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느 도시에나 사방을 조망하는 교회 종탑이 있기 마련이고 그 종탑은 거개 유료로 꼭대기까지 오르도록 개방을 하는데
이태리 중부 내력 산상 타운 오르비에토 역시 마찬가지라
혹 내 기억이 착란했는지 자신은 없으나 그 산중 중앙을 정좌한 첨탑을 오늘 애들이랑 올라보니
기시감이 없어 저번 방문에선 지나치지 않았나 모르겠다.
기시감이 없으니 설혹 이전에 올랐다한들 잘 올랐다 싶다.
중간 정도까진 엘레베이터가 있어 그걸 이용했지만 꼭대기까지 상당한 인내를 요할 정도로 여전히 많은 나선형 계단을 밟고 올랐으니 죽을 맛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전엔 이 천애절벽 둔덕을 50미터나 파고 내려간 그 유명한 성 패트릭 우물을 오르내린 까닭이었다.
이 우물은 물이 없는 산상 타운 물을 찾아 땅속 깊이 물이 나오는 데까지 원추형으로 파고 내려갔으니 참 살겠다고 별짓 다한 흔적이 녹록하다.
이리 불편한 데다 왜 도시를 만들었겠는가?
놀라운 건 애들 반응이라 그 아래 도착해서는 절벽 위 정좌한 도시를 보더니 대뜸
아크로폴리스네
하는 것 아닌가?
아테네 코린토스 아크로폴리스 봤으니 지들이라고 왜 보는 눈이 없겠는가?
그에다가 내가 보태기를
죽지 않기 위한 발악이었다. 얼마나 외부 적이 두려웠으면 이런 데가 저런 동네를 만들었겠느냐?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내가 저런 산상 타운을 보면서 항상 무엇을 생각하라 했느냐? 물이다. 물이 없으면 사람이 죽는다.
그래서 저런 산상 도시를 건설할 때 제일 먼저 고려한 것이 바로 물이었다. 물이 나오는 데가 있는가? 없는가? 없는 데는 도시를 만들 수 없다.
그렇담 물이 나오는 지점은 사람들이 어찌해서 찾는가?
이 지점에서 애들은 벌써 철저한 교육이 이뤄졌다.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말이
"풀이요. 물이 있는 데서 자라는 풀이 있는가 없는가? 그걸 보고 물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알아냈어요. 미나리 같은 종류요."
내가 한 마디 더 붙였다.
"나무도 중요하다. 특히 미류나무. 미류나무는 물이 없는 데는 없다. 미류나무가 있는 데는 물이 있다."
역시 애들한테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닫힌 정적인 공간보다는 이런 광활함을 주는 야외가 어울린다.
애들도 다 좋다 연발하니, 나 듣기 좋으라 하는 빈말은 아닌 듯해서 적이 기분이 좋았다.
***
다녀온 그날 써놓고선 공간을 하지 못했다가 지금에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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