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877

세형동검과 마운령 마운령이 우리 역사에서 상당히 장기간 동안 경계선 역할을 했으며 이는 신라 시대 (진흥왕순수비), 고려시대 (윤관 북벌) 등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할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흐름이 상당히 오래전까지 소급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쓰려 한다. 세형동검이 유행하던 시기-. 우리나라 세형동검 분포는 다음과 같다. 조진선 선생 단행본에서 취한 그림이다. 위 그림이 우리나라 세형동검 분포도다. 이전에는 이를 "청천강 이남"이라고 했었다. 세형동검 분포도를 보면, 여러 개 권역으로 나뉘는데 그 중 동해안쪽으로는 동북부지역권이 있다. 이 지역이 바로 고조선시대 임둔, 그리고 한군현 시대 임둔군이 되는 지역으로 세형동검 집중 분포지 중 하나다. 이 지역 안에 점이 찍힌 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2022. 12. 24.
용인 서리 고려백자요지의 과거와 현재 지난 12월 22일, '용인 고려백자요지의 콘텐츠 개발 및 활성화 방안'이라는 주제의 학술대회가 용인문화원, 경기학회,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 공동주최로 개최되었다. 약 20일 전에 이번 학술대회에서 '서리고려백자요지 정비사업 운영 현황과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의뢰받았다. 짧은 준비기간이었지만, 학술적 가치에 대한 부분은 다른 발표자가 맡기로 하였으므로, 이번 발표에서는 학술적 가치와 의미, 중요성보다는 그동안의 조사, 정비 과정과 앞으로 정비 방향에 대해서 정리하였다. [일제강점기 ~ 1990년대 유적 변천 과정] 용인 서리고려백자요지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일본인 학자 아사카와 노리타카(淺川伯敎, 1884∼1964)에 의해 발견되었다. 아사카와 노리타카는 일본의 조각가로 동생인 아사카와 다쿠미.. 2022. 12. 24.
강릉 고려성, 강릉 일대 여진을 방어하기 위해 고려가 쌓은 성 편집자注 - 아래는 《고려성의 역사성 고찰과 복원계획 수립 학술용역 보고서》 (강릉시·강원고고문화연구원, 2022)를 발췌한다. 원의는 훼손하지 않고 문장은 손댔다. 하도 동해안 쪽 관심은 적은 듯해서 열불 나서, 말갈론 여진론을 토대로 깔아 정리한다. 강릉 고려성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508-1 일원에 위치하는 석성石城이다. 성 동쪽에는 안인항과 정동진을 잇는 7번국도(율곡로)와 동해안에 접하고, 서쪽에는 괘방산이 남북으로 능선을 길게 뻗었으며, 남쪽에는 정동캐슬과 하슬라미술관이, 북쪽 약 300m 지점에 등명낙가사가 있다. 율곡로에서 등명낙가사 주차장으로 들어오면 관광안내도 옆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길(괘방산로)이 있으며, 길을 따라 약 460m를 이동하면 민가와 인접하여 고려성 서벽이 드러.. 2022. 12. 24.
고려의 사민徙民과 발해민의 투항 1. 고려전기는 조선전기 만큼이나 활발히 북진이 이루어지던 시기로 고려 태조의 건국 이후 약 100년간 압록강 하구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흥미로운것은 고려 전기에는 사민 기사가 많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누락되었을 수도 있지만, 완전히 없지는 않으니 대표적인 것이 아래 몇 가지다. 서경에 사민하라는 전교 (918년): 丙申 諭群臣曰, “平壤古都, 荒廢雖久, 基址尙存. 而荊棘滋茂, 蕃人遊獵於其間, 因而侵掠邊邑, 爲害大矣. 宜徙民實之, 以固藩屛, 爲百世之利.” 遂爲大都護, 遣堂弟式廉, 廣評侍郞列評守之. 서경에 고관대작 집안을 이주시키라는 전교 (922년): 是歲, 徙大丞質榮·行波等父兄子弟, 及諸郡縣良家子弟, 以實西京. 幸西京, 新置官府員吏, 始築在城. 親定牙善城民居. 남쪽 백성을 북쪽으로 옮기라는 전교.. 2022. 12. 24.
화외化外로서의 여진과 탐라, 고려가 발명한 야만 고려사절요 제1권 태조 신성대왕 (太祖神聖大王) 을유 8년(925), 후당 동광 3년ㆍ거란 천찬 4년 ○ 11월에 탐라(耽羅)에서 지방의 산물을 바쳤다. 고려사절요 제1권 태조 신성대왕 (太祖神聖大王) 신묘 14년(931), 후당 장흥 2년ㆍ거란 천현 6년 ○ 이해에 안북부(安北府)와 강덕진(剛德鎭)을 설치하고 원윤(元尹) 평환(平喚)을 진두(鎭頭)로 삼았다. 왕이 유사에게 이르기를, “북번(北蕃) 사람은 얼굴은 사람꼴이지만 마음은 짐승과 같아서, 굶주리면 오고 배부르면 가버리며 이익을 보면 부끄러움도 잊는다. 지금은 비록 우리에게 복종하여 섬기고 있지마는, 따르거나 배반함이 일정치 않을 것이니 마땅히 지나가는 주ㆍ진에는 관사(館舍)를 성 밖에 지어서 그들을 접대하라." 하였다. 고려사절요 제4권 정종 .. 2022. 12. 24.
조선 세조시대 양성지의 삼국사기 독후감 세조 34권, 10년(1464 갑신 / 명 천순(天順) 8년) 8월 1일(임오) 2번째기사 양성지가 군법·군정·군액·군제·사역에 관한 일로 상서하다 군정軍情을 보살피는 일. 신臣이 평일에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보니, ‘우리 나라 사람들이 중국인[漢人]과 싸우면 열 번 싸울 때 일곱 번 이기고, 왜인倭人과 싸우면 열 번 싸울 때 세 번 이기고, 야인과 더불어 싸우면, 열 번 싸울때 다섯 번 이깁니다.’고 했다. *** 양성지梁誠之는 생몰년이 1415~1482이라, 이른바 사육신, 그리고 수양대군과 대략 동시대를 태어나 그들과 동시대를 호습했으니, 그는 특히 역사지리학에 조예가 깊어 조선전기 문물 흥성에는 그가 빠지지 아니했다. 2022. 12. 2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