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9527 낙랑군 만주설을 주장한다고 재야는 아니다 동북아역사지도 논란은 실은 낙랑군 위치 논쟁이다. 낙랑군이 평양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소위 재야의 거센 반발에 저 지도는 개판이 되었다. 역비에서 이번 사태를 공박하며 재야를 비판하는 젊은 고대사학도들 비판이 실렸다 한다. 그걸 일부 언론이 요약 보도하면서 다시 입방아에 오른다. 낙랑 재평양설을 주장하는 역사학을 식민사학이라 규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이보다 더 강력한 고고학적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가장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이에 토대한 주장을 식민사학이라 규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더불어 그 반대를 주장한다 해서 재야사학이라 몰아부치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이른바 주류강단사학은 게임 끝났다고 하면서 툭하면 낙랑토성에 전축분에다가 근자 공개된 낙랑 호적 목판을 동.. 2021. 3. 5. 우물안 개구리가 논하는 천하 어떤 책에 이렇게 쓰였으니, 훌륭한 분이 말한 바이니 믿고 따르는 이를 많이 본다. 이런 이를 가리켜 눈 뜬 장님이라고 한다. 책을 읽을 땐 반드시 쓴 목적이 무엇인지 살피지 않으면 그 저자가 판 함정에 빠진다. 더 가관은 그 함정에 빠진 개구리가 하늘을 논한다는 것이다. 성호 이익의 는 사료를 읽는 전근대인의 자세를 옅볼 수 있다. 그러나 사료를 보는 자세로는 불완전하다. 천하의 일이 대개 10분의 8~9쯤은 천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서(史書)에 나타난 바로 보면 고금을 막론하고 성패(成敗)와 이둔(利鈍)이 그 시기의 우연에 따라 많이 나타나게 되고, 심지어 선악과 현불초의 구별까지도 그 실상을 꼭 터득할 수 없다. 옛날 사서를 편력하여 상고하고 모든 서적을 방증(旁證)하여 이리저리 참작하고 비교.. 2021. 3. 5. 500년전 행주기씨가 보던 책이 일본 동양문고에 18대조 정렬공(貞烈公) 기찬(奇襸, 1444~1492)께서 직접 보셨던 책이 집에 전하지는 않는데, 일본 동양문고에 있는 《예기대문(禮記大文)》이 공께서 보셨던 책이었다. 그 책에는 奇襸 士贇 이라는 장서인과 德陽 世家 라는 장서인이 있다. 士贇은 사윤 또는 사빈으로 읽을 수 있으니 공의 자이고 덕양은 오늘날 고양시인 행주의 별호이니 행주기씨와 같은 말이다. 불에 탄 것은 있어도 왜놈 손에 종이 한 장 넘기지 않았다는 가친의 말씀에 따르면 이미 조선시대에 다른 집 책이었던 듯하다. 이 책을 수집한 이가 기무라 마사코토(木村正辭, 1827~1913)로 경상도에 살았던 일가의 소장인이 찍힌 책이 그의 컬렉션에 있는 것을 보면 그 집안에 소장되었던 듯하다. 2021. 3. 5. 《징비록》의 이순신 로직 logic 조선군이 궤멸한 상황에서 오직 이순신이 있었기에 누란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나도 동의) 그의 군사적 활동은 영웅적이었다. (나도 동의) 그런 이순신을 누가 등용했어? 나야 나...나 류성룡이야 이런 영웅의 등장에는 곡절이 있어야 한다.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면 재미없자나? 서애가 무슨 말 하는지 들어보자 "내가 순신을 천거하였더니 정읍현감에서 수사(水使)로, 차례를 뛰어넘어 임명되어서, 사람들이 혹시 그가 갑작스레 승진된 것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내 말 맞지??? (2015. 3. 5) *** 이것이 서애 류성룡이 《징비록》을 쓴 이유 중 하나다. 아니 가장 큰 목적이다. 이렇게 해서 서애는 임진왜란 책임론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징비록》이 참회록이 아니라 변명록이 된 가장 큰 줄기가 바로 이순신이.. 2021. 3. 5. 《징비록懲毖錄》의 이데올로기 《징비록懲毖錄》 초반부를 관통하는 얼개는 1. 일본의 침략은 없다고 호언장담한 김성일에 대한 무한한 옹호 변명 2. 신립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 3. 그에 대비되는 이순신의 등용 이 세 가지다. 이것만 봐도 류성룡柳成龍이 《징비록》을 통해 무엇을 겨냥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무엇을 겨냥했는지가 왜 《징비록》을 쓰야했는지에 대한 답이며 그것이 곧 《징비록》의 이데올로기다. (2015. 3. 5) *** 임란 직전 통신사 일행 중 넘버투 부사副使로 일본을 댕겨온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1538~1593)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과는 달리 그런 의도가 없다는 보고서를 올린다. 하지만 임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야마 꼭대기까지 돌아 김성일을 추포해 국문케 하거니와 이때 서애西厓(1542~.. 2021. 3. 5. 하롱베이의 죽은 석회암동굴 티엔꿍 Thien Cung Cave 하롱 베이 티엔꿍 동굴 Thien Cung Cave 라는 곳이다. 중국어를 조금만 알면 이 말이 천궁天宮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영어 가이드도 Heaven Palace라 설명한 듯하다. 이 동굴은 내부에 물이 전연 없어 죽었다. 바싹 마른 미라 느낌이다. 혹 우기가 아닌 건기인 까닭인가 살폈더니 그럴 가능성 제로다. 무분별한 개방이 참사를 불러오는 듯 하다. 오물이 두텁게 쌓였더라. 관람을 제한하고 보존처리가 필요한 듯 하다. 보통 석회암 동굴이라면 미끌미끌한 바닥과 톡톡 소리내며 떨어지는 물방울을 기대하지만 이 동굴은 성장을 멈추고 휴거 상태이므로 동굴의 사막화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동굴이 죽은 원인이 인간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자연 순환의 원리인지 알 수는 없으나 자연이 죽인 동굴을 인간이 제2차 죽.. 2021. 3. 5. 이전 1 ··· 1958 1959 1960 1961 1962 1963 1964 ··· 325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