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 Alexander the Great왕 또는 알렉산더 3세 Alexander III (알렉산드로스, 기원전 356년 7월~기원전 323년 6월)는 마케도니아Macedonia 왕(재위 336~323)이자 고대의 가장 위대한 군사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필리포스 2세 아들인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지도를 받았으며 일찍부터 군사 천재성을 발휘하여 18세에 카이로네이아Chaeronea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기원전 336년 암살된 아버지 뒤를 이어 즉위해서는 테살리아Thessaly와 트라키아Thrace를 빠르게 정복하고 신전과 핀다르 집house of Pindar을 제외하고는 테베Thebes를 잔인하게 파괴했다.
이 가혹한 방법을 본 다른 그리스 국가들이 굴복했다.
기원전 334년에는 페르시아로 건너가 그라니쿠스Granicus River 강에서 페르시아 군대를 격파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프리기아Phrygia에서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을 끊었는데, 이 일로 아시아 전체를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운명의 점지였다.
기원전 333년 이수스 전투 Battle of Issus 에서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가 이끄는 또 다른 군대를 격파하니 그들은 도망쳤다.
그 후 시리아와 페니키아를 점령하고 항구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차단했다.
기원전 332년에 그의 가장 큰 군사적 업적인 티레Tyre 포위 공격을 7개월간 완수한 다음 이집트를 점령했다.
그곳에서 그는 파라오의 이중 왕관double crown을 받고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했으며 아몬Amon 신전을 방문하여 신성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강화했다.
동부 지중해 연안을 장악한 그는 기원전 331년 가우가멜라Gaugamela에서 다리우스를 결정적으로 격파했지만 다리우스는 다시 탈출했다.
그 다음 알렉산더는 바빌론Babylon을 점령하고 기원전 330년에는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에 있는 크세르크세스Xerxes 궁전을 불태웠다.
그는 마케도니아인과 페르시아인이 공동으로 통치하는 제국을 상상했다.
그는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부하들 사이의 음모를 진압하고 옥수스Oxus 강과 작사르테스Jaxartes 강을 장악하고 자신의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도시(대부분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명명)를 건설했다.
현재의 타지키스탄을 정복한 그는 록사나Roxana 공주와 결혼하여 의복과 궁중 예절을 포함한 페르시아 관습을 받아들였다.
기원전 326년 인도의 히파시스Hyphasis 강에 도착하자 그곳에서 그의 지친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되돌아가 인더스 강을 행진하고 약탈했으며 상당한 인명 손실을 입고 수사Susa로 돌아왔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마케도니아 인종 융합 racial fusion 정책을 추진했다.
기원전 324년 자신이 총애하던 헤파이스티온이 죽자 알렉산더는 그에게 영웅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그 자신에게는 신의 영예를 요구했다.
그는 바빌론에서 오랜 잔치와 음주 끝에 병에 걸려 33세에 사망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묻힌 그의 제국은 당시 가장 위대한 제국으로 트라키아Thrace에서 이집트까지, 그리스에서 인더스 계곡Indus Valley까지 뻗어 있었다.
*** related article ***
히다스페스 전투, 알렉산더가 조우한 코끼리 부대
'역사문화 이모저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피터가 싸지른 로마신들의 족보 (20) | 2024.07.15 |
---|---|
로마는 구경도 못한 촌놈 로마 황제 막시미누스 트락스 (20) | 2024.07.15 |
돌려달래도 꿈쩍도 않는 로제타 스톤 (24) | 2024.07.15 |
신사의 나라에선 적선도 정장 차림으로? (22) | 2024.07.15 |
히다스페스 전투, 알렉산더가 조우한 코끼리 부대 (20) | 2024.07.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