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3100 한반도: 농경의 확산과 두 차례의 변화 한반도로 농경이 확산하는 단계에서 최소한 두 번의 변화를 우리는 점칠 수 있다. 첫째는 한반도에 먼저 들어와 있던 잡곡농경에 도작농경이 결합하는 단계다. 이 두 가지 농경은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도입 시기는 도작이 잡곡보다 늦고, 도작은 한반도로 넘어오자마자 북쪽은 관두고 남쪽으로 확산을 시작했을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북부 어딘가에서 도작과 잡곡농경이 대대적으로 합쳐지는 단계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혼합농경은 한반도 남부로 확산되어 갔을 텐데, 이 혼합농경은 도작과 잡곡의 하이브리드라 하지만 그 안에서 차지하는 도작 비율은 조선시대 전기 한반도 북부지역의 논 비율 10프로에서 볼 수 있듯이 그다지 크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러한 혼합농경이 남하해 가는 단계 그 어딘가에서 도작 .. 2024. 5. 24. 주사위 놀이를 즐긴 인더스문명 파키스탄 고대 도시 인더스 밸리 문명 Indus Valley Civilization (기원전 2600-1800) 하라파 Harappa 출토 테라코타 주사위 Terracotta Dice 1995년과 2001년 사이에 하라파에서 발굴하는 동안 잔해에서 점 dots 이 1~6개인 입방형 주사위 cubical dice 가 발견되었다. 모헨조다로에서도 많은 주사위가 발견되었다. 존 마샬 John Marshall 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 주사위는 모헨조다로 Mohenjo-daro 에서 흔한 게임이었다. 발견된 조각 수로 증명된다. 모든 경우에 그것들은 흙을 구워 만들었고 일반적으로 크기가 1.2 x 1.2 x 1.2인치에서 1.5 x 1.5 x 15인치 사이인 입방체다." 저 주사위가 한국문화엔 언제쯤 발.. 2024. 5. 24. 스파르타가 폭압적이었다고? 스파르타의 잔혹성, 무지, 동성애, 문화 부족에 대한 대중의 믿음 만큼이나 끈질기고 널리 퍼져 있는 선입견은 스파르타인들 Spartans 이 그들의 노예인 헬롯들 helots 에게 유난히 잔혹하고 억압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기원전 413년에 약 2만 명에 달하는 아테네 노예가 스파르타인으로 도망쳤다. 이 억압받고 착취당한 사람들에게 스파르타인들은 해방자였다. 스파르타의 헬롯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려면 https://spartareconsidered.blogspot.com](https://spartareconsidered.blogspot.com/ 2024. 5. 24. 딱정벌레 풍댕이를 숭배하는 사람들 다색 유리 페이스트 multicolored glass paste 와 준보석 semi-precious stones 을 상감 inlaid 한 금박 목재 gilded wood 로 만든 펙토럴 pectoral. 고대 이집트 신왕국 18왕조 또는 19왕조(기원전 1550-1186) 추정. 이 장식은 창조, 재생 및 태양의 떠오르는 신 케프리 Khepri 를 나타내는 큰 풍뎅이 딱정벌레 scarab beetle 를 중심으로 삼는다. 레 Re 신을 나타내는 태양 원반 상감 sun disc inlay 이 지금은 없어졌다. 풍뎅이 옆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두 자매 신 이시스 Isis (왼쪽)와 네프티스 Nephthys (오른쪽)가 있는데, 이들은 케프리를 숭배하며 두 팔을 들고 있다. 높이 10cm인 이 작품(AH 16.. 2024. 5. 24. 한국문명의 절반은 잡곡문명 우리는 잡곡농경을 폄하하면서도 고조선, 부여, 고구려는 한국 문명의 찬란한 부분으로 인식한다. 이들도 쌀밥을 먹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한국학계의 생각처럼 십이대영자와 정가와자가 전기고조선을 대표한다면 이들이 쌀밥을 먹었을 확률은 거의 없다. 이들은 기장과 수수, 조밥을 먹었을 것이다. 한국문명의 절반은 잡곡문명인데, 우리는 이 잡곡문명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잡곡문명은 도작보다 열등한 문명으로 인식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흔히 말하는 만주벌판을 뛰어다니던 우리 조상들은 쌀밥 먹던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노란색 기장과 조밥 빨간색 수수밥을 먹던 사람들이며, 이들이 한강유역을 차지할 때까지는 쌀밥 구경은 못하고 살았음에 틀림없다. 평양일대의 논 비율이 조선시대 전기까지도 10프로정도였는데,.. 2024. 5. 23. 7년전 금척리고분에서 오늘을 반추한다 2017년 5월 23일 나는 오세윤 작가랑 금척리 고분군을 어슬렁했다. 배얌이라도 구경하면 잡아서 놀 요량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배얌은 만나지 못했다. 지금은 경주역으로 간판을 바꾼 신경주역 앞짝 무슨 산이라 해서 패러글라이딩장이 있는 그 만데이도 올랐다 기억한다. 저 금척리 고분군은 내가 언제나 경주 분지 중심 감은사지까지 동부라인에 치중한 관광벨트 분산ㅊ차원에서 개발이 필요하다 주장한 곳이라 마침 경주연구소에서 파제끼기로 한 모양이라 단순히 파제끼는 건 의미가 없고 경주 도시계획 재정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주장한 바 미안하나 그 점에서 나는 연구소 역량을 회의한다. 내가 지금껏 본 연구소는 오직 파는 데만 혈안일뿐 그 판것으로 그 큰그림을 그리는 재주는 전연 없다. 그래서 나는 연구소 체질을 발굴 .. 2024. 5. 23. 이전 1 ··· 1264 1265 1266 1267 1268 1269 1270 ··· 385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