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이들이다. 우리가 향촌에 기반을 둔 사족이라고 알고 있는 이들 상당수는 사실 기내사족이었다. 흔히 기호사족이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기내 사족이 옳다. 이들은 조선전기에는 앞에서 말한 대로 문화유씨 가정보나 선원계보에 등장하는 인물로 자기들끼리 혈연관계를 이루며 여말선초부터 성종 이전까지 무쌍의 권력을 누린 사람들이다. 그 이후 약 백여년간 앞에서 쓴 것 처럼 사림의 대두와 함께 영남 사족들이 중앙에 진출하여 기내 사족들의 독점이 깨지는 듯 하지만 이내 다시 권력을 독점하여 조선이 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흔히 우리가 조선 .. 2026. 5. 7.
조선시대 역사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 필자는 조선시대 전공자도 아니고, 전공과 관련 있는 일을 하다 보니 기웃거리는 문외한에 불과하다. 다만, 이런 것을 먼저 지적해 두고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누구 눈에나 다 보이지만 아이의 입에서나 그 사실이 먼저 나오는 법이다. 아래에 필자가 조선시대 역사를 보며 느낀 점을 두 가지만 적고자 한다. 첫째, 앞에서도 반복해서 썼지만 우리나라는 근대의 기점에 있어 대략 한 세기 이상 끌어올려 보고 있다.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는 서양사의 근세, early modern에 해당하는 시기는 아무리 올려도 영조대 이상으로 올릴 수 없다. 17세기 효종, 현종? 전부 서양으로 따지자면 중세다. 숙종대도 마찬가지다. 영조대를 거치면서 비로소 서양사의 근세에 가까운 징후가 나타난다고 본다. 소위 말하.. 2026. 5. 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