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실히 나는 더는 기자가 아니다.
현직에서 퇴직한 일도 그러려니와 퇴직 이후엔 반언론 흉내내며 개인 블로그형 언론처럼 행세하기는 하지만
확실히 더는 기자가 아니다.
근자 같은 사안 두 가지 일이 있었으니
모두 전곡 구석기 유적 발굴 관련이다.
전곡선사 유적 인근 아파트 예정지를 겨레문화유산연구원이 몇 년 전 파고서 그 발굴보고서가 아주 최근에 나왔으니
그 발간 직후 나는 그 보고서 피디에프를 김기태 원장한테 요청해 받고선 그날로 뽀갰다.
내가 이해하는 보고서 요지는 크게 두 가지 정도다.
첫째 전곡유적의 생성 시점.
이번 조사를 진행하면서 연구원은 현무암 암반층까지 파고내려가고 그 위 지질문화층 연대를 모조리 측정했다.
현무암은 대략 40~50만년전 형성됐다.
그러니 때려죽어도 전곡 구석기 유적이 저 연대를 넘을 수는 없다.
조사단과 연구원은 대략 30만년쯤이면 문화층이 시작한다 봤지만 천만에.
그 초기 문화층 출토품이란 걸 보니 빈한하기 짝이 없고 그 석기들이 그 문화층이 확실하다는 근거를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전곡 구석기는 그걸로 보건대 대략 십만년 전 어간이 주축임은 명백하다.
십만 내지 십오만년 전으로 보아 대과가 없다.
다음 그 빌어먹을 주먹도끼.
보고서를 보고선 짜증이 밀려왔다.
저 주먹도끼를 필두로 양면석기라 해서 보다 큰 테두리를 설정한 것까진 오케이.
암튼 주먹도끼 포함 각종 양면서기가 총합 57점이라 이는 한반도 전체 지금껏 출토한 양면석기보다 분량이 많다.
이 두 가지는 내가 기자였다면 대서특필하기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딴 데는 관심이 없었다.
더는 기자가 아니란 뜻이다.
저 주먹도끼 중 한 점이 조사단 일원인가 박성진 선생이 대따시 큰 것 한 점을 주목해 별도 논문을 투고 공간하고 그걸 공유하니 이한용 선생까라 구석기로 먹고살아야 하는 구석기 학도들이 광분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몹시도 의구심 증폭했으니
이걸로 봐도 나는 더는 기자가 아니었다.
대신 나는 다른 것들을 묻고 있었다.
첫째 짜증이라 했으니 양면도끼를 주먹도끼 포함 도대체 몇 가지로 잘라 세부 분류를 했는지 그 분류 놀음이 나를 분노케 했다.
그걸 만들어 쓴 구석기인들이 과연 저 보고서가 말한 것과 같은 그런 세분하는 용도로 구분해서 쓰임을 달리했겠는가 물었거니와
이 점에서 나는 몹시도 분노했다.
어쩌다 구석기까지 역사고고학도 분류 형식학 놀음에 저리 놀아나는가 나는 분노했다.
다음 주먹도끼 주먹도끼 하는데 도대체 저 주먹도끼 신화가 어디까지 가려는지 모르겠다는 분노도 일었다.
저 대따시 주먹도끼만 해도 내가 암만 봐도 만들다 버린 것 같다.
왜?
쓰임이 제로인 까닭이다. 쓸 데가 없다.
골수 빼먹어?
너 같음 저 딴 돌로 골수 빼먹니?
그냥 강돌이 그런 데는 최고다.
왜 가공석기만 생각하는가?
가공하지 않은 석기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암튼 이런 짜증들이 먼저 밀려들었으니 나는 더는 기자가 아니며
더 엄밀히는 고고학 비평가라 해야겠다.
비평가는 냉소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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