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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諫臣 vs. 간신姦臣 내 직업이 글쓰기인지는 모르겠다. 아닌 듯한데 그렇게 보시는 분도 있을 것이므로 일단 여기서는 그렇게 간주한다. 이런 글쓰기(나는 이를 자주 야부리로 표현한다)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늘 조심해야 할 점 중 하나가 청중이, 독자가, 시청자가 듣고 싶은 말만 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개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로 좋은 작가는 그들이 불편해야 하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글쓰기는 시종 유혹과의 백병전이다. 하지만 이런 문화가 용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듣고 싶지 아니하는 말을 들을 여유, 혹은 그런 문화가 조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가? 뭇매 맞기 십상이라, 듣고 싶지 않은 말은 곧 매장과 동의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지금 이 순간 한국사회 곳곳에서.. 2019. 6. 11.
특이사항 없던 하루 우리 공장에선 편집총국장 주재 부장단 오전회의가 사라지고, 총국장 산하 에디터별 아침회의가 있어, 그것을 종합해 총국장이 에디터들과 오전회의를 한다. 어제 아침 에디터회의 정치부...문통 유럽 갔고, 별거 없는데요한반도부...헝가리 좀 지켜봐야겠고 별거 없는데요문화부...별거 없는데요. 오분만에 회의 쫑! 연초장에서 에디터를 만났다. "엥? 승님 벌써 나오셨소?""없네 암것도...다른 부서도 똑같아. 이런 날이 없었는데..." 특이사항 없는 하루가 온종일 그렇게 흘러갔다. 다이내믹 코리아답지 않은 하루였다. 한데 조금, 아주 조금 켕기는 게 있었다. 아침회의에서 정치부장이 한마디 던졌다. "이희호 여사가 계속 안 좋네요. 주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의 타계를 새벽에 접했다. 초저녁에 뻗은 까닭이다. 보.. 2019. 6. 11.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10): 에필로그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약속한 대로 조선시대 회곽묘 관련 선행 연구를 소개한다. 아래 연구에 필자의 글은 많은 영향을 받았다. 먼저 조선초기 상장의례의 변천은 정종수 선생의 중앙대 대학원 박사논문 "조선초기상장의례연구"에 자세하다. 이 논문은 회곽묘만 다룬 논문은 아니지만 조선 전기 주자가례를 도입하는 과정의 논란과 변천에 대해 서술하였다. 고려시대의 석실묘가 조선시대의 회곽묘로 변천해 가는 과정도 자세히 다루었다. 정종수 선생 다음으로 회곽묘의 변천과 관련하여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김우림 선생의 "조선시대 사대부 무덤 이야기 (민속원)"를 권한다. 이 책이 나오기 전 김우림 선생의 글은 회곽묘의 변천을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글이었는데 이 책에 이전 주장이 알기 쉽게.. 2019. 6. 11.
33rd WHC at Seville, Spain, 2009, where Joseon Royal Tombs inscribed on the World Heritage List The 33rd WHC (World Heritage Committee) held at Seville, Spain, 26 June 2009, where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were inscribed on the World Heritage List 2009년 6월,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올해로 조선왕릉 등재 10년. 이를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문화재청 주최로 열리는 모양이다. 당시 한국기자로는 유일하게 내가 참가했다. 당시엔 문화재청이나 외교부에서도 이에 즈음한 별도 사진촬영이나 동영상 자료를 남기지 않을 때라 이 당시 회의장 전경과 등재 순간 모습을 포착한 사진은 나밖에 촬영하지 않았다. 지금 첨부.. 2019. 6. 10.
Excavation of Pungnaptoseong Fortress, 2011 Excavation of Pungnaptoseong Fortress by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Seoul, Nov. 11th, 2011 國立文化財硏究所 漢城 風納土城 東壁 切開調査, 2011年11月 16日 당시 이 발굴 현장에는 느닷없이 가는 바람에 사진기가 없어 폰카로 이렇게 남긴 것이 나로서는 유일하다. 그것을 보정하여 게재한다.사진 속 밀집모자 옆이 오늘날의 풍납토성을 있게 한 주인공 이형구 선문대 교수다. 발굴지점은 동벽 중에서도 이른바 태양열주택지구라 해서 풍납동 아산병원과 가까운 지점이다. 그 발굴지점을 대략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성벽 절개조사는 이것이 두번째다. 1999년 첫번째 절개조사지점은 대략 다음과 같다. 같.. 2019. 6. 10.
'새로운친구', 언제나 내가 먼저 입력한 전화번호 언젠가 한 말인데, 내 버릇 중에 그런대로 괜찮다는 급으로 평가할 만한 것으로 즉각적인 연락처 정리가 있다. 이런 버릇이 한창 체득화할 때는 명함을 받자마자 그 자리서 전화번호와 그 사람 직책과 이메일 정도를 입력하고는 다른 사람한테 쓰라고 명함을 돌려주곤 했으니, 이런 버릇이 그런 대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여전했다. (참고로 난 명함 기재 자동 어플인지 뭔지는 안 쓴다. 초반기 쓰다가 때려쳤다.) 그러다가 요새는 나 역시 게을러져서인지, 아니면 바쁘다는 핑계여서인지는 몰라도 그런 연락처 정리가 더뎌지기만 해서, 심지어 한동안 쌓인 명함이 지갑에서 떼거리로 쏟아져 나오기도 하니, 그렇게 쏟아진 명함을 일일이 정리하는 일도 보통 고역이 아닌지라, 요새는 노안까지 심해져 그 작은 명함 글씨가 잘 보일 리도 없.. 2019.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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