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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2684

책 공해 시대, 국제간 교차 기증으로 해소해야 日 학자들 고고학·고대사 연구자료 10만여 권, 한국에 기증 송고시간2024-12-16 11:00 오사카시문화재협회, 내년 3월부터 영남문화유산연구원에 순차 기증 이런 국제간 장서 기증에 불을 붙인 이가 내 기억에 일본의 저명한 불교사 연구자 다무라 엔초 아니었는가 싶다. 이 양반인지 불교를 고리로 삼아, 또 당시 동국대는 황수영 선생 영향력이 상당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나아가 이번에는 거꾸로 한국 장서를 외국에 기증하는 분도 잇달았으니 서강대 봉직하던 동양사학도 전해종 선생이 대표적이라 내 기억에 이 양반 장서는 중국학도답게 상하이 복단대학으로 가지 않았나 한다. 외국에서 한국으로의 장서 기증은 이후 줄을 잇게 되는데, 특히 일본 쪽에서 한국으로의 유입이 압도적이라, 이는 지리적인 인접성에다가.. 2024. 12. 16.
외부에서 바라보는 탄핵 사태 이거 분명히 다른데, 뭐가 다른지는 실상 조금 더 성찰해 봐야 한다.한국에 있었다면 나 역시 탄핵 촉구 집회에 나갔을 테지만, 나는 여전히 기자 습성을 아직 버리지 못해 그 기록자로서 역할을 나 자신한테 더 많이 부여했을 것이다. 그런 현장에는 모름지기,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자리에는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지금이야 저와 같운 중요한 역사현장을 기록한 증언과 사진 영상이 넘쳐나는 듯하나, 저것도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어디로 사라졌는지 사진 한 장 구하기가 쉽지도 않다.기록은 그렇게 해서 무수히 영원히 망실해갔다. 한데 나는 지금 장기 출타 중이다. 이 출타 중에 이번 사태가 느닷없이 터졌으니, 국내에서 있었으면 했을 감정 표출과 그에서 한 발, 아니 만 발을 벗어난 유럽에서 체감하는 그것은 완전히 다.. 2024. 12. 15.
위대한 민주주의 승리? 웃기는 짬뽕 아닐까? 느닷없는 비상계엄 사태 선포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회의 계엄 무효 선언그리고 그에 따른 대통령 탄핵 발의와 탄핵 성공 이런 일련하는 흐름을 우리는 자화자찬한다.위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그러면서 이런 우리를 대견해 한다. 심지어 미국이라면 이러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이는 곧 외부의 시선을 염두에 둔 말인데 과연 외부에서는 이런 일련하는 흐름을 우리가 생각하듯 자랑스런 눈으로 바라볼까?천만에! 나는 그리 보지 않는다. 웃기는 짬뽕이라 바라볼 것이라고 본다.내부가 아닌, 여의도 시위현상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시칠리아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이 얼마나 한심하고 이 얼마나 웃기는 짬뽕이겠는가?난 그리 본다.괜히 민주주의 승리네 우쭐해 할 필요없다.외부에서 바라보는 그 누구도 그리 생각하지 않.. 2024. 12. 15.
나는 어떻게 논문을 썼는가 (2) 국성國性 내가 쓴 논문 중 가장 애착하고 가장 심혈을 기울였으며 가장 장대하게 쓴 글이 동아시아 상무정신의 발견이다.이건 포스코 청암재단에서 거금 천오백만원을 지원받아 그에서 발표하고 훗날 한국고대사탐구에 탑재까지 했으니, 이건 실상 동아시아 국민국가론이었다.동아시아에서 국민국가 nation-state를 어찌 만들어냈을까는 주로 정치학과 일부 역사학도가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지만, 나는 그 핵심 키워드로 저 상무尙武 정신을 들었으니, 그 이전까지 상무정신을 든 사람은 없다. 저 논문 발표 이후 상무 정신을 거론한 논문 몇 편을 봤는데, 다 내 논문을 인용했으니 내가 총구를 당긴 것만은 분명하다.이 상무정신을 적출하는 과정은 나중에 혹 기회가 닿으면 이야기하기로 하고, 저 논문은 내가 청암재단 지원대상이 되고 나서 .. 2024. 12. 14.
못난 아비 오늘 킨텍스 매장에서 최아영 군이 촬영해 나한테 넘겨준 사진들이다.훗날 나는 어떤 아비로 너한테 기억될지 모르나생평 살가운 말 한마디 없이 자식들 뒷바라지만 하고는 말년 5년을 병마와 싸우다 가신 네 할아버지와는 조금은 업그레이드한 아버지로 기억되었으면 원이 없겠다.내 아버지, 곧 네 할아버지는 거기까지일 수밖에 없었고 나 역시 여기까지일 수밖에 없다.부디 너는 네 할아버지 아버지보단 더 나은 아비로,그런 모습 네 자식들에게 물려준다면 나는 원이 없겠다. (2016년 12월 11일) *** 8년 전 오늘이라, 저때 나는 자못 비장했으니 왜 저랬는지는 모르겠다.그날 또 이른바 지름신이 잠깐 삼신할매 감나무 타고 내려오시듯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저 말은 내가 간 뒤에도 아들놈이 새겼으면 하기에 전재한다. .. 2024. 12. 11.
나는 나에 대한 일상의 사관이 되어야 한다 말처럼 쉽지 않다. 나 역시 그리해야 한다 매번 굳은 결심을 하지만, 용두사미라 하루이틀 하다가 흐지부지 그만두고 마는 일이 습성이 되었다. 아끼다 X된단 말이 있다. 물론 꼭 아끼려 해서 그런 것은 아닌데, 오후에 하지, 내일 하지 하다간 어영부영 하다가 영영 묻고 만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가?물론 모든 이야기를 까발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내 시시콜콜한 일상을 남들이 다 알아야 하는 이유도 없기는 하지만일기 쓰듯이 그날 주요 일상은 그날그날 처리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고 나는 본다. 훗날을 위해서다. 그 훗날 그것을 회고록 집필에 이용할지 어떨지는 모르나, 내가 분명 어느 때 어떤 자리에 갔는데, 그런 종적을 남겨놓지 아니해서 애를 태우는 일이 한두 번인가?그 훗날 꼭 쓰임이 다시 있을런지 아닌.. 2024.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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