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019 김치 카트 Kimchi Cart로 이사하던 나날들 편의상 내가 태어난 데를 김천이라 하나, 이는 도농통합에 따라 김천을 감싼 금릉군이 김천과 통합되면서 이르는 이름이요, 물론 통합 이전에도 금릉군과 김천시는 구별이 없어 김천이 상대적으로 도시 느낌이 나는 까닭에 금릉 사람들도 외지에 대해서는 다 김천이라 하기는 했지마는 김천과 금릉은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금릉을 통합한 김천은 면적이 1,010.05㎢라, 그 크기로 보면 605.2km²인 서울 딱 두 배다. 인구는 13만 5천 명으로 나오는데, 물론 내가 태어나고 자랄 때는 저보다 훨씬 많았으니 무엇보다 그때는 농촌이라 해도 지금과 같은 빈집투성이가 아니요 사람으로 바글바글하던 시절이다. 그 바글바글한 농촌, 이 시절을 그리워하는 글이 많이 보이는데, 그래 사람으로 넘쳐난 그 시절이 이른바 사람 냄.. 2025. 3. 4. [연구실 소식] 조선시대 미라 단행본 원고 탈고 영국의 고고학 전문 출판사에서 출간 예정인 조선시대 미라 단행본 원고를 탈고했다. 현재 공저자 확인 작업 및 교정 작업 중이다. 올해 안에 출판되어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Springer에서 낸 미라 단행본이 전 세계 미라를 아울러 다루었다면이번 단행본은 조선시대 미라에 집중하여 서술하였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필자의 조선시대 미라 연구가 약 20년 동안 얼마나 많은 분이 이 작업을 도와주었는가를 알았다. 사진을 쓰기 위해 열어보면 도처에서 도와준 분들이 있어이번 작업에는 그분들의 도움을 최대한 갚고자 그 부분을 배려하며 작업하였다. 이 책이 올해 말 출간되면 나는 비로소 20년동안 몸담아 오던 조선시대 미라 작업에서 해방되는 것인데, 이 세상엔 혼자 할 수 있는 아무것도.. 2025. 3. 4. [마왕퇴와 그 이웃-27] 곽말약의 실언 (?) 마왕퇴 발굴 조사에 위에서 엄호사격을 한 두 인물, 주은래와 곽말약도 문혁과 사인방 서슬에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는 것은 이미 말했다. 그 중 곽말약은 마왕퇴 때문에 한 번 크게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는데,그 사연은 이렇다.곽말약이 마왕퇴에서 발견된 1호 묘 미라가 도대체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 묻는 일본기자의 질문에 여담 삼아 했다는 이야기가 하나 떠돌았는데, 그 사연인즉슨, 서한 문제 때 황제와 이름 모를 궁녀 사이에 난 사내 아이가 곧 나중에 한 경제가 되었는데 문제의 아들을 낳은 후 질투하는 황후에게 쫒긴 그 후궁은 장사 땅에 몸을 숨겨 자신이 낳은 아들이 나중에 경제가 된 후에도 자신이 모친임을 알렸지만 경제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알려질까 두려워 하여 그녀를 장사땅에 모셔 두고 극진히 .. 2025. 3. 3. 무령왕릉 발견 50주년의 폭탄 선언 "관짝에 바닥이 없다!" 2016년 직설 무령왕릉(메디치미디어)을 내면서 나는 내심 무령왕릉은 향후 10년 간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고 봤다. 그만큼 나로서는 회심작이었고, 그만큼 자신 있었다. 그러면서 그 무렵까지 내가 생각하는 내 미답이기도 하면서 학계 전반하는 미답으로 남겨둔 게 두어 가지 있었으니 개중 하나가 그 묘권墓券 중에서도 매지권買地券이라 일컫는 그 문건이었으니, 이 문건은 글자 그대로 무령왕이 죽어서 지하 세계로 들어가면서 그 묘지로 쓸 땅을 돈을 주고 매입했다는 문건이려니와 계약 당사자로 등단하는 지하세계 귀신들이었으니, 이건 실은 내가 못 푼 것이 아니라 이후 과제로 남겨두었거니와, 이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청귀율女靑鬼律을 필두로 하는 위진남북조시대 도교 의례서를 뒤져야 하는데, 그에 대한 준비.. 2025. 3. 3. 왜 한 놈도 무령왕을 따지지 않는가? 무령왕릉은 누가 봐도 동시대 중국 벽돌무덤을 가져와 디자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감독한 기술자도 중국 사람, 더욱 정확히는 남조 양나라 공장이다.나아가 무령왕은 저 묘권墓券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라 양나라가 보증한 제후왕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의문은 이에서 돌발한다.한데 무덤이 왜 저 모양 저 꼬라지란 말인가?저때 중국은 황제만이 아니라 영동대장군쯤 되는 고관대작들로 저 딴 식으로 형편 없는 무덤을 만드는 일이 없다.무덤 주체만 해도 전실前室 후실後室을 두어 후실에다 무덤 주인공을 완치하며 그 앞실에다가는 각종 껴묻거리 잔뜩 넣는다.또 돈과 권력이 더 있음 이실耳室이라 해서 사람 얼굴로 치면 귀때기에 해당하는 부분에 별도 칸을 만들어 잔뜩한 기물을 쑤셔 박는다.한데 무령왕릉은 단.. 2025. 3. 3. [마왕퇴와 그 이웃-26] 마왕퇴 한묘에 대한 의문 마왕퇴 관련 책을 읽다보 니, 중국에서 대형 목곽 묘실제도가 완성된 것은 전국시대와 서한시대 사이인데이 시기에는 아직 관곽 바깥에 별도의 묘실을 쌓는 전통은 없었다고 한다. 제왕과 고위관료 등 무덤을 중심으로 관곽 바깥에 벽돌 등으로 별도의 묘실을 쌓는 전통은 서한 말에서 동한 초에 생겨난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마왕퇴에서는 묘실 없이 관곽만 보이고, 남월왕묘에서는 관곽 외에 별도의 묘실을 쌓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두 무덤 모두 서한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책에서 본 위 이야기가 정확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건 마왕퇴 한묘가 만들어지던 시대에 이미 고위급 왕공 무덤은 별도의 묘실을 두는 것이 한 흐름이었다면마왕퇴 한묘에서는 그것이 안 보인다는 점은이 무덤이 아무리 화려.. 2025. 3. 3. 이전 1 ··· 412 413 414 415 416 417 418 ··· 350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