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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노 부부 뒷골 땡긴 가봉 가면, 대마도 불상의 아바타 프랑스서 21만원에 판 나무가면 알고보니 60억 유물 2023-12-20 00:02 프랑스 노부부, 가치 모르고 팔았다가 소송 제기했으나 패소 가봉 팡족의 '은길 가면'…피카소·모딜리아니 작품에 영감 프랑스서 21만원에 판 나무가면 알고보니 60억 유물 | 연합뉴스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프랑스의 한 노부부가 중고상에게 헐값에 넘긴 나무 가면이 고가의 희귀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중고상... www.yna.co.kr 서구에선 다락방 물건이 주로 이런 소동을 빚는다. 우린 요새 다락방 혹은 쥐 세상인 천장이 급격히 사라지는 바람에 이런 횡재? 는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암튼 팔십대 프랑스 노부부가 다락방에 있던 가면 모양 나무 조각을 고물상한테 아주 헐값 단돈 150유로에 나뭇값 정도.. 2023. 12. 20.
[조선 세종시대의 장영실] (7) 장영실을 어찌 볼 것인가?(完) 7. 장영실을 어찌 볼 것인가? 이와 같이 훑으니 장영실은 그 아비가 테크노크랏으로 아마도 고려 말 무렵 국제정세 혼란기를 틈타 조선에 정착하니, 조선에서는 그를 붙잡아 두고자 관기를 아내로 주었던 듯하다. 이를 발판으로 장영실 역시 특히 광물학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동래현 소속 관노로 있다가 태종 시대에 중앙에 발탁되어 상경한다. 그가 죽 관적(官籍)을 둔 분야는 무반이었으니 이는 아마도 광물을 만지는 일이 무기 제조와도 밀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방원에게 굄을 받은 그는 세종한테도 총애를 얻어 때론 내시가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런 그가 출세한 사건은 익히 알려졌듯이 자격루 제작이다. 자격루는 세종 자신이 직접 도안 설계했다. 하지만 이 설계를 구상으로 해체하는 일은 장영실이 담당했다. 따라서.. 2023. 12. 20.
[조선 세종시대의 장영실] (6) 자격루를 넘어 흠경각으로 6. 자격루를 넘어 흠경각으로 자격루를 제작한 장영실은 이번에는 다른 시계 제작에 나선다. 세종 20년(1438) 1월 7일 기사 중 하나다. 흠경각(欽敬閣)이 완성되었다. 이는 대호군 장영실(蔣英實)이 세운 것이나 그 규모와 제도의 묘함은 모두 임금의 결단에서 나온 것이다. 각은 경복궁 침전 곁에 있다. 이를 기념해 세종은 우승지 김돈(金墩)에게 명하여 그 기념비를 쓰게 하니 그 중 한 구절이다. 상고하건대 제왕이 정사를 하고 사업을 이루는 데에는 반드시 먼저 역수(曆數)를 밝혀서 세상에 절후를 알려 줘야 하는 것이니, 이 절후를 알려 주는 요결(要訣)은 천기를 보고 기후를 살피는 데에 있는 것이므로, 기형(璣衡)과 의표를 설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상고하고 징험하는 방법이 지극히 정밀하여 .. 2023. 12. 20.
[조선 세종시대의 장영실] (5) 테크노크랏의 전성시대 5. 테크노크랏의 전성시대 이를 즈음해 그 전후 약 10년이 내가 보기에는 장영실의 전성시대다. 바로 앞에서 말하는 자격루는 실제는 2년 뒤인 세종 16년, 1434년 7월 1일을 기해 보루각(報漏閣)에 설치해 쓰기 시작했다. 이 보루각 위치를 나는 모르겠다. 아마 경복궁 근처 어디일 것이다. 이 날짜 실록에는 “이날부터 비로소 새 누기(漏器)를 썼다”고 하면서 그 제작 및 작동 원리를 대서특필한다. 이에서 설명하는 원리를 과학 문외한인 내가 설명할 수는 없다. 이를 현대 과학자들도 제대로 복원해 내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야 겨우 경복궁 안 국립고궁박물관에 하나를 복원해 놓았다. 장영실이 제작한 자격루는 보루각(報漏閣)이라는 곳에다가 설치했다. 그러고는 지금의 천문연구원에 해당하는 서운관(書雲觀) 관리들에.. 2023. 12. 20.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기획전 <알브레히트 뒤러, 문자와 삽화> 전시품(사진)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기획특별전 소식은 아래로 비교적 상세히 전했거니와 북유럽의 다빈치 알브레히트 뒤러, 인천을 오다 북유럽의 다빈치 알브레히트 뒤러, 인천을 오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기획특별전 북유럽의 다빈치'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를 만나다 12월 19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전시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ürer (1471~1528)는 내 세대에는 매우 익숙한 외 historylibrary.net 이 자리에서는 저에서 충분히 소개하지 못한 출품작을 사진을 통해 자세히 보기로 한다. 이 전시 반드시 봐야 한다. 그만큼 지금 놓치면 다시 만나기 힘든 자리다. 2023. 12. 20.
[전문직으로서의 학예직, 그 이상야릇한 처지를 보며] (4) 그 복사판 전문기자 조금은 느닷없을 듯한 학예연구직 이야기를 연속으로 내가 쏟아낸 이유는 몇몇 분은 눈치챘을 법한데 실은 내 이야기인 까닭이다. 학예연구직을 둘러싼 아주 똑같은 논란이 언론계에서는 실은 전문기자제를 둘러싼 그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아주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전문기자제는 언론이 지향해야 하는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라 해서 그 어떤 언론도 그리 나아가야 한다 주창하고 실제 그를 위한 움직임이 적지 않게 있었지만 내 보기엔 몇몇 기자 빼고선 종국엔 다 파국을 빚고 말았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기는 학예직제랑 전문기자제가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나마 전문기자라 해서 그런 자리 지키는 경우는 한국언론에서는 오직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 보직 부장 혹은 그 이상을 하고 난 경우가 그나마 전문기자로 상대로 안착을 한다. 왜.. 2023.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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