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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그 자체가 환경파괴 개발과 오염이 싫다며 농촌으로 시골로 산속을 향하곤 한다. 하지만 농업 자체가 실은 환경 파괴의 주범이다. 가을녁 벼로 온통 누른 들녁을 바라보며 혹자는 젓소부인 몇배나 되는 거대한 젓통 드리운 젓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대관령 목장을 바라보며 목가와 자연을 꿈꾸겠지만, 그 자체가 필연의 환경 파괴 소산이다. (2015, 8. 12) *** 돌이켜 보면 상식을 파괴하는 이런 어처구니가 한둘이리오? 2023. 8. 13.
읍내 사통팔달 떠나 초등학교 교정으로 간 계배기 구자곡초등학교 내 계백장군상과 군청 앞 계백장군상 (2016. 8. 13) *** 본래 부여 읍내 지금 성왕 상이 들어선 그 지점 사통팔달하는 자리에 있지 않았나 해서 부여 심상육 선생한테 부탁해서 그 소재를 탐문해서 당시 그가 찍어준 사진들이다. 현장을 아직도 나는 확인하지 못했다. 안내판에 의한 저 조각 내력은 다음과 같다. 제막일 : 1966년 7월 31일 제작지: 윤석창尹錫暢(1936년 5월 2일 생, 조각가) 설치이력 : 이 계백장군동상은 1965. 10 - 1966. 7까지 당시 부여 백제중학교 미술교사 윤석창 선생님(1975년 작고)이 제작하여부여군청 광장에서 전 김종필 국무총리 주관으로 제막식을 성대히 치른 작품으로 1980년대초 논산시로 옮겨와, 1985년경부터 현 구자곡초등학교 교정에 .. 2023. 8. 13.
2016 한국의 성곽 특집 월간미술 최신호가 한국의 성곽을 특집으로 마련했다. 이 잡지가 이 기획을 할 무렵에 한두 마디 거든 인연으로 내가 과분하게도 한 꼭지를 맡았다. 나는 정비복원의 실상을 교각살우라는 키워드로 짚어봤다. 발굴 부분은 한백문화재연구원장 서영일 형이 집필하고 조선시대 도성 관방체계는 조두원 박사가 했다. (2016. 8. 13) *** 하도 이곳저곳 싸지른 글이 많아 기록 차원에서 적기해 둔다. 2023. 8. 13.
식민지시대 책값, 금값에 연동한 조선은행권 1) 일제강점기, 조선은행권은 금태환이라고 해서 화폐가치가 금값에 연동되어 있었다. 명목상 1원은 금 0.2돈. 곧 금 1돈이 5원이었다. 지금 금 1돈에 35만원 남짓이라니 1원이면 대강 7만원쯤. 2) 지난번에도 한번 말했는데 그 시절 어지간한 연활자본 문헌 가격이 3~4원이었다. 지금 한 권에 20~30만원짜리 책이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호화판이거나 그럭저럭 드문 고서 정도? 그때 책값이 결코 싼 게 아니었다. 3) 금값 기준으로, 일제 때 1만원이라면 대략 7억원으로 환산할 수 있겠다. 언뜻 적게 느껴질지도 모른다마는, 기와집 한 채가 2천원이었다니 1만원의 실질가치는 7억 그 이상이었을 터. 그렇다면 그 액수를 아무렇지 않게 차용할 수 있었던 이의 부는 얼마나 컸다는 얘기일까. 2023. 8. 12.
[공립박물관을 진단한다] (1) 같은 사안을 바라보는 극단의 눈 같은 사안을 어찌 바라보느냐에 따라 대처 방안 역시 달라지기 마련이라 지방자치제 재도입 이래 지역을 활개하는 박물관 신설 증축 움직임 또한 마찬가지라 내가 비록 이를 위한 기초 조사에 막 들어가고, 또 전국 이백여 군데 이른다는 지역 공립박물관 중 이제 겨우 열 군데. 남짓한 실질 조사와 관련 취재를 한 데 지나지 않으나 그렇다고 내가 이른바 문화재업계라 해서 발 담근지 물경 25년이라 그에서 보고 들은 것이 어찌 허투루하기만 하겠는가? 이 지역 공립박물관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가장 중요한 데가 중앙정부, 구체로는 박물관 미술관 인허가 평가라는 권능을 장착한 문화제육관광부의 그것이 가장 중요한데 왜인가? 목줄을 쥔 까닭이라 언제까지는 신축하라 독려만 하던 문체부가 야금야금 통제를 강화하다가 요새는 평가인증.. 2023. 8. 12.
느티나무 숲을 갈아치운 장성 땅 사쿠라 동산 1926년 04월13일 《每日申報》에는 호남제일의 장성앵화 기사가 있다. 여기 앵화櫻花는 앵두꽃이 아니라 벚꽃이다. 장성읍 성산리 동산공원이 그곳이란다. 사진으로 보면 상당히 이른 시기에 벚나무를 식재한 듯하다. 동산공원을 지나는 옛 호남대로는 남면 영신역부터 장성 갈재까지 느티나무가 줄지어 선 아름다운 길이었다. 장성을 지난 구봉령(具鳳齡, 1526~1586)이 자꾸 槐라고 쓴 것은 이 괴목을 이르고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은 〈호상사〉에서 줄지어 늘어선 관괴(官槐)라고 썼다. 관에서 심어 가꾸었던 느티나무였던 듯하다. 그러나 1926년이면 이 관괴들이 거의 사라진 듯하다. 이후 동산공원에는 동산신사가 세워졌고, 근래에는 은행나무가 식재되었다가 뽑아 옮겼다. 2023.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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