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855 도이가하마 유적[土井ヶ浜遺跡, どいがはまいせき, Doigahama Heritage] 이란 어떤 데인가? 이 유적을 신동훈 교수께서 계속 인용하며, 여러 번 소개하셨거니와 사전식 소개가 필요해 새삼 정리한다. 위키피디아 관련 일본어 항목을 대본으로 삼았음을 밝힌다. 이 유적은 야마구치 현山口県 시모노세키 시下関市 북북정豊北町 도이가하마土井ヶ浜에 소재하는 야요이시대弥生時代 전기 이래 중기에 걸쳐 만든 묘지墓地 유적을 말한다. 하마[浜]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바닷가 마을이다. 이는 이 유적 지도를 보면 명백하다. 특히 한반도와 관련이 밀접할 수밖에 없음을 이 지도로 볼 때 추정한다. 여담이나 한반도와 연결하는 일본 열도 상륙지점은 북큐수 말고도 저와 같은 지점도 이제는 본격으로 고려할 때다. 그 측면에서 이즈모 이야기는 있었지만 말이다. Doigahama HeritageExplore Doigahama Herita.. 2024. 5. 26. 죠슈번과 도이가하마 유적 앞서 야마구치현長州藩의 죠슈번長州藩이라는 곳이 일본 메이지 유신 이후 패권을 잡은 웅번雄藩으로 에도시대 소위 미토학水戸学 영향을 받아 번주藩主부터 일개 하급무사에 이르기까지 총단결로 근양양이 도막을 주창한 우리로 보자면 극우지역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 야마구치 현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며 한반도를 바로 마주 보는 곳에는 일본 굴지의 "도이가하마 유적土井ヶ浜遺跡"이 있다. 이 유적에 대해서는 이미 필자가 이 블로그에 3회에 걸쳐 연재한 바 있다. 따라서 검색하여 읽어보시기 바란다. 도이가하마 유적은 꼭 한번 직접 가 보시기 바란다. 시간이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참 어프로치가 나빠 이 유적은 차를 렌탈해서 가시는 것이 좋다. *** previous article *** 도이가하마 유적(土井.. 2024. 5. 26. 야요이인의 이주는 간단한 사실이 아니다 야요이인의 열도 이주는 간단한 사실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열도의 야요이인 정착촌이 초기부터 고도의 도작 농경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나온다는 점. 만약 한반도에서 혼합농경의 일부로 존재하던 도작이 그 순도가 높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열도로 건너갔다면 초기에는 한반도 형의 혼합농경이 시도되다가 점점 도작 일변도의 형태로 바뀌는 모양이 간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아는 한 야요이인 정착촌은 이런 방식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초기부터 상당한 수준의 도작에 바탕을 두고 시작되었다는 점. 이 말은 결국 한반도 남단에서 야요이인 정착촌과 방불한 촌락의 존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일본 열도로 흘러들어간 도작이 한반도를 거쳐갔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는 어쨌건 우리나라 고고학도들.. 2024. 5. 26. 아스완의 미완성 오벨리스크 이집트 아스완 Aswan 에 있는 3500년 된 화강암 채석장 granite quarry 소재 '미완성 오벨리스크 Unfinished Obelisk' 항공사진 이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여러 번 소개했지만 항공사진이 독특해 다시금 소환한다.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지금까지 세워진 어떤 고대 이집트 오벨리스크보다 거의 3분의 1이 크다. 길이 25m인 이 오벨리스크를 고대 이집트인들이 완성했다면 거의 41.75m 정도로 측정되었을 것이고 무게는 약 200마리 아프리카 코끼리와 같은 거의 1,090톤이었을 것이다. 이 오벨리스크는 1922년 레지널드 엥겔바흐 Reginald Engelbach 가 자세히 연구했다. 그 건설은 하트셉수트 Hatshepsut (기원전 1508-1458)가 지시했다. 오벨리스크의 상부에 .. 2024. 5. 26. 이거 원 남사스러워서 에로틱한 장면을 묘사한 이 그리스 킬릭스 Kylix 는 기원전 480년경 Late Archaic Period 에 만들었다. 앞으로 몸을 구부리고 걸상에 기댄 여자는 자세로 보아 노예 신분인 듯 하다. 왼쪽에는 줄무늬 테마의 패딩 쿠션이 놓인 소파가 있다. 보스턴 미술 박물관. 2024. 5. 25. 하기萩市 (2): 덴노에 대한 일편단심 야마구치 현과 이곳에 있었던 죠슈번은 야요이시대 초창기에 한반도로부터 건너온 사람들이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다.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큐슈 전체에 퍼져 나가 산 것이 아니라 큐슈 북부 지역 일부와 야마구치 현 일대에 먼저 나누어 살며 도작촌을 건설하였고, 그 이후에 세토내해를 따라 동진하며 서일본 일대에 야요이문화를 퍼뜨려 나갔다. 따라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야마구치현 일대에는 한국인과 비스무리 하게 생긴 사람이 많다. 대개 대륙계 야요이인이라고 하면 바로 이들 야마구치 현 일대의 사람들의 얼굴형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역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특별히 더 우호적일 이유는 없다. 오히려 이 지역은 막말 시기 막부에 맞서 덴노를 옹립하여 메이지정부를 수립하는 데 가장 격렬한 지지를 보인 번으로 .. 2024. 5. 25. 이전 1 ··· 1052 1053 1054 1055 1056 1057 1058 ··· 364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