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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리(倉助利) 고구려 봉상왕~미천왕 시대 국상이다. 남부 대사자 출신으로, 봉상왕에 의해 국상으로 발탁됐다. 모용씨 침입에 고구려가 시달리자 고노자를 발탁해 막았으며, 봉상왕 말년에는 잇단 재해에도 왕이 대규모 공사를 일으키자 간했자다 말을 듣지 않자, 다른 사람들과 모의해 왕을 몰아내 자살케 하고 을불, 곧 미천왕을 맞아들여 정국을 안정시켰다. 삼국사기 권 제49(열전 제9) 창조리 전 : 창조리(倉助利)는 고구려 사람이다. 봉상왕(烽上王) 때 국상(國相)이 되었는데 그때 모용외(慕容)는 변경의 걱정거리였다. 왕이 여러 신하에게 말하기를 “모용씨의 군사가 강하여 여러 차례 우리 강역을 침범하니 어찌하면 좋겠소?” 하니 창조리가 대답하였다. “북부의 대형(大兄) 고노자(高奴子)는 어질고도 용감합니다. 대왕께서 침략을 .. 2018. 3. 13.
서천(西川) 신라 선덕여왕 11년(642)에 벌어진 백제와의 대야성 전투 당시 도독 품석의 보좌관으로, 신라 쪽 정세가 불리해지자 백제 장군 윤충과 백제에 항복하자고 품석을 설득했다. 하지만 백제가 배신하는 바람에 항복하는 길에 백제군에 살해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관위는 아찬이었다. 삼국사기 권 제47(열전 제7) 죽죽 전 : 죽죽(竹竹)은 대야주 사람이다. 아버지 학열(郝熱)은 찬간(撰干)이 되었다. 죽죽은 선덕왕 때 사지(舍知)가 되어 대야성도독 김품석(金品釋) 휘하에서 보좌역을 맡고 있었다. 왕 11년 임인(백제 의자왕 2·642) 가을 8월에 백제 장군 윤충(允忠)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그 성을 공격했다. 이보다 앞서 도독 품석이 막객(幕客)인 사지(舍知) 검일(黔日)의 아내가 예뻐 이를 빼앗았으므로 .. 2018. 3. 13.
을지문덕(乙支文德) 고구려 영양왕 23년(612), 고구려를 침략한 수나라 백만 대군을 살수에서 몰살함으로써 대승을 이끈 고구려 대신이다. 기타 그의 가문 내력과 행적을 알 수는 없다. 삼국사기 권 제44(열전 제4) 을지문덕 열전 :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그의 선대의 계보를 알 수 없다. 자질이 침착하고 날쌔며 지략과 술수가 뛰어났고, 겸하여 글을 알고 지을 수 있었다. 수나라 개황(開皇) 연간에 양제(煬帝)가 조서를 내려 고구려를 치게 하였다. 이에 좌익위(左翊衛) 대장군 우문술(宇文述)은 부여도(扶餘道)로 나오고, 우익위(右翊衛) 대장군 우중문(于仲文)은 낙랑도(樂浪道)로 나와서 아홉 개의 군부대와 함께 압록강에 이르렀다. [을지]문덕(文德)이 왕명을 받아 그 진영에 나가 거짓 항복하니, 사실은 그 허실을 엿보기 위함.. 2018. 3. 13.
요극일(姚克一) 신라말을 대표하는 서예가. 생몰년은 알 수가 없다. 대안사 적인선사 탑비문(大安寺寂忍禪師塔碑文)과 황룡사 구층목탑 찰주본기(皇龍寺九層木塔刹柱本記), 삼랑사비문(三郎寺碑文)이 현재까지 확인되는 그의 글씨다. 신라 경문왕 12년(872) 8월 14일에 세운 곡성 적인선사 탑비문을 보면 관직이 중사인(中舍人)이고, 그해 11월 25일에 쓴 황룡사 목탑 찰주본기에는 관직이 숭문대랑 겸 춘궁 중사성신(崇文臺郎兼春宮中事省臣)이다. 삼랑사비문은 박거물(朴居勿)이 글을 썼다.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 요극일(姚克一)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벼슬이 시중겸 시서학사(侍書學士)에 이르렀는데 글씨에 힘[筆力]이 있었고 구양(歐陽)의 솔경법(率更法)을 터득했다. 비록 글씨는 김생에 미치지 못했지만 또한 뛰어난 솜씨였다... 2018. 3. 13.
영양왕(嬰陽王) 고구려 제26대 왕으로 재위는 590~618. 평양왕(平陽王) 혹은 대흥왕(大興王)이라고도 했다. 이름은 원(元) 또는 대원(大元)이며 평원왕 맏아들이다. 수 문제와 수 양제가 각각 30만 대군과 113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공하자 을지문덕을 시켜 살수에서 물리쳤다. 삼국사기 권 제20 고구려본기 제8 영양왕 : 영양왕(嬰陽王) 은 이름이 원(元)이고 평원왕 맏아들이다. 풍채가 뛰어났다.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자신의 일로 여겼다. 평원왕이 재위 7년에 태자로 삼았고, 32년에 왕이 훙하자 태자가 즉위했다. 수나라 문제가 사신을 보내 왕을 상개부 의동삼사(上開府儀同三司)로 삼고, 요동군공의 작위를 이어받게 하였으며, 의복 한 벌을 주었다. 2년(591) 봄 정월에 사신을 수나라에 보.. 2018. 3. 13.
[인명사전] 원효元曉 신라 중대 고승으로 담날의 아들이고 설총의 아버지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설총 열전 : 설총薛聰은 자가 총지聰智이고 할아버지는 나마 담날談捺이며 아버지는 원효元曉인데, 처음에 승려가 되어 불경을 두루 통달하고 얼마 후에 환속하여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했..(중략)..세상에 전하기는 일본국 진인眞人이 신라 사신 설薛 판관判官에게 준 시의 서문에 『일찍이 원효거사가 지은 금강삼매론金剛三昧論을 읽고 그 사람을 보지 못한 것을 깊이 한탄하였는데, 신라국 사신 설씨가 거사의 손자라는 것을 듣고, 비록 그 할아버지를 보지는 못하였어도 그 손자를 만나니 기뻐서 이에 시를 지어 드린다.』고 했다.삼국유사 권 제1 기이 1 태종무열왕 : 에는 이렇게 말했다. “총장總章 원년 무진(戊辰; 668, 총장總章 무진.. 2018.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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