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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건축론] (3) 금천禁川, 흔적기관으로 남은 해자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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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금천교

 
나는 앞선 글에서, 그리고 매양 무덤은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인 까닭에 그 근본 디자인 역시 같다는 말을 누누히 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 우리가 착목하고자 하는 문제가 금천禁川과 금천교禁川橋다.

금천이란 무엇이며 금천교는 또 무엇인가? 

간단히 정의하면 금천은 왕이 지배하는 절대 배타의 공간과 왕이 지방관을 통해 간접 통치하는 구역 경계 지점을 통과하는 물길이다.

금천교는 이 두 구역을 연결하는 통로요, 그것이 가로지르는 물길이 금천인 까닭에 그리 부른다. 

다만 금천 혹은 금천교라는 이름은 다른 이름으로 얼마든 일컫을 수 있다. 
 

 
살아서 사는 집 왕궁이 금천과 금천교가 있으니, 이걸 그대로 저승 세계로 가져간 왕릉 또한 당연히 금천과 금천교가 있다. 

이런 금천은 대개 왕궁 남대문 인근을 통과한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잖겠는가? 

나아가 금천과 금천교는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른 이칭으로 일컫기도 한다.

창덕궁의 경우 발음은 같지만 한자 표기가 다른 錦川橋라 하고, 경복궁의 경우 영제교永濟橋라 한다. 다 통칭하면 금천교다.  

한데 이 금천은 물길, 금천교는 교량이라 하지만 실은 조선왕궁이나 왕릉에서 보이는 그것은 실상 퇴화를 거듭한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실용이라는 측면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빼내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마치 사람 꼬리뼈처럼 내가 강이다,

내가 다리다 라는 형적만 남긴 데 지나지 않는다. 
 

조선왕릉 금천과 금천교 위치

 
금천과 금천교가 흔적기관이라면 그 흔적이 된 뿌리가 있을 것 아닌가?

그 뿌리는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해자다. 

해자는 성벽 안팎을 가르는 또 하나의 경계선이다.

성벽이 하늘로 솟은 데 견주어 해자는 땅으로 파고 들고 근간에서는 돌이나 흙을 채워 쌓아올리는 성벽과는 달리 물을 채운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물론 물을 구하기 힘든 데서는 물을 채우지 않고 그냥 도랑으로만 남기니 이를 마른 해자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이 아마 경희궁 금천교 아닌가 한다만.



나는 조선왕궁은 동아시아 건축디자인에서 돌발이라 했다. 중국 일본 왕궁에서는 다 있는 해자가 왜 없느냐고 물은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조선 왕궁은 해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해자라는 표시만 금천으로 남았다. 

그것이 해자라는 근거가 필요가 있겠는가?

첫째 물길이요 둘째 경계 기능이라는 점에서 근간이 똑같다.

결국 조선왕궁이나 조선왕릉에서 모름지기 남대문 인근에 설치하는 금천이야말로 바로 해자, 그 variation인 것이다. 



*** previous article ***


[건축론](2) 조선왕궁, 동아시아 건축의 돌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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