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907 월성 인골 발굴현장 탐방 (2017) 월성 성벽 인골 발굴 현장을 찾은 까닭은 이것이 과연 성벽 축조와 관련한 인신공희人身供犧인가를 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 발굴 양상이 혹여 무덤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므로 보통 무덤에서 보이는 묘광墓壙의 흔적이 있다면 무덤 위에다가 성벽을 축조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인신공희 설은 물건너가고 만다. 이 점을 경주문화재연구소 조사원들도 매우 주의깊게 살폈다 하며 실제 내가 현장에서 관찰한 바로도 성벽 축조 일환으로 인신을 공희한 것은 분명하다. 이 시신 두 구는 성벽 아랫단 소위 부엽층敷葉層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매장행위임에 분명한 이상 동시대 무덤 매장 방식과 궤를 형성한다. 첫째 머리 방향이 북동쪽이란 점이다. 둘째 묘광 같은 굴광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매장패턴을 따라 시신 .. 2023. 5. 20. 북한이 우리일까? 아니 우리였을까? 진보 성향을 표방하는 이들에게 아킬레스건은 내 보기엔 북한이다. 특히 북한 인권 문제는 늘 아킬레스건이다. 그들은 속내는 어떤지 모르지만 늘 우리 민족을 주장했다. 그런 그들이 봉착한 모순이 남한의 인권에는 이를 악물면서도 북한의 그것에는 늘 입을 다문다는 점이었다. 실제 내 보기에는 입을 다물었다. 아니 부러 외면했다. 북한을 둘러싼 이런 사정은 요즘도 크게 변한 듯하지는 않다. 이에서 이른바 종북이라는 이상한 색깔논쟁이 발발한다. 이것이 내 보기엔 왜 아킬레스건인가? 그 반대편이라는 이른바 조중동에서는 이를 호되게 비판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이런 얘기를 했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제 목소리를 내는 쪽은 조중동이며, 이것이 역설이라고. 한데 이른바 진보성향에서는 나의 이런 지적에 늘 사시나무 떨 듯.. 2023. 5. 20. 좌절한 신라왕경 복원계획 경주시가 추진한 신라왕경 복원계획은 좌절되었다. 며칠간이나 그제나 저제나 언론보도가 날 것 같아 기다리다가 아무데도 언론 보도가 없어 내가 대신 한다. 문화재위원회는 요저납시 세계유산 사적 건축의 3개 분과 합동회의를 갖고 경주시가 확정한 신라왕경 복원 계획을 보고받았지만 문서는 반려했다. 이날 문화재위는 경주시가 신청한 이 계획을 "검토할 가치조차 없다" 해서 경주시의 문서 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문화재위 50여년 역사에서 문서 접수 거부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위가 이리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경주시의 왕경 복원 계획이 경주 시내 중심지역의 사업 대상지들인 월성과 황룡사지 등등이 '복원' 중심이었던 까닭으로 알려졌다. 황룡사지에다가 9층 목탑과 강당을 세우겠다고 했는가 하면, 월성에는 신라.. 2023. 5. 20. 같은 50주년이라는데, 갑갑하기 짝이 없는 점말동굴 조태섭 옹이 근자 거의 은거 칩거 상태라, 그 칩거한 데가 동굴인 모양이라, 마침 올해가 한국 동굴유적 중요성을 알린 제천 점말동굴 발굴 5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라 이 사건은 한국고고학에서 대서특필해야 한다. 작금 국가 주도로 올해가 천마총 발굴 50주년이라 해서 적지 않은 돈을 쏟아부어 각종 홍보에 열을 올리거니와, 실상 그 홍보라는 내용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어 전연 새로울 것 없는 생존 조사원들 불러다 밥상 차리는가 싶더니 급기야 황남대총에 누가 묻혔느냐 하는 철 지난 불장난까지 치는 장면을 목도하고는 돌부처도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같은 해에 발굴된 이 점말동굴은 단순한 하나의 동굴유적에 그치지 아니한다. 조태섭 명의로 된 저 안내문이 왜 점말인가 왜 동굴유적인가를 웅변하거니와 그럼에도 저를.. 2023. 5. 20. 도전과 응전으로만 점철한 한국사 토인비는 인간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 (challenge and response) 의 이야기라고 했다던가. 도전과 응전의 결과가 결국 그 문명의 생존이라고 본다면 한국의 역사는 어쨌건 성공적이다. 청동기시대 이래 수천년의 문명사 동안 짧은 이민족 통치기를 제외하면 거의 본토인의 역사가 이어졌고 21세기 들어서도 성공적으로 역사의 흐름에 적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사가 도전과 응전의 기술이 지나치다는 점에 있다. 한국사를 보면 주변 역사와 두드러진 차이는 역사기술의 뼈대가 이민족의 침략--격퇴--침략--격퇴의 끝없는 반복으로 점철된 듯 보인다. 아마 비슷한 역사라면 베트남사 정도가 될 텐데 이 두 나라 역사는 외세침략과 격퇴를 빼고 나면 사실상 역사서를 탈탈 털어보면 그 외의 부문의 기술은 매우 부.. 2023. 5. 20. 아랍세계 최대 도시, 카이로는 이렇게 탄생했다 by 유성환 [여기는 카이로였습니다] 이제 카이로를 떠나 한국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오늘날의 카이로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아랍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만 멤피스(Memphis) • 테베(Thebes) • 룩소르(Luxor) 등 고대 서아시아 세계를 호령하던 유서 깊은 도시들과 비교하면 그 역사가 겨우(!) 1,300년 남짓인 신도시입니다. 그리스 지배기(기원전 332-30년)부터 멤피스는 쇠퇴하기 시작했고 로마 지배기(기원전 30년-기원후 395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로마 제국은 멤피스 북쪽에 "이집트의 바빌론"(Babylon-in-Egypt)이라는 대규모 요새를 건설하여 멤피스를 대체하려 했습니다. 기원후 451년 칼케돈 공의회(Council of Chalcedon)를 계기로 동방정교회(Eas.. 2023. 5. 20. 이전 1 ··· 1789 1790 1791 1792 1793 1794 1795 ··· 365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