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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라는 폭력으로 지탱한 로마 제국 서기 2세기 무렵 Map of the Legions of the Roman Empire, 곧 로마의 지방 행정구역이라 하는데 유의할 점은 이 지방행정 구역이 실은 철저히 군단 중심으로 편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로마가 팽창 과정에서 문화를 달리하는 지역을 폭력으로 정복 지배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편제라 하겠다. 이 군단을 legion 이라 하거니와, 그 뿌리가 되는 라틴어가 레지오 legiō라, 이는 현대 군사용어에도 legion이라는 말로 살아있다.이 레지오는 로마 군대 조직 중 최상위 단위로 로마 시민 Roman citizens 으로 구성되었다. 공화정에서는 보병 4,200명과 기병 300명이었다. 그 기간인 기원전 107년 이른바 마리안 개혁 Marian reforms 이후 각 군단은 5.. 2024. 5. 24.
단양丹陽이라는 말, 적성赤城이라는 말, 그에 숨은 비밀 석회암 동굴 중에서 울진 성류굴처럼 신라시대 문자 자료가 잔뜩 나올 가장 가능성이 큰 곳은 단양이다. 왜인가? 이 단양을 진흥왕 시대에 이르기를 적성赤城이라 했다. 赤城이란 무엇인가? 신선들이 사는 궁전이 바로 적성이다. 지금 이름이 왜 단양丹陽이겠는가? 단양과 적성 같은 말이다. 丹을 아십니까? 동굴을 알아야 하고 신선을 알아야 하며, 그 신선됨을 궁극하는 수도 목표로 삼는 도교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왜 성류굴 말고도 구석기로 유명한 제천 점말동굴에 신라시대 각자가 있겠는가? 왜 동굴인가? 왜 현무암 동굴인가? 종유석이 장기간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져 불로장생하고 신선이 되는 약물로 간주된 약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 2019년 5월 24일 글을 보강한다. 2024. 5. 24.
로마서도 쓴 임시다리 부교浮橋 로마시대에도 강은 이런 방식으로 건너기도 한 모양이라 다른 점이라면 저짝에선 이미 그 시절에 시멘트 공구리 쳐서 상시로 수압을 견디는 석교를 건설한데 견즌어 이짝 조선 땅엔 근대 이전엔 그런 기술도 없어 걸핏하면 민간 어부들 고기잡이 어선 동원해 저와 같은 부교浮橋를 만들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시멘트 공구리 앞세운 압도하는 힘에 동아시아는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그 유일한 예외가 일본이다. 잽싸게 갈아타고선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 종말이 침략제국주의라서 그렇지 저 일본의 재빠른 변신은 인류사 대서특필할 사건이다. 2024. 5. 24.
다른 생산방식은 다른 정치체를 낳는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보면, 왜에 대한 기술에서 눈에 띄는 것이 이것을 정치적 성장이라고 보아도 되겠고,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본열도에서 보이는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통일이다. 필자가 보기엔 이는 야요이시대 이래 일본열도가 공유한 집적화한 도작 농경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한반도의 경우 물론 상당한 정치적 통합과 성장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지역별로 상당한 차이와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필자가 보기엔 이렇게 보이는 것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은 한국사의 배경이 되는 지역에서 보이는 각 지역별 농업생산의 차이에서 기인한 바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반도 북부에서 성립한 위만조선과 한 군현은 그 지역 농업생산 방식에 비슷.. 2024. 5. 24.
나가사키 만에 쳐박힌 여몽연합 일본정벌 선단 잔해 지난 10년간 일본국 나가사키현 다카시마 해역 조사에서 일본 정벌에 나선 고려몽고연합군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고선박 두 척 잔해가 발견됐다. 1호라 명명한 난파선은 해안에서 200m 떨어진 곳 수심 23∼25m 지점에서 일부 매몰된 상태로 발견됐다. 용골 keel 과 가보어드 garboards 는 분리된 상태며 격벽 bulkheads 은 없어졌다. 용골은 12미터에 이른다. 회수한 유물 중에는 밸러스트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돌탄 stone shot 과 벽돌도 포함됐다. 이 배는 중국 송나라와 명나라의 봉래호 Penglai ship 혹은 영파호 Ningbo ship 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비슷했다. 2호 난파선 역시 200m 떨어진 데서 13∼15m 깊이 두꺼운 퇴적층 아래 묻혀 있었다. 놀랍게도 용골.. 2024. 5. 24.
야요이 농경의 기원은 한반도 난대림 지역을 주목해야 논리적으로 볼 때 여기 말고는 일본열도에서 보는 고도로 집적한 도작촌의 발생을 예상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바로 한반도 남해안 난대림 지역에서 잡곡을 누르고 고도화한 도작촌이 형성되었다고 보며 이는 같은 한반도 남부 일대라 해도 난대림 이북의 온대림 지역과는 논의 비율에 있어 차원이 다를 정도로 높았을 것이라 본다. 어떻게 아는가? 쌀 농사가 됐건 잡곡 농사가 됐건 기온과 식생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온대림지역과 난대림 지역은 당연히 벼농사의 집적도와 고도화에 있어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바로 이 지역에서 야요이 도작촌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같은 송국리문화권이라고 해서 온대림 지역과 난대림 지역은 같은 모습의 농사를 짓고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후자.. 2024.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