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358 21세기 서당은 어떠해야 하는가? 21세기 서당은 어떠해야 하는가? 김태식 연합뉴스 아들놈의 서당 체험 2019년 지금은 신주단지 모시듯 해야 한다는 그 유명한 고3생인 아들 얘기다. 언제쯤인지 기억은 가물가물하나,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한 살 터울인 그의 이종사촌 동생과 더불어 대략 열흘가량 지방의 어느 서당학교에 인성교육이란 프로그램에 보낸 적이 있다. 집사람이 주동해서 일으킨 ‘사변’이었다. 얼추 5~6년이 흐른 지금, 나는 새삼스레 그때 기억이 떠올라 집사람한테 물어봤다. “무엇 때문에 애들을 서당에 보냈소?” 대답은 이랬다. “애가 하도 산만해서, 어딘가 봤더니 서당에 보내면 좋다 해서 그래서 보냈지.” 교육내용이 어땠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들놈한테 다시금 물어보고 싶으나, 다시는 그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하는 듯해서 말조차 꺼.. 2019. 5. 4. 서당문화진흥회에 찬조출연하고서 도포 자루 걸친 분들 앞에서 마이크 잡아봤다. 21세기에 걸맞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나? 서당에서 방탄소년단 노래도 가르칠 수 있고 영어공부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마침 휴무일이라 발표가 가능했다. 주자 고향 복건성 남평南平에서 주자학교 관계자들과 그 학생들이 대거 왔다. 듣건대 주자사례朱子四禮가 작년 복건성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며 4년 뒤엔 국가지정 문화재 지정 자격이 주어진다 한다. 북한도 그렇고 중국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무형문화재에 대한 명칭이 비물질유산이다. 그나저나 중국어를 배우긴 해야는데 쉐쉐 밖에 모르니 한심하도다. 2019. 5. 4. 잠삼한테 속아선 안된다 중국 문단에서는 이른바 변새시(邊塞詩)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하고, 나 역시 그의 시작을 대할 때면, 이 친구 능력은 얼추 비슷한 시대를 살다간 이백과 두보의 그것에 못지 않은 천재급이라 그는 고선지와 봉상청과 같은 군벌 막부에서 세크레테리로 활동하면서 지금은 중국에 속한 신장위구르 방면에서 근무한 전력을 충분히 살려, 그의 시는 온통 고향 장안을 향한 그리움과 그에 빗댄 황량한 사막을 무지막지 표출함으로써 폐부를 찌르르곤 한다. 한데 잠삼이 노래한 척박의 그 땅을 우리는 비행기로, 버스로 그가 애환한 것들을 즐감하니 이런 세상이 올 줄 지금은 뼈다귀조차 남지 않았을 잠삼이 꿈이라도 꾸었으리오? 그의 시에는 사막이 모래바람과 추위로 점철하지만 그 반대편에 위치하는 각종 낭만은 일부러 배제해 버렸다. 왜? .. 2019. 5. 4. 꽃우박 쏟아진 순천順天 선암사仙巖寺 문화재 기자 오래 했다 하면 다들 많이 봤겠지 이런 덴 물어볼 필요도 없겠지 하겠지만 서울은 차 타고 가는 곳이 아니라 책으로 읽고 테레비로 보는 데라 선암사라는 곳이 그러했다. 우짜다 그런 선암사를 딱 한번 가게 되었으니 그날 나는 선암사 하면 떠오르는 그 다리를 첨으로, 내 눈으로 봤다. 그날이 이맘쯤이라 하필이면 비가 제법 내렸는데 빗물 머금은 수풀 창포기름 발라 튀긴 두릅 같았다. 연무가 장관이라 그 연무 속으로 풍경은 제자리 멈춤이었다. 뒤안 돌았더니 꽃잎이 우박처럼 쏟아졌더라. 선암사는 꽃우박이다. 산란한 내 맘 같아 무척이나 씁씁했다는 기억 아련하다. 2019. 5. 4. 돌잡이, 무엇을 잡든 너 하고싶은대로 살아라! NIKE 광고 화면 중 (캡처 화면이기에 동영상 지원은 되지 않습니다.) 다들 돌잡이 때 무엇을 잡으셨나요? 기억이 나지 않으신다구요. 그럼 만약에 자식이 있다면, 손주가 있다면 돌잡이 때 무엇을 잡았으면 하나요? 청진기? 연필? 뭐니뭐니해도 돈?! 아이가 잡았으면 물건이야 각양각색 다르겠지만, 자라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아이가 태어나서 무탈하게 1년을 보냈다는것은 매우 기쁜 일이고, 가족 친지들이 모여 돌잔치 주인공을 축하해 줍니다.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과거에는 태어나서 1년을 버텼다는 것이 대견하고, 아주 큰 경사였을 겁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더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돌상을 차려주고, 돌잡이를 통해 아이의 장래를 점쳤습니다. 온양민속박물관 돌상 전시 .. 2019. 5. 4. 신주단지가 된 최치원, 정읍 무성서원井邑武城書院 최치원을 정말로 신주단지로 모신다는 정읍 무성서원井邑武城書院을 찾은 때는 봄날이었음에도, 한여름 같은 날이라, 나른함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이 그림 같은 풍광 저편 어딘가에 무성서원이 똬리를 튼다. 지금은 풍광이 사뭇 변해 지금은 동네사람들 휴게하는 자리, 혹은 버스 휴게실 정도겠거니와, 저곳에 벌러덩 자빠졌다. 이 일대가 그 옛날에 녹록치 않은 지위를 차지했음을 보여주는 안내판이라랄까? 주변으로 저런 석불입상과 삼층석탑이 있다는 사실은 현장 방문을 통해 비로소 알았으니, 결국 무성서원 다음으로 저들을 찾아 나섰다. 무성武城은 이 일대를 지칭하는 이전 지명이라, 그러고 보니, 중앙 정계를 떠난 치원 公이 이곳 태수인가를 지냈다는 흔적을 어딘가에선 본 적 있는 듯하거니와 실상이 어떻든, 그는 조선 유학의 .. 2019. 5. 4. 이전 1 ··· 3420 3421 3422 3423 3424 3425 3426 ··· 389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