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르도바Cordoba를 중심으로 한 독립 무어계 스페인 국가이자 우마이야 왕조 Umayyad dynasty 창시자는 다마스쿠스 칼리프 caliph of Damascus 손자인 압드 알 라흐만Abd ar-Rahman 1세다.
스페인 기반 무마이야 왕조 창설자라는 뜻이다.
그는 756년 가족이 학살된 후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10세기 무렵, 50만 명 인구와 훌륭한 도서관, 학교, 학자, 철학자들을 거느린 코르도바Córdoba는 사실상 유럽의 지적 중심지였다.
스페인은 평정을 되찾고 중앙 집권화했으며, 유대인과 기독교인에게 관용을 베풀었고, 예술과 과학과 함께 산업과 농업이 번성했다.
우마이야 칼리파국은 두 번째 칼리파국caliphate이다.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가 죽은 후 설립되었다.
이 왕조를 설립한 가문은 661년 제1차 피트나First Fitna가 끝난 후 칼리프가 된 대시리아 오랜 총독 무아위야Mu'awiya 1세와 함께 왕조적 세습 통치를 확립했다.
680년 무아위야가 사망한 후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으로 제2차 피트나Second Fitna가 발생했고 결국 권력은 다른 씨족 출신인 마르완Marwan 1세에게 넘어갔다.
그 후 시리아는 우마이야 왕조의 주요 권력 기반으로 남았고, 수도는 다마스쿠스였다.
우마이야 왕조는 이프리키야Ifriqiya, 트란스옥시아나Transoxiana, 신드Sind, 마그레브Maghreb , 히스파니아Hispania (알안달루스al-Andalus)를 정복하며 무슬림 정복을 계속했다.
전성기(661~750년) 우마이야 칼리파국은 면적이 1,110만 km²(430만 제곱마일)에 달하여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 왕조는 750년 아바스 왕조에 무너졌다. 왕조의 생존자들은 코르도바에 정착했고, 코르도바는 코르도바 에미리트Emirate of Córdoba, 그리고 코르도바 칼리파국Caliphate of Córdoba으로 발전하면서 이슬람 황금기에 과학, 의학, 철학, 그리고 발명의 세계적 중심지가 되었다.
우마이야 왕조는 광대한 다민족, 다문화 인구를 지배했다.
여전히 칼리파 인구 다수를 차지한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자신의 종교를 실천할 수 있었지만, 무슬림에게는 면제되는 지즈야jizya (인두세poll tax)를 납부해야 했다.
무슬림은 자카트zakat를 납부해야 했는데, 이 자카트는 무슬림이나 개종자들을 위한 다양한 구호 사업에 명시적으로 배정되곤 했다.
초기 우마이야 왕조 칼리프 시대에는 기독교인들이 주요 직책을 차지했는데, 그중 일부는 비잔틴 제국에 봉사한 가문 출신이었다.
기독교인 고용은 시리아처럼 정복된 지역에 많은 기독교 인구가 존재했기 때문에 필요했던 더 광범위한 종교적 수용 정책 일환이었다.
결국 이 포용 정책이 코르도바에서도 계속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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