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5730 독자더러 엿먹으라는 문화재안내판 유적 조사 후 전경 조사결과, 건물지 관련 입사독립기초 24기와 잡석독립기초 2기, 그리고 입사줄기초가 확인되었다. 입사독립기초와 잡석독립기초는 형태와 크기 등을 고려했을 때, 남측으로 트인 'ㄷ'자 형태의 건물지 1동으로 추정되고, 조사지역 북측에서 확인된 동-서 방향의 입사줄기초는 'ㄷ'자 형태의 건물지와 관련된 북측 담장 하부 기초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북측에 동서 방향의 담장을 두었고, 그 남측에 남향하는 ㄷ자 평면 형태의 건물을 두었는데, 북측 중앙에 안채를 두었고 그 동서 양측 끝에서 남측으로 꺽어서 행랑을 두고 동측의 남측에 동측으로 꺽어서 사랑채를 둔 것으로 추정된다. 유감스럽게도 이 안내판은 실물이다. 이렇게 쓴 놈도, 이런 안내판을 세우도록 한 놈도 얼이 당당히 빠졌다. 2022. 4. 18. 화재 대참사 노트르담성당이 토해 낸 중세 납 뚜껑 3년 전 불탄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오래된 석관 발견 현혜란 / 2022-04-16 02:04:28 유골 상체 등 들어있어…중세시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3년 전 화재로 망가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오래된 석관이 나왔다고 AFP 통신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프랑스 국립문화재보존연구원(INRAP)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지하 1m 깊이에 묻혀있던 석관을 성공적으로 꺼냈으며, 법의학 연구소에서 조만간 개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3년 전 불탄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오래된 석관 발견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3년 전 화재로 망가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오래된 석관이 나왔다고 AFP 통신이 15일(.. 2022. 4. 18. 정조는 개혁군주인가? 그리고 다산은? 조선시대의 소위 개혁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인물 중 도대체 어느 구석이 개혁적이라는 것인지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분들이 둘 있는데, 첫째가 조광조요, 둘째가 정조이다. 이 두 분은 내가 아는 한 성리학 원리주의자에서 단 한 발자욱도 이탈한 양반들이 아니다. 한 분을 굳이 더 추가해 본다면 다산도 그런 면이 좀 있다고 보는데, 필자가 지난 1년간 참여하는 강독회에서 다산의 논어고금주를 잔뜩 기대를 가지고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다산 경학이 개혁적이라면 도대체 어떤 구석이 그렇다는 것인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분명히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필자의 지식이 얕아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을 수도 있겠는데.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처럼 오랫동안 항상 의심스러웠던 이야기를 적은것이니 양해 바란다. 정조.. 2022. 4. 17. 한국사는 왜 만주를 잃었는가 삼국시대에 당의 침입으로 한번 만주를 상실하고, 뒤이어 만주일대에 세워진 발해가 요에 의해 멸망함으로써 완전히 만주는 한국사에서 분리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사건에서 생각을 해방시킨 다음 아래 그림을 보자, 중국의 기후변동 도표이다. 한반도와 만주도 비슷하게 평균기온이 움직이고 있었다고 본다면, 농사가 잘 되는 지역은 삼국시대 후반기와 통일신라시대 초반에 피크를 찍었다가 그 후 점점 추워지는 현상을 보이지 않는가? 이렇게 되면 농사를 제대로 짓는 한계선도 점점 남쪽으로 내려갈수 밖에 없다. 송화강유역에서 오곡 농사를 짓던 부여는 고려시대가 되면 그 농사꾼들은 모두 어디가버리고 사냥꾼만이 횡행하는 땅이 되어버렸을까? 이처럼 "농경이 후퇴"한 현상은 한국인이 만주땅을 잃었기 때문에 벌어진.. 2022. 4. 17. 일본과의 격차가 가장 급격하게 벌어졌던 시기는... 흔히 생각하는 조선의 중흥기라 일컬어지는 시기인 숙종-영조-정조 연간. 이때가 내 느낌으로는 일본과의 격차가 가장 급격하게 벌어졌던 시기였다고 본다. 일반적인 조선사에 대한 인식과는 약간 다르다고 할수 있겠는데, 숙종-영조-정조 연간에 물론 조선도 많이 회복했겠지만, 문제는 일본의 발전 속도는 이 시기에 훨씬 더 빨랐다는 것. 이 기간 동안에 벌어진 격차가 축적되어 회복 불가능한 상태까지 가버린것이 19세기의 모습이지, 그 이전까지 잘 나가던 조선이 19세기에 돌연 내려앉은 게 아니라는 뜻. 19세기 조선의 모습에는 숙종-영조-정조 연간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2022. 4. 16. 東海道中膝栗毛가 그리는 에도시대 예나 지금이나 물류와 교통은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전통시대에 자본주의의 맹아란 결국 물류와 교통에서 그 징후가 강하게 나타날수 밖에 없다. 이런의미에서 에도시대 제1의 간선이라 할 도카이도 역참의 정경을 묘사한 도카이도쥬히자쿠리게를 한번 읽어보실것을 권한다. 에도시대 말 일본의 숙박업소의 정경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20세기 한국에서도 볼수 있었던 여행지의 기본적인 숙박시설의 틀-관광, 식사, 숙박, 요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요소가 이미 에도시대 말에 출현해 있었다. 여행자들은 화폐만 가지고 있다면 큰 무리 없이 토쿄에서 쿄토에 이르는 먼거리를 여행할 수 있었으며 숙박지마다 宿場의 호객행위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아직 이 책의 완역본이 나와 있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다. 2022. 4. 16. 이전 1 ··· 2744 2745 2746 2747 2748 2749 2750 ··· 428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